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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의 신

 

저자: 알리스터 맥그라스

 

43page ~49page

 

 

 

도킨스는 누구인가?

 

하지만 먼저 도킨스부터 소개하자. 클린턴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 3 26일 케냐(Kenya)에서 클린턴 존 도킨스(Clinton John Dawkins)와 진 메리 비비안 도킨스(Jean Mary Vyvyan Dawkins)의 아들로 태어났다.

도킨스에 따르면, 자신의 종교적 배경은 전통적인 성공회였다고 한다.

그러나 청소년 시기에 프랑스 예수회 사제이자 고생물학자였던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뎅(Pierre Teilhard de Chardin)의 진화와 영성의 관계에 대한 견해에 관심을 가졌다는 단서도 있다.

 

 

 

 

 

도킨스는 온들 스쿨을 졸업한 후 1959년에 옥스퍼드 대학 베일리얼 칼리지(Ballio College)에 동물학 전공으로 입학했다.

1962년 졸업 후 옥스퍼드 대학 동물학과에서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공동수상자였던 니코 틴버겐(Niko Tinbergen, 1907~88) 교수의 지도로 연구를 시작했다.

 

 

 

틴버겐과 그의 오스트리아인 동료인 콘라드 로렌츠(Konrad Lorenz, 1903~89)동물행동학(자연 환경에서 일어나는 동물 행동의 전체 패턴을 적응과 패턴의 진화를 중심으로 분석하는 연구)을 개척하고 있다.

로렌츠가 1930년대에 이 학문의 개념적 토대를 놓았다면, 틴버겐의 침착하고 세밀한 관찰 작업은 그 이후의 개념적 발전들과 실천적 발전에 공헌했다. 특히, 그의 기념비적 작품인 [본능에 대한 연구](The Study of Instinct, 1951)가 그러하다.

집 병아리의 선택적 쪼아 먹기’(Selective Pecking in the Domestic Chick)라는 제목의 도킨스의 박사 학위 논문은 동물행동학의 이러한 전통 위에 서 있다. 그의 박사 논문의 주제는 간결하고도 구체적이다. 그가 던진 질문은 닭이 주변 자극을 부리로 쪼는 방식을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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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몇 십 년간 이탈리아에서 태양중심 모델에 관한 새로운 논란이 시작되었다. 이번 논쟁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계 이론의 대표적인 옹호자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입장을 둘러싼 것이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결국 가톨릭교회는 갈릴레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고, 오늘날 이는 일부 교회 관료들이 저지른 명백한 판단 착오로 인식되고 있다.

​처음에 갈릴레이의 의견은 고위 성직자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그가 교황의 총신 치암폴리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일부 작용했다.

 

치암폴리의 권력 실추로 갈릴레이는 교황 측근의 지지를 잃었고, 결국 적들의 공격 대상이 되어 유죄 선고까지 받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록 갈릴레이를 둘러싼 논쟁이 과학 대 종교, 또는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성경의 올바른 해석에 있다.

과거에는 이 논쟁과 관련된 신학적, 더 정확하게 해석학적 쟁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올바르게 조명되지 않았다.

 

이 논쟁에 관심을 가진 학자 상당수가 과학자나 과학 역사가였다.

고도로 복잡했던 시대에 성경 해석에 관한 논쟁의 얽히고설킨 내막을 잘모르는 사람들이 벌였다는 사실도 부분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여하튼 갈릴레이와 그의 비판자들이 벌인 논쟁에서 최대 쟁점은 특정 성경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논쟁에서 조정(accommodation)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점을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1615년 1월 발표한 중요한 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갈멜 수도사였던 포스카리니(Paolo Antonio Foscarini)는 <피타고라스학파와 코페르니쿠스의 의견에 관한 서한,Letter on the Opinion of the Pythagoreans and Copernicus>에서 태양중심 모델이 성경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포스카리니는 그의 분석에서 어떤 새로운 성경 해석 원리를 내세우지 않았고, 오히려 전통적인 해석 방식을 제시하고 적용했다.

