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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송: 제 고민과 제안을 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국 개신교를 바라보는 데 쓰여 온 '교계(church society)'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개신교인들의 생각을 그동안 소위 '교계 지도자(church leader)'들이 대변해 왔습니다.

 

특히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나 NCC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같은 교계연합기구가 그런 역할을 해왔지요.

 

 

 

 

그런데 이런 구조가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습니다.

사립학교법 개정 논란을 예로 들면, 과거에는 한기총이나 NCC 말을 듣고 '한국 개신교는 이런 입장이구나'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교계 대표가 한국 개신교를 대변하고, 또 대표할 수 있다고 보는 패러다임이었습니다.

이 논란 때 한기총과 NCC 둘 다 사학법에 반대 입장을 천명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기독교사운동 단체에서는 사학법 찬성 입장을 발표했거든요.

기독교사들은 당시 교계 정서에 역행하더라도 그 법이 사립학교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리고 성도들의 절대 다수는 학부모들인데, 이 층에서도 사학법 찬성 입장이 압도적으로 컸습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사학 운영자가 교계 지도자의 주축을 이루고 있고, 그들이 삭발식을 거행하는 등 강경한 반대 입장을 드러내면서 마치 한국 개신교 전체가 사학법 반대 입장인 것처럼 알려졌습니다.

저는 이런 것이 목회자가 한국 교회를 과잉 대표하는 경우라고 봅니다.

그것은 목회자들 스스로 감당 못할 과도한 짐을 지는 불행한 일이고, 성도들은 자기들이 선택하지 않은 대표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여론 왜곡 현상을 겪는 악순환을 초래합니다.

저는 '교계' 패러다임에서 '기독교 사회(Christian society)' 패러다임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는 기독교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과 그룹의 한 부분이고, 이들은 목회 전문가로서 분명한 입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교육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면 교육 전문가, 사학 운영자, 교사 집단, 학부모 집단 등 한국 개신교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그룹 중에서 교육과 관련 있는 이들의 발언을 먼저 경청해야 한다고 봅니다.

앞서의 사학법 논란을 제대로 다루려면, 이런 여러 집단을 취재해서 그들이 같은 입장이라면 '한국 개신교는 이런 단일한 입장'이라고 보도할 수 있겠지만,만약 의견이 엇갈리면 '개신교 내에서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고 알려야 옳습니다.

저는 목회자들이 전문적인 목회 영역을 넘어서, 자기가 대변할 수 없는 주제나, 위임받지 못한 의사에 대해 과잉 대표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교회를 목회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상정한다면 전혀 갈등이 없을 수 있어요. 그래서 앞서 말씀하신 개혁주의 전통이 '기독교 사회' 개념에 잘 부합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럴 경우 큰 원이 기독교 사회가 되는 셈인데, 그러면 그 핵심에는 무엇이 와야 하는지 궁금한 겁니다.

저는 그 핵심에 하나님 나라와 복음에 대한 헌신이 자리 잡아야 마땅하다고 보는데, 이 자리에 어떤 물리적 기관이 놓일 수 있는가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영역을 비워 놓는 것이, 그러니까 그 영역이란 하나의 기관으로 대변될 수 없다고 설정해 놓는 것이 개신교적 신앙고백에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묻고 답하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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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배신은 예정인가? 자유의지인가?

 

43page 부터 시작

 

 아무래도 유다의 배신이 던지는 골치 아픈 신학적 질문은 예정과 자유의지에 관한 것입니다.

문제 상황을 설정하기 위해 극단적인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은 인간의 자유가 배제된 채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정에 따른 행동인가?” 아니면 반대로 유다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에 따른 것이지 하나님의 예정과는 무관한 것인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주기에는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고 둘 다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도 간단치 않습니다 .

 

만약에 전자라면, 유다에게는 도덕적 책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름지기 도덕의 전제는 자유입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행동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면 그의 행동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A를 선택할 수도 있고, B를 원할 수도 있는데, A를 결정할 수 있어야 도덕이 성립됩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장발장과 같은 처지에 있다고 해서 빵을 훔치지 않으며, 신부의 은혜를 입었다고 해서 새롭게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에서 정당방위를 제한적이나마 인정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는 극한적 궁지에 내몰린 경우, 예컨대 상대방이 살인의 의도로 신체적 위협을 가할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의 신체와 생명을 상하게 하는 것은 정당방위로 보고 무죄로 간주합니다.

만약에 유다의 행동이 자신의 자유의지 없이 필연적인 하나님의 예정을 수행한 것이라면, 그는 무죄가 될 것입니다.

 

 만약 후자라면, 유다에게 도덕적 책임을 부과할 수 있지만, 신앙에 치명적 과오가 발생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하여 바울은 벅찬 감동으로 외칩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 11:36, 새번역). 아브라함 카이퍼의 명제처럼,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땅과 영역은 한 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정을 어떻게 이해하든 간에, 하나님이 창조 세계 전체를 포괄적으로 섭리하고 계신다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유다의 행동이 전적으로 그 자신에게만 있다면, 하나님은 구속사의 정점인 십자가 사건에서 그저 한 손님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자신이 어느 신학적 캠프에 속해 있든지 간에, 예정과 자유의지 중 어느 한쪽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강조하면서도 자유의지를 버리지 않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얼마간 약화되더라도 예정을 강조하는 것이지 자유의지 자체를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정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각시킨다고 해서 하나님의 예정을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결국 어느 쪽에 서느냐, 그리고 양자를 어떻게 조정할 것이냐가 관건이지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유다의 행동은 하나님의 예정이면서도 자유의지가 개입된 것으로 보아야겠지요. 

 

예정과 자유의지에 관한 논쟁을 야기하는 성서의 본문은, 대표적으로 구약에서는 선악과와 출애굽기의 바로, 신약에서는 유다일 것입니다.

세 텍스트 중에서 이 주제에 관한 가장 풍부한 본문은 출애굽기의 바로입니다. 하여, 저는 바로의 행동에 대한 출애굽기의 서술을 중심으로 예정과 자유의지 혹은 필연과 자유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이를 유다의 경우에 적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유다에 관한 본문과도 조화와 일치가 있어야겠지요.

 

다만, 솔직히 먼저 밝혀 두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저는 그리스도인이자 목사라는 것입니다. 신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모두를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자유에 따른 책임을 강조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출애굽이나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의 뜻과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행동에 대한 최종적 책임은 유다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이지 맹신이나 미신은 아닙니다. 유일무이한 창조주 신앙을 갖고 있는 이로서 하나님의 에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고, 또 도덕이란 인간의 자유에 기반을 둔 것이니 유다의 행동은 그 자신의 선택이므로 책임은 그 자신에게 있다고 보는 것은 신앙을 별개로 치더라도 합리적인 사유입니다.

 

다른 하나는, 저는 예정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예정론에 대해 공부할 겸해서 스프라울(Sproul) [알기 쉬운 예정론]을 사서 펼쳐보았습니다.

