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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부 이상 팔린 유명한 책 [82년생 김지영]이 영화로 개봉했다.

책이 한창 이슈가 되었을 당시,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구성된 책의 구성이나 설정에 대한 말들이 많았다. 여성들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들을 김지영이라는 한 사람에게 몰빵해서 몰아줘 놓고 이를 보편적인 여성들의 애환으로 그려냈다는 점들이 주된 비판으로 구설수에 오르곤 했고 말이다.

일단 책을 보지 않고 영화만 놓고 봤을 때, 영화가 상당히 볼만했다.

(솔직히, 책이 받은 엄청난 비판에 비해서는 영화가 상당히 얻을 점도 많고 생각거리도 많이 던져줬다. 아마, 책은 좀 더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한 쪽 방향을 지향해서 비판도 거세지 않았나 싶다.)

 

 

 

물론, 원작 자체가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뜬금없이 몰아 넣었다는 느낌이 조금 들긴 하지만 사실 일상 생활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들이기 때문에 나름 plausible(그럴싸) 한 느낌이 들었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여성이 정신과적 어려움에 처하기까지의 과정을 차분하게 보여주는데, 그 과정에서 영화는 '성 차별' 의 문제를 주된 화두로 던진다.

영화 [조커]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배려'의 문제 등을 다뤘다면, [82년생 김지영]은 '성 차별'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해 본다.

김지영의 나이 또래 여성들이 모두 비슷한 환경을 공유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일단 김지영은 원가족이 대체적으로 화목하다. 아들을 편애하는 아버지 상, 자신을 희생한 어머니 상이 있다지만 남매간의 우애도 나쁘지 않고 부모와의 대립도 비교적 양호해 보인다.

김지영이 만난 시어머니의 모습이 모든 시어머니를 대변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한 장면들은 별다른 위화감 없이 우리의 인식 속으로 들어온다.

 

그만큼 제법 익숙하기도 하고, 한번쯤은 직접적 또는 간적접으로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몇 가지 너무 과한 부분들도 있었다.

[1]영화 초반에 김지영이 손목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해주는데 뭐가 힘드냐는 말을 들었다고 하는데 요즘 이런 병원이 있을까?

 

-아주 가끔 생각 없이 이런 말을 하는 병원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긴 한데, 일반화 시킬 만한 화두는 아닌 것 같다. (기성 세대 중에서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없다고 볼 수는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2]카페에서 맘충에 대한 타인들의 수군거림에 대해 김지영이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맘충'이라는 용어에 적합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얌전하게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이 모두 맘충으로 불리진 않는다.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아이만을 극도로 싸고도는 일부의 상황에서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에 이 장면도 너무 과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단 누군가를 규정짓고 혐오하는 용어가 창조되면 이를 생각없이 사용하고, 쉽게 판단에 오용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므로 이 또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일단 자신의 꿈을 지니고 살아갔던 한 여성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주부가 되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부분들은 상당히 공감할 만 하고 사회 시스템의 문제들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포커스는 여성이 겪는 애환에 집중되어 있으나, 중간중간 남성이 겪는 성희롱이라든지, 직장에 다니는 남편이 함께 느끼는 애환들도 들어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더욱 균형감을 갖췄다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르포'에 가까운 이 영화는 김지영이라는 한 여인이 여성으로 살아감으로써 포기해야 했던 많은 것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빙의에 가까운 psychotic Symptoms 을 통해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명확하게 표현해 준다.

여성이기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많은 것들을 조망해 주고, 여성이기 이전에 자기애가 있고, 자신만의 꿈과 목표가 있던 한 사람의 인간 존재임을 당당하게 표현한다.

 

 

혹자들은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웠던 것도 아니고, 가정이 크게 불행했던 것도 아니며 별다른 트라우마 없이 자란 듯한 김지영을 정신질환이 찾아올 정도로 애처롭게 그렸느냐며 불만을 표출할 수도 있다.

 

물론, 한 사람의 정신이 무너져 내리는 데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작용한다.

유아기의 애착 문제, 자기애의 박탈, 큼직막한 트라우마, 경제적인 문제 등 등.