성경에서 ​부적절하고 부적당하다고 여겨질 만한 속성을 신이나 피조물에 부여하려면 다음 방법 중 하나 이상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야 한다.

​[1] 은유나 비교, 비유의 목적을 지닌 것

[2] 우리의 고찰과 판단, 이해, 인식 등의 방식에 맞게 말한 것

[3] 서민의 생각과 보편적인 화법에 맞게 말한 것


(Blackwell, 1991, pp.94~95)

포스카리니가 말한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세 번째 성경 해석법인 '조정'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말한 대로 이 해석법의 기원은 초기 기독교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에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았다.


포스카리니는 그가 채택한 해석법이 아니라, 그 해석법을 적용한 성경 구절에서 혁신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포스카리니는 ​당시까지 많은 이들이 문자 그대로 해석하던 일부 구절에 조정 해석법을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지구가 정지해 있고 태양이 움직인다는 의미로 여겨지던 구절에 대한 것이었다. 포스카리니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성경은 우리의 이해 방식과 형세에 따라 우리를 고려해서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내용이 우리와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인간의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고방식에 맞게 묘사된다. 즉 지구는 멈춰있고 움직이지 않으며 태양이 그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를 생각해서 평범하고 보편적인 말투로 얘기한다. 우리에게는 정말 지구가 한가운데 단단히 고정된 상태에서 태양이 그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이지 그 반대로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Blackwell, 1991, p.95)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더욱 신봉하게 된 갈릴레이 역시 포스카리니와 비슷한 성경 해석법을 채택한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관건인데 갈릴레이 비판자들은 성경의 몇몇 구절이 갈릴레이의 의견과 반대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 10장 12~13절에는 여호수아의 명령으로 태양이 멈췄다고 하는데, 바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없이 입증한 것이 아닌가?

 

갈릴레이는 <대공비 크리스티나께 드리는 서한, Letter to the Grand Contess Christina>에서 그와 같은 표현은 단지 보편적 화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맞섰다.

여호수아가 천체역학의 복잡한 원리를 알았을리 없고, 결국 그는 '조정된' 화법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두 가지 근거로 공식적인 지탄을 받았다.

[1] 성경은 '단어들의 올바른 의미'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직해적인 해석법이 힘을 얻으면서 포스카리니가 택했던 조정된 해석법은 거부되었다.

그런데도 두 가지 다 기독교 신학계에서 타당성을 인정받았고, 오랜 역사를 지닌 해석 방법이라 문제의 성구에 어느 쪽이 적합한가를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졌다.

[2] 성경은 '교황 성하와 박학한 신학자들의 공통된 해석과 이해에 따라' 해석해야 했다.

다시 말해 그때까지 중요한 인물 중 포스카리니의 해석을 따른 이가 없었고, 따라서 그 해석은 새로운 것이므로 일축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포스카리니와 갈릴레이의 견해는 기독교 사상 전례가 없는 새로운 주장인 만큼 거부해야 했다.

두 번째 논점은 매우 중요하다. 향후 오랫동안 계속된 프로테스탄티즘과 로마가톨릭 간의 치열한 논쟁의 맥락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새롭게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정통 기독교의 회복인지를 따졌던 이 논쟁은 17세기에 일어난 30년 전쟁(1618~1648) 때문에 더욱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가톨릭 전통의 불변성이라는 개념은 로마가톨릭이 프로테스탄티즘에 맞서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로마가톨릭을 옹호하는 대표적 인물인 보쉬에(Jacques-Benigne Bossuet, 1627~1704)가 1688년 그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교회의 가르침은 언제나 한결같다....복음은 이전의 내용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과거에 언급되지 않았더너 뭔가가 신앙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이단, 즉 정통 교의에서 벗어난 것이다. 거짓된 교의는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언제 나타나든지 즉시 알아볼 수 있다. 새로운 개념이니까..... (Chadwick, 1957, p.20)

17세기가 시작될 무렵 이러한 주장들은 널리 확산되었고, 포스카리니에 대한 공식적인 비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가 제안한 해석법은 전례가 없었고 그 이유만으로도 옳지 않았다.