이것이 예정인지는 몰라도 예정을 정의한 대목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예정이란 우리의 최종 목적지, 즉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에 의해 천국이나 지옥이 결정된 사실을 의미한다.”(각주) 물론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는 모순되지 않는다”(각주) 고 밝히고 있지만, 저는 예정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을 흔쾌히 수용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실을 허용하시기로 결정하셨다면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그것을 미리 정하신 것이다.” (각주). 그렇다면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것을 두고 누가 그 결정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요?

해서, 저는 C.S 루이스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는 전적 타락의 교리를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볼 때 우리가 전적으로 타락했다면 스스로 타락했다는 사실 자체를 아예 깨닫지 못할 것이고, 경험적으로 볼 때에도 인간의 본성에는 선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각주). (‘전적 타락에 대해 고민해 보기)

 

 

물론 스프라울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를 역설 혹은 신비로 설명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마치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것으로 그분의 주권과 예정을 결정론에 가깝게 해석하는 것은 못내 아쉽습니다.

 

그럼, 바로의 강퍅함에 대한 출애굽기로 들어가 보도록 하지요.

먼저 성서는 그의 마음이 강퍅하게 된 것의 주체가 하나님과 바로 모두라고 언급합니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였다” (7:13,22 ; 8:15 ; 9:35)는 표현과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 (9:12 ; 10:20,27)는 표현, 이렇게 두 가지 표현 양식이 공존합니다.

바로는 모세의 요구와 신하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제 스스로의 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계속해서 노예로 붙잡아 둡니다.

하나님 역시 그런 바로의 행동을 예측하시고 모세에게 일러 주실 뿐 아니라 버젓이 예상하시면서도 연달아 재앙을 일으키십니다.

주체로서 하나님은 바로 자신의 고집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각주)

 

 

 

하나님과 바로, 양자 모두가 바로의 강퍅한 마음에 주체라는 설명을 주목해야 합니다.(각주).

신과 인간이 동일하게 행동의 주체임을 출애굽기는 묘사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를 모순 없이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는 어느 하나도 없앨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설명의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좀더 성경적이고 합리적입니다.

 

저는 종종 이런 비유를 들곤 합니다.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장미에는 인간의 자유라는 가시가 돋쳐 있고, 인간의 자유라는 장미에는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가시가 있다고요.

그래서 예정을 강조하다 보면 자유가 가시가 됩니다.

그렇다고 그 가시를 죽 밀어 버리면 아무런 위험도 없지만, 장미 본래의 아름다움은 많이 사라질 것입니다. 장미꽃을 사랑하는 자는 그 날선 가시마저도 장미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사랑의 한 요소로 감내해야 합니다.

그럴 때, 가까이서 보면 둘 사이의 갈등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한데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것입니다.

 

바로의 완고한 마음의 책임은 궁극적으로는 그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의 마음이 강퍅해서 내 백성을 내보내라는 신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가 고집을 꺾지 않고 거절할 것이라고 야헤 하나님은 여섯 번이나 모세에게 주지시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만약’(if)이라는 단서를 단 가정법 형식으로 세 번이나 말씀하십니다.(8:2 ; 9:2 ; 10:4) “네가 만일 그들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두면”(9:2) 번역본에 따라 4 23절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네 번이 됩니다.

 

 

이라는 조건문은 바로의 행동이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라 그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다시 말해 바로의 거절은 미래의 가능성이지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결정되어 있다면, 굳이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경고를 할 필요가 없을 테고, 그런데도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찾아간다면 그것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기만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재앙을 현실화한 것은 바로 자신입니다. 바로가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낸다면 제국을 침몰시킨 그 엄청난 열 가지 재앙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의 행동에 따라 하나님의 대응 또한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명백히 거부하고 거역했습니다.

 

사실 바로의 선택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당연하기까지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남자만 60만명이었습니다.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하면 2백만에서 3백만에 육박할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 함께 따라나온 그 밖의 다른 민족들도 많았습니다.(12:38).

이는 고대 이집트 제국의 노동력의 절대 다수를 차지합니다. 이런 그들이 한꺼번에 모두 빠져 나간다면 제국의 운명은 불 보듯 뻔한 것입니다. 멸망입니다.

그러니 어떤 수를 쓰더라도 이집트를 떠나는 것은 절대 허용할 수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미국, 아니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한순간에 모두 떠난다면 그 후 초래될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 보낼 수 없습니다.

 

거부한 바로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은 열 가지 재앙 뿐 아니라 완악한 대로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십니다.”(9:18, 새번역).

그러니까 스스로 마음을 낮추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긍휼히 여김을 받지만, 마음을 악하게 먹고 끝까지 미련스럽게 고집을 피우면 그 강퍅한 마음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신다는 겁니다.

레온 모리스의 해석이 참 좋습니다. “이 구절은 물론, 성경 어디를 살펴봐도 하나님이 스스로 강퍅하게 되지 않은 자들을 먼저 강퍅하게 하셨다고 나와 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 하여, 마음을 강퍅하게 한다는 말은, 하지 말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더욱 꾸역꾸역 엇나가는 길을 걷는 이들의 영적 실존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간곡한 설교는 도리어 듣는 청중의 마음을 더욱 완강하게 만듭니다.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각각 그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하였어도 그들이 행치 아니한 이 언약의 모든 말로 그들에게 응하게 하였느니라 하라” (11:8).

인간의 마음은 예레미야의 말처럼 어떤 만물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거짓되고 썩고 부패하였습니다.(17:9).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애타는 구애와 경고는 죄악된 본성과 성품을 충동하여 더욱 못된 짓을 일삼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인간은 청개구리처럼 반응합니다. 하지 말라는 짓은 더 열심히 잘도 합니다.

 

가룟 유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야훼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바로에게, 그리고 예레미야를 통해서 유대에게 말씀하신 것은 재앙을 내리기 위한 명분 쌓기가 아니라 구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호의를 거절하고 스스로 무덤을 팠습니다. 유다에게도 그리스도의 호의가 없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많았습니다.

유상섭의 [설교를 돕는 분석 요한복음](규장)에 따르면, 요한복음에만도 제자 중 하나는 자신을 믿지 않으며 마귀라고 주의를 주셨고(6:64, 70~71), 유다가 돈을 착복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재정 유용을 그칠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셨으며(12:6),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유다를 염두에 두고서 다 깨끗하지는 않다고 하셨습니다.(13:10~11).

또 세족 후에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 것이라고, 즉 배반할 것이라고 예고하셨고(13:18), 더 나아가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 것이라고 공개적이며 직접적인 경고를 계속하셨습니다.

 

마지막은 예수님이 빵 한 조각을 찍어서 유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부분은 논란이 많은 본문입니다. 그 때 주님은 유다에게 희한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13:27, 새번역). 언뜻 보기에, 유다복음의 주장처럼 예수님이 유다가 배신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으므로 그 일을 하라는 것, 그래서 유다의 배신은 예수의 요청이라는 유다복음의 논리가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육체라는 굴레를 벗어던져 구원을 이루게 해 달라는 예수의 요청이라는 것입니다.

