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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100년 사상 첫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작품은 일단 어느 정도 믿고 보는 편이다. 그가 지닌 깊이와 사회를 들여다 보는 섬세한 감각에 대한 신뢰가 있는 편이기도 하고 말이다. 

(영화 괴물, 설국열차 등 해석거리도 다양하고 깊이도 있고 참 좋은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배우 송강호 씨가 주연한 영화들은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고, 작품성이 괜찮은 경우가 많아서 잘 챙겨보는 편이다.)

이번 작품 기생충(parasite)에 대한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전작인 '괴물'과 같이 '기생충'들이 나와서 혈전을 벌이는 SF 물인 줄 알았다. 하지만 포스터에서 풍기는 특이한 느낌과 영화 자체에 대한 정보가 다소 부족한 상태에서 영화를 보러 갔다.

 

 

전체적인 총평은,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 문제를 깊게 들여다 보고, 현미경으로 관찰한 듯한 느낌.

 

부유한 박 사장(이선균)의 집에 전원 백수인 기택의 가족들이 들어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기묘하지만, 지독하게 현실적인 느낌을 풍기는 이야기들이 인상적이다.

1차적으로는 가진 게 없다 시피 한 기택(송강호)의 가족들이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 기생하는 형국이다. 그 속에서 또 다른 기생충을 발견하게 된 그들은 서로간의 밥그릇 싸움을 하면서 서로를 다치게 만들고, 서로를 파멸시킨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은 원래 '데칼코마니' 로 지으려 했었다 한다.

그렇다면 가진 게 많은 '숙주'라고 할 수 있는 박 사장 네 가족들도 기택의 가족들과 겹치는 접점이 있는 걸까?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고, 누리는 삶의 혜택이 천차만별인 두 집안은 어떻게 데캍코마니처럼 하나로 겹쳐질 수 있는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걸까?

이 작품에서 인상 깊은 대화가 있다.

대략 이런 뉘앙스였던 걸로 기억한다.

기택이 말한다.

"이 집 사람들은 돈이 많은데 착하네."

그러자 아내인 충숙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돈이 많으니까 착한 거죠."

 

그렇다. 심리학에서도 이야기하길 한 인간의 경제 수준과 행복은 비례한다고 했다. 물론, 어느 정도 까지는 정비례를 하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진입하게 되면 그 때부터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게 된다.

(아마 돈에 대한 욕망이 워낙 강해서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의 영역을 넘어서도 돈 그 자체에 집착하게 되는 위험성이 있는 것 같다. 가령 전 재산이 1000만원인 사람과 전 재산이 20억인 사람은 행복과 여유의 수준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80억 가진 사람과 1000억 가진 사람의 삶의 풍요로움이 과연 얼마나 다를까?...욕망의 범주에 들어서는 순간,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인간은 돈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존재인 듯 하다.)

 

일단, 상당한 재물을 지니기 전까지는 돈을 많이 가질 수록 행복하다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이 삶에 여유가 생기고 선한 인상을 주기가 상대적으로 더 쉽다고 추론할 수 있다.

물론, 모두가 다 아는 흔한 예외들도 존재한다.

"돈이 많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야, 삶의 행복은 잡히지 않는 무형의 가치들에 있기 마련이야."

"돈 많은 집도 우울증 걸리고, 자살하고 힘들게 살던데?.... 가정 분위기가 삭막하고,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요구하는 게 많다 보니 드라마 <스카이 캐슬> 처럼 불행하게 살아갈 수도 있지 않겠어?"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일단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는 반지하 집 백수 생활에서 '행복을 누리고, 선한 인상을 주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저서를 보면, 돈을 욕망하는 게 죄가 아니라 돈이 없는 게 죄인 시대가 되었다는 문구가 나온다. 가난으로 인해 수 많은 악에 노출되는 경우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돈이 많으니까 착하지." 라는 아내 충숙의 말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그러나, 그 돈을 어떻게 축적해 왔는지, 그 사람의 가정 환경, 살면서 겪었던 사건들, 트라우마 등등 여러가지 요인들이 함께 착용하기 때문에 공식처럼 성립되는 주장은 아니다.)

그렇다면 기택은 왜 놀란 걸까?

