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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될 수 있으니 드라마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보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얀 거탑]을 보고..

 

유명한 의학 드라마다. 수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드라마를 다시 보게 되었다.(3년 전 쯤 봄)

원작이 일본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확실히 우리 나라 드라마와는 전개하는 방식이 좀 다른 면이 있었다.

우리 나라는 의학 드라마든, 법정 드라마든, 퓨전 사극이든, 환타지 물이든 늘 달달한 연애씬이 주를 이룬다.

두 선남선녀의 그렇고 그런 로맨스를 위해 여러가지 부수적인 소재들을 옵션으로 사용하는 느낌이라면 일본 드라마들은 특정 소재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집요함과 집중력이 있는 듯 하다.

가령 요리 드라마는 정말 요리사의 숭고함과 열정을 잘 그려내고, 의학 드라마는 정말 의학 드라마 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일본판을 보지 못해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하얀 거탑]은 식상하기 쉬운 연애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의 가치는 한층 높아진다.

촉망받는 외과 의사 장준혁의 일대기를 그린 듯한 이 작품은,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 야망이라는 주제를 매우 적나라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장준혁은 지극히 인간적인 캐릭터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야망과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인 것이다.

자존심 따위는 과감히 내리고, 적 앞에서 무릎을 꿇기도 하고 때로는 강경하게 밀어 붙이는 태도로, 때로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애절한 멘트로 상대방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수 있다. 누군가는 이와 같이 확실하고 프로페셔널한 세속성을 닮고 싶어할 수도 있다.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처세술이니, 사회성이라는 이름으로 나름 멋지게 불릴 수도 있고 말이다.)

외과 과장이 되고자 하는 장준혁의 야망은 자신의 스승까지도 과감히 밟아버릴 수 있는 저돌성을 띄고 있는데 이는 이주원 외과 과장과의 치열한 심리전으로 그려지며 드라마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이에 반해 그의 오랜 친구인 최도영은 우리가 꿈꾸는 성실한 의사다.(여기서 '우리는'에 속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선호도가 있는 방향성이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병원이나 자신에겐 손해가 가더라도 인간을 향한 애정과 사랑, 그리고 인격성을 잃지 않는 의사다때론 그의 모습이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해 보일 순 있지만, 역시 내가 환자 입장이라면 이런 의사를 찾고 싶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중심 인물은 누구보다도 장준혁이다.

그가 외과 과장이 되기 위해 자신의 스승인 이주원 과장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서도, 혹자들은 장준혁을 마냥 미워하지 만은 않을 것이다.

작금의 시대 상황과 정치 양상, 작게는 회사 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들이 더러 연출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장준혁을 비판하기 이전에 우리들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그와 같은 색깔을 띄고 있는 모종의 욕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혹자들은 "욕망이 정말 나쁜가?, 모든 인간은 '욕망'하지 않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도 있고 말이다.

성향 상 그의 모습에 공감을 못 하는 것 뿐이지, 무언가 내가 바라는 것’, ‘내가 잡고자 하는 것을 간절히 꿈꾸고 염원하던 순간들을 각자가 지니고 있지 않은가?

(결국 색깔이나 방향성이 다르다 뿐이지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욕망'하고 있다는 점)

장준혁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한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에겐 외과 과장이 되고, 자신의 명성을 알리는 게 그의 삶에 전부였던 모양이다.

그것을 몸 속에 가득 채우기 위해 그는 인간성도 버리고(스승을 배신하거나, 자신의 실수로 죽은 환자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거나), 사랑도 버리고(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기 보단, 자신과 이야기가 통하는 술집 여성 희재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몸도 버리고 만다.

점점 인간 이하의 존재로 추락해 가는 그를 붙잡아준 건 그의 주변에서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그를 지지해 주던 무리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있는 그대로 불러주는 (“준혁아~”) 최도영이나 그의 어머님, 그리고 희재와 같은 인물이 그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기억 속에 남는 인물임이 드라마 속에 잘 묘사되어 있다.

장준혁이 스스로 파멸의 길로 치달을 때, 그는 친구인 도영이가 해 준 말을 회상하곤 한다.

넌 존재 자체만으로도 훌륭하다와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었는데, 어떤 것을 이루지 않아도,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도 존재 그 자체의 가치를 봐주는 고백이었다.

장준혁은 이 부분이 결여 되어 있었다.

그는 지독히 자존감이 낮았고, 열등감이 심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전형적인 반작용으로 그는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를 드러내는 데 생의 에너지를 다 쏟아 붓고 말았다.

(Kohut 은 self psychology 에서 어린 시절 자신을 충분히 지지해 주고, 공감해 주는 self-object(자기 대상)을 지니지 못했을 때, 그리고 이상적인 부모상이 형성되지 못했을 때 아이는 '나르시스틱 injury' 를 얻게 되며 이를 보상하기 위해 과장된 자기(grandiose self)를 형성하여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를 어필하고 싶어한다고 주장한다. 장준혁은 전형적인 '자기애성 인격장애' 의 표본이 아니었을까?)

그의 깊은 내면은 어쩌면 여리고 따뜻한 구석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장준혁의 명성과 실력을 이용해 병원의 위상을 높이고 자신도 병원장이 되고자 했던 부원장이라든지, 장준혁 주변에 날파리처럼 달라 붙었던 수 많은 인물들은 자신들의 욕심의 암 조직을 장준혁의 몸 속에 차곡차곡 배설했던 게 아닌가 싶다.

장준혁 본인의 욕심도 암 조직 발생에 한 몫을 했겠지만 주변의 모든 어두움이 장준혁의 몸 속에 응집되어 결국 젊은 천재 의사의 삶을 좀 먹어 버렸다.

그래도, 떠나는 길 자신의 시신을 해부학 교실에 기증하는 모습을 통해 그나마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승화 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여운을 느끼게 해 준다.

특별한 로맨스가 깊게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 인스턴트 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요소도 딱히 없어 보이지만, 이 드라마는 다분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정치적이며 다분히 인간적이다.

그리고 장준혁과 대비되는 최도영의 존재는 의롭고 싶으나 용기가 부족하고 체면을 중시하던 이주완 과장이 움직이는데 힘을 실어 줬고, 장준혁이라는 고집 불통의 마음 속에도 잔잔한 감동을 남겨 주었으며 수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어 줬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될 포인트다.

한 사람의 의로운 자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생명을 전달할 수 있는지가 잘 묘사되어 있다.

어떤 인물과 같은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우리들 각자의 몫이다.

때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목적하는 바를 움켜 질 수 있는 장준혁의 모습이 멋있어 보이고, 강단 있어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최도영과 같이 지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 일정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씨를 뿌린 대로 거두기 마련이다.

장준혁의 장점들(자신의 이득이나, 야망 성취의 일환일 수 있긴 하지만 자신의 밑에 두고 있는 수련의들을 잘 챙겨주는 모습은 일정 부분 멋있어 보이긴 한다, 그리고 실력 있는 외과 의사라는 모습도 보기 좋고 말이다. 때론 용감한 모습도 한번 씩 보여주고 말이다.)을 잘 기억하면서, 동시에 오경환 교수나 최도영 교수, 이주완 과장의 딸인 이윤진과 같은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하면 가장 적절한 결말이 아닐까? (물론,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 답답해 보이고 꽉 막혀 보이고 융통성이 떨어져 보일 때도 있을 것이며 이들이 절대적인 '의'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결말은 열어 놓겠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정말 잘 만들어져서 여운이 오래 남는다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꼭 보자!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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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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