하지만 김지영과 같이 다른 부분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지극히 현실적인 일생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존재가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김지영의 정신력이 약하다고 비난할 문제도 아니요, 이 영화가 '성 문제'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를 억지로 전개했다고 비판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이며, 실제로 이런 상황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여성만 이와 같이 부당한 삶의 굴레에 갇혀 있다" 라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여성들은 이와 같은 삶의 애환과 고뇌가 있다" 라는 주제의식을 잘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성은 여성에게 해당하는 굴레가 있고, 남성은 남성에게 주어진 굴레가 있다.

성별 여하에 상관없이 더욱 차별 없고, 건강한 관계,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김지영과 비슷한 가정 환경, 양육, 사회 생활을 경험한 이들이 결혼 이후 삶이 바뀌었다면 이 영화는 굉장히 공감할 요소가 많은 영화다.

 

다소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으나, 그들도 부분적으로나마 이 영화 속에서 느끼는 영역들에서 공감대를 느낄만한 요소가 있었으리라 본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 경험해야 하는 어려움 등은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들이며 이에 대해서 더욱 나은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노력은 그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디 이 영화가 '남성 혐오'라는 이상한 방향으로 사용되기 보다는 '여성의 인권 향상', '여성의 삶을 재조명' 하는데 한자락 귀하게 사용되기를 바란다.

정유미, 공유의 연기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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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 전 의원에 의하면 나꼼수를 가장 많이 비판했던 게 진중권 교수와 허지웅 씨였다고 한다.

 

진 교수는 정치적으로 논쟁적이었던 다수의 사안에서 진보진영을 비판함으로써 보수언론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유일하게 양심적은 진보 인사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 

 

 

 

하지만 그로 인해 곽노현과 이정희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진 교수는 나꼼수가 제기했던, 박원순 후보가 제보궐 선거에 출마했던 선거 날의 디도스 공격에 대해서도 음모론이라고 비판했지만 모든 게 사실로 드러났다.

 곽 교육감은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는 점이 헌재의 결정에 의해 밝혀지고, 이에 경향신문은 사과를 했다.

 

그런데 진 교수는 여전히 곽 교육감의 유죄를 확신하는 발언을 해 트위터리안의 빈축을 샀다.

 

그 과정에서 트위터상으로 설전이 벌어졌는데 진 교수는 나를 멍청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법률 토론을 하기로 약속한 시간에는 나에게 딸기나 먹으라며 토론을 피했다.

 

내가 나꼼수의 디도스 공격 의혹을 지지했을 때는 "교수가 나꼼수 같은 거나 좋아하다니 한심하다"고 말했다.

 

이런 비난은 진 교수가 엘리티즘에 얼마나 심각하게 젖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진보신당 출신의 정치인들이 리버럴리스트(자유주의자)인 것처럼 행동해 신좌파와 헷갈릴 때가 많은데, 가장 뚜렷한 차이문화에서 발견된다. 권위주의자는 남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반면, 개인주의자는 타인을 존중해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진 교수는 자기 혼자만 양심적으로 결벽하다는 듯 다른 모든 사람을 쉽게 단죄하고 칼질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때문에 많은 진보진영 인사가 곤경에 빠졌지만 사과도 하지 않았다. 2012년에는 안철수를 지지해 그를 따르는 많은 시민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대선 후 안철수를 비판하기 시작하면서도 자신의 판단 착오에 대해서는 사과 한마디 없었다.

  그러나 진 교수의 장점은 계속 자기발전을 통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은 그가 거의 신좌파가 된 듯하다.

 

그의 전두엽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전두엽이 쪼그라든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진보가 될 수 없다고 믿기에 나는 진 교수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믿고 있다.

 

대체로 뇌가 굳은 사람은 공감 능력이 없다.

 

한자리에서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정반대의 말을 할지언정, 어떤 경우에도 상대의 말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팟캐스트를 녹음하면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그 후부터는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을 설득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했다.

 

구좌파는 너무나 멀리 있는 서양의 추상적인 민중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어, 이 땅의 이웃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 허지웅 씨의 경우는 '사과를 하지 않으면' 영화에서라면 몰라도 정치적 발언의 기회는 제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시민징계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자는 주장이다.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사상에 대한 사전검열로, 이는 표현의 자유를 위반하는 것이라 어떤 정부에서도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불법 행위다.