 

허나 유다복음의 해석과 달리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의 진의는 유다의 결단을 촉구한 것입니다. 식사를 할 때에 음식을 한 조각 건네는 것은 우정의 표시입니다.(각주) 유다의 배신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선의와 호의를 베푸는 것은 유다의 심중에 품고 있는 음모를 중지할 것을 따뜻하게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끝내 예수와 그분의 우정 어린 호의를 거절했고, 이를 요한복음은 그 순간 사탄이 그의 마음에 들어갔다고 표현함으로써 유다의 결정이 무엇이었는지 보여 줍니다.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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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 사건에 대해서 가장 잘 쓰여진 책 중 한 권입니다. 김기현 목사님의 깊은 영성과 지식이 잘 녹아져 있는 대표 저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 딜레마

 

저자: 김기현 목사님

 

24~31page

 

 

 

가룟 유다는 누구인가?

 

 가룟 유다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 먼저 그의 이름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과 이스라엘 역사에서 유다는 영예롭고 대중적인 이름이었습니다.

그 뜻은 찬양입니다. ( 29: 35). 칼 바르트에 의하면, 독일어로는 감사(thnks)라고 합니다. 히브리식 이름을 표기하면 Judah이고, 헬라식으로는 Judas입니다.

성서에서는 야곱의 넷째 아들에게서 유다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 후 통일왕국이 남과 북으로 분단되고 포로기 이후 귀환한 이들이 대개 유다 지파나 남왕국 출신이 많았기에, 유다는 자연스레 민족 공동체 전체를 일컫는 이름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성서에는 유다라는 이름이 많습니다.

신약 성서에만도 유다라는 이름이 여섯 번 등장합니다. 열두 사도 중 한 사람인 유다( 6:16, 1:13), 예수님의 형제이자 유다서의 저자인 유다( 13:55), 백성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킨 갈릴리 유다(5:37), 다메섹에서 눈을 보지 못하게 된 사울이 잠시 기거했던 집의 주인 유다( 9:11), 바사바라 하는 유다( 15:22), 그리고 가룟 유다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시리아로부터 잠시나마 조국을 독립시키고 마카비 왕조를 열었던 이의 이름도 유다였습니다. 유다 마카비(Judas Maccabee).

 

 

 

 

오늘날의 유대교(Judaism)라는 이름도 유다와 관련이 있습니다.

로마 황제가 이들을 유대인이라 지칭한 이후로 유대인(Judean)은 그들의 공식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불행하게도 유다는 유대인의 전형으로 각인된 것입니다.

지금은 마치 유대인이 아닌 듯 여겨지는 또 한 사람의 유대인과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도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다가 유대인의 대표명사가 된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추론입니다. 다만, 그의 이름 때문인 듯 합니다. 둘의 이름과 발음이 너무 흡사합니다. 혼동하기가 쉽지요. 유다와 유대. 제 친구 김일승과 김일성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로, 유다 이름 앞에 붙는 가룟은 논란이 참 많습니다.

가룟, 공동번역에서는 가리옷이라고 하는 이 단어는, 권터 슈바르츠라는 학자에 의하면 아홉 가지 해석이 있다고 합니다. 이를 클라센은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이 중에서 그런 대로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동네 이름입니다.

그의 고향이 아마 가룟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라는 이름은 가룟 지역 출신의 유다인 겁니다. 이 추론이 맞다면 가룟은 여호수아서에 나타난 그리욧(15:25, Kerioth)일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네게브 지역의 텔 퀴리옷(Tel Qirrioth)일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 유력한 해석은 그가 시카리(Sicari)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기록을 보면, 그가 시카리라고 명명한 열심당(Zealots)의 명단에 유다라는 이름이 많이 언급됩니다. 그의 책에는 유대(Jude)라는 사람이 19, 유다가 13명인데, 그들 대부분이 열심당 지도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베드로가 아닌 시몬이 바로 이 열심당 일원입니다.( 6:15). 이들은 이교도인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참 왕인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원조는 마카비이고, 그들의 후손들은 마사다에서 로마와 저항하다 일천 여명이 자살하기도 했습니다.

 

만일 유다가 이 열심당원이라면, 그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처럼 이스라엘 나라의 구속, 곧 정치적 해방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로마의 식민지 시절인데다, 구약에서 예언한 바 다윗 왕조의 회복과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종교적 열정이 결합된 것이 열심당이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민족을 가슴에 품은 젊은이라면 이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겠지요.

그래서 그 기대가 배반당하자 예수를 부인했다는 가설이 많은 이들에게 호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 어디에도 그가 열심당과 연루되어 있다는 징후를 읽을 수 없는 마당에 그의 이름 하나만으로 그를 열심당원이라고 확언하기에는 증거가 미비하여서 여간 미심쩍은 것이 아닙니다.

 

오경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 성경에는 없다] (홍성사)에서, ‘이스카리옷시카리로 보기에는 원어적으로 어렵고, 시카리들은 광장에서 민족 반역자나 로마 군인들을 암살할 정도로 대담한 반면, 유다는 자살한 것이나 세리 마태를 제치고 돈을 관리하는 것으로 보아 성격이 소심하거나 꼼꼼하여 성격이나 기질상 사카리에 맞지 않을 것이라 언급합니다.

, 그가 제자단의 금고의 돈을 빼돌렸다는 요한의 기사를 토대로 보건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만큼 유다는 이상주의적이지 않고 도리어 현실주의자일 공산이 크다고 언급합니다.(각주)

 

성서에서 유다를 열심당원으로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에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하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그가 사카리인지를 확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가설로 새겨들을 필요가 있을지는 몰라도, 그가 열심당이었다고 단정하고 그들이 추구했던 하나님 나라와 메시아 기대가 배신당하자 예수님을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성서의 기록에도 맞는 정확한 묘사는, 유다가 열두 사도 중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열두 사도. 요한복음을 제외한 세 복음서에는 열두 사도의 명단이 있습니다. ( 10:2~4 ; 3:16~19 ; 6:14~16). 유다에 관련된 특이 사항이 있다면, 각 명단에서 유다는 항상 맨 꼴지에 있다는 것, 그리고 유다는 예수를 판 자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다를 사도의 한 명으로 언급하면서도 그가 예수를 팔았다는 과거 전력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그리고 또박또박 적어 둔 것이 참으로 희한해 보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으로 문자적으로 보면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도가 되겠지만, 신약에서 사도라 불린 사람들은 열두 사도가 아닌 경우 직접적으로는 바울과 바나바( 14:14), 암시적으로는 주의 형제 야고보(1:9)였습니다.

여기서 사도는 특별한 소수의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관심은 유다를 사도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모든 신자를 일컫든 아니면 특별한 소수의 무리이든 이른바 누가 사도인가 하는 것보다는, 유다가 그 사도들 중 한 사람이었다는 것에 제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도를 뽑으셨다는 것 못지않게 특별히 유의해야 할 점은 12라는 숫자입니다. 12는 구약의 열두 지파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을 가리키던 숫자는, 이제 교회가 영적 지위를 차지할 것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새 세상에서 인자가 자기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라온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19:28).

열두 사도는 새로운 하나님 백성 공동체인 교회로 하여금 구약의 이스라엘을 연속적인 측면에서 계승하게 할 뿐 아니라, 비연속적인 측면에서 진정으로 완성하도록 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공동체 건설을 위해 사소들이 해야 할 일은 세 가지입니다.(3:14~15).

