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 루이스 #프로이트 #니콜라이 #책'에 해당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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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에 쓴 글입니다.)

 

 

1.들어가는 문

이 책은 루이스와 프로이트라는 두 걸출한 학자들의 이론을 잘 추려서 두 가지 상반되는 가치관 중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인가를 파헤쳐 보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정신과 의사이기 때문에, 책을 써 내려가는 시종일관 , 각 인물의 심리 상태라든지, 숨은 배경 등을 밝혀내는 역할들을 잘 감당해 주고 있다. 일단 내가 이 책을 통해 배운 가장 큰 핵심은 진리가 지닌 힘 이다. 이 책은 전투적이고, 일방적인 결정을 요구하는 책은 아니라지만, 내가 봤을 때 이 책의 승자는 C.S 루이스였다. 여기서 말하는 승리는 C.S 루이스라는 사람의 승리라기 보다는 그가 주장했던 영적 세계관 의 승리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프로이트는 정신 분석 분야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과학계와 사회, 문화 예술에 미친 영향도 굉장한 사람이었다. 

 

그 박학다식함에 있어서는 오히려 C.S 루이스를 능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주장했던 과학적 세계관 이 왜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었는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인간이 항상 자신이 공언한 대로 사는 것은 아니며 또한 자신이 산 바를 공언하는 것도 아닐 수 있음을 염두 하면서 난, 이 두 사람이 각기 내세운 이론, 주장 보다는 두 사람이 겪었던 생애와 그 때마다 변화 되었던 심리적 요인 등에 우선순위를 둬서 진리의 힘 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둘은 철저한 무신론자였으며, 염세주의 적이고, 내성적이었으며, 문학 작품 읽기를 즐겼고, 똑똑했으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계관 정립 문제에 굉장히 집중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 그리고 이 둘은 각각 유신론과 무신론 쪽 지성인의 대표격인 사람임을 고려했을 때, 이 둘을 비교, 대조 해 봄으로써 나 자신의 세계관 에 대한 결정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      

 

 

2. 프로이트! 당신을 지지합니다.

프로이트가 과학자로서 , 의사로서 그리고 심리학자로서 세상 속에 미친 영향력은 굉장한 것이었으며, 가히 혁명적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가령 자신이 개발한 전이 이론 을 바탕으로 본질적으로 치료는 사랑에 기초한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고, 그가 내세운 철학적 관념 중에서 부모(특히 아버지) 의 권위에 대한 초기 감정이 하나님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끼친다. 라고 주장한 내용 같은 경우에는 경험적으로도 충분히 입증이 될 정도로 신빙성이 있다. 

 

이 외에도 프로이트가 저술한 많은 책들과, 그가 개발해 낸 많은 이론들은 실재로 많이 응용되고 있으며, 참고 되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분류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기준은 정신 분석학 적 개념이 아니라 신자 , 불신자 개념이라는 것을…… 그는 끝내 무신론자로 생을 마감하지만, 생명에 대해 늘 고민했고, 죽음을 심각하게 두려워 했으며, 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그는 참 수고했노라! 라는 위로를 받을 영역도 분명 지니고 있다.

 

3. 프로이트! 당신을 비난합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는 불행했다. 그가 지닌 세계관 이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더 있었고, 없었고를 떠나서(애석하게도 논리적인 면에서도 떨어지지만) 그의 생애를 돌아 본다면 그는 루이스의 삶과 비교했을 때, 초라하기 그지 없는 인생을 살았다. 이러한 삶 자체가 프로이트를 비판하기에 가장 적합한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프로이트가 연구하고, 내세운 이론들은 모두 일상 생활의 모습과 , 매 순간의 기억, 그리고 심지어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 같은 영역 까지도 다 아우르기 때문이다. 

 

, 프로이트가 보이는 행동이라든지, 말투, 생각 들이 사실은 그의 이론의 강력한 증거가 되든지, 아니면 강력한 반론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7년간 일등을 놓치지 않았고, 명석했으며, 자신의 꿈처럼 높은 계급에 오르기 까지 했지만 그의 내면은 너무도 황폐해져 있었다. 진리는 냉혹하여 우리를 위로하지는 못하더라도 거짓된 희망과 비현실적 기대로부터 자유케 할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그의 모습 속에는 어떤 생명력 있는 에너지를 느낄 수 없었다. 

