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전쟁 #책 #리뷰 #장대익 #김윤성 #신재식 #창조과학 #지적설계'에 해당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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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생명의 기원창조주를 상정하지 않고 ,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자연 과학자 진영밀러의 유리 실험을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윤성 교수는 이 밀러의 실험을 언급하면서 , “확률이 극히 희박하게 낮다 할지라도 , 일어난 건 일어난 거다. 우리가 지금 여기 존재하는 건 , 언젠가 한 번 극도로 희박한 확률의 물질 합성이 일어나서 , ‘생명체가 자연 발생했던 것이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급하게 논리의 비약을 하기 시작합니다.

 

 

과학적으로 볼 때 생명이 무기물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밀러의 실험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 해 보자면

 

밀러라는 어르신이 원시대기의 조성을 기초로 하여 , 원시지구의 모형을 만들어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유리병 속에 메탄 , 암모니아 , 수소 가스라는 무기물을 집어 넣어 원시 대기를 만들고 , 불꽃 방전을 일으켜 원시 대기에서 일어나는 번개를 재현 시킵니다. 그리고 물을 끓여 , 기상 상태를 조정하고 바다의 분위기도 연출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합성되었다는 놀라운 실험입니다.

 

하지만 ,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밀러의 유리 실험철저하게 setting 된 연구실내에서나 겨우 될까 말까한 실험이었고(불가능하다고 봐야할 겁니다.) , 물질 합성이 성공하고 나서도 걸어가야 할 길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난감한 실험입니다.

 

(이 부분은 리 스트로벨의 [창조 설계의 비밀] 을 읽어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혹여 무기물에서 유기물의 합성을 가능케 했다 할지라도(이 영역도 결코 타협하기 힘든 , 억지가 많이 개입되어 있지만)

 

그렇다면 , 그 첫 무기물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철학을 이용해 보자면 영원한 질료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본격적으로 PART4 에서는 , 창조과학과 지적 설계론을 한 덩어리로 보고 , 비판하기 시작하는데요.

3명의 저자 모두가 한 마음이 됩니다.

(이 책의 퀄리티가 확 떨어지는 지점입니다.)

 

 

하지만, 345page 부터 445 page 까지 중에 지적 설계그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는 부분은 398 page 에서 마이클 베히환원 불가능한 복잡성개념을 살짝 건드리는 정도. (어떤 과학적 조사에 의한 주장이 아니라 , 과학이 발전하면 그 동안 설명해 내지 못한 세포 진화에 대한 설명이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주장 뿐입니다. 혈액 응고 등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지닌 생명 반응을 , 언젠간 풀어낼 것이다라는 막연한 주장.. 근거는 전혀 제시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 러셀 둘리틀처럼 혈액 응고 메커니즘이 실상은 환원 불가능하지 않다라고 과학적으로 반박해 오는 게 더 옳아 보입니다.(하지만, 러셀의 의견은 이미 반박되었습니다)

 

 

그리고 400 page 에서 윌리엄 뎀스키의 특정화된 복잡성개념에 살짝 딴지를 거는 정도.

 

(근거가 없습니다. 이런 부분을 집중 연구해서 , 책을 만들었다면 제대로 된 반박서가 될텐데뎀스키의 설명 필터’(explanatory filter)’ 이론이 작위적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근거는 전혀 언급 되어 있지 않네요. 뎀스키의 논증이 , 이렇게 단 몇 문장으로 끝낼 만큼 간단하지가 않을텐데.. 누구보다도 지적 설계 진영에서 책을 많이 쓰고 , 글을 많이 쓰며 , 인터넷을 통해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뎀스키를 너무 무시하는 건 아닌지 싶네요. 그 유명한 진화 철학자 마이클 루즈도 뎀스키의 논증에 높은 점수를 줬는데, 너무하지 싶네요..)

 

 

이게 거의 전부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 대니얼 데닛 , 리처드 도킨스 , 제리 코인 , 스티븐 핑거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과학자들이 모여서 지적 설계를 공격했다는 [지적 사고(Intelligent Thought)] 라는 잡지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리처드 도킨스

 

이들은 , 지적 설계론이 과학계의 사실들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비판의 요지를 장 교수가 자신의 방식대로 재구성한 부분이 책에 언급되는데요.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점령하지 않았다고 기술돼 있는 역사 교과서가 있다고 해 보죠. 그리고 그 저자들이 지금 교육부를 방문해 연일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해 봐요. 또 일부 인사들은 그 교과서의 채택을 목표로 고위층 로비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쪽 입장만 가르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양쪽 입장을 모두 가르쳐라.” 이 얼마나 근사해 보이는 논리입니까.” (지적설계 진영이 이렇게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는 의미로 쓴 글입니다.)