 

그러나 시민징계리스트자율적인 정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방송국에서도 마약, 도박, 불륜, 성매매, 음주운전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을 걸러내는 자체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시민징계리스트란 연예인만도 못한 언론인이나 논평가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리스트다.

 

블랙리스트의 원래 의미는 관찰 대상 명단이며 국가에서는 주로 테러리스트 같은 위험인물을 감시하는 데 사용한다.

 

시민들은 이를 낙선·낙천 대상자, 불매기업 명단으로도 사용한다. 김기춘, 조윤선의 블랙리스트가 문제가 된 건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인을 원천적을 배제하는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친일인명사전》처럼 시민징계리스트를 더 많이 만들어야 사회정의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도 결국 민주주의란 언론, 정부, 권력기관에 대한 시민의 통제를 어떻게 강화해할 것이냐 하는 문제라고 했다. 물론 나에 반대하는 사람 역시 이유를 밝히고 나를 리스트에 넣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과 이명박의 차이를 모르겠다'는 허지웅의 주장은 개인의 의견이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베와 친노가 똑같다'는 주장은 사과 없이는 용서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일베는 박근혜가 정상적인 대통령이 아니었기에 합법 사이트로 남아 있고 처벌받지 않을 뿐이지, 선진국 같았으면 혐오 발언으로 진즉 처벌받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를 처벌하느느 혐오 발언 금지법이 현재 입법 예고되어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통과되리라 믿는다.


 누구도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인종, 출신 지역, 연령, 성별, 게다가 약자라는 이유로 비하 발언을 들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일베는 사회적 약자만 골라서 비하했다.

 

유럽에서는 히틀러를 옹호한다든지, 히틀러가 했던 일을 미화하려 하거나 희석하려는 어떤 행위도 법적으로 처벌받는다.

 

외국인이나 고등학생이 '하일 히틀러Heil Hitler' 비슷한 행동만 했을 때도 처벌 대상이 됐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일베 회원을 '일베충'이라고 부르겠는가. 영화 분야야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만, 정치 분야에서는 허지웅씨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발언을 했으니 정치적 발언을 하고 싶으면 먼저 자시의 잘못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지웅은 노사모와 일베가 행태상 차이가 없고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주장했다.

 

적대적 공생관계란 우리나라의 보수 세력과 북한 정권의 관계처럼, 겉으로는 적대적으로 보이지만 서로의 존재로 인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친노는 신좌파 시민들이고 유럽의 역사를 봐도 민주주의 발전에 꼭 필요한 바람직한 집단이다.

 

허지웅이 곽노현 교육감을 부당하게 공격해 친노들이 SNS에서 허지웅을 비판한 것이지, 가만히 있는데 괜히 그랬겠는가. 

 

그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대신 친노에게 원망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 와중에 〈변호인〉이 개봉되기 전 포스터에 친노는 10점, 일베는 0점을 주는 경쟁이 벌어진 것 같다.

 

 

일베가 0점을 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1,100만이 넘는 영화의 흥행을 봐도 0점은 비정상적인 점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지웅은 친노가 영화를 보기도 전에 10점을 줬으니 일베와 같다고 주장했다. 친노는 이미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본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노무현의 삶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영화가 감동을 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노사모와 일베는 전혀 닮은 점이 없다.

 

노사모는 일베가 없이 탄생했고 일베가 사라져도 건재할 것이다. 따라서 노사모와 일베의 관계를 굳이 정의한다면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일베는 노사모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사회에 해를 끼치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노사모는 우리 사회가 벌전하는 데 꼭 필요한 원동력이고 민주주의 징치체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유럽의 역사를 봐도 국민 중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극심한 경기 침체기를 제외하고는 점점 증가하는 게 이 분야 권위자인 잉글하트 교수의 예측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발언을 허용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의 발언만 허용한다. 민주주의를 위협에 빠뜨리는 일베의 자유는 사법적 처벌의 대상이라는 게 선진 민주국의 기준이다.


 

 팟캐스트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정봉주 전 의원이 허지웅 같은 연예인은 상대하고 싶지 않다며 내 말을 도중에 자꾸 끊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곤 했는데, 팟캐스트에는 마치 내가 이 부분을 몇 번이나 강조해서 말한 것처럼 나온다.