 

​이처럼 성경 해석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은 복잡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극도로 정치화된 일촉즉발의 시대에 어떤 새로운 접근법이라도 용인했다가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적법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일까 두려워해 당시의 신학 논쟁은 크게 편향되어 있었다.

어떤 중요한 사안에 대해 로마가톨릭의 가르침이 '바뀌었음'을 인정한다면 필시 프로테스탄티즘 핵심 교의, 즉 이제까지 로마가톨릭 교회가 '새로운 것'으로 여겨 거부해왔던 가르침을 정통 교의로 받아들이라는 요구로 이어질 수 있었다.

따라서 ​갈릴레이의 견해가 저항에 부딪힌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신학적으로 새로운 개념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특정 성구에 대한 갈릴레이의 해석을 수용한다면 가톨릭의 프로테스탄티즘 비판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었다.

프로테스탄티즘에서 특정 성구에 새로운, 새롭기 때문에 잘못된 해석을 도입했다는 주장에 기초한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갈릴레이의 주장이 배척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이와 같은 간단한 분석을 통해 갈릴레이 논쟁의 배경에 성경의 해석과 과거 교의의 전승을 두고 갈등을 빚은 프로테스탄티즘과 가톨릭교회의 관계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행히도 갈릴레이는 이 논쟁의 십자포화와 암류에 휩쓸렸던 것이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과학과 종교] 에서 발췌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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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3년 5월 발표된 코페르니쿠스의 논문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모델은 17세기 초반 20여 년간 케플러의 정밀한 연구가 이루어진 뒤에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중세 신학자들은 '지구중심설'이라고도 불리는 과거의 모델을 정설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지구중심설이라는 안경을 쓰고 성구를 읽는 데 익숙한 나머지 새로운 관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구 중심설)
 

따라서 성경과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다룬 최초의 글로 인정받은 레티쿠스(G. J. Rheticus)의 <성경과 지구의 운행에 관한 논문, Treatise on Holy Scripture and the Motion of the Earth>과 같이 초기에 발표된 코페르니쿠스 이론에 대한 변론에서는 두 가지 쟁점을 다뤄야 했다.

[1]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는 결론으로 이끌 관측 증거를 제시해야 했다.

[2] 오랫동안 지구중심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해석되었던 성경과 이 견해가 사실은 부합한다는 점을 증명해야 했다.

앞서 말했듯이 관측 증거는 나중에 케플러가 수정한 코페르니쿠스 모델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신학적 관점에서 이 모델을 본다면? 이 모델에 따라 지구중심의 우주와 완전히 결별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태양중심설이 부상하면서 신학자들은 일부 성구의 해석 방법을 재검토할 수 밖에 없었다. 기독교의 전통적인 성경 해석법은 크게 세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방법을 살펴보고 과학과 종교의 대화라는 주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보자.

 

[1] 성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직해적(literal) 접근법이 있다. 창세기 1장을 직해적으로 해석하면 창조가 하루를 24시간으로 하여 6일에 걸쳐 일어난 것이 된다.

[2] 비직해적, 즉 우의적(allegorical) 접근법으로 성경의 어떤 부분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적절치 않은 문체로 쓰였음을 지적한다.

 

중세에는 성경에서 세 가지 비직해적 의미가 인정되었다.

 

이는 16세기의 많은 학자들이 상당히 정교한 표현으로 여겼던 것들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창세기의 도입부는 시적이거나 우의적인 표현으로서, 여기서 신학과 윤리 원칙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반면 문자 그대로 지구의 기원을 전달하는 역사적 설명은 아니다.

[3] 조정(accommodation)의 개념에 입각한 접근법이다. 이는 성경의 해석과 자연과학의 상호작용 측면에서 볼 때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접근법이다.

 

여기서는 계시(revelation)가 문화 및 인류학적 조건이 부여된 방법과 형태로 일어나 그 결과를 적절히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는 유대교와 그 뒤에 이어진 기독교 신학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초기 기독교 교부 시대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16세기에 와서야 완성된 모습을 갖췄다.

