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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전 세대의 아버지들이 부정적 영향력을 행사했다고는 하지만,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이 모두 그 영향력 아래서 힘들어하는 것은 아니다.

형제 중에서도 유독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려운 사람이 있다.

제작진은 이 문제를 고민하다 보웬(Murray Bowen)의 이론을 접했다.

가족치료 전문가인 보웬이 제시한 개념 가운데 '가족투사 과정(family projection process)'이라는 것이 있다.

가족 구성원들이 갈등을 겪는 경우, 그 원인을 다른 구성원에게 돌리는 것을 말한다.

가장 흔한 경우는 부부갈등이 생길 때 특정 자녀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가족 내에도 흔히 말해 '약한 고리'가 있다.

갈등을 겪는 부모는 ​종종 자녀 중 가장 약한 자녀를 끌어들여 삼각관계를 형성하곤 한다.

특히 어머니는 자신의 괴로움을 아이에게 직접 투사하는 반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거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즉 아버지는 어머니와 갈등을 일으키고, 아버지로부터 상처받은 어머니가 아이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쉽게 설명해 보자.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는 박창희 씨는 상담과정에서 아버지를 도움이 되지 않는 '쥐'로, 어머니를 '소'로, 그리고 자신은 소 옆에 있는 '강아지'로 표현했다.

"강아지가 원래 맹목적으로 한 주인을 따르잖아요. 저도 어머니만 바라보고 어머니 옆에서 도움이 되며 살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마흔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 그를 떠나지 않고 지배하는 생각, 그것은 아버지에게 시달리는 어머니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다.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어릴 때부터 보아오면서, 그는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분노에다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분노도 일정 정도 짊어져야 했다.

 

 

어머니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릴 때부터 무의식중에 커졌지만, 정작 어린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분노는 더욱 커졌다.

어머니는 본인도 피해자이니 아이를 붙잡고서라도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아이는 더욱 분노하게 되고...이런 악순환이 지금까지 반복돼왔다.

"제가 가끔 불평을 할 때는 어머니가 '네 인생 찾아가라.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말씀은 하시지만....보이지 않는 손을 꼭 잡고 안 놔주세요. 너무 힘드시니까."

-> (필자: 소위 double binding 이라 불리는 어머니의 행동 양상)

부부갈등이 오래 지속되면 부부 중 어느 한쪽이 무의식적으로 자녀 중 한 명을 관계 속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부부 사이에 자녀가 끼어든 삼각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가족상담 전문가인 최광현 교수는 그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한다.

"특히 아버지들이 알코올중독이라든가, 가정폭력을 행사한다든가,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무능력해서 아내가 너무 외롭고 힘들어지면, 가족 내에서 위계질서의 혼란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엄마에게 아들은 아들이 아니에요. 때로는 남자친구 역할을 하기도 하고, 정서적인 남편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죠. 그 아들은 아버지를 과도하게 원망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요."

 

 

부모의 관계에 끼어든 아들은 독립적 성인으로 자라기 어렵다. 아이가 형성하는 자아상의 절반은 아버지로부터 오기 때문에,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저버린 아버지는 자녀를 혼란스럽게 한다.


특히 아들은 자신 또한 훗날 사랑하는 어머니가 증오하는 남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더 큰 혼란을 느낀다.


그래서 부부관계가 흔들리면 자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와 건강하게 분리되지 못한다.


어머니가 걱정돼서 혹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해결되지 못한 숙제 때문에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박창희 씨가 전형적인 경우다.


어머니를 지키고 가족을 보호하고 싶었지만, 그는 실상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어머니 옆에 붙어 있는 상태였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 때문에 아버지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고, 어머니를 보호해야 한다는 일념 때문에 어머니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고, 그는 뒤늦게 후회했다.

"제가 잘못했던 게 이것 같아요. 아버지 자리를 뺏으면 제가 누나와 동생과 어머니가 바라는, 가족이 원하는 아들이 된다고 착각했어요."

 

가족투사 과정은 부성의 부정적 영향력이 대물림되는 패턴을 보여준다.

 

 

 


가족 내의 약한 고리는 이를테면 '희생양'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서 더 안타까운 점은, 훗날 결혼할 때 약한 고리들끼리 만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사람은 패턴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비록 내가 부모로부터 받았던 것들이 너무 싫었지만 무의식중에 익숙해진 패턴을 선호하게 된다.


-> (필자: 일종의 '반복 강박')


부정적 영향력일 끼친 아버지가 있을 때, 올바른 반응은 부정적 영향력(패턴)을 닮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버지(사람)를 닮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하게 된다.

​사람은 미워하고 패턴은 답습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물림의 핵심이다. 많은 남성들이 아버지와 똑같은 패턴을 가진 아내를 선택하거나, 나아가 스스로 아버지와 같은 패턴을 보이곤 한다.

 

이처럼 감정의 패턴, 사고의 패턴, 가족관계의 패턴을 끊어내지 못하면 부성의 부정적 영향력은 몇 세대를 거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세대를 이어갈수록 더욱 왜곡되고 강화된다.

-[파더 쇼크]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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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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