 

그런 연유로 편집 과정에서 그리된 것이지 이 부분이 그렇게 강조할 만큼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요즘에는 연예인이 정치평론가보다 발언의 영향력이 더 크다. 따라서 나는 허 씨가 사과하지 않고 공적인 매체를 통해 정치적 발언을 이어간다면 지속적으로 비판할 생각이다.

 

일베의 반사회적 성격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나는 허 씨에게 사고를 촉구할 생각이다.

 

 그러나 구좌파사과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해 잘 하지 않는다.

 

게다가 부자에게는 벌금형이 그다지 큰 제약이 되지 않지만 서민에게는 같은 액수의 벌금형이 중벌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일반인에 비해 연예인으로서 그는 사과를 했을 때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허 씨가 반드시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아도 기회가 있을 때 자신의 과거 발언에 대해 후회나 유감의 뜻을 표한다면, 나는 사과를 받아들일 생각이다.

 

그가 사과를 통해 보다 활발히 정치적 발언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그래야 시민들도 일베의 반사회성, 범죄성에 대해 새로운 학습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왕따의 정치학]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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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최초 유화 애니메이션으로 재조명되는 반 고흐의 이야기.

유화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고? 그것도 단편이 아닌 장편 영화를?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그래서 정보를 확인해 보니, 제작 기간이 총 10년이 걸렸으며 100명 이상의 아티스트가 참여를 했고, 60000점 이상의 유화 프레임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결심한 시점부터 그들의 용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42초 짜리 컷을 스크린에 내보내기 위해 6개월 간 작업을 했다는 인터뷰도 기억이 난다.

 

 

도대체 반 고흐(Van Gogh)가 어떤 인물이기에 수 많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일부분'을 내어주면서까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려 하는가?

필자가 아는 반 고흐는 약 10년 전에 읽었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라는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작품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들이 가득 담겨 있는데 [러빙 빈센트]와 함께 본다면 감동이 배가 될 만한 작품이다.

 

책에서 반 고흐가 쓴 글을 읽고 나면 그가 얼마나 동생을 아끼고, 마음이 따뜻하고 '그림'에 대한 소명의식과 열정이 강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반 고흐의 이름은 대중들에게도 상당히 친숙하다.

 

[별이 빛나는 밤], [카페테리아] 등의 작품들은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어디선가 한번 쯤은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스릴러와 같은 느낌을 풍기는데, 반 고흐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히 결정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그가 죽고 난 이후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는 유화 필치로 고흐의 주요 작품들을 보여주면서 전개되기 때문에 매우 독창적이고 참신하다. 기존에 본 적 없는 화면이 구현된다는 점만으로도 이 작품에는 가산점을 높게 줄 수 있다.

 

배경 음악도 상당히 좋아서 몰입도가 상당하다.

이 작품은 영화표를 구입한 비용이 미안해질 정도로 값어치가 높은 예술이었다.

 

수 많은 아티스트들의 강박적인 집념과 헌신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완성될 수 있는 작품이기에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고흐의 명작들이 스크린에 그대로 구현되며, 그의 깊은 내면이 애니메이션 속에 스며들어 있다 보니 이보다 더 멋진 고흐 관련 영화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고흐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건 바로 '그림'이다. 그가 남긴 수백 점의 작품들 속에는 그가 걸어온 발자취가 남겨져 있고, 그가 만나왔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95분이라는 시간 속에 상당량 농축되어 담겨져 있다.

고흐는 어떤 사람인가?

수 많은 학자들이 고흐에겐 정신 질환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경계성 인격장애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측두엽 간질과 양극성 장애(조울증)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후자에 무게를 두는 편이긴 한데 ([조울병으로의 여행] 참고), 고흐의 말마따나 그는 우울하고 차가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영화에서도 나타나듯 first caregiver인 엄마로부터 충분한 애착 관계를 경험하지도 못했으며 무뚝뚝하고 엄격한 아버지로 인해 제대로 된 인정을 받거나 사회성을 훈련받지도 못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 당하고 매춘부와 얽힌 복잡한 사연도 존재한다.


고갱과의 갈등으로 인해 정서적 고통을 경험하기도 했다.(고흐의 정서 불안정이나 조증 증상으로 인해 고갱이 힘들어 했을 수도 있고, 고갱과의 'fit'이 안 맞았을 수도 있으며, 고갱 쪽 문제가 컸을 수도 있다. 가능성은 여러 가지다.)