예수와 동행하는 것, 보냄을 받고 전도하는 것,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열두 명의 명단에 이름이 기재된 유다에게도 분명 이런 역할과 특권이 부여되었을 것입니다.

하여, 유다도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했을 겁니다. ( 10:8). 그리고 돌아와서 아마도 70명의 제자들처럼 기쁨과 놀라움에 겨워 말했을 것입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10:17).

그랬다면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를 주었으니, 아무것도 너희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10:18)라는 칭찬과 격려의 말씀도 들었을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공동체를 대신하고, 귀신마저도 항복할 만한 영적 권세를 지녔고, 실제로 그런 경험도 한 사람이 가룟 유다입니다.

이런 유다의 배신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뭘까요? 이 사람 유다는 누구일까요? 열두 사도의 명부에 이름이 등재되어 있으면서도 예수를 판 자라는 불명예가 항상 따라다니는 이 사람, 유다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신이 이방인 선교를 하는 것과 유대인이 구원받는 것의 상관 관계를 설명합니다.(9~11).

유다와 관련해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대목은 11장의 돌감람나무 이야기입니다.

원래 가지에 문제가 있어서 그 가지들을 꺾어 버리고 새로운 가지를 접붙였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그것이 새로운 가지인 우리 이방인에게 주는 교훈은, 원래 있던 가지고 아낌없이 잘라내신 분이 우리 또한 높은 마음을 품고 교만하면 그들과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우리 모습입니다.

열두 사도였던 그가 예수를 판 자가 되었습니다.

그토록 놀라운 특권과 능력의 소유자였던 유다가 배반자 유다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유다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유다와 베드로처럼 예수를 부인하고 배신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현재의 축복과 형통함에 우쭐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바로 서면 하나님의 너그러운 인자하심이,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습니다.

 

 

 

내가 율법의 삶을 사는지, 은혜의 삶을 사는지를 분별하는 좋은 잣대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 또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내가 한 것이 자꾸 생각나는지, 아니면 주님이 내게 해주신 것이 생각 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이 생각나면 불평하게 되고, 주님이 하신 일이 생각나면 감사하게 됩니다.

과거의 영광스러운 성취와 지위가 영원불변할 것으로 착각하여 자긍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일수록 얼른 잊어버려야 유익합니다.

나 역시 유다처럼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할 수 있습니다. 오직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3:14, 공동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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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역사다 / 저자 : 리 스트로벨

 

 

 

344Page

 

 예수의 전기는 신뢰할 만한가?

 

나는 한 때, 복음서는 단지 종교적 선전물로서 절망적일 정도로 과장된 상상력과 복음주의자들의 열정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문제에 관해 우리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권위자 중의 한 명인 크레그 블롬버그는 복음서에 목격자들의 증언이 나타나 있고, 전혀 실수가 없는 정확성의 표시가 있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폈다. 이 전기들은 매우 초기의 것으로서 단지 꾸며 낸 전설이라고 설명할 수 없다.

사실 예수의 기적, 부활, 그리고 신성에 대한 근본주의적 신앙은 기독교 운동의 가장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의 전기는 면밀한 검토를 견뎌낼 것인가?

 

블룸버그는 복음서 저자들이 신뢰할 만한 역사를 보존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할 만한 능력도 가졌으며, 설명하기 곤란한 자료도 기꺼이 포함시킬 정도로 정직했고, 편견 때문에 왜곡 보도를 하지도 않았다는 납득할 만한 주장을 했다.

핵심적 사실에 대한 복음서들 간의 일치와 세부 사항에서 드러나는 약간의 차이는 오히려 이야기에 역사적 신뢰성을 부여한다. 게다가 초대 교회에서 가르친 예수에 관한 사실들이 동시대 사람들이 보기에 과장되었거나 틀렸다고 알려졌다면, 초대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뿌리를 내리고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복음서는 8가지 증거 검사를 모두 통과했다.

 

 

 

예수의 전기는 신뢰할 만한 상태로 보존되었는가?

 

세계적인 학자인 브루스 메쯔거는 다른 고대의 문서와 비교해 볼 때 신약 성경의 사본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으며, 기록 연대도 원본과 상당히 가깝다고 말했다.

 

현대의 신약 성경은 99.5 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본문 간의 차이가 없고, 중요한 교리는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초대 교회가 어떤 책을 권위 있는 책으로 볼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사용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예수에 관한 가장 훌륭한 기록이다.

 

 

 

 

예수의 전기 이외에 신뢰할 만한 증거가 있는가?

 

우리에게 있는 예수에 관한 역사적 문서는 고대의 다른 종교의 창시자에 대한 문서보다 뛰어나다라고 에드윈 야마우치가 말했다.

성경 외부의 자료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치유 사역을 한 메시아이고, 십자가에 못박혔고, 이 수치스런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은 그의 추종자들이 그를 하나님으로서 경배했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

어떤 전문가는 예수의 생애, 가르침, 십자가에서의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한 100가지 이상의 사실을 확증해 주는 39개의 고대 자료를 증거 서류로 제시했다.

게리 하버마스라는 학자에 의하면, 7개의 세속 자료와 여러 개의 초기 신경이 바로 가장 초기의 교회에 분명히 존재했던교리인 예수의 신성과 관련된 것들이다.

 

 

 

고고학이 예수의 전기를 확증하는가 아니면 반박하는가?

 

고고학자 존 맥레이는 고고학적 발견이 신약 성경의 신뢰도를 높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일찍이 어떤 발견도 성경적 언급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다.

게다가 고고학은 신약 성경의 약 4분의 1을 기록한 누가가 특히 신중한 역사가라는 것을 입증했다. 한 전문가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렷다.

누가가 많은 수고와 노력으로 역사적 사실을 (세부 사항에까지) 보고하는데 정확성을 기했다면, 어떤 논리적 근거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훨씬 더 중요한 문제, 예를 들면 예수의 부활과 같은 사건을 기록할 때 경솔하다거나 부정확했다고 가정할 수 있는가?”

 

 

 

역사적 예수는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예수와 동일한가?

 

그레고리 보이드는, 예수가 자신의 말로 여겨지는 대부분의 말을 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단체로 언론에 많이 등장하는 예수 세미나 모임은 신약 성경의 사고에서 극좌파에 해당하는 극소수의 급진적 주변 학자들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그 세미나는 처음부터 기적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의심스러운 기준을 채택하고, 몇몇 참가자들은 매우 의심스러운 성질과 신화적 성격을 지닌 문서들을 높이 평가했다.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신들에 관한 신화로부터 출현했다는 생각은 면밀한 검토 결과 무너지고 만다. 보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가 제자들이 말한 바로 그 사람이라는 증거는 예수 세미나의 좌파 학자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유보다 엄청나게 빠른 시기의 것이다.” 요컨대,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예수는 역사적 예수와 동일하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정말로 확신했는가?

 

벤 위더링턴은 확실히 전설의 반달로부터 안전한 초기의 전통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예수가 최상의 그리고 뛰어난 자기 이해를 했다는 점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위더링턴은 증거에 기초해서 말했다.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습니까? 그에 대한 답은 예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보았습니까? 그 대답도 예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마지막 메시아라고 보았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못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까? 아니오, 그는 그렇게 믿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예수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던 것은 그가 미쳤기 때문인가?