 

이 관점에 따르면 창세기 도입부에 사용된 언어와 이미지는 초기 독자들의 문화적 환경에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초기 독자에게 맞게 '조정된' 형태와 용어 속에 표현된 핵심 개념을 추출하여 해석해야 한다.

세 번째 접근법은 16~17세기에 신학과 천문학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종교개혁가로 유명한 칼뱅(John Calvin, 1509~1564)은 자연과학이 인정받고 발전하는 데 두 가지 측면에서 크게 공헌했다.

(존 칼뱅)


[1]자연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을 적극 장려했다.

[2]앞서 설명한 '조정'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과학 연구 발전을 가로막던 큰 장애물을 없앴다.

그의 첫 번째 ​공헌은 특히 창조의 질서를 강조한 것과 관련이 있다. 물리적 세상과 인체 모두 신의 지혜와 개성을 입증하는 증거다. 따라서 ​칼뱅은 천문학과 의학 연구를 장려했다. 자연세계를 신학보다 더 깊이 탐구하면 창조의 질서와 창조주의 지혜를 밝힐 증거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칼뱅은 자연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새로운 종교적 동기를 부여했다.

 

칼뱅이 두 번째로 크게 기여한 것은 자연과학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물이었던 성경 직해주의를 타파한 것이다. 성경의 주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성경은 천문학이나 지리학, 생물학 교과서가 아니다.


그리고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신이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능력에 맞추어 '적절히 조정'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계시가 일어나려면 신이 인간의 수준으로 내려와야 한다. 인간이 한정된 능력으로 수용할 수 있게 단계를 낮춘, 즉 '조정된' 신의 모습이 계시를 통해 전달된다.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기 위해 몸을 굽히는 것처럼 신 역시 인간의 눈높이에 맞게 스스로 굽히고 낮춘다.


​계시는 신이 보여주는 겸손의 행위인 것이다.

과학 이론화에 관한 이 두가지 관점은 특히 17세기에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영국의 저술가 라이트(Edward Wright)는 길버트(William Gilbert)가 쓴 자기학 관련 논문 (1600)의 서문에서 성경 직해주의자들에 맞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옹호했다.

​성경은 물리학을 다룬 책이 아니며, 성경의 화법은 '유모가 어린아이를 대하듯 보통 사람의 이해력과 말투에 맞게 조정된 것'이라고 주장했다.(Hooykaas, 1972, pp.122~123). 이 두 가지 주장 모두 칼뱅에서 비롯된 것인만큼 칼뱅은 자연과학의 출현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과학과 종교] 에서 발췌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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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첨예한 요즘 분위기에서 둘 간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책입니다.


과학사에서 잘못 알려진 역사적 진실을 추적해 보기도 하고, 맥그라스 특유의 논리를 바탕으로 섯부른 이분법적 접근이나 굴드 식 NOMA 개념을 거부하는 책입니다.


평소 맥그라스의 저서를 좋아한다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책이 될 것이며 이 책을 입문서로 시작해 개론서들을 찾아 읽으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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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근대에 인류가 세 가지 '자기애적 상처'(narcissistic wound)를 입었고, 각각의 상처는 인간의 자긍심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단언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 퍼옴)​


첫 번째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 있음을 알려준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입힌 상처였다.

두 번째 상처는 심지어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음을 입증한 다윈주의였다.

세 번째는 인간이 자신의 한정된 영역에서도 주인이 아님을 밝히는 프로이트 본인이 입힌 상처라고 그는 당당히 밝혔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러한 혁명적 전환은 전자가 가져온 고통과 상처를 가중시키면서 인류의 위치와 중요성에 관한 철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


프로이트의 견해가 갖는 종교적 의미는 이 책에서 나중에 다시 조명할 것이다.

​여기서는 그 '상처' 중 첫 번째인 코페르니쿠스 혁명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각 시대는 그 시대의 세계관을 뒷밤침하는 일련의 확립된 신념들이 존재한다.

