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간다 하기에
가라 하고는
가나 아니 가나
문틈으로 내다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아라
그리워하면서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피천득 [인연 中] –
피천득의 수필집.
짤막짤막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읽기도 편하다.
또한 서정수필이라는 장르를 충실하게 따름으로서 , 정말 서정적인 느낌을 가져다 준다.
문장 하나 하나에 공을 들인 느낌이 나고 , 예쁘게 다듬은 흔적이 엿보인다.
삶을 누리는 자세가 범상치 않고 , 가히 亞성인 에 가까워 보이는 저자.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 은 , 스스로의 약함을 주저 없이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인데 , 저자는 이 세상의 특정 사조(ex) 물질만능주의) 에 비판적이고 , 회의적임에도 , 그러한 것들이 매우 유혹적임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 때론 그러한 것들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고백하기에 , 그는 ‘꽤 훌륭하다’)
스스로도 고백했듯이 지극히 평범하고 인간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는 그의 삶은 한 명의 ‘생각하는 인간’ 의 삶을 대표한다.
이 글 속에서 남다른 힘이 느껴지고 ,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유는 , 그가 세상이 말하는 ‘힘과 권세’ 를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라 , 더욱 가지지 않으려 하고 , 더욱 겸손해 지려 하고 , 더욱 자연적으로 살아보려 발버둥 치기에 그러는 게 아닐까 싶다.
지난 삶들을 반추해 보면서 , 후회할 부분들은 정직하게 후회하고 , 기뻐할 부분들은 확실하게 기뻐하며 , 가만히 둬야 할 부분들은 가만히 두는 그의 모습 속에서 ‘아름다움’ 이 느껴진다면 과장일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라는 말은 참 빈번하게 인용해 왔었다.
피천득 씨의 말을 좀 더 자세히 살려서 완문으로 표현하자면…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이 책 속에선 이런 고백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 도대체 어디서 이 말씀을 하신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책을 성의 없이 봐서 놓친 것일지도…)
이 책 자체는 소소한 일상을 ‘아름답게 승화’ 시키는 작가의 능력을 한껏 느낄 수 있기에 , 읽는 이로 하여금 ‘삶’ 그 자체를 사랑하게 만들어 주고 , 각박한 세상 속에서 따스함을 느끼게 해 주는 역할을 주로 한다.
또한 이 말을 바꿔서 표현하면 , 결국은 사람 또는 사물 그리고 삶과 맺는 ‘인연’ , ‘만남’ ‘기억’ , ‘추억’ 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임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이 책 속에서 , 세상은 아직 착한 사람이 더 많다. 세상이 어두워 보여도 그건 예외일 뿐이다. 세상은 아직 살만 하다. 라는 뉘앙스의 표현들이 자주 나와서 , 잔잔한 위안을 가져다 주기도 했는데……(그렇게 믿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이 말에 동의하는가는 별개의 문제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이. 세상을 소중하게 살아내는 이라면 , 이와 같은 ‘따스한 고백’ 을 할 수 있나 보다.
세상의 속도 , 세상의 흐름 , 세상의 목소리에 끌려 다니기 보다는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감이 더욱 가치 있을 수 있음을 삶으로 살아냄으로 증명해 내는 저자.
(세상에 반하는 ‘life style’ 을 주창함에 있어서 , 그 주장에 힘이 실리려면, 그렇게 살아내는 게 가장 중요한 조건 일텐데 , 그런 면에서 저자는 ‘꽤’ 합격점일 듯 …)
유형의 물질을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 무형의 자원의 ‘고귀함’ 을 강조하며 , ‘소중한 인연’ 을 맺어 나갈 것을 이야기 하는 저자.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저자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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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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