 

그는 세상은 암울하고, 고통스러운데, 신은 없으니, 이 모든 것을 체념 으로 극복해라고 위로해 주지만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가 열심히 배웠던 히브리어는 죽을 때까지 배우지 않았으며, 어머니의 모국어나 다름 없는 이디시어는 고작 몇 마디만 익혀 놓는 아들답지 못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끊임 없이 자신이 유물론자, 무신론자, 이단자 임을 피력하기 바빴다.(자신의 입지가 확고하지 않을 때, 보이는 불안한 심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인간은 아버지에 대한 강렬한 소망 을 지니게 되며, 이 소망이 투영되어 만들어진 개념이 바로  이라고 주장하면서 아버지의 권위가 깨지는 것을 보는 순간 종교적인 믿음을 잃게 되는 사례 들을 보라 라고 이야기한다지만, 이 근거는 빈약하기 짝이 없음을 보게 된다. 오히려 이런 순간에 종교적인 믿음을 잃게 되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 주지 못한 절대자에 대한 배신감 , 당혹감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자각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기도할 때, 성호를 긋는 모습이라든지, 앞 뒤로 움직이는 행위 속에서 보편적 강박 신경증 을 읽어 냈지만 그는 기도할 때 나타날 수 있는 행위들은 그 자체적인 개념이 아닌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며 이러한 행위 자체가 기도의 능력을 끌어 오는 것은 아님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무수하게 많은 허점을 드러내는 프로이트의 문제점을 두 가지로 요약해 본다면 그는 자기 중심적 이고, 모순적 이었다라는 것이다. 

 

그가 만들어 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10대의 어머니와 40대의 아버지를 지녔던 자신의 입장에서는 쉽게 공감이 되겠지만, 일반 인들에게는 경험적으로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이론이 될 여지가 다분하다. 또한 그는 보통 사람은 엄청나게 높여진 아버지라는 인물 말고 다른 식으로는 이러한 섭리자를 상상할 수 없다. 라고 주장하지만, 이것 또한 성급한 일반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 늘 일등을 놓친 적이 없고, 자신이 바라던 대로 훌륭한 인물이 되어 왔던 그로서는 , 자신이 어떠한 생각을 지녔으면, 다른 일반 사람들도 충분히 그럴 것이라는 일종의 거만함 이 넘실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모순적이었다. 

 

성에 대한 자유를 표방한 대표적 인물이라지만, 정작 자신의 생애 속에는 그러한 신념을 적용치 않았고, 자신의 딸이 연애를 하는 것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기에 급급했다. 신은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일상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많이 언급하고 살았으며, 스스로는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체 했지만, 그는 코카인에 의지하며 우울증이라는 괴물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을 뿐이다. 근본적으로 프로이트처럼 똑똑하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이와 같은 잦은 모순과, 문제점을 드러내는 이유는 딱 한 가지로 요약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바로 그가 지닌 과학적 세계관 영적 세계관 과 다른 개념이라기 보다는 차원 자체가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C.S 루이스가 예기치 못한 기쁨에 서 언급했듯이 종교의 해를 입지 않은 자들은 약간씩 얄팍해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소위 깡통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들이 삶의 깊은 영역을 다루려 하고, 유머까지 곁들이며 짐짓 여유를 부린 다 해도 그러한 책들은 삶의 거친 면을 다룰 수도 없고, 밀도 있는 내용도 나오기가 어려운 것이다.      

 

4. 프로이트! 당신이 너무 안타까워요.