중세도 예외는 아니다. 중세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태양과 다른 천체(달, 행성 등)가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는 믿음이었다. '지구 중심적' 우주관은 자명한 사실로 간주되었다.

 

성경도 이러한 믿음을 근간으로 해석했다 .많은 성경의 해석에 지구중심적 가정이 적용되었다. 현재 사용 중인 언어 대부분도 지구중심적 세계관을 여전히 반영한다.

예를 들어 현대 영어에서도 '해가 오전 7시 33분에 떠올랐다.'고 말하는데, 여기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믿음이 반영되어 있다.

태양계의 지구중심 모델이 참이냐 거짓이냐는 일상생활에 별 영향을 주지 않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중세 초기에 가장 널리 받아들였던 우주관은 2세기 상반기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Claudios Ptolemaeos)가 구상한 것이었다. 그는 <알마게스트,Almagest>에서 달과 행성의 운행에 관한 기존의 개념을 집대성하면서 다음 가정에 근거하여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다.

2. 모든 천체는 원을 그리며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

3. 회전은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그 중심 역시 또 다른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형태를 띤다. 본래 히파르코스(Hipparchos)가 주창했던 이 중심론은 '주전원'(epicycle), 즉 원 운동 위에 원 운동이 부여된다는 개념에 근거한다.

행성과 항성의 움직임이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관측되면서 이론은 갈수록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주전원을 추가하는 방법으로 모순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5세기 말 무렵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루기 힘든 이 모델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에 있었다. 하지만 무엇으로 대체한단 말인가?

16세기 들어 지구중심 모델은 태양 중심 모델, 즉 태양을 중심에 놓고 지구는 그 주위를 도는 많은 행성 중 하나라고 보는 관점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는 기존 모델과 완전한 결별을 뜻하며, 지난 1000년 간 인류의 실재관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임이 분명하다. 이 사고의 전환을 흔히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이라 부르며, 이것이 자리잡기까지 세 명의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폴란드 학자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동심원을 그리며 회전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 뿐 아니라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했다.


(코페르니쿠스- 퍼옴)


그러므로 항성과 행성이 움직이는 듯 보이는 것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조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모델은 차츰 버거워진 프톨레마이오스 모데렝 비해 단순하고 정밀하다는 장점을 지녔다.

 

그러나 이 모델 역시 모든 관측 데이터를 설명하지는 못했고, 이 이론을 받아들이려면 수정이 필요했다.

덴마크 학자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는 코펜하겐 인근 섬의 관측소에 있으면서 1576년부터 1592년까지 행성 운동에 관한 일련의 정밀 관측을 실시했다.

이 관측 자료는 케플러(Johann Kepler, 1571~1630)가 수정한 태양계 모델의 토대가 되었는데, 그는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2세가 사망한 뒤 브라헤가 보헤미아로 이주할 때까지 브라헤의 조수로 일했다.

(요하네스 케플러)

케플러는 행성인 화성의 운행을 관측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행성이 태양 주위를 원형 궤도를 그리며 돈다고 가정하는 코페르니쿠스 모델로는 실제 관측된 화성의 운행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609년 케플러는 화성 운행의 일반 원칙 두 가지를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

[1] 화성이 타원형 궤도로 회전하며, 이 때 태양은 두 초점 중 하나다

[2] 화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선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면적을 휩쓸고 지나간다.

1619년경 그는 이 두 원칙을 나머지 행성에 확대 적용해 세 번째 원칙을 밝혀냈다.

[3] 행성의 공전 주기(행성이 태양 주위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의 제곱은 행성과 태양 간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케플러의 모델은 코페르니쿠스의 개념을 상당히 수정한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획기적인 새 모델은 개념이 정밀하고 단순한데도 행성의 궤도가 원형이라는 잘못된 가정 때문에 관측 데이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흥미롭게도 이 가정은 유클리드 고전 기하학에서 유래한 듯하다.

