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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년전에 읽고 남긴 짧은 소감인데, 지금 다시 읽어 보면 더욱 비판적으로 읽어볼 여지가 있는 책이다. 이 땅에서 주창되는 '보수' 라는 게 과연 진짜 '보수'이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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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 박사가 한국이 잘 살게 될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하는 책이다.

세계관과 시스템을 훑어 보는데 특히 좌파적 세계관과 우파적 세계관의 장,단점을 분석하면서 최종적으로 '바른 보수의 세계관'을 지님으로써 도약해 보자고 독려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인간이 그리 선하지 않다는 건 동의하는 것 같다.

 

일단 이 책만 보고 나면 좌파적 세계관에는 발을 들여 놓기가 어려워 진다.

 

난 많은 말을 할 수 없지만, 일단 참고로 이 책을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의 주장을 그냥 동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양측의 이야기를 같이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부분들이 그가 내세우는 여러 근거 중 하나이다.

 

속성상 개인에게 분산되어 있는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더 나은 대안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시장 기능의 활성화를 주장한다. 물론 그들은 대부분 우파적 세계관에 동의한다.

 

반면에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수의 지식만을 동원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시장보다는 정부에 의지한다. 다시 말하면 우파들은 정부 개입이 불가피한 영역이 있을지라도 개개인이 일상생활에서 주어진 역할과 의무를 다하면 된다고 이해하지만, 좌파들은 사회적인 선이라고 판단되는 행위로까지 자신들의 활동 영역과 책임 영역을 넓혀가려고 한다.

 

그런데 정부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 가지 통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100년 동안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4000만 명 정도이다. 반면에 정부의 실정으로 인해 죽임을 당한 사람의 수는 최소 1억 7004만 명에서 3억 4000만 명에 달한다. 이런 통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부의 역할 확대에 그토록 관대할 수 있을까?

 

말은 많이 아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책이 잘 읽히고, 명료하게 쓰여 있어서 '온건 보수의 세계관'을 탐구해 보고 싶다면 도전해 보라.

 

그리고 반대측 주장도 꼭 같이 들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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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우파나 좌파는 강한 국가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극과 극은 만난다고들 한다. 말발굽 모양처럼 극은 만나게 되어 있다.

극좌였던 일부 세력들이 극우인 뉴라이트 창설에 혁혁한 역할을 했던 것처럼....

우리는 정과 반이 아닌 합 어딘가에서 더욱 이치에 맞는 길을 모색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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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는 국가가 재벌들에게 특혜를 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세계적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좌파 또한 강력한 국가가 재벌을 규제하고 보편적 복지와 소득 분배를 통해 경제적 평등을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동문'과 '한경'에 나타났던 제왕적 대통령제 프레임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한편으론 가장 민주적이었던 노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제왕​적 대통령으로서 경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제발 부탁하건대, 어느 쪽이든 하나만 택하시라.

제왕적 대통령이 싫다는 건가, 제왕적 대통령이 되어달라느 ㄴ건가.

보수 언론이야 비논리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치공세를 하기 위해 던지는 거지만, 소위 진보 지식인들이 원하는 게 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길이 없다.

-[왕따의 정치학]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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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서구처럼 수백 년에 걸쳐 진보와 보수가 형성된 게 아니라, ​해방 이후 지금까지 몇십 년 동안 갈등을 압축적으로 경험해왔다.

 

이건 순전히 주관적 해석이므로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 진보의 역사는 시민권을 향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고, 시민권의 내용도 세 차례에 걸쳐 변화를 겪어 왔다.

제 1세대 시민권은 참정권이었고, 제2세대 시민권은 경제적 권리(복지권)이었다. 유럽에서는 전후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복지국가가 정착되었지만, 미국에서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복지권을 헌법 개정 조항으로 포함시키려다 갑자기 서거해 아직 시민권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제3세대 시민권은 자치권이다.

소수민족이나 문화를 지키기 위한 시민권인데 이를 헌법에 규정한 나라는 소수에 불과하다. 나는 제 3세대 시민권을 프랑스 68혁명의 참여민주주의 정신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19세기와 20세기는 ​더 많은 보통사람이 참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싸움의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귀족에서 유산 계급으로, 유산 계급에서 평민으로, 그리고 노동자와 여성과 젊은이들로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참정권이 허용되는 방향으로 인류의 역사는 진보해 왔다.

​우리는 일제에서 해방됨과 함께 투쟁 없이 미군정에 의해 참정권을 부여받았다. 그 후 우리의 민주주의는 몇 차례 굴절됐고, 급기야는 독재정권의 등장으로 그 참정권마저 빼앗기게 되었다.

 

참정권을 향한 투쟁이 4.19, 5.18 그리고 6.10으로 이어졌다.