외부적인 요인들만을 본다면, 그는 나보다 많은 것을 누렸다. 훨씬 많은 능력을 소유했고, 영특하였으며,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생각해 냈고, 좋은 소리든, 싫은 소리든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으며 삶을 영위했다. 하지만 난, 그가 너무 안타깝다. 난 그가 너무 불쌍해 보인다. 프로이트가 내 옆에 있었다면 그런 나를 한 없이 비웃으며 그가 했던 말 처럼 , 우주의 혹독한 현실을 빨리 깨닫고, 철 좀 들어라! 라고 쓴 소리 한 번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루이스의 심정을 그대로 반영하여 그 분께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서 깨어나십시오.!... 당신이 이룩하신 많은 학문적인 업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하지만, 당신의 영혼에게는 각성이 필요합니다.어서 눈을 뜨세요! 라고 말이다. 나는 그가 하염 없이 불쌍하다. 그는, 똑똑한 사람이었기에 , 충분히 깊은 사고를 할 수 있었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누구보다도 잘 생각해 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자기 중심적 이고, 야망 에 가득 찬, 그의 내면과 그의 과거를 휘어 잡았던 뼈아픈 기억 , 상처 들이 그를 진리로 이르지 못하게 막았다지만, 그는 그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가 자신에게 필요하며, 하나님의 존재가 있을 것 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신론자들이 겪는 모순으로 가득 찬 삶으로 그의 인생을 마무리 해 버렸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분개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그가 안타깝다. 그는 이 책에서 대비되는 루이스가 뒤늦게 경험한 진정한 행복을 맛보지 못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우울증을 치료하지는 못하면서 그는 그 우울증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불행한 삶을 살았던 수 많은 이들이 회심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진정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었을 때, 프로이트는 그들과 같은 경험은 해 보지 못한 채, 그들의 회심을 환각적 정신 이상 이라고 분석해 내며, 만족해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그는 대학생 시절 , 무신론이 흔들리는 경험도 해 봤고(루이스는 오히려 이런 적이 없었다.) , 루이스가 정의 내린 그 기쁨 ,  갈망 이 프로이트 자신에게도 있음을 고백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그 다음 단계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그의 의지의 도끼로, 그의 과거의 가시로, 그의 상처의 칼날로 앞에 놓여진 진리를 가리키고 있는 이정표 를 잘라 버렸다. 

 

그가 보인 희생(진리를 거부하여 영원히 파멸로 치닫는 삶)과 그가 이룬 업적(인간의 초기 인생 , 행동, 말투, 무의식 등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하나로 융합되어 , 자신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려는 이들에게 큰 교훈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왠지 슬프다.

   

 5. 루이스! 당신은 나와 닮았군요

루이스는 나와 닮았다.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나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는 나와 너무도 비슷했다. 내가 쓰는 이 글에서 난 시종일관 나만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프로이트가 안타까워 보인다든지, 루이스가 나와 닮았다느니 하는 것은 그들이 지닌 능력이라든지, 업적 , 탁월함 등의 기준이 절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이들이 갈구하였고, 고민하였던 영적 세계관 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유사함을 느꼈던 것 뿐이다. 루이스는 내성적이었고, 혼자 서도 잘 놀았으며, 북유럽 신화나 상상력을 발휘해 만들어 낸 나라를 동경하며 살아 갔다. 그는 무신론자의 길로 자연스럽게 발을 들여 놨고, 우리 나라로 치면 중학교 즘 되었을 나이 즈음에 학교 속에서 이루어지는 무자비한 계급 사회와 비열함 , 탐욕 등에 질려 버린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그는 늘 어떠한 갈망 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신화 속에서 봤던 아름다운 아스가르드 대륙을 찾아 자연을 떠돌기도 했으며, 자신이 읽은 책 속의 요정 들을 생각하며 학교 속의 끔찍한 기억들을 잊을 수 있었다. 심지어 체육 시간이 그 어떤 시간보다 싫었다는 그의 고백만 읽어 보더라도 루이스의 생애는 나와 너무도 똑 같은 양상을 띄고 있었다. 

 

또한 루이스는 내게 많은 도전이 되었다. 그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한 이후에, 복음을 전하는 방식은 내가 지니길 소망하는 선교 전략이었다. 지적으로 게으른 이 시대의 크리스천(나를 포함한) 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어 준 것만 해도, 그의 역할은 훌륭했노라고, 인정 받으리라 믿는다. 그는 무엇보다 솔직했다. 이 점에 있어서 난 내가 닮고 싶고, 또한 내가 지닌 성향과 일견 비슷한 부분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은 티격태격 시종일관 앙큼한 싸움을 벌인다. 하나님께 실망하면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고백한다. 독신으로 살던 그가 50세가 넘어서 얻게 된 아내 조이를 3 4개월 간의 결혼 생활을 끝으로 천국으로 떠나 보냈을 때, 그가 쓴 <A Grief Observed> 는 너무도 공감이 되는 슬픔 의 고백을 담고 있었다. 난 아직 이러한 죽음을 겪어 본 세대는 아니라지만, 내가 분명 아내를 잃게 된다면 이와 같은 고백을 하게 될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든다. 