 

유명한 심리학자 게리 콜린스는 예수가 어떤 부적절한 감정을 보인 적이 없으며, 현실 세계와 접촉했고, 영리했으며, 인간성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소유했고, 깊고도 지속적인 관계를 누렸다고 말했다.

 “예수님이 어떤 정신 질환을 겪었다는 흔적을 결코 찾아볼 수 없습니다.”라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에수는 기적을 통한 치유, 자연을 다스리는 놀랄 만한 능력의 입증, 비할 데 없는 가르침, 사람들에 대한 신적인 이해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최후의 입증인 부활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예수는 하나님의 속성들을 가지고 있었는가?

 

성육신 즉 하나님이 인간이 되고 완전한 존재가 유한한 존재가 된 사건은 우리의 상상력을 활짝 펼쳐줄 만하다.

하지만 뛰어난 신학자인 카슨은 예수가 신성의 특징을 보여 준 많은 증거가 있음을 지적했다. 많은 신학자들은 빌립보서 2장에 기초해서 예수가 인간의 구속이라는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독립적으로 사용하는 권한을 버렸다고 믿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신약 성경은 예수가 궁극적으로는 전지, 무능, 무소부재, 영원성 그리고 불변성을 포함한 모든 신적 자질을 소유했음을 명확히 확증한다.

 

 

 

예수는-예수만이-메시아의 정체성과 조화를 이루었는가?

 

예수가 태어나기 수백 년 전에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속할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했다.

사실 십여 권의 구약 성경의 예언들은 진정한 메시야만이 꼭 들어맞을 지문을 남겼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사기꾼을 배제하고 진짜 메시아의 자격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

예수만이 전 역사를 통해 이 예언적인 지문에 정확히 들어맞았는데, 이는 가히 천문학적인 가능성을 뚫은 것이다. 1조의 13승분의 1의 확률을 맞춘 것이다. 이런 사실은 바로 예수의 정체성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함을 확증해 준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속임수였는가?

 

알렉산더 메드럴은 의학적, 역사적 자료를 분석함으로써, 예수가 폐와 심장을 꿰뚫은 크게 갈라신 상처는 말할 것도 없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끔찍한 고통을 견디고서 살아날 수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쨌든 그가 십자가 위에서 기절하고 죽은 체했다는 생각은 기초적 증거가 빈약하다. 로마의 사형 집행인들은 희생자 중 한 사람이라도 십자가에서 살아서 내려온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에, 잔인할 정도로 효율적으로 자신들의 일을 처리했다.

비록 예수가 고통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았더라도, 죽은 자나 다름 없는 그의 상태는 결코 그가 무덤을 뚫고 영광스럽게 승리했다는 전제를 가진 세계적인 운동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의 시체가 무덤 속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사실인가?

 

윌리엄 레인 크레그는 부활절의 영원한 표시인 예수의 텅 빈 무덤이 역사적인 사실이었다는 놀랄 만한 증거를 제시했다.

빈 무덤은 매우 초기의 자료, 예를 들어 마가복음과 고린도전서 15장의 교리에 그대로 기록되거나 암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은 그 사건과 기록 연대가 너무 가까워서 전설의 부산물이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복음서에서 여자들이 텅 빈 무덤을 발견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사실은, 그 이야기의 진실성을 뒷받침해 준다. 예수의 무덤의 위치는 그리스도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회의론자들도 조사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은 로마의 당국자들과 유대인 지도자들을 포함해서 그 무덤 속에 아직도 예수의 시체가 있었다고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에 그들은 오히려 그런 행동을 할 아무런 동기나 기회가 전혀 없는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고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꾸며 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설은 심지어 오늘날 가장 회의적인 비평가조차도 믿지 않는 이야기다.

 

 

 

예수는 부활 후에 정말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는가?

 

예수가 부활 후에 나타났다는 증거는 그의 생애에 대한 기억이 왜곡되어 신화로 수년 간에 걸쳐서 점차로 발전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부활에 관한 전문가인 게리 하버마스가 말했듯이 부활은 매우 초기부터 교회의 중심적 선포 내용이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고대 신경에 보면,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난 개인들의 특정한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바울은 1세기의 회의론자들이 스스로 그 문제의 진실성을 결정하도록 하기 위해 그 사람들과 직접 얘기해 보라고 도전하기까지 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매우 초기의 확증들이 곳곳에 널려 있는 반면에, 복음서에는 예수를 만난 사람들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영국의 신학자 마이클 그린은 예수의 출현은 고대의 어떤 사건보다도 잘 증명된다예수가 부활 후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을 의심할 어떤 합리적 이유도 있을 수 없다.”라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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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는 루이스의 자유의지론에 힘을 실어 주고 있으며,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설명체계로서는 루이스가 쉐퍼를 압도해 보인다. 하지만, 루이스의 이론이 온전한 진리를 담지하고 있는지는 좀 더 고민해 봐야 한다. 연옥의 존재 등에 대한 그의 개념은 성경적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다소 힘을 잃기 때문이다.

 

[변증적 고려 사항]

 

 

 

책 제목: 루이스와 쉐퍼의 대화

 

저자: 스콧 버슨&제리 월즈 지음

 

162~167page

 

 

 

앞서 세 장에서 우리는 쉐퍼와 루이스의 구원론적 체계를 상세히 살펴보며 공통적인 기반과 분기점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사항들을 파악했다.

 

그러면 이 모든 내용이 변증적 과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이제 우리의 구원론적 연구를 다섯 가지의 변증적 고려 사항들을 통해 결론짓고자 한다.

 

 

 

  1. 양립론은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 그리고 선하심을 훼손한다.

 

약한 경정론이나 양립론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그것들이 문제가 될만한 의미들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첫째, 이 입장은 하나님의 공의를 훼손한다.

 

모든 행동과 생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결정론적 뜻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결정해 놓으신 것 외에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

 

둘째, 이 입장은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데,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제 2원인에 의한 죄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제 2원인에 의한 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선택받은 자에게는 제 2원인에 의한 행실에 대해 점수를 줄 수 있다는 것인가?

 

이 입장에 근거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자들을 벌하시는 하나님은 불의하시거나, 아니면 인간은 자신의 행실을 자랑할 수 있다.

 

셋째, 이 입장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자유로운 인간의 선택을 결정하실 수 있다면, 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도록 결정해 놓지 않으셨나?

 

만일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하여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할 필요가 없다면, 완전한 사랑과 전적인 선하심을 갖추신 하나님으로 하여금 모든 인간이 그분의 구원 선물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게 한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아직 이러한 비판적 질문에 대하여 설득력 있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자유의지론은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의 자유 모두를 제대로 보여 주는 유일한 자유론이다.

 

 

 

 

  1. 우리의 구원론은 자유의지론적 자유관을 반영해야 한다.

