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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박명림 교수는 대한민국의 기원을 한국전쟁으로 본다.

이런 시각은 홉스의 이론에 맞닿아 있다. 70년 전 우리는 지구적 차원의 이데올로기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해방정국의 혼란과 민족분​단을 겪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민족 전체가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참혹한 내전을 치렀다.

국가를 대하는 국민의 의식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가 남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려 500만명이 죽고 사라지고 다쳤던 동족상잔의 이 전쟁을 우리는 '6.25 전쟁' 또는 '한국전쟁'이라고 한다. 그토록 짧은 기간에 이토록 좁은 영토에서 그처럼 많은 인명이 살상당한 전쟁은 세계사에서 흔치 않았다.

 

 


게다가 미군의 공습, 이념전쟁, 반전을 거듭한 전황 때문에 다른 어떤 전쟁보다도 민간인 살상이 많았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휴전협정 이후 긴 세월이 흘렀고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세대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국민들이 일제강점에서 벗어난 이후 최대 사건으로 꼽는 것은 단연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 이전의 사건들은 크건 작건 모두 전쟁으로 흘러들어갔고, 그 이후 정치와 사회, 외교도 모두 이 전쟁의 테두리 안에 놓였다. 이것은 대한민국 뿐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며 북한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그 결과 북한은 사회주의국가나 독재국가라는 말보다 병영국가(garrison state)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피바람을 마시면서 성장했다. 국가기구가 급속하게 팽창했고 반공주의가 위세를 떨치는 가운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안보 체제에 편입됨으로써 가까스로 국가의 안정을 확보했다.

 

10만 남짓하던 군대는 전쟁을 거치면서 60만이 넘는 대군으로 성장했고 경찰의 규모도 단기간에 5만 명을 넘겼다.

 

 

당시 대한민국의 사회적 발전 단계를 고려하면 지나친 규모였으며 이것이 전쟁 이후 정치의 틀을 결정했다.

1961년 군사 쿠데타와 뒤이은 30년간의 군부독재는 분단과 전쟁이 아니고는 그 유래를 설명하기 어렵다. 기나긴 자본주의 발전과 사회적 분화를 거치면서 상비군과 관료제가 발전하고 국가제도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길게는 8년, 짧게는 3년에 불과했던 전쟁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만들어졌다.

우리의 국가는 시민사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민사회의 도전을 파괴하면서 밖에서 주어진 다음 급팽창하는 형태로 구축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분단국가 대한민국의 발생사는 홉스의 국가론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 철학적으로는 홉스를, 통치기술로는 마키아벨리를 추종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사회 내부의 혼란을 방지하고 '북괴의 침략'을 막는 것을 국가의 절대적인 목표로 설정했고, 이를 위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국민이 아니라 자기가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은 반대하지만 해놓고 나면 좋아할 것"이라며 국민이 압도적으로 반대한 사업을 밀어붙였던 이명박 대통령의 말에도 이런 사고방식이 깔려 있었다.

북한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의 위협을 쉼 없이 강조하면서 국론통일을 요구한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정치활동의 자유, 평등권과 노동권은 법질서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며 통치권을 위협하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북한 공산집단의 침략 위협과 북괴의 지령을 받는 친북용공세력이 야기하는 내부적 혼란'에 대한 실제적인 또는 조작된 대중의 공포감을 이용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했다.

-[국가란 무엇인가]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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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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