 

 


 

수 많은 전문가들은 고흐가 우울증 시기일 때는 작품이 어둡고 음침한 경우가 많았으나 인생 말기에 조증이 오고 나서는 화려한 색채에 과장되고 왜곡된 사물 표현을 하여 격렬한 감정을 표현했다고 분석한다.


자신의 귀를 자르고 나서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으나 당시에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 치료제도 변변치 않았다.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자살 하기 전 10년 정도의 기간 동안 대부분의 유명한 작품들을 연달아 그렸으니 이 시기는 경조증, 조증 시기가 주를 이루지 않았나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조증 상태일 때는 몸의 에너지 수준이 증가하고, 활동량이 증가하고,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추진할 의욕이 상승하곤 함)


[러빙 빈센트]에서도 나왔듯이 그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이다. 하지만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등의 작품에 드러난 그의 편지를 읽어 보면 그는 분명한 노력파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더 나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하고 기존의 '틀'을 판박이처럼 따라가는 그림이 아니라 영혼을 불어 넣은 '그림'을 그리려고 고뇌한 흔적들이 글 속에 가득 담겨 있다.


그는 조증 상태일 때의 광기에 가까운 천재성과 음울하면서도 진중한 노력파이기도 한 두 얼굴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을까?

 

감정의 극심한 요동 속에서 두 가지의 모순된 모습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씨름했을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가슴이 아프다.

 

당시엔 그를 도울 수 있는 의학적 기술도 없었으며, 정신 건강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귀를 충동적으로 자르거나,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충동적인' 일화들과 달리 그는 그림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어 했고, '깊이가 있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 으로 기억되길 소원했다.


'그림' 속에 영혼을 불어 넣는 '영혼의 화가'이기를 소원했으며, 자신으로 인해 동생 테오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느끼게 된 점에 대해 죄책감과 미안함 마음을 가득 지닌 여린 감성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 속에 위로를 주길 원했던 그의 꿈은 그가 죽고 나서 비로소 실현되었다.


살아 생전에는 가난에 허덕이고, 명성을 얻지 못했던 그의 삶, 충분한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고 자신을 지지해주거나 공감해 줄 만한 대상(Object)을 찾지 못해 공허함이 가득했을 그의 정신 건강.

그럼에도 그는 밤 하늘의 '별'이 되리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과 싸우고, 자신의 내면과 투쟁했던 인물이다.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그가 그림 속에 남긴 '깊이와 따뜻함'은 전 세계 수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위로를 주고 있다.

 


반 고흐를 기억한다. 그의 지독했던 외로움과 고통들을 위로한다.

그리고 그의 깊이와 따뜻함을 존경한다.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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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의 작품들은 워낙 명작들이 많다 보니, 매번 신작이 나올 때마다 기대를 하게 됩니다. UP 도 명작의 반열에 올릴 만한 작품 중 하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인크레더블], [라따뚜이], [월E] 등의 작품들도 여러 번 봐도 감탄을 자아내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연출력, 재미를 보여줬습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성인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습니다. 삶의 진중한 구석들을 잘 터치해 주는 매력이 상당합니다.

 

(워낙 오래 전에 쓴 리뷰이긴 하지만 UP 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한번 읽어 보셔도 괜챃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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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

 

픽사의 최신판.

 

픽사의 에니메이션은 인크레더블 , 라따뚜이 밖에 보지 못한 상태다.

 

일단 , 소재와 주인공 급 캐릭터를 먼저 살펴보는 나로서는 생쥐 가 주인공이고 , 할아버지 가 주인공이고 , 깡통로봇? , 이상한 히어로 등이 주인공이고.. 그 외에도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를 내세우는 픽사의 에니메이션은 첫 발 을 내딛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외형적으로 화려하고 , 아름다운 일본 에니메이션에 적응되어 살아오다 보니 ,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거부 반응 이리라.

 

하지만 , 현재 픽사의 세 작품은 굉장히 훌륭한 작품으로 기억에 남아 있으며 , 그들의 다른 작품들을 본다 해도 아마 그와 같은 호평을 하게 될 것 같다.