"돈이 있는데도 착하네. "

우리 사회 속에서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갑질'을 하려 하고, 가지지 않은 자를 천대하는 듯한 몰상식한 행태를 보이는 이들이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 (사실 이 세상의 가장 큰 힘은 특정 '지위', '권력'이 아닌, '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A가 B를 내리 누르면서 으름장을 놓는 모습들을 여러 차례 목격하게 되고, 그와 같은 당연한 피해 의식들이 쌓이다 보면 "가진 것들은 하나같이 인성이 개판이야." 라는 분노가 생길 수 있다.

 

(누군가 재물을 가졌다는 이유 만으로 미워하는 건 온당하지 못하다. 이건 상식이다. 하지만, 게으르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으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반지하 생활, 백수 생활을 벗어날수 없다면 가진 이들을 향한 기대, 원망, 비교 의식 더 심하게 나아가서는 피해 의식이 생길 수도 있다.

 

이미 여러 복합적 이유로 많이 가진 이들이 가지지 못한 이들과 섞이기를 꺼려하며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을 누리면서 살아가려는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심리가 인간의 기본 욕망에 부합하는 것처럼, 그들을 향한 원망과 비교 의식에 휩싸이는 것도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 중 하나일 것이다.)

 

결국 박 사장이 반지하 냄새에 대해 경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기택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데...

이 과정은 영화 중간 중간에 점진적이며, 누적적으로 기택의 분노가 쌓일 만한 근거들을 보여줌으로써 개연성을 더해준다. 이 부분을 이해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느냐?... 열등감 덩어리인가?"

그렇다. 고작 그 정도로 사람을 죽여선 안될 말이다.

하지만, 기택이 느껴온 감정은 좀 더 근원적으로 쌓여온 분노의 감정일 것이다.

결국 "여유로운 생활을 하면 표면적으로는 더 여유가 있고, 위트가 있고 선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편이다." 그러나 "돈과 재물을 많이 지녔다 하여 그 사람의 '전인'이 더 올바르거나, 성숙하거나, 깊이를 지니는 건 아니다. 더군다나 본질적으로 들어가 봤을 때 더 착한 건지도 재고해 봐야 한다."

부잣집 사모님인 연교(조여정)는 대학도 나오지 못한 기우와 기정(박소담)의 언변에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다소 무지한 모습, 순진한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박 사장(이선균)은 시종일관 '선을 넘지 말아라.' 는 엄포를 놓으며, 자신과 자신의 일, 자신의 가족에 해당되지 않는 더 거대한 사회/경제학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개입이나 의견 교환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으므로 이걸 잘 지키고, 불려 나가기만 하면 된다. 폭우가 와서 반지하 집에 물이 차고 넘치고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 등은 애초에 안중에도 없다.)

 

기택의 가족과 박 사장의 가족의 차이는 딱 하나 뿐이다.

"돈을 더 가졌느냐, 돈을 덜 가졌느냐."

이로 인해 초래되는 수 많은 삶의 질적 차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의 차이는 가시적으로는 차원이 다른 수준을 보이는 것 같으나 사람의 됨됨이나 본질에 있어서는 별다른 차이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더 많은 재물을 지녔다 하여, 가지지 못한 자들을 더 깊고 섬세하게 들여다 보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삶에 대해 무관심 하거나, 무관심 하려고 하거나, 무지하다. 알아도 자신들에게 별로 좋을 게 없다고 간주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관련 문제/주제를 해결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바가 더 적은 경우도 많다. 잘 모르니까.)

가지지 못한 자들은 여유도 없고, 생활 전반의 스트레스는 쌓여 가고, 초조해 지면서 가진 자들에게 원망을 품게 되거나, 헛된 기대를 하게 되거나, 피해 의식을 쌓아 가게 되고 가진 자들은 여유는 있고, 누릴 수 있는 것도 많으나, 자신들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만으로도 스트레스의 전부인 양 느끼고 힘들어 하며, 전혀 다른 이유이지만 나름의 초조함과 불안을 지닌 채로 가지지 못한 자들이 풍기는 냄새를 경멸하며, 그들과 섞이기를 원치 않으며 자신들만의 공간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어려운 문제다.

이 영화는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미워하기 힘든 영화다.

그저 가슴이 아리면서도 웃음 짓게 하고, 두려우면서도, 씁쓸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와 미친 몰입도가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 여러 번 영화를 보고 그 내용을 곱씹어 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사회에서 돈이 지닌 힘과 경제력이 지닌 막강함은 고민해 볼 가치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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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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