 

투쟁을 통해 드디어 참정권을 획득한 건 1987년 대통령 직접선거를 내세운 개헌운동의 승리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

제1세대 시민권을 향한 운동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운동이기도 했다.

 

1987년의 6.10 항쟁은 화이트칼라가 가세함으로써 성공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민중운동이라기보다는 지식인, 대학생, 중산층 위주의 제1세대 시민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그랬듯이 경제권을 향한 노동자 정당의 제2세대 운동이 일어나면 제1세대 운동에서 진보적이었던 유산계급은 보수화된다.

열린우리당은 탈지역주의 정치개혁을 소명으로 내걸고 창당했기에 영국의 자유당과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영국의 자유당과 참여정부는 달랐다.

 

노무현은 2002년 대선에서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새 정치를 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되었다.

​탈지역정당인 열린우리당의 탄생과 과반수 의석 달성, 노무현 정부의 정치개혁으로 한국민의 정치만족도는 2002년 말 아시아 최하위(25%)에서 2004년 초 1등(75%) 이 되었다.

정치개혁을 1년 만에 거의 완성했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를 의제화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 제2세대 시민권운동에 본격적으로 불을 댕긴 장본인이 노무현이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1980년대 후반에도 노동자의 인권을 변호하기 위해 싸웠다.

그러나 정동영은 노무현이 의제화한 제2세대 시민권을 2007년 대선에서 의제화하지 못했다.

 

그는 탈지역주의 정당인 열린우리당을 깨고 이도 저도 아닌 대통합민주신당을 탄생시켰는데, 선거에서 대패했고 신당은 정당으로서의 역할도 하지 못했다.

 

 

2008년 총선에서 참패한 대통합민주신당은 2012년 총선에서 혁신과 통합이라는 재야 시민단체 세력과 통합하면서부터 노동 분야 전문가를 대폭 공천했으며, 대선 후보가 된 문재인은 복지, 재벌개혁 등 좌파적 경제 공약을 대거 내걸었다.

 

민주당이 경제적 진보정당의 색채를 띠면서 호남의 기득권 정치인과 전문가 출신의 중도 정치인(박영선, 김한길, 변재일 등)이 안철수와 한 편이 되고, 비교적 진보적인 친노/민평련이 연대하는 본격적인 이념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광옥, 한화갑, 김경재 같은 호남 정치인들은 새누리당으로 넘어갔다.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정권교체를 함으로써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됐다고 믿기에 보수화 행보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호남에서의 분열은 민주당이 제2세대 시민권인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자 세대 간 이념 갈등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유럽 역사에서 살펴봤듯이, 제1세대 시민권에서 진보적이었던 자유당이 제2세대 시민권 운동이 등장하면서 몰락하거나 보수당에 흡수되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역사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중도보수정당이었지만, 2012년 이후 세계화와 양극화의 흐름 속에서 경제적 민주화와 제2세대 시민권을 향한 시대적 과제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호남을 중심으로 했던 60대 이상 민주화 세력이 제2세대 운동이 일어나면서 보수화되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중도보수적인 안철수와 호남 정치인들이 국민의당으로 뛰쳐나갈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단지 문재인이 싫어서라기보다는 이념 갈등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호남 출신이었기에 민주당에 몸담았던 것이지 민주당이 경제적 민주화를 지향하는 정당이라서 온 게 아니었다.

 

김수환 추기경, 김동길 교수 등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던 지식인들이 민주화 이후 보수적으로 변화한 이유 역시 단지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유럽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화 이후의 필연적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와 독재의 균열이 사라지자 민주화운동을 했던 일부 유산 계급이 보수화된 것이다.

 

호남인들은 모두 진보여야 한다는 가정 자체가 잘못이라고 본다.

 

​호남인들 중에도 기득권 세력이 있다.

 

우리의 소선거구 선거제도는 지역주의 토호 세력에는 큰 행운이다.

 

호남의 의원들은 공천만 받으면 천년만년 당선될 수 있다. 호남에서 민주당 다선의원이 보수화되는 건 당연하고, 때마침 등장한 국민의당은 민주당에 비해 경제적 쟁점에서 더 보수적이다.

따라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합쳐야 한다는 주장은 과거로 회귀하자는 주장이나 다름 없다.

 

이러한 이념적 분열을 거치면서 지역주의가 약화되는 것이므로, 호남의 분열은 사실 한국 정치 발전에 매우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분열을 안타까워하거나, 서로 간에 원망하고 미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거 역사에서 진보/보수라는 이념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등장한 건 1997년 대선 이후 2000년 총선에서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호남의 한이 풀리면서 호남인들의 분열이 시작된 것이다.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수도권에서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이탈한 것이다. 고소득, 고학력, 성공한 호남 출신 수도권 유권자들이 이익 투표를 하면서 한나라당을 찍기 시작했다.

