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그 뒤로는 이제 서로간의 토의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서로가 주고 받았던 편지를 기반으로 쓰여져 있구요..)

 

대체적으로 김윤성 교수가 제의하는 밈 이론에 대한 비판에 동의하구요.[468~469page]

 

장대익 교수는 , 분열되고 풀리지 않던 모든 이론들을 풀어줄 피난처로서 밈 이론 을 적극 수용했고 , 이젠 이 이론을 가지고 진화 심리학 , 신경 과학 , 사회 생물학 등을 넘나드는 통합 이론 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 472~489 page 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등에서 언급되었던 , 종교는 사실 악의 원흉 이라는 식의 논증에 대한 절충안 또는 해답의 일부로 제시할 만 합니다.

 

같이 토의,토론해야 할 부분들.

 

1.

도킨스가 만든 다큐멘터리 [모든 악의 근원]에서..

한 복음주의 목사와 논쟁을 벌인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 목사가 성경에는 하나의 모순도 없다고 말하자, 도킨스는 현재의 과학이 성경이 가지고 있는 수 많은 모순점을 지적한다고 맞받아쳤죠. 그랬더니 그 목사는 바로 당신같이 오만한 사람이 바로 문제 라고 비난을 하더군요.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동물이라고 말하는 당신하고는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다. 라고 말하며 대화를 그만둡니다.

[대익 교수의 의견]

 

이러한 견해에 대한 여러분의 입장은?

 

2. 기독교의 선택

 

<1> 새로운 과학 지식에 맞추어 전통적인 가르침 가운데 과학과 모순되거나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은 모두 폐기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 같은 신학적 교의를 문제시했던 19세기 말의 가톨릭 근대주의 가 이 흐름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 근대주의는 계몽주의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성서 비평학을 수용합니다. 

 

이들은 전통 교리 , 특히 구세주론과 구원론에 관련된 교리에 대해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이런 교리들을 포기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 예수 세미나 였던가요? 그 단체에서 성경 속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해체해 나가다 보니, 거의 남은 내용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바트 어만의 [성경 왜곡의 역사] 같은 책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엘빈 플란팅가 등에 의해 탈탈 털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2> 새로운 과학 지식에 맞추어 기독교 가르침을 새롭게 갱신하려는 시도입니다. 

 

기존의 가르침이 과학적 사실과 뚜렷하게 모순되는 경우 , 새로 구성하려 한 것입니다. 

 

이 입장은 교리를 당대의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다시 해석하면서 , 기독교 신앙과 현대 지식 사이에 교량을 놓으려고 합니다. 주로 개신교 자유주의 신학 전통이 이런 입장을 취하죠.

 

<3> 전통적인 종교 지식을 그대로 고수. 강화하고 새로운 과학 지식을 전적으로 배척하려는 흐름입니다. 

 

이들은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과 이에 근거한 신앙 지식을 가지고 과학을 대합니다. 기존의 교리와 다른 지식을 제공하는 과학은 배척의 대상이 되죠. 20세기 초 미국에서 발생한 근본주의와 , 그 영향 아래에 있는 현대 개신교 보수주의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4> 과학과 종교를 완전히 분리하면서 자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입장은 근본주의나 보수주의와 달리 , 현대 과학의 성취를 인정하고 성서 해석에서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죠. 

 

그렇지만 과학은 종교와 분리된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 종교의 관심사는 철저하게 인간적인 것에 묶어 둡니다. 

 

신학은 인간의 영혼과 윤리 , 도덕 , 역사에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종교와 과학을 분리하는 이런 시도는 20세기 중후반 세계 신학계의 주류였던 개신교 정통주의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1>~<4> 번 중 여러분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개인적으로 <1> <4> 은 반대하는 입장이구요.<2>도 분명 껄끄러운 부분들이 보이늰데 , 그렇다면 남는 건 <3> 인데 , <3> 을 좀 세분화 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3> 번 내에서도 다른 성서 문자주의자 진영이 있을 것이고 , 성서의 진리는 인정하지만 , 그 해석법은 다양할 것이다 라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이구요..)

 

3. 무신론은 과학적 방법으로서는 필요불가결하고 , 형이상학적 신념으로서는 유신론과 나란히 다양한 선택지들 중 하나이며 , 실천적 신념에  따른 운동으로서는 합리성과 인간성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4.김윤성 교수가 말합니다.