코페르니쿠스는 그리스 고전 철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원은 기하학적으로 완전한 형태지만 타원은 왜곡된 형태였다.

왜 자연이 기형적인 기하학 구조를 사용하겠는가?

-알리스터 맥그라스 [과학과 종교] 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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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에 들어와 우주가 실제로 팽창하고 있음을 알려 주는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대체로 밤 하늘에서 관찰할 수 있는 성운들(nebulae)-안드로메다자리에 있는 M31이나 오리온자리에 있는 M42 같은 것들-이 은하수(Milky Way)의 일부이며, 우리가 속한 태양계도 이 은하수 안에 자리해 있다고 추측했다.(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추측하지는 않았다.)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은 ​캘리포니아 윌슨 산에 새로 세운 100인치짜리 망원경으로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이런 것들(즉 안드로메다자리에 있는 M31이나 오리온자리에 있는 M42 같은 것들)이 우리가 속한 은하와 다른 은하이며 우리 은하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주장했다.

Ediwn Hubble

 

허블은 스펙트럼에 나타나는 이 은하들의 ​적색 이동​을 토대로 연구를 진행해, ​어떤 두 은하 사이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들이 서로 멀어지는 속도도 더 커진다는 주장을 내놓을 수 있었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었다. 팽창 속도는 더 커지고 있었으며, 팽창에서 수축으로 돌아설 가망성도 분명 없어 보였다.

​당시에는 이런 주장이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이었다. 이런 주장은 우주가 틀림없이 엄청나게 압축된 첫 상태로부터 발전해 왔다는 것-다시 말해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블의 이런 주장은 단지 주장으로서 관찰 결과를 설명하는 한 가지 방식에 불과했다.

 

달리 생각하는 것도 틀림없이 가능했다.

1948년 프레드 호일(Fred Hoyle)과 몇몇 사람들은 '​정상' 우주론(steady state theory of the universe, 우주가 계속 팽창하긴 하지만 우주의 평균 밀도는 늘 변함이 없다는 이론)​을 펼쳐 보였다.

 

 

이 우주론은 ​우주가 비록 팽창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주에 시작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물질이 끊임없이 만들어져 우주팽창으로 생겨나는 빈 공간들을 채워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우주론의 주장이었다.

1960년대 들어와 견해가 바뀌기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우주배경복사(cosmic background radiation)를 발견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1965년, 아노 펜지어스(Arno Penzias)와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은 뉴저지의 벨 연구소(Bell Laboratories)에서 실험용 ​극초단파 안테나(microwave antenna)​로 연구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몇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은 안테나 방향을 어느 쪽으로 돌려도 쉭쉭 소음을 내며 불쑥 끼어드는데 도통 제거할 수 없는 불청객인 ​히싱 잡음​을 발견했다.

​처음에 그들은 이 현상을 안테나 위에 둥지를 튼 비둘기들이 안테나 전파를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새들을 강제로 제거해 버린 뒤에도 쉭쉭 소리는 여전히 이어졌다.

이 골치 아픈 배경의 쉭쉭 소리가 지닌 엄청난 의미를 완전히 인식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랠프 알퍼(Ralph Alpher)와 로버트 허먼(Robert Herman)​은 1948년에 그 소리를 우주에서 일어난 첫 폭발-뜨거운 '빅뱅'-의 '​잔광'(afterglow)​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이 열복사는 그 근원은 알 수 없지만 절대온도 2.7K 상태에서 우주 공간을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광양자들(photons)​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 배경복사는 다른 증거들과 더불어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반대설인 정상 우주론에는 심각한 난점들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중대한 증거 역할을 했다.