 

더는 민주당을 찍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지역주의의 약화는 2000년 총선 때 시동이 걸렸다.

서구에서는 20세기에 좌우 대립이 있었다.

영국에서 자유당이 보수당에 일부 흡수되면서 사라지고, 노동당이 좌파 정당으로 등장해 복지권이 확립되었다.

그래서 20세기에는 ​경제적 민주화를 추구하면 좌파, 경제적 자유(사유재산권)를 추구하면 우파가 되었다.

​경제 문제가 정당을 가르는 핵심 균열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 68혁명이 일어났다. 68혁명은 경직되고 비인간화된 공산주의에 대한 염증을 표출했다.

20세기의 자본이냐 노동이냐 하던 경제적 균열은 둘 다 물질주의 뿐이다.

물질주의는 빈곤과 전쟁 등을 겪은 세대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68세대는 ​2차 대전 이후 평화와 풍요 속에서 자란 중산층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전후 세대로서 배고픔과 전쟁의 위협을 모른다. 이들에겐 물질이 더는 중요하지 않기에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기본적으로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좌우가 서로 싸우면서 똑같이 권위주의적이라는 점을 혐오했다.

​권위주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집단주의에 기초한다. 집단주의는 집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데, 이것이 유럽의 신세대에게는 설득력이 없었다.

경제가 풍요로워 질수록 인간은 개인주의적으로 변한다. 마치 물리학에서 온도가 올라갈수록 분자의 운동이 활발해져 고체에서 액체, 액체에서 기체로 변하는 것과 같다. 68세대에게는 물질보다 자아실현과 정의 같은 가치관이 더 중요했다.

예컨대 인권과 일상 속에서의 민주주의, 환경, 생태, 여성 등의 가치를 높이 사고 이를 위해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들이 물질 이후의 가치를 추구한다고 해서 탈물질주의자라고 부른다. 유럽은 1968년 이후 30년간 혁명적 변화를 거치며 21세기에 도달했다.

.................

민노당이 원내에 진입하면서 경제 균열이 한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자, 진보언론과 지식인은 영국처럼 자유주의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사라지면서 민노당이 제1 야당이 되리라 기대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와 열린 우리당에 가혹하게 굴었다. 불행히도 한국은 분단과 6.25를 겪은 나라다. 빨갱이, 좌파 기피증이 민노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가로막았다. 이것이 우리가 유럽과 달리 제2세대 시민권을 성취하기도 전에 건너뛰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김대중 대통령이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세계 최강의 IT 국가가 되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인터넷은 시민에게 정보를 주며 정보는 곧 권력이다. 제2세대 시민권을 확립하기도 전에 권력을 가진 시민들이 제3세대 시민권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게 노사모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한 노사모가 한국 탈물질주의 운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은 인터넷을 활용해 대통령이 되었는데, ​미국의 오바마는 2008년에야 이를 벤치마킹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우리가 미국보다 6년이나 빨랐던 것이다.

​우파는 노무현을 좌파라고 공격했고, 좌파는 노무현을 신자유주의자라고 공격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노 대통령은 "그럼, 참여정부가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거냐"고 한탄했다.

 

그랬더니 좌우 언론은 노 대통령도 스스로 참여정부를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인정했다며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된 시민들은 양쪽의 공격이 다 부당하다고 느꼈다.

노무현은 분명히 공공성을 추구했으면서도 세계화와 시장경제의 장점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탈권위주의적인 그의 모습이 좌우 정치인 누구보다 진보적으로 보였다. 이 때문에 나는 노무현 왕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론을 보수, 진보가 아니라 우파, 좌파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인 노무현과 좌파 언론이 갈등을 보이는 이유는 좌파 언론이 노무현만큼 진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좌파 언론이 20세기 경제적 평등이라는 구좌파 이념을 추구한다면, 노무현은 21세기의 진보라고 할 수 있는 탈물질주의 이념을 추구했다.

​탈물질주의의 요체는 탈권위주의적이며, 이들을 유럽에서는 신좌파라고 부른다.

​신좌파는 좌파의 아류가 아니라 우파(시장)와 좌파(국가)를 모두 배격하고 제3의 영역에서 합리적 개인의 연대를 통한 공동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제3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진보적 자유주의'라고도 부른다.

영국의 자유당이 아니라 신좌파였던 노무현은 우파 언론뿐만 아니라 구좌파 언론과도 이념 갈등을 겪었던 것이다. 나는 늦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의 정체성을 찾아 주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21세기 진보적 자유주의자였습니다."