 

하지만 이건 제대로 된 논증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 마디로 지적 설계는 사이비 과학이라고 못 박아 두고 , ‘거짓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니 , 뭐 할 말이 없네요.

 

이러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 거의 지적설계를 다루는 이들의 태도에 대한 문제들 , 그리고 그들이 품고 있는 숨은 의도 등에 대한 경고 , 반발 등으로 지적 설계론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토론을 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거기에는 과학자라면 누구나 참여해야 할 논문 심사 시스템이 없고 , 혹시 학회와 학술지가 있을라치면 그것은 늘 그들만의 리그일 뿐입니다. 그러니 연구 프로그램과 그 성과물이 있을리 없습니다. 반명 어떻게든 교과서는 만듭니다. 또한 대중 강좌 프로그램은 바쁘게 돌아 갑니다. 왜냐하면 과학의 내용과 논리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이 그들의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이것은 바로 사이비 과학의 전형입니다.”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단 , 조금 변호를 해 보자면 , 기존 주류 과학계에서 그들의 말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받아 들여 주질 않으니 , 이러한 맥락에서 논문을 써 봤자 , 퇴자 맞을 게 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 놓고 , 왜 너희들끼리 노냐고 비난합니다. 어서 우리 쪽으로 오라고..(그 대신 , 우리가 지닌 방법론을 수용한다는 조건을 지켜라고 이야기 하지요.)

 

 

하지만 , 이들이 너무 성급하게 움직이면서 , 제대로 된 개념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 강연 등을 다니고 , 교과서 채택부터 시도하려고 함으로써 대외적 이미지가 손상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 일단은 그러한 홍보 활동보다는 , 진지한 토론과 합의를 해 나가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도 해 봅니다.(하지만, 상대 측이 전혀 받아 들여 주질 않고 , 문자주의적 창조과학 지지자들과 한 패로 봐 버리니 , 진지한 토론 합의도 할 수 없고 , 별 수 없이 자신들의 말을 들어라도 주는 , 사람들을 찾아 홍보를 하고 다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진화 생물학은 생물학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 대해 확실한 설명을 제공하진 못해 왔다. 하지만 지적 설계론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설명하려는 시도조차 아직 하지 않았다.”

 

(이런 부분들은 나름 연구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실례되는 발언일 수도 있겠고 , 또는 새로운 연구에 대한 열정을 잃어 버리고 , 기가 죽어 있는 지적 설계를 지지하는 과학자들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 아웃 사이더의 길을 감당해야 한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상대측이 혹 할만한 성과라…… 과연 어떤 발견을 제시한다 해도 , 그들이 귀를 열어 줄지 의문이지만.)

 

결국 , 전체적인 맥락들은 계속적으로 지적 설계를 지지하는 이들은 기독교 보수주의spirit 을 숨기고 있고 , 자신들의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지적 설계라는 도구를 철저하게 이용할 뿐이라는 비난이 이 책이 지적 설계를 비판하는 주된 이유인데요.

 

이런 의도를 비난한다 치면 , ‘무신론자들이 , ‘다윈주의를 철저하게 이용하여 , 자신들의 무신론을 정당화 하기 위해 , 멀쩡한 진화론을 확장시켜 , 모든 사회 현상을 진화론적 패러다임으로 설명해 내려고 발버둥 치는 지금의 모습은 , 하나의 철저한 의도가 감춰진 것은 아닌지……..그들에게는 신이 있으면 안 되기에……신이 없어야 하기에..

 

그래서 9.11 테러와 지적 설계 운동 두 가지 덕분에 무신론자들이 한 목표로 뭉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닌지요.(장 교수의 말마따나)

 

이런 맥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신 교수의 입장은 장대익 교수와 전혀 조화를 이룰 수 없게 되구요.

 

(지적 설계 , 창조과학을 사이비로 몰아 붙이는 데는 한 마음이 되지만 , 신 교수는 진화라는 개념을 자신이 믿는 개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어떠한 것으로 이용하려고 하고 있고 , 장대익 교수는 전혀 신의 자리를 남겨두려 하지 않는 형국입니다.)

 

그리고 , 신 교수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 보면

 

416 page 1페이지로 그는 창조과학을 붕괴시킵니다.