 

과학을 의미 , 가치, 상징 , 문화 , 종교 등으로부터 떼어 놓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과학을 의미와 분리하려 해도 과학은 언제나 의미의 영역에 개입하게 됩니다. 

 

 

또 온갖 가치와 이데올로기가 과학에 스며들기도 하죠. 과학은 설명의 모형으로 상징을 활용하기도 하고 , 과학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과학은 종교를 비롯한 다른 많은 요소들과 더불어 문화의 엄연한 일부로서 , 다른 요소들과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역동적인 상호 작용을 주고 받습니다. 하지만 기어츠는 과학을 애써 문화나 종교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호 작용들을 애써 무시합니다. 

 

굴드나 길키가 그랬던 것처럼 기어츠 식의 분리에서도 과학과 종교의 대화란 애초에 불가능하죠.

 

(참고 자료: 굴드는 사실과 의미의 영역에 종교를 국한시켜서 , 사실 의 영역을 과학에게 줌으로써 , 과학에게 유리한 입장을 유지하려고 했던 무신론자이구요. 길키라는 사람은 과학을 사실 의 영역에 가둠으로써 ,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는 본분에나 충실하라고 , 과학에게 냉소적인 미소를 짓습니다. 인간의 삶에 관련된 가치와 의미에는 과학이 함부로 개입하지 말라는 의도가 담겨 있죠. 결국 , 서로 간의 의도가 달랐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두 영역 을 분리 하려고 시도했었죠.)

 

(전 종교가 사실 의 영역에 개입하지 않을 수는 없다라는 주장을 , 과학이 의미 의 영역을 넘보지 않을 수도 없다는 김 교수의 입장에 덧 붙이고 싶습니다결국 , 쌍방간에 완벽한 이분법적 분리 는 불가능 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토의거리: 과학과 종교를 명확히 분리시켜 생각할 수 있는가?

 

5. 종교학을 가르치는 정진홍 교수의 글입니다.

 

종교의 다양성은 타자를 인정하고 차이를 수용하는 윤리를 요청하는데, 배타적 신앙은 이 윤리적 의무를 저버린다. 경전을 역사나 과학이 아닌 신화로 여긴다고 해서 그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경전을 문자 그대로 받아 들이는 시대 착오가 오히려 경전의 의미를 훼손할 수 있으며 , 반대로 경전을 신화적 은유와 상징으로 이해할 때 그 의미가 더 풍성해질 수 있다.

 

또한 다른 부분에서

 

진화론적 유신론은 역사.비평적 성서 해석을 따릅니다. 우선 [창세기] 에서 창조를 설명하는 구절들을 문자적 으로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창조와 관련된 [창세기1~11] 의 기록을 비역사적인 설명으로 보는 것이죠.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성서는 과학 논문이 아니니까요. 대신 [창세기] 의 창조 이야기를 신앙 고백으로 받아 들입니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성이나 정확성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창세기 1] 은 고도로 비유적이고 시적인 문학입니다. 따라서 신의 계시가 담긴 성서를 과학 이론과 일치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잘못입니다. (신 교수의 입장)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창세기1~11]  , 아브라함 이전 시대에 대한 논의들을 요즘 신학계의 한 흐름을 따라서 그저 단순한 신화에 불과하다 라고 보는지 아니면 신화적으로 봐야 하지만 , 진리를 담고 있다 라고 여기는지 아니면 , 분명 [창세기1~11] 는 역사적으로 사실 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해석법은 다양하게 열려 있다 라고 주장하는지 아니면(그래서 , 신 교수의 말처럼 창세기의 초반의 역사성을 믿었다고 해서 모두 젊은 지구 창조론 등을 믿을 필요는 없다는 것) , [창세기1~11] 은 역사적으로 봐야 하며 , 그 문자 하나 하나가 다 틀리지 않다라고 생각하는지

 

6. 신학의 흐름

현 신학의 흐름 자체가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거룩한 인격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격화된 하나님을 대상으로 삼았는데 , 요새는 신을 인격적으로 그대로 설명하는 것 자체를 학자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흐름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학 전통에서 신학자들이 신을 인격적으로만 설명한다면 막말로 저 자식 참 촌스러운 자식이네.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죠.

 

1960년대 이후 신을 인격신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문제 삼기 시작했죠. 대표적으로 디트리히 본회퍼나 폴 틸리히 에서 시작해서 현대 신학에서는 신을 인격신으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그러거든요.

 

이러한 의견에 대해서 여러분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