 

만일 자유의지론이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의 자유에 대해 만족할 만한 설명을 제공하는 데 정말로 필요하다면, 우리의 구원론은 자유에 대한 이러한 견해를 일관되게 붙잡아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 루이스의 변화론 모델이 쉐퍼의 형법적 모델보다 신뢰할 만하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이것은 세 가지 근거를 들 수 있다.

 

첫째, 자유의지론적 구원은 인간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구원 선물을 받을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무조건적인 예정과 자유의지론적 자유는 전혀 양립할 수 없다.

 

둘째, 자유의지론적 자유는 구원을 위해서는 단회적인 회심이 아닌 지속적이며, 역동적인 신앙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만약 구원이 회심 때에 결정되었다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영역인 인간의 영원한 운명에서 인간의 자유는 불필요한 것이 된다.

 

셋째, 자유의지론적 자유는 변화의 과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진정한 이중적 행위라는 관념을 제시한다.

 

그리고 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이는 이 과정이 끝나기 전에 죽은 사람들을 위한 무덤 너머의 정결 과정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반드시 내포한다.

 

 

대부분의 개신교 복음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이 마지막 주장은 소화하기가 힘들 것이다. 이 교리는 중세에 모금 수단용으로 쓰이던 비성경적인 사상을 연상케 한다. 그것만이 아니라, 형법적 모델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교리는 전적으로 불필요하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이 의를 전가해 주시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죄를 용서하시며, 죽음의 순간에 우리가 일방적으로 변화할 것을 약속하셨다면, 도대체 왜 우리에게 연옥의 교리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러나 변화론 모델의 관점에서 보면, 루이스의 사후 정화론은 논리적 필연성을 갖고 있다. 만일 구원이 무엇보다 변화에 관한 것이고, 이 변화의 과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협력이 필요하다면, 정화의 과정이 완료되기 전에 죽은 이들에게 무덤 너머에서도 진행되는 변화의 기회가 있다고 보는 편이 논리적으로 맞을 것이다.

 

즉 루이스는 면죄부, 혹은 전통적으로 면죄부와 연루된 비성경적 개념들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변화론적 구원론을 논리적인 결론까지 이끌고 갔을 뿐이다.

 

 

따라서 연옥에 대한 질문은 단순히 성경해석적 토대에서만 답변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경적 자료들을 그 논리적 결론까지 밀어 붙여야 한다. 만일 자유의지론적 자유와 루이스의 변화론 모델이 성경의 내용을 가장 잘 이해시켜 준다고 믿는다면, 이러한 정화론도 논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죽음의 순간에 변화를 완수하실 것이라고 믿는다면 정화론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고 더 이상의 정화 과정도 불필요할 것이다.

 

 

 

 

  1. 우리는 진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

 

만일 우리가 논리적 일관성 기준에 다른 신앙의 체계를 맞추려 한다면, 그리스도인은 바로 위의 진술을 신실하게 붙잡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쉐퍼의 역설적인 입장에서 본 것처럼 이는 언제나 일어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논리와 질서, 그리고 진리의 하나님이시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진실하지만 총체적이지 않은 진리를 구현하는 자기 일관성을 갖춘 체계를 소유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신비의 문제에 관해 더욱 철저하게 생각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당연한 긴장점과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루이스를 따라 잠정적 불가지론의 진영으로 따라가거나, 아니면 우리의 교리적 입장을 재고해야 한다.

 

역설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유의지론적 자유를 보존해야 할 필요가 드러난 마당에, 우리는 독자들이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문제를 미해결의 바다에 던지기에 앞서 성경의 내용과 하나님의 성품을 바르게 보여 주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관한 대안적 체계를 탐구할 것을 권한다.

 

 

 

[1]신학적 진솔함은 변증의 필수이다.

 

무조건적인 예정론을 오로지 구원의 확신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고 의도적으로 이러한 교리를 불신자들에게 감추려는 시도에는 뭔가 의심쩍은 부분이 있다.

 

이는 쉐퍼가 안고 있던 문제다. 만일 정말로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일부를 구원하기로 선택하셨고 나머지는 내어 버리기로 하셨다면, 우리는 쉐퍼의 방법론을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이 교리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이 교리에서 함축하는 내용들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쉐퍼는 다른 신념 체계 안에 있는 대화 상대자들에게도 솔직함을 요구하지 않겠는가? 분명 그는 그렇게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동일한 기준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하더라도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며, 우리는 그 진리에 대해서 전혀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쉐퍼로 하여금 예정론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불신자들과 나눌 수 없게 했던 바로 그 본능적 요인이 이러한 교리가 의심스러움을 직관적으로 보여 주는 상징이나 경고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우리의 신앙 체계를 솔직하고 성실하게 나눌 수 없다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같은 취지에서, 우리는 조직 신학과 목회 신학을 이원화하는 형태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쉐퍼는 전적이고 무조건적인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적 자유의 긴장 관계라는 모순된 개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목회적인 상황에서 그의 전략은 바뀌었다.

 

완벽한 균형대신, 쉐퍼는 미심쩍은 내용을 지닌 신념들을 간과하면서 더 안전한 교리를 강조한 것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루이스는 목회적 혹은 영적 조언이라는 기치 아래 자신의 실용적 제안을 정당화했다.

 

특별한 교리를 강조하는 것이 목회적 차원에서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로 믿는 바를 왜곡하면서까지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면밀함을 갖추지 못한 목회적 조언을 제시하는 것도 정당하다 볼 수 없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실재하는 모든 것의 주님이시라면, 우리의 목회 신학과 조직 신학 사이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쉐퍼는 분명히 이 점에 부응하는 주장을 했다. “만일 내가 나의 지적인 무결성을 유지하고 나의 인격적, 영적, 그리고 지적인 삶의 통합성을 지키려면대답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한 사람의 신학적 무결성을 진단하는 방법은 그 신학의 내용들이 막상 현장에 적용되었을 때 진실하게 인정받을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살해를 당했다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하나님이 그러한 어린아이의 죽음을 의도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완전한 무결성과 신학적 일관성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가?

 

사랑하는 이가 신앙을 버릴 때, 우리는 완전한 무결성과 신학적 일관성을 갖고 하나님이 이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시며 어떻게 해서든 그 분의 품으로 데려오실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비극적 죽음이 일어나거나 불신자가 신앙을 거부하는 등의 일이 일어날 때 우리의 사상에 걸림돌이 생기는 것인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어린아이에게 일어나는 야만적 행위나 선택받지 못한 자들에게 가해지는 무조건적 저주 같은 모든 일을 결정해 놓으셨다고 진실로 믿는다면, 우리는 실제 세계에서 이러한 예상 결과들과 더불어 지낼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구체적인 상황에서 우리의 조직 신학을 적용할 수 없다면, 우리의 교리적 입장에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자: 양자역학과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가 등장한 현대 사회에는 이와 같은 상식적인 주장도 때론 반론에 부딪힐 수 있다.)

 

[2]변증학은 체계적 사역이다.

