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낙흥'에 해당하는 글 1건

728x90
반응형
SMALL

작가 양낙흥

출판 부흥과개혁사

발매 2003.10.10

 

 

 

 

  정통 칼빈주의에서는 1등급 신학자이자 목회자로 존경을 받고 있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다룬 책이다.

 


 

  700page가 넘는 분량으로 인해 접근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조나단 에드워즈가 왜 금세기에 이토록 존경을 받게 되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청교도적인 신학적 배경도 잘 설명해 주고, 그의 출생과 사역, 변화, 대부흥 시기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 그리고 신학적인 개념들까지 자세하게 기록해 뒀기 때문에 실제로 신앙생활을 해 나갈 때 유익한 점이 많다.

 


 

  그는 설교 준비와 연구에만 하루 13시간 이상을 투자했다고 하니 대단히 지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강점은 이성적인 논증에만 특화되지 않고, 분명한 성령 체험과 경험적인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30대 중반에 겪었던 놀라운 신비적 체험이 [개인적 진술]이라는 저서에 실려 있다.

 


 

"주후 1737년 어느 날 나는 건강을 위해 숲 속으로 말을 타고 들어갔다. 그리고 고적한 곳에서 말을 내려 여느 때처럼 명상과 기도를 위해 산책을 시작하려 했다. 그 때 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에 대한 비범한 시야가 열리는 것을 체험했다. 그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중보자로 나타났다. 그의 놀랍고 위대하며 충만하고 순수하며 달콤한 은혜와 사랑, 그리고 온유하고 부드러운 겸손을 보았던 것이다. 내게 그처럼 고요하고 달콤하게 나타났던 이 은혜는 하늘보다 더 위대해 보였다. 그리스도의 인격이 형언할 수 없이 탁월해 보였으며 모든 생각과 관념을 다 집어삼킬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탁월성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한, 그것은 약 한 시간 정도 계속되었다. 그 시간 대부분을 나는 눈물의 홍수 속에서 큰 소리로 울며 보냈다. 내 영혼은 비워지고 소멸되었으며 먼지 속에 누워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충만해져서, 거룩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그를 사랑하고 신뢰하며, 그 분에 의해 살면서 그를 섬기고 따르며, 그리스도의 충만함 속에 전적으로 삼켜져, 완전히 성화되고, 신적이고 천상적인 순수함으로 순수해지는 것을 느꼈다는 것 외의 다른 말로는 도저히 표현하 길이 없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체험을 이렇게 글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도 에드워즈의 천부적인 재능이었던 것 같다.

 

 

 


 

또한 그는 청교도적인 신앙관을 잘 살려서 죄에 대한 깊은 깨달음도 균형감 있게 잘 강조해 주고 있다.

 


 

"나의 사악함은.... 오랫동안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무한 위에 무한을 쌓아 두며 무한에 무한을 곱하는 것으로 외에는 내 죄가 내게 어떻게 보였는지를 더 잘 표현할 길을 알 수 없었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매우 자주 나는 이런 표현들을 내 마음과 입에 두고 다녔다. "무한 위에 무한, 무한 위에 무한!"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나의 사악함을 살피면 그것은 지옥보다 무한히 더 깊은 구렁처럼 보였다."

 


 

 그의 놀라운 점은 대각성이 있고 나서, 정말 그것이 성령의 역사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할 때 이에 대해서도 명확히 변증을 해냈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을 명료하게 범주화 해서 변증할 수 있는 신학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싶다.

 


 

  그리고 그는 섬세함을 잃지 않는데 그저 '무질서'를 일으키면 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말하며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다' 라는 관련 구절만 슬쩍 인용하는 식의 어설픈 사변 논증은 에드워즈와 거리가 멀다.

 


 

그는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들의 양심을 깨우치기를 기뻐하신 결과로 그들이 커다란 외적 표현을 도저히 억제할 수 없다면 그들이 참석하고 있던 공적 수단들을 다소 침범하고 깨뜨리는 결과가 생긴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혼란이나 불행한 침범이라 생각지 않는다." 

 

요즘 보수주의자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영역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열성적인 부흥주의자들이 오해받는 경우에 대해서 그들을 변호해 주고, 열심 있는 사역자들이 경계해야 할 함정들에 대해서도 균형감 있게 알려줌으로써 신앙의 많은 영역에서 통찰력을 키워 주기에 이른다.

 


 

  이와 같이 에드워즈는 주로 저술 활동과 지식적인 논증에서 많은 힘을 발휘했는데 그 속에 체험적 신앙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보니 그 글들에는 생명력이 있고 힘도 있으며 날카롭고 달콤하다.

 


 

  문제는 그가 사역 후반에 성도의 조건으로 너무 까다로운 조건들을 내걸다가 자신이 오랜 세월 섬기던 교회와 갈등을 빚게 되면서 해임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가 제시하는 기준은 좀 당혹스럽다. 그건 신앙을 받아들이고 나서 상당한 성령의 열매를 맺은 이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덕목, 가치들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C.S 루이스의 말처럼 모든 사람들이 출발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가시성'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게 더 좋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요구를 했다는 면에서 율법주의적인 신앙관을 조장한 것은 아니냐고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의 구원론을 불신자를 위한 회심의 기준으로써가 아니라 신자가 추구해야 할 성화의 목표로 삼고 추구한다면 분명 경건생활에 유익이 클 것이다.

 


 

인간이 결단하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으니 그는 아르미니우스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오직 그런 영역들은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리는 칼빈주의적인 신앙관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는 토론에 능하고, 말을 잘하는 달변가는 아니였지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깊게 하나님을 알아가고, 전하며 진리의 투사로 싸웠다.

 


 

그의 가치는 후대에 인정이 되어 요즘은 그에 대한 양질의 번역서들이 다수 출판되고 있다.

 


 

상당히 엄격한 색깔을 지니고 있던 그였고, 그의 깊고도 세부적인 신앙에 대한 설명들 중 동의가 안되는 부분들이 종종 나올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신앙 생활, 영성 생활을 이렇게 글로 논리정연하게 정리해서 전달할 수 있는 균형감 있는 신학자는 드물기 때문에 그의 가치는 크다고 본다.

 


 

그리고 세속의 철학적인 접근에도 능숙해서 그의 글은 어떤 경우에는 상당히 읽기 어렵기도 한데 그만큼 깊이가 있다.

 


 

경건 생활을 향한 도전을 원한다면 1독을 추천한다.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