 

(아무리 성경 문자주의자. 그리고 성서 무오론자들이 , 자신들의 신앙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엉뚱한 주장들을 많이 했기로서니, 창조과학 안에도 분명 진지하게 논의해 볼 만한 분파가 있거늘, 그 어떤 문제 제기 , 반론도 없이 그저 가짜라고 단언하는 태도는 전혀 프로페셔널 하지 않아 보입니다. 책의 지면이 부족했을까요? 유신론 대변자로서는 좀 부적합한 태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417 page 부터는 지적 설계를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몇 번이고 반박이 되었던 논증을 다시 반복하면서..

 

지적 설계빈틈의 하나님 전략을 취할 뿐이다라고..이야기하고..

 

이러한 주장을 합니다.

 

 

그들은 진화론이 오류이면 창조론은 저절로 정당성이 증명된다고 생각합니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 모두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아주 편향적인 흑백 논리에 빠져 있습니다. 갑이라는 이론이 특정한 사례를 해명하지 못한다면 , 을이라는 이론이 옳다는 논리죠. 진화론이 설명하지 못하니까 창조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강경 보수 진영 창조과학회에서나 이런 주장을 하지 , 최소 지적 설계론자들이 이런 주장을 했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양자택일 , 흑백논리라…… 실질적으로 지적 설계라는 개념이 진화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진화라는 단어 자체의 정의도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 그 중에서 철저한 자연주의적 방식을 고수하는 진화에만 이의를 제기하는 , 지적 설계론은 양자택일을 강요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 분이 개인적으로 만나 봤던 지적 설계론자가 , 이론을 오용하여 양자택일 강요했다면 , 그건 그 분께 개인적으로 지적을 했었어야 하는데 , 그 사건을 일반화 시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 교수는 지적 설계론이 과학의 눈으로 봤을 때도 사이비지만 , ‘신학의 관점으로 봐도 문제 투성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이 주장하는 창조는 철저하게 [창세기] 의 일부 구절에 한정됩니다.”

 

 

 

그것은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 진영에 신학을 제대로공부한 사람이 드물고 , 따라서 물려 받은 자신의 신학적 경향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 이렇게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일차적인 근거입니다.”

 

왜 계속 지적 설계론이 성경과 접목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실제 이런 논의를 펼친 적이 없거늘.. 계속 , 숨은 속내를 들춰 내 보였으니 , 이젠 들춰진 상태로 계속 이야기 이어 나가겠다는 것인지.. 누가 신학을 만족시키려고 , 지적 설계를 지지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신을 세계와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존재로 보는 정통 기독교의 신론과 동떨어져 있는 게 바로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이다.”(그런데 , 너희들은 왜 이런 이상한 이론을 들고 와서 ,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냐.결국 너희들이 원하는 인격 신을 옹호해 낼 수 없다그러니 , 다 버려 버려라.이런 의미겠죠?)

 

 

그리고

 

 

또한 전능한 신이 만든 완성된 세계라는 이들의 전제는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생명계의 현실과 당연히 모순을 이루고 있죠.”

 

이러한 일련의 말들을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은 , ‘인격신을 주장하려고 지적 설계 개념을 붙들든 그렇지 않든(대개는 붙들고 싶겠지만) , 지적 설계 라는 개념 자체는 그러한 주장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순수 논증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 그러한 인격신 주장을 기대해서도 안되며 ,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며 , 그러한 기준에 어긋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선을 넘은 이들이 있다면 , 그건 그들이 ID 를 오용했을 뿐이지 , ID 자체에 그러너 함의가 담긴 적은 전혀 없다는 것이죠. 그저 설계자 존재만 논증하면 되기에 , 그런 포괄적인 논증용으로 지적 설계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

(도대체 누가 그런 주장을)

 

그리고 계속 신학적으로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론을 비판하는데

 

창조 신학이나 지적 설계론의 논의에 따르면 결국에는 태초의 창조만을 기독교 창조와 동일시하는 결과에 빠지고 맙니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의 논지를 따르면 , 신은 역사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일회성 창조로 끝이 아니다. 신의 활동 여지를 아주 없애 버리죠. 활동을 멈춘 신은 더 이상 기독교의 신이 아닙니다.”

 

어째서 지적 설계론 등을 지지하면 , 유신론이 이신론으로 변해 버리게 되는 건지 , 그 근거는 제대로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 사실도 아니구요. 