그 뒤로 과학계에서는 ​표준우주론 모델​의 기본 요소들이 분명하게 밝혀져 이 요소들이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는 영역이 있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 모델이 관찰 결과와 가장 잘 일치한다는 데 널리 동의한다. ​이제 과학자들은 우주가 약 140억 년 전에 생겨났으며, 그 뒤로 계속해서 팽창해 식고 있다고 믿는다.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증거는

1. 우주 극초단파 배경복사와

2. 빅뱅 직후에 결합한 빛의 핵들[수소, 중수소(deuterium)], 그리고 헬륨 같은 것들]이 상당히 풍부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결국 우주의 기원이 어떤 유일무이한 사건이라는 것-결코 되풀이할 수 없고, 따라서 일부 사람들이 과학적 방법의 특징이라고 주장하는 정확한 실험 분석이 불가능한 독특한 사건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을 인식시켜 준다.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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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알리스터 맥그라스

출판 IVP

발매 2001.06.14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에서 마크놀이 우려했던 대로 이 시대에는 지성을 격하시키는 이상한 복음주의가 뒤엉켜 있다. 행위가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하고, 지성이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하니 신학 자체의 문제를 파헤치고, 분석하는 책이 나올만도 하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영향력은 톰 라이트에 비견할 만 하다.

 


 

 분야는 다르지만 그가 분명하게 공헌해 주고 있는 위치가 있기 때문에 그의 저작은 소중하다.

 


 

 이 책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성경의 권위에 대한 설명을 하고 나서 복음주의와 후기 자유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종교 다원주의를 비교, 분석 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주옥과 같은 책이다.

 


 

 그의 다방면의 학식이 빛을 발할 때가 많은데 가령 [성경의 권위]에 대한 파트에서도 '경험' 과 같이 민감한 부분을 어떻게 서술하는지 들어보면 치밀한 균형과 신중함이 느껴진다.

 


 

 대체적으로 C.S Lewis 의 논리도 많이 사용되면서 실존주의적인 접근도 능수능란하게 활용함으로써 쉐퍼의 한계를 극복하기도 한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자유주의자들의 (100% 경험에만 기댄) 기독교 신학을 배격하는데 힘을 실어줬다는 부분도 언급하면서 사유의 풍성함과 논리성을 치밀하게 조직해 나간다.

 


 

 그리고 성경의 권위를 드높이면서 그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언급하는데 이는 신정통주의와 싸우다가 정통신학자들이 버려버린 중요한 성경 해석의 방법론이다.

 


 

 이와 같은 영역에서 힘을 쏟았던 리처드 니버, 칼 바르트를 옹호하면서 맥그라스는 보수 기독교로 하여금 다시 한번 각성하기를 촉구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성경의 네러티브적 특성을 인식하면 성경의 계시를 온전하게 회복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은 결코 신적 계시의 객관적이고 인지적인 진리에 대한 복음주의의 헌신을 포기하거나 약화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계시에는 객관적이고 인지적인 요소 이상이 있으며, 그러한 주제에 대한 환원주의적 접근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지혜를 권하는 것이다."

 


 

 후반에 맥그라스는 '복음주의'가 다른 어떤 현대의 세계관들에 비해 결코 부끄럽거나 부족하지 않다는 점을 변증하는데 상당히 놀라운 설명이 이어진다.

 


 

 너무 중요한 내용이 많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서 이 내용들을 정리해야 할 것 같다.

 


 

 복음주의 지성에 대한 열망이 크고, 세계관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이들에겐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 [약간 어려울 수 있지만 많은 것을 얻어가게 될 것이다.]

 


 

 마지막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무리하자.

 


 

 "이 책은 복음주의의 지적인 적절함과 충족성이 공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복음주의 운동의 내적 기준과 현대 서구 세계의 다른 세계관들과의 관련 속에서 보여 주고자 했다. 더 이상 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신념으로 인해 부당하게 주눅이 들거나 그것들을 방어하거나 변명하는 입장을 취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자신들의 신념을 적용하고, 지난 세대에 이루어 놓은 위대한 진보를 견고하게 하고 확대시켜야 한다. 진리를 향한 복음주의의 열정은 복음주의적 지성에 대한 열정이어야 한다. 복음주의는 기독교 교회의 삶을 형성하고 새롭게 하는 데 주된 공헌을 해 왔다. 이제는 기독교 지성의 삶을 형성하고 새롭게 할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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