-[왕따의 정치학]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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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언론이 참여정부와 문재인을 왜곡하고 오보로 때리기를 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독자들이 놀랄 만한 사실은 동아일보의 이 프레임을 경향신문도 그대로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경향신문은 3일 밤 10시 26분, 동아일보의 원래 제목과 유사하게 <'문재인 위한 개헌 저지 보고서' 비문계 등 20명 '관련자 문책'> 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동아일보는 양심은 있었는지 그날 밤 제목을 수정했다. 그런데 경향신문은 이미 3일 낮에 연구원이 보고서를 공개했음에도 이런 오보를 냈다. 더욱이 진상조사위의 결과가 발표된 후에도 제목을 수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경향신문을 진보언론이라고 불러줄 수 없는 이유다. 나는 그들을 칭할 땐 '소위' 진보언론이라고 한다. 스스로는 진보를 자처하지만 뭐가 진보적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막을 내린 이후 "아, 우리가 속았구나" 하며 시민들이 깨어났다.


그 전까지 우리나라 보통 국민은 '설마 언론이 그렇게 악의적인 거짓말을 할까?' 라고 생각했다.


우리 나라는 언론에 대한 신뢰가 정부에 대한 신뢰보다 굉장히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선진국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언론에 대한 신뢰보다 높다.


선진국에서는 학교 정규 교육과정에서 '언론을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언론은 인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잘못될 가능성이 있고, 의도적으로 왜곡하기도 하는 나쁜 언론이 있기 때문에 늘 비판적인 시선으로 봐야 한다.'고 비판적인 관점을 가르친다.


그래서 선진국 시민들은 정부보다 언론을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는 독재의 유산이 남아 있고, 특히 노무현 대통령 이전까지는 제왕적 대통령을 경험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언론을 더 믿는 경향이 있다. 언론이 정부보다 약자이므로, 약자가 약자 편에 서줄 거라 생각해서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언론과 치열하게 싸웠다.

 

왜 그랬을까? 대통령이 언론을 비판하면, 사람들이 보도 내용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보고 양쪽 의견을 들어보고 판단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국민이 학교에서 언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니까 대통령이 몸을 던져 언론과 싸움으로써 사실을 밝히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큰 효과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국민이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대통령이 언론을 탄압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효과는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타났다. 지금처럼 수많은 시민이 깨어난 데에는 수십 년 앞을 내다본 노무현 대통령의 전투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개헌보고서와 관련해서 반대자들이 궁극적으로 퍼뜨리고 싶었던 것은 박근혜처럼 문재인도 공조직을 사유화하고 비선을 작동시킨다는 프레임이었다고 본다.


실제로 반문 의원들이 언론에서 이런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친박, 친문 빼고 제 3지대에 모여서 내각제 개헌을 하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이다.


이거야말로 정말 위험하고 무책임하고, 반민주적, 반헌법적 발언이다.

 

친박이든 친문이든, 우리 정치에서 배제의 대상을 만들어선 안 된다. 그건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며, 누구도 왕따가 되어선 안 된다.

 


 

하지만 친박은 심판의 대상이다. 민주주의에서 심판은 매우 중요하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주기적 선거인데, 그 목표는 국민이 잠시 권력을 맡겼던 대표를 심판하는 것이다. 박근혜와 친박은 국정을 농단했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5% 지지도가 국민이 어떤 심판을 원하는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압도적 국민 다수가 원해서 탄핵을 한 상황이기 때문에 친박은 심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친노, 친문을 심판하겠다는 이들이 있다. 친노가 뭘 잘못했기에 그 후 두 차례의 정부가 지난 지금까지 심판 대상으로 오르내려야 하는가? 더욱이 친문은 집권을 해본 적도 없다. 이들을 어떤 잣대로 심판하겠다는 것인가?


친노, 친문을 배제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배제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소수자를 차별하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보수언론은 나를 항상 대표적인 친노 논객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나는 친노 또는 친문 정치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모른다.

 

 

아마 국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민 눈에는 계파와 무관하게 개혁적인 의원이면 모두 친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친문을 모르니 비문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문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이번 개헌 보고서 파동에 서명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비문이다.


그래서 나는 팟캐스트에서 이 문제를 다룰 때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성명서나 받아쓰지 말고, 이들이 조직적으로 회동해서 일을 계획하고 작전을 짜는 현장을 취재해보라고 말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성명서의 주인공들이 공개적으로 만나 계파 활동을 하는 게 언론에 포착되었다.

 

친문이 계파 활동을 한다는 기사나 증거는 본 적이 없지만 반문들은 떳떳하게 계파 활동을 한다. 그리고 이들을 언론은 일관되게 '비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하지만 이들은 정당정치에 반하는 '반문'이다.


-[왕따의 정치학]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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