 

어떤 말씀을 들었을 때, 그저 납득이 된다고 , 그냥 믿지 뭐! 라고 말한다기 보다는, 솔직하게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가 있지? ,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니,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거야? 라는 질문을 던지며, 정직하게 하나님께 진리를 갈구하는 모습이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영적 조예가 깊으신 목사님들이나, 영적인 분들은 분명 이런 자세를 두고 영적 어린아이 를 벗어나지 못한 태도라고 경고하실 수도 있고, 머리 굴리다가 파멸로 치달을 수도 있다 라는 흔한 경고를 던지실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삶 속에서 루이스가 이 선교 방식을 고수하며,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의 푯대만을 바라보며 달렸던 이유가 분명 있었으리라 믿고 있다. 그는 알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진리에 동화되어 살아왔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진리의 변두리에 머문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랬기에, 그는 저명한 목사님들의 회의적인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문서 선교와 방송 선교 등을 통해 복음을 전했던 것이리라 믿는다.

사실 난, 그를 닮았다기 보다는, 닮고 싶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6. 나가는 문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둘 다 무신론자였고, 두 사람은 모두 회의적이고, 염세적이고 , 논리적인 면을 추구하는 경향 등이 흡사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진다면 그들의 가장 본질적인 성향은 분명 달랐을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루이스는 방어적인 성향이 강해서, 행복을 찾기 보다는 고통을 피하기를 즐겼으며, 마치 현실 도피적으로 이 세상과는 다른 세상 속에 심취하며 살아간 듯 했지만, 그것들만 생각하면 느껴지는 아련한 갈망 이 결국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지판 역할을 하는 것이었음을 깨닫는 계기를 얻게 되었으니, 그는 성공했다. 

 

그는  에게 미련하리 만치 집착하지 않았다. 그가 지녔던 성공을 향한 야망이라든지, 유명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욕구를 그는 크게 확대시키지 않았다. 반면에 프로이트는 똑 같은 고민을 하며, 비슷한 양상에 놓였을 때 마다 자신의 업적을 부여 잡으며, 더욱 독하게 , 더욱 열을 올려  에 집중해 버리는 실수를 범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발견치 못한다면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음을 그는 알았어야 했다. 나와 내 내면 속 정신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크고 , 넓은 시야를 가지고 , 보이지 않는 세계에 집중할 필요가 분명 있었다. 어린 시절 상처 때문에 그랬노라고, 자신은 남들보다 불운했노라고 항변해 봤자, 이 모든 것이 핑계에 불과하다. 

 

루이스도 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아픔들을 겪었기 때문이다. 난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가장 큰 특권이 자유의지 임을 믿는다. (이 개념이 신의 관점에서는 자유가 아닐지라도, 내가 느끼는 자유의지 라면 난 그것을 자유의지 라고 부를 생각이다). 하나님이 이끄셔서 프로이트가 희생당했다는 생각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유다복음을 믿고 싶진 않듯이 말이다.),(그리고 단테의 [신곡] 지옥편- 을 읽어 보면 , 유다는 지옥에서도 가장 최악의 지옥에 떨어졌다고 묘사되어 있다.). 결국 프로이트 자신의 의지로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에 합당한 열매 를 먹은 것이다. 많은 조력자를 붙여 주셨었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는 많았음을 그도 인정할 것이다. 

 

무엇보다 루이스는 솔직했다. 그는 오랜 무신론자로서의 관념을 삶 속에서 가장 큰 무기로 사용할 줄 알았다. 회의자들을 위한 사도 라는 그의 닉네임은 그의 회심 후 생애 가 어떠했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그는 결코 반대론자들의 공격에 기 죽지 않았다. 그는 깨달은 것이다. 진정한 진리 가 무엇인지를.. 그가 자신의 회심을 한 마디로 요약했듯이, 그가 진리에 발을 들여 놓은 과정은 결코 극적이지 않았으며, 신속하게 이루어 지지 않았다. 수십년 간의 세월 동안, 깎아지고, 다듬어져서 비로소 받아드리게 된 정제된 보석 을 얻는 과정이나 다름 없었다. 결국 그들의 말년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죽는 순간까지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친구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 자선 사업에 크게 이바지 한 루이스와, 자신의 미래의 전기 작가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궁리를 하기에 급급하고, 모든 사람을 불신하게 되었으며, 죽음 앞에서 벌벌 떨던 프로이트의 모습이 나란히 대비되는 듯 하다. 진리의 힘은 무섭다. 그리고 강하다. 모든 인간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신자 가 될 것인지, 불신자 가 될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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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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