 

 

 

변증적 과제와 조직 신학 간에는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어떤 이들은 변증학을 농구 시합이나 축구 경기와 같이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많은 점수를 얻는 자가 승리하는 식이다. 이는 단순히 양적인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변증학은 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의 목표는 뒤범벅이 되고 혼란스럽게 널린 조각들을 하나의 일관성 있고 질서정영한 실체로 조합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기는 사람은 조각이 가장 적게 남아 있는 자이다. 우리가 할 일은 서로 연결되지 않는 엄청난 증거 자료들을 단순히 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증거들이 어떻게 합리적이고 실존적으로 만족할 만한 실재의 모습으로 조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조각들을 잘 엮어서 알쏭달쏭한 인생의 퍼즐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에게 기독교의 일관성과 아름다움을 명쾌하게 제시하는 일이 조직 신학과 변증학의 몫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의 구원론적 비전은 일관되고, 포괄적이며, 거부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3]최대의 충돌은 아직 이르지 않았다

 

 

쉐퍼는 일관되고 포괄적이며 거부할 수 없는 비전의 필요성을 이해했다.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보면 그는 우리에게 실재에 대한 통합적 관점이 부족하며,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곤 단절된 파편들뿐이라고 지적한다.

 

실재는 책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책의 미미하고 훼손된 부분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이는 겨우 각 페이지마다 1인치 정도의 활자화된 내용일 뿐이다. 이 정도로는 어떠한 저자가 있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따름이지 이야기를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만일 우리가 잃어버린 부분들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파편들을 일관된 메시지로 조합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쉐퍼가 자연계시와 특별계시의 관계를 구상했던 방식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고 하나님의 우주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대답의 일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에 충분한 정보는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그 간격을 매우고 인생의 부조리함을 해석하기 위해 성경의 관대한 계시가 필요하다. 우리가 자연계시와 특별계시의 파편들을 한데 엮을 때, 실재에 관한 일관되고 포괄적이며 유력한 구상이 떠오른다.

 

그러나 쉐퍼에 따르면 이와 같은 명료한 이치가 많은 기독교 진영에서는 구름에 가리어졌다는 것이다. 20세기에 본문을 쪼개고 둔갑시키는 성경 비평가들의 새로운 조류가 등장했다. 따라서 성경 본문은 자연 계시의 파편들과는 어울릴 수 없게 되었다.

 

실재에 대한 통합적 구상과 인간의 곤경에 대한 하나님의 해법을 묘사하는 이야기는 한쪽에서는 신앙과 특별계시의 해체되고 이원화된 병렬 관계로, 다른 한쪽에서는 검증된 사실과 자연계시의 병렬 관계로 대치되었다.

 

그렇기에 쉐퍼가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한 것이다.

 

실재에 대한 통합적 비전은 이러한 교리를 집요하게 고수할 때만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쉐퍼에게 있어서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하는 이는 분열된 지식 세계와 동강난 세계관으로 치달을 뿐이다.

 

필자들의 구원론 연구를 통해 쉐퍼와 루이스 사이에 존재하는 몇 가지 핵심적인 균열이 드러났다. 속죄의 성격, 영원한 구원, 예정론, 영혼의 정화, 그리고 역설에 대한 의존 등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쉐퍼가 성경의 영감에 관한 루이스의 일부 주장을 불편하게 여겼음은 확실하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오랫동안 미국 IVP 편집인으로 있었던 제임스 사이어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이어는 1973년에 신시내티에서 열린 기독교 서점 협회에 쉐퍼와 대동했던 때를 술회한 바 있다. 어느 날 저녁 두 사람은 유람선과 작은 배들이 유유히 오가고 있는 오하이오 강변을 거닐고 있었다. 신시내티레즈 팀의 야구 경기가 없는 저녁의 야구장은 강 둑 위에 은은한 자태를 드러내었다. 두 사람은 호텔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는데, 쉐퍼는 늘 그렇듯 차분했다.

 

진중한 성격인 그는 흥겹게 웃는 시간에도 별로 미소를 짓거나 잘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지성과 의지, 그리고 감성을 활용해 소통하는 데에는 능했지만, 그다지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이어는 쉐퍼가 성경의 영감에 관한 루이스의 입장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창조 기사에 대한 신화적 해석이나 구약의 기적들의 시공간적 사실성에 대한 의문, 그리고 복음서 기자들의 오류 가능성 등은 성경무오성 교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쉐퍼는 특히 루이스의 [시편 사색]에 대해서 비판적이었지만, 이 작품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를 꺼려했다. 왜냐하면 루이스의 성경관이 갖고 있는 결함을 부각시키면 그의 다른 저작이 갖고 있는 매우 긍정적인 변증적 영향력이 위축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대화가 잠시 뜸해지자, 사이어는 흥미로은 시나리오를 하나 구상했다. 그는 쉐퍼와 루이스를 같은 방에 데려다 놓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밖에 몰래 엿듣고 싶다고 했다.

 

쉐퍼의 엄숙한 얼굴에 평소와 달리 밝은 미소가 번졌다. 쉐퍼는 사이어에게 이렇게 응수했다. “, 우리가 진작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루이스는 분명히 전향했을텐데.”

 

추측컨대 우리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변증가들이 이 중요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것을 지켜보고 싶은 이는 비단 사이어만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만남이 성사됐다면 그날 밤 신시내티 강변의 야구장은 북적대는 사람들로 가득 찼을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 토론은 단지 쉐퍼와 루이스 뿐 아니라, 복음주의 세계를 갈라놓은 큰 간극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다음 장은 사이어의 흥미로운 소원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참고: 이 책의 그 다음 챕터도 쭉 읽어 보시는 게 좋습니다. [굉장히 완성도 높은 책으로서 두 인물들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꼭 정독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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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우익을 담당하며, 정통 기독교를 수호하려 했던 프란시스 쉐퍼와 기독교 변증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근현대사 속에서 기독교 변호에 앞장 섰던 C.S 루이스는 서로 격렬한 논쟁을 벌인 적은 없으나 한번쯤 한자리에 앉혀 놓고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핵심적인 신학을 비교해 보자. 자세한 내용은 [루이스와 쉐퍼의 대화] 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책이 상당히 두껍지만 두 저자를 좋아하고, 신학적인 내용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잘 쓰여진 책이다.

 

 

 

 

 

 

 

쉐퍼의 입장 (근본적인 것들이라는 책에 따르면)

(그리고 B.B. 워필드, 제임스 오르, W. H.그리피스 토머스, 캠벨 몰간도 같은 견해)

  1.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

  2. 그리스도의 신성과 동정녀 출생

  3.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속죄

  4. 그리스도께 죽음으로부터(문자 그대로) 부활하심

  5. 그리스도의(문자 그대로) 재림.

 

 

루이스의 입장 (순전한 기독교에 따르면)

  1. 성경의 영감과 속죄의 효력에 대해서는 인정함. 그러나 성경이 어떻게 영감을 받았으며 속죄로 인해 타락한 피조물들이 어떻게 회복되는지에 관한 것은 본질적인 문제로 취급하지 않음.

  2.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 반대함.

