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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에 선 신학자로 소개되었던 폴 틸리히의 명저다.

'존재'의 용기'. 제목만 가지고도 은혜가 되는 책이라고 보면 된다.

(제목에서 그치는 게 더 은혜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인이 읽었을 때 쉽게 읽히는 책은 절대 아니다. 

 

제목에서만 위로 받고, 내용에서는 시험 들 수 있는 책이라고나 할까?

(진중한 이야기 하는 어르신들 책은 하나같이 다 이런 식이다.)

 

그러나 꼼꼼하게 철학 읽기를 훈련해 온 독자들이라면 그의 글이 상당히 깔끔한 필체로 잘 읽히며, 논리적으로도 쫓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사람마다 상대적이리라 생각한다)

 

폴 틸리히는 루터교회에서 목회 안수를 받았고, 나치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했었다. 그러다가 세계적인 신학자인 라인홀트 니버로부터 뉴욕에 있는 유니온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쳐 달라는 제의를  받고 그곳에서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임 후에는 하버드 대학교 석좌 교수로 초빙되었다. 마지막으로 시카고 대학으로 옮겨서 신학을 가르치다가 사망하였다.

(그는 워낙 세상과 소통을 고민하는 신학, 교회 밖을 향한 신학을 지향했다 보니 그가 설교를 할 때면 무신론자들도 채플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최고로 존경스러운 분이다.)

 

yes24 사진

 

이와 같은 이력에서 보다시피 그는 신학자로서, 철학자로서 상당한 학식을 갖추고 있었고, 신학을 하는 사람으로는 드물게 무신론적 철학자들에게도 존경을 받았었다.

 

그는 20세기 중엽, 사려 깊은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사로잡고 있던 영혼과 마음의 위기에 대하여 설득력 있는 논지를 펼친다.

 

그의 다른 별명은 '지식인들의 사도', '신학자들의 신학자'이다.

 

그만큼 그는 넓은 독자층을 지녔었고, 많은 지식인들의 존경을 받았었다.

 

(그러나 이 책은 꽤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조금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책을 잡아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면 종교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세상 속에 혼란과 절망이 가득차 있을 때 틸리히는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에게 있어서 '실존주의'는 단순한 태도가 아닌 내용으로 이해되었고, 그 용어를 3가지로 세분화 시켰다.

 

[1] 관점으로서의 실존주의

[2] 의식적인 저항으로서의 실존주의

[3] 표현으로서의 실존주의

 

그에게 있어서 실존주의는 이러했다.

(쉐퍼는 폴 틸리히가 실존주의를 신학에 가져왔다고 강하게 비판했었다. 일견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 있긴 하지만, 틸리히로부터 배울 수 있는 요소들도 많이 있다는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찌 보면 세상을 녹여내는 깊이는 쉐퍼보다 폴 틸리히가 훨씬 깊다고 본다.)

 

"실존주의는 보헤미안적 철학자나 신경이 예민한 소설가의 창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이익이나 명성을 얻기 위해 만든 선동적인 과장도 아니고 부정적인 것에 병적으로 집적거리는 것도 아니다. 앞에서 제시한 그런 모든 요소들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으나, 실존주의 자체는 그것들과는 다른 무엇이다. 실존주의는 무의미함으로 인한 불안의 표현이며, 이러한 불안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용기 안으로 포섭하려는 시도의 표현이다."

-> 내가 그동안 들어왔던 실존주의에 대한 해석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정의다.

 

 

그는 비판적인 절망과 비창조적인 방종으로 빠지려는 유혹을 받으며 실존주의에 직면한 존재의 용기는 "용납될 수 없는데도 용납된 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용납하는 용기"라고 말하며 "이것이 바울과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의 진정한 의미이다." 라고 말한다.

-> 이신칭의 교리에 대한 가장 최고의 해석 아닐런지....

 

상당히 심오하고 깊다.

 

그러나 존재론적인 위로가 있는 표현들이다.

 

그는 신학에만 능숙한 게 아니라 탁월한 설교가였다고 한다.

 

'흔들리는 터전'? 같은 명설교들은 꼭 읽어보라는 추천을 받았었는데 끝내 읽어보지 못했다.

 

그 이외에도 You are accepted.(당신은 받아들여졌다) 라는 설교도 유명한데 그는 이 설교에서 죄가 '소외 혹은 분리'라는 유명한 정의를 내렸고, 인간의 상황을 하나님으로부터, 자아로부터, 이웃으로부터의 분리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은혜를 '용납'으로 재정의하기까지 한다.