 

신뢰도 100% 라는 표현이 좀 웃기겠지만 , 보는 족족 다 훌륭하니 이젠 뭘 봐도 그들의 작품은 기대감을 가지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 <인크레더블>을 봤을 때는 ~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이런 에니메이션이 또 나올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 <라따뚜이> 를 보고 나니 , ~ 정말 대단하다. 이런 스토리.. 이런 발상 이런 움직임 최고다! 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젠 <UP> 을 보고 나니 , 전작들을 능가하는 최고의 작품이다! 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것 같다.

 

 

<간단한 평>

 

일단 , 주인공이 그저 그런 할아버지와 꼬마 아이이기에 , 과연 이러한 캐릭터로 승부를 볼 수 있을까 우려했었는데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켜 준 작품이다.

자신들이 치밀하게 준비한 인물 구성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음을 당당히 증명해 낸 픽사의 능력 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3D 로 구성된 시각적 요소도 물론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 수 많은 풍선들이 하늘 거리며 집을 들어 올리는 모습. 미려한 파라다이스 폭포의 전경 등은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에서 봤었던 , 한 장면을 3D 로 보는 것처럼 아련하고 , 섬세한 기분을 자아낸다.

 

 

 

 

<살짝 더 들어가기>

 

모험

 

이 에니메이션의 주제는 모험 이다. (물론 달리 해석될 수도 있다.)

 

이 말인즉슨 ,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반복되어 가는 일상 , 무료했던 지난 날을 던져 둔 채 , 자신의 을 찾아 하늘로 둥실 둥실 날아 오르는 주인공 일행을 보면서 , 우리는 모험을 실행 하는 그들의 모습을 왠지 모르게 동경하게 된다.

 

사람은 모두 모험 을 꿈꾼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들은 , 모험 본능 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로맨스

 

이 에니메이션의 주제는 사랑 이다. (자의적인 해석이다.)(여기서 사랑 Eros 적 의미가 강하다)

 

이 에니메이션 속에 나오는 칼 할아버지가 왜 뒤늦게나마 모험을 준비하게 되었는가.

 

그건 바로 , 자신이 사랑하던 아내 앨리의 꿈을 이뤄 주기 위해서 아니였던가.

 

칼 할아버지는 여행을 해 나가면서 , 지치고 힘들 때마다 사별한 자신의 아내 앨리 와 대화를 나눴다.

 

칼 할아버지에게 앨리는 자신이 모험을 실행 에 옮기게 된 주된 동기 였으며 , 모험을 지속 시켜 나갈 수 있는 추진력 이 되어 줬으며 , 모험을 완성 케 해주는 결정적 요소 가 되어 주었다.

 

결국 , 이 영화 속에서 파라다이스 폭포 옆에 집을 세워 둔다는 모험 , 한 편의 러브 스토리 나 다름 없다.

 

불어로 aventure는 모험이라는 일차적 의미말고도 정사, 연애라는 뜻이 있다.

 

그렇다. 모험은 로맨스며 , 연애며 뜨거운 사랑이다.

 

 

 

 

인생

 

이 에니메이션의 주제는 인생 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영화는 삶 그 자체 를 상징화 시켜 둔 거나 다름 없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 가면서 자신이 꿈꿔 왔던 모험 을 완성하기 위해 아둥바둥 하지만,현실은 호락호락 하지 않다. 이 영화에서도 나와 있듯이 우리는 대개 일상 생활에 찌들려서 , 삶이라는 무게에 짓눌려서 , 거창했던 을 실현해 나가지 못하곤 한다.

 

하지만 , 뜻 밖의 기회를 통해 우리는 용기를 내게 되고 자신이 가진 힘을 끌어 모아서 그 모험에 도전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 영화 속에서는 이러한 의지 를 끌어올리게 해 준 존재가 바로 아내인 앨리 . 결국 그녀에 대한 사랑 의 힘으로 모험 은 불이 지펴지게 되었고 , 인생은 다시 활력을 되찾게 된다.  

 

하지만 좀 더 나아가 보자.

 

이 영화 속에서 기존에 드러났던 모험의 목표 는 무엇이었는가.

 

바로 파라다이스 폭포 옆에 집을 가져다 두는 것 아니었던가. 이게 바로 아내인 앨리가 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칼 할아버지도 오직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해 , 개구쟁이 꼬마 러셀 , 멍멍이들의 방해 , 그리고 악당 캐릭터들의 공격 , 케빈이라는 새 등의 복잡한 무리들을 뒤로한 채 끝까지 전력을 다한 것이다.