  3. 그리스도의 신성과 동정녀 출생

  4.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부터(문자 그대로) 부활하심

  5. 그리스도의 (문자 그대로)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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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의문점들

 

저자: 니키 검블

 

22~25page

 

 

 

공산 국가였던 러시아의 사전에는 예수님은 결코 존재하지 않은 신화 속의 인물이라고 설명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날 진정한 역사학자로서 그런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필자: [예수는 신화다] 등의 책이 있으나, 진지한 무신론 역사학자들조차도 그런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예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들은 대단히 많다. 성경이나 그 밖의 다른 기독교 저술 외에 비기독교 자료에서도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로마의 역사학자 타키투스는 직접적으로, 수에토니우스는 간접적으로 예수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A.D. 37년에 태어난 유대의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예수님과 그분의 추종자들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요세푸스-

 

 

이 때쯤 예수라 하는 한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다. 그를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기적을 행하는 자였으며 진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주위에는 많은 유대인과 또한 많은 이방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빌라도가 우리 가운데 지도자격인 사람들의 제안으로 그를 십자가형에 처했을 때 처음에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그가 다시 사실 것과 그 밖의 수 많은 기적들을 예언한 바와 같이, 그가 죽은 지 사흘 째 되는 날 그들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지금도 존재한다.” (Josephus, Antiquities, XVIII 63f. 어떤 이들은 그 본문이 썩어져 없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세푸스가 제시하는 증거는 예수님의 역사적 실존을 확증시켜 준다.)

 

 

 

이와 같이 신약 성경 이외에도 예수님이 실재 인물이었다는 증거가 있다.

더구나 신약 성경에 있는 증거들은 대단히 확실하다.

때때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신약성경은 오래전에 쓰여졌습니다. 성경 기자들이 기록한 내용들이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본문 비평이라는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신약의 저자들이 쓴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원전이 많으면 많을수록 원전에 대한 의심은 적어질 수 밖에 없다.

F. F. 브루스 (그는 맨체스터대학교의 성경비평과 성경해석학 교수였으며, 지금은 돌아가셨다)는 그의 책 [신약성경의 기록은 믿을만 한가?]에서 성경의 텍스트들을 다른 역사적인 텍스트들과 비교함으로써 신약성경이 얼마나 풍부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저서

쓰여진 시기

최초의 사본

시간간격

사본 숫자

헤로도토스

488~428 B.C.

A.D.900

1300

8

투키디데스

460~400 B.C.

A.D.900

1300

8

타키투스

A.D. 100

A.D. 1100

1000

20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

58~50 B.C.

A.D. 900

950

9~10

리비우스의 로마사

59 B.C. ~ A.D 17

A.D. 900

900

20

신약성경

A.D. 40~100

A.D.130(사본 완성 A.D.350)

300

5000+ 헬라어 10,000 라틴어 9300 다른 언어

 

 

 

 

위의 표는 그 사실들을 종합하여 신약성경이 어느 정도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브루스는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에 관한 아홉개 혹은 열 개의 사본이 현존하며,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이 카이사르의 시대보다 약 900년 후에 쓰여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리비우스의 [로마사]의 경우 20개의 사본 밖에 없으며 가장 일찍 쓰여진 사본은 A.D. 900년 경의 것이다. 타키투스가 쓴 열 네권의 역사책은 20개의 사본이 남았을 뿐이며, 열여섯 권의 연대기는 그의 두 개의 위대한 역사서의 열개 부분이 전적으로 두 개의 원고에 의존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9세기의 것이며, 다른 하나는 11세기의 것이다.

 

투키디데스의 역사는 거의 전적으로 약 A.D. 900년의 것인 여덟 개의 원고로만 알려져 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오랜 역사적 간격과 비교적 적은 양의 자료에도 불구하고 이 저서들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고전학자들은 없다.

 

 

 

신약 성경에 관한 한 우리는 풍부한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

신약은 A.D. 40년과 A.D. 100년 사이에 쓰여졌다고 여겨지는데, 우리에게는 A.D. 350년에 쓰여진 신약 전체의 완전한 원본(단지 300년의 시간적 간격뿐이다.)과 신약의 내용을 거의 다 포함하고 있는 3세기의 파피루스, A.D. 130년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요한복음의 일부도 있다.

또한 5000개 이상의 헬라어 원본들과 10000개 이상의 라틴어 원본, 그리고 9300개의 다른 언어로 쓰여진 원본들이 있으며, 그 뿐 아니라 초대 교회 교부들의 글 속에 36000개 이상의 인용 구절들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원전 연구가의 한 사람인 F. J. A. 호트는 말했다.

신약성경은 그것이 의존하고 있는 증거들의 다양함과 풍부함에 있어서 고대 산문 기록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이다.”

 F. F. 브루스는 이 분야의 권위자인 프레데릭 케니언 경의 말을 인용하여 그 증거를 요약한다.

 

 그렇다면 처음 글이 쓰여진 시기와 현존하는 최초의 증거 사이의 간격은 아주 작은 것이므로 사실상 무시할 만하다. 그러므로 성경이 원래 쓰여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졌는가에 대한 의심은 이제 그 근거를 상실했다. 신약성경의 신뢰성과 통일성은 결국 증명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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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논의를 이어 나가서 경계선상의 신학자로 불리며 보수 신학에서는 거의 이단시 취급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세속 철학자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던 그의 철학적 실존 신학은 세상과의 소통을 고민해 보는 신학자, 목회자들이 한번쯤 참고해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도 많으며 말년에 동양의 종교에 심취하여 상당한 위험수위의 발언을 하긴 했으나 그가 세상과 연결되려 했었던 깊은 고뇌를 지닌 신학자였다는 점은 존경스러우며 배울 점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박만 저 <폴 틸리히:경계선상의 신학자> 는 그의 1차 서적인 [존재의 용기] 등을 보기 전에 먼저 읽어 보기 좋은 책이다. 가독성도 좋고, 설명도 시원시원하며 중요 이론도 잘 제시해 주고 있다.

 

 

 

 

<틸리히의 인간 이해> <그가 말한 용기>

 

 

 

[비실존의 위협 앞의 인간]

 

 

 

우선 다른 신학적 주제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인간 이해 역시 성경이나 교회사의 증언이 아닌 인간의 상황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한단다.

 

앞에서 보았지만 틸리히는 인간이란 생래적으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오늘날 왜 이런 모습으로 살게 되었는가?

 

나의 궁극적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주장한단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지는 가운데 인간은 자신이 끊임없이 비실존(non-existence) 의 위협 아래 있는 유한한 존재임을 알게 되고 존재론적 불안(ontological anxiety) 을 경험하게 되지.

 

 

 

하지만 이런 존재론적 불안 앞에서 인간은 자유(freedom) 를 사용하여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자 하지.

 

즉 자유를 통해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할 어떤 것을 확보하는데, 틸리히는 이를 인간은 존재해야 할 이유 혹은 존재의 용기(courage to be) 를 확보하려고 한다고 표현하지.

 

하지만 그 가운데 인간은 유한성과 의존성과 제한성이라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을 받아들여 그것에 만족하여 살아가기를 거부하지.

 

 

 

(신경증적 불안은 적절한 치료를 통해 극복가능 하지만 , 존재론적 불안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불안이기 때문에 , 회피하지 말고 정직하고 용기 있게 받아 들이자.)

 

 

 

 

 

  • 박만 지음 , <폴 틸리히: 경계선상의 신학자>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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