 

틸리히는 새로운 신학 용어도 잘 만들어냈고, 새로운 정의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또한 틸리히는 운명과 죄의식의 불안에 대한 반응으로서 '확신의 용기'를 지니라고 촉구한다.

 

그에게 있어서 신앙은 이론적인 주장이 아니었고, '용납됨을 용납한다고 하는 역설적인 태도의 특징'(본문 209page)이었다. 그러므로 믿음은 '그렇지 않다'고 알고 있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며, 받아들이기 힘든 교회적인 선포의 모음도 아니며 믿음은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의 용납을 받아들이는 용기로 재정의하였다.

 

그의 신학이 인생 후기에 동양 종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너무 세속적인 색채로 흘러갔다는 비판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신학 전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자신이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을 부인하지 않았으며 인간을 억누르는 세상이 지닌 힘의 궁극성을 부인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가 끊임 없이 무너져 가는 현대 사회와 소통하려고 했다는 점도 그의 멋진 점이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한 '존재의 용기' 또한 깊게 숙고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최소 쉐퍼가 비판했던 것처럼, 읽을 가치도 없고 위험하고 그저 피해야 할 취급을 받아선 안된다고 믿는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하버드 대학교의 동료 교수인 제임스 루터 아담스는 그에 대해 이렇게 썼다.

 

틸리히는 평생에 걸친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서, 로마의 지배력이 서방에서 쇠퇴해 가던 절망적인 시대에 어거스틴이 시도하던 바로 그 일을 수행하려고 애썼다.

 

즉, 찌꺼기들만 잔뜩 쌓여 있는 고갈된 믿음을 회복하고 신앙적인 상징들의 능력을 새롭게 하려는 희망을 품고서 적대적인 모든 사상들과 마주 대했다.

 

그리하여 흩어지고 소원된 마음들이 참된 믿음을 나눔으로써 다시 한번 진정한 '궁극적 관심'으로 회귀하기를 원했다.

 

그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됨을 깨달은 루터의 믿음이며,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을 모두 알고 있는 믿음이고, 인간의 지적 그리고 도덕적 양심을 모두 '의롭게 하는' 믿음이다.

 

논란도 많고, 경계도 많이 하는 신학자이지만 우리는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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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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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논의를 이어 나가서 경계선상의 신학자로 불리며 보수 신학에서는 거의 이단시 취급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세속 철학자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던 그의 철학적 실존 신학은 세상과의 소통을 고민해 보는 신학자, 목회자들이 한번쯤 참고해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도 많으며 말년에 동양의 종교에 심취하여 상당한 위험수위의 발언을 하긴 했으나 그가 세상과 연결되려 했었던 깊은 고뇌를 지닌 신학자였다는 점은 존경스러우며 배울 점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박만 저 <폴 틸리히:경계선상의 신학자> 는 그의 1차 서적인 [존재의 용기] 등을 보기 전에 먼저 읽어 보기 좋은 책이다. 가독성도 좋고, 설명도 시원시원하며 중요 이론도 잘 제시해 주고 있다.

 

 

 

 

<틸리히의 인간 이해> <그가 말한 용기>

 

 

 

[비실존의 위협 앞의 인간]

 

 

 

우선 다른 신학적 주제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인간 이해 역시 성경이나 교회사의 증언이 아닌 인간의 상황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한단다.

 

앞에서 보았지만 틸리히는 인간이란 생래적으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오늘날 왜 이런 모습으로 살게 되었는가?

 

나의 궁극적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주장한단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지는 가운데 인간은 자신이 끊임없이 비실존(non-existence) 의 위협 아래 있는 유한한 존재임을 알게 되고 존재론적 불안(ontological anxiety) 을 경험하게 되지.

 

 

 

하지만 이런 존재론적 불안 앞에서 인간은 자유(freedom) 를 사용하여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자 하지.

 

즉 자유를 통해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할 어떤 것을 확보하는데, 틸리히는 이를 인간은 존재해야 할 이유 혹은 존재의 용기(courage to be) 를 확보하려고 한다고 표현하지.

 

하지만 그 가운데 인간은 유한성과 의존성과 제한성이라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을 받아들여 그것에 만족하여 살아가기를 거부하지.

 

 

 

(신경증적 불안은 적절한 치료를 통해 극복가능 하지만 , 존재론적 불안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불안이기 때문에 , 회피하지 말고 정직하고 용기 있게 받아 들이자.)

 

 

 

 

 

  • 박만 지음 , <폴 틸리히: 경계선상의 신학자>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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