 

하지만 , 할아버지가 처한 난관은 마치 우리내들이 살아내는 인생과 흡사하다.

 

어느 덧 정이 들어 버린 캐빈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할 상황.

 

여기서 <할아버지가 설정해 둔 개념적 의미의 모험> 을 상징한다면 , 캐빈 , 서로 정을 나누고 , 추억을 나누고 , 시간을 보낸 <사랑을 나눈 관계> 를 상징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당연히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생각해 둔 의미의 <모험> (할아버지는 이 모험이 아내인 앨리가 생각하는 <모험> 가 같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을 성취해 나가기 위해 과감히 행동을 취했고 , 사랑 을 끊어 버리는 결단까지 내린다.

 

하지만 , 결국 할아버지가 <> 을 선택함으로 인해 , 곤경에 처하게 된 케빈.

 

그 새를 구하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할아버지.

 

그러면서 집은 그저 집일 뿐이다. 라고 고백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속에는 , <모험> 의 이면에 숨겨졌었던 <참 의미> 가 회복되어 감을 볼 수 있다.

 

작게는 자연주의와 유물론에 찌들어 버려 , 사물 매개체 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에서 ,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의 교감 , 그들과 나눈 정 , 사랑을 더욱 중요시 여기는 생명 중심주의 로 진일보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크게는 , <사랑> 으로 인해 <모험> 이 형성된다는 것을 망각한 채 , <모험> 이라는 개념에 눈이 멀어 있던 할아버지가 <사랑을 통해 완성되는 모험> , <그러한 모험으로 살아가는 인생> 을 깨닫게 됨으로서 , 진정한 ,인생 을 깨닫게 되어가는 모습을 배우게 된다.

 

그렇다. 이러한 스토리는 우리가 죽어가는 세상 속에서 서서히 진정한 을 알아가는 과정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을 생생하게 담아낸 , 그럼으로써 우리는 <사랑에 기반한 모험으로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나간다> 는 것을 심플하지만 강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정말 굉장한 Power 가 있는 듯 하다.

 

 

 

 

그렇다. 이 영화에는 인생 이 담겨 있다.

 

 

인생은 하나님이 지휘하시는 모험이라고 폴 투르니에는 말한다.

 

그렇다. 인생은 모험으로 가득차 있다.

 

이 한 문장이 함축하는 의미는 , 영화에서 나타나는 <모험> 의 정의와도 상당히 부합한다.

 

이 영화에서 아내 앨리는 자신의 모험을 기록해 두는 앨범 을 줄곧 들여다 봤었고 , 그 뒷편을 채워 나가고 싶어 했었다.

 

칼 할아버지도 이러한 아내의 소망에 부응코자 , 모험을 시작하게 된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 아내 앨리의 엘범은 어느덧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특별히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개념적인 모험> 을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 앨범 속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일상 , , 인생 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그렇다. 모험은 삶이었던 것이다. 모험은 인생 그 자체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 이 모험을 이루는 삶의 조각들 , 기억의 편린들은 서로가 나눈 사랑 으로 반죽되어져 있었다.

 

그렇다. 모험은 삶 그 자체이며 , 삶은 사랑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율법을 완성하는 이유도 이와 같지 않겠는가

 

<사랑> 이 빠진 삶은 그 가치를 잃어 버릴 것이며 , 우리의 모험은 더 이상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물론 , 서로가 살아가다 보면 사랑 만 할 순 없을 것이다. 서로 미워 하고 , 다투고 , 시기하고 , 어두운 일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인격체가 서로 관계하며 , 서로 정을 나누며 , 서로 교감한다면 그것도 결국 사랑 으로 환원되리라 확신한다.

 

 

한편의 짤막한 에니메이션을 통해 , 통쾌한 어드벤쳐를 경험하며 , 잔잔한 감동이 깃드는 휴머니즘 드라마를 보는 듯 하며 , 가슴 뭉클한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서로 관계함)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감으로써 우리의 인생을 멋진 <모험> 으로 채워 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만큼 가치 있는 <모험> 은 없을 것이다.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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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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