 

너무 황당한 주장으로 받아 들여지는데 , 오히려 지적 설계론을 신학의 스펙트럼으로 바라보는 신 교수의 관점에서 객관성이 흐려지는 것은 아닌지요. ‘지적 설계론기독교 신학의 구미에 맞출 이유도 없으며 그저 과학적 방식을 이용하여 , ‘설계된 영역들을 탐지해 나가겠다는 작은 부분만을 설명해 내는 이론일 뿐인데 , 그 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끄집어 내려고 합니다. 주장하지도 않은 이야기들, 관련도 없는 이야기들을 연결 시켜서 신학적으로 비판합니다.’

 

 

그 분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이런 식으로 전개 됩니다.

 

 

 

신 교수님은 지적설계론 등을 기독교의 전파야욕을 위해 어설프게 이용되는 도구 그 이상으로 절대 보지 않습니다. 일부 사람에 한정하여 주장했으면 좋았을 텐데 ,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주장에서도 이러한 입장을 고수한다면 , 전혀 정당한 토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분의 말을 더욱 들어 봅시다.

 

 

 

따라서 지적 설계론이 좀 더 진전된 신학적 주장을 하려면 , 그 설계자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라는 것을 또 다시 증명해야 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부분도 역시 지적설계 지지자’ = ‘기독교 신 존재 증명 원하는 자라는 공식을 전제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부분을 염려하고 계십니다. 그런 수단으로서 사용될 필요가 없는 이론/가설'인데 말이죠.)

 

 

지적 설계론의 주장을 설계 논증으로 본다면 신학적으로는 근거가 빈약한 논증이며 , 별로 고려할 가치가 없는 논증입니다.”

 

뭘 얼만큼 고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지적 설계에 대한 논의를 이렇게 두리 뭉실하게 해 놓고 , 단박에 버려도 될 만한 제품 취급을 하고 계십니다. 신학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건 , 왜 비판 받을 만한 여지가 되는지도 참 모를 일입니다.

 

 

여기에는 제대로 된 신학도 없고 , 제대로 된 과학도 없고 , 사이비 신학과 사이비 과학만 있을 따름이죠. 결코 좋은 종교도 좋은 과학도 아닙니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은 결국 기독교와 신학의 종말을 자초하는 부메랑이 될 것입니다. 이게 제가 아직까지 채 잉크도 마르지 않은 책들을 포함해서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 운동 진영의 문헌들을 검토하고 내린 결론입니다.”

 

기독교와 신학의 종말을 자초한다?

 

그리고 왜 지적설계가 과학적이지 않은지 에 대한 부분도 , ‘자연주의 방법론을 지니지 않으면 , 절대 과학이 아니다라는 전제 하에서 한 문장으로 반박해 버리고 ,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논의는 되지 않고 , 이야기는 비참하게 엔딩을 맞고 맙니다.

 

 

물론 , 그 분이 신학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겪게 되는 곤란한 상황들은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 비 과학적인 잘못된 창조 과학의 개념들을 거침 없이 수용하여 , 학생들에게 그러한 가르침을 주입시키고 , 정당화 시키는 등의 실태를 보면 , 부끄럽고 할 말이 없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염증이 클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 이런 부분들을 읽어 보면..

 

 

사실 지금 목회를 하는 기존의 목사님들 거의 대부분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 이어지는 군사 독재 시절을 보냈습니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 당연히 제대로 신학 교육을 받을 여 건이나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성서 비평학은 물론이거니와 신앙과 무관하다고 생각되는 자연 과학을 공부할 기회는 더욱 없었죠. 그런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으니 , 이들이 과학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지적 설계나 창조 과학 등을 잘 모르고 , 순진하게 받아 들이시는 교회 어르신들의 입장도 일견 동정하게 됩니다. 창조 과학 등을 자신의 신념 때문에 마구 전파시키는 소위 엘리트 종교인 과학자들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은 동의합니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 이야기를 정확하게 가늠해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교회 안에 거의 없다는 말입니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비판할 수 있는 그런 불경한교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실 그렇긴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논의를 펼치는 사람들은 더욱 신중하고 ,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 다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

 

 

진화론을 부정하는 젊은 지구 창조론과 오랜 지구 창조론, 지적 설계론이 한팀이며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건지 , 진화론 그 자체를 부정할 이유가 전혀 없는 지적 설계론이 왜 한 팀으로 묶여 있는 건지..

 

신 교수는 진화론이라는 단어를 너무 모호하게 사용하여 , 그 분 스스로가 사용할 때는 순수한 의미의 명백한 과학적 사실인 진화를 이야기 하고 있겠지만 , 일반적인 의미의 진화론은 모든 생명체가 이러한 자연선택과 돌연변이에 의해 , 자신의 특성이 선택되고 누적되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자연주의적 진화를 다루고 있기에 , 이야기가 많이 꼬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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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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