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에 해당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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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톰라이트

출판  IVP

발매  2008.06.20

 

 

 

 

 

 

  톰 라이트의 새로운 책이다. '악'의 문제에 대해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논증에 동의를 하든, 그렇지 않든 들어보고 싶어지지 않는가?

 


 

  그의 책은 역시 굉장히 정교한 논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궁금해 했던 의문들에 대해 피하지 않고 꼼꼼하게 설명해 주는 강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악의 문제'는 현대판 C.S Lewis 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clear하고, 깔끔하다.

 


 

  인간이 언어로 서술할 수 있는 영역의 극한까지 논리를 끌고 간 느낌?

 


 

  그가 이야기하는 '악'은 단순히 철학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현실적인 문제다.

 


 

  계몽주의 전통에서는 악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함으로써 교만의 죄를 범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 제시하는 그에 대한 반론도 신선한 해결책은 되기 어렵다고 이야기 하며 그의 논지를 끌고 나간다.

 


 

  사실, 하나님이 악에 대해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은 분명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마치 이 영역은 '금기'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 않는가?

 


 

  그러다 보니 악의 문제는 아무리 변증을 해도 속시원한 답을 듣기가 어렵다.

 


 

  아마 난 이 문제에 대해서 라이트의 책에서 어느 정도의 결론을 맺어둔 것 같다.(그게 속시원한 대답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일단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악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보다는, 악에 대해 무엇을 행하실 수 있고, 행하고 계시며, 또 장차 행하려고 하시는지를 많이 말해 주는데, 많은 무신론자들은 구약을 그렇게 독해하지 않는다. 그저 잔인한 하나님으로 비춰지는 겉모습에 당황하며 분노할 뿐이다.

 


 

  그러나 라이트의 말마따나 에덴동산 이후로 또 노아 시대에 하나님이 슬퍼하셨던 이후로, 바벨과 아브라함 이후로 줄곧 전개된 이야기가 말해주는 것은, 하나님은 세상을 지저분한 곳에서 끌어내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반복해서 지저분한 방법으로 일하셔야만 했다는 점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하나님은, 세상을 올바른 모습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우리에게 불쾌감을 주는 어떤 방식으로 신에 진흙을 묻히고 손에 피룰 묻히셔야만 했던 것 같다고 라이트는 이야기 한다.

 


 

  그리고 선악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 사이에 어떤 본질적 연속성을 지녀야만 우리는 도덕적인 어둠에 갇히기 않게 되며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과 하시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지나친 확신으로 단언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라이트는 주장한다.

 


 

  이와 같은 변증을 통해 구약의 잔혹해 보이는 하나님을 서술하는 방식은 사실 놀랍다.

 


 

  분명 '악'은 살아 있는 실재가 맞다.

 


 

  그러나 우리는 '악'을 서술하기 이전에 우리의 인식과 지각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점검 받으면서 차분하게 토대를 쌓으며 논리를 전개해 나가야 한다.

 


 

  이 책은 꼼꼼하게 '악'의 문제를 다루면서 성경 속의 다양한 부분을 설명하는데 그 중에 '욥기'에 대한 요약이 기억에 남는다.

 


 

  라이트가 말하는 '욥기'는 이 시대에서 악의 문제를 '해결'해 버리는 것은 악의 문제를 축소하는 것일 뿐이며 명백한 반대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세상의 주님이시라고 선언하는 신학적 찬양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성경 안과 성경 밖에서 필요한 부분을 피하지 않고 설명해 가는 라이트의 필력은 상당하다.

 


 

  '악'을 논증할 때 먼저 악의 인격화된 힘인 사탄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으며 악의 기원 자체는 신비로 남아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리고 그가 등장할 때마다, 사탄은 엄격한 제약 속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악에 대한 인간의 책임은 전체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한 근거들은 성경적으로 깔끔하게 제시되어 있다.

 

  세 번째로는 사람들이 행하는 악은 피조물의 노예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네 번째 주장이 상당히 정교한데 구약 성경은 절대로 철학자들이 원하는 그런 종류의 모든 것이 깔끔하게 설명되는 정적인 세계 질서의 그림을 제시하려 하지 않는다고 그는 주장한다.(이 부분은 라이트의 놀라운 파워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네 번째 주장을 좀 더 설명하자면, 많은 회의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전능한 관리 책임자로서 기계가 잘 돌아가게 관리해야 하는 것처럼 단순한 도식을 그리고 있지만 성경이 제시하는 그림은 어떤 부분에서도 그렇게 단순한 모습으로 쪼그라들지 않는다고 라이트는 말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그보다 더 낯설고 신비한 것이며, 불의한 세계 안에서 정의를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과업에 관한 하나의 이야기다.

 


 

  이 주장은 하나님의 입장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려고 노력하는 어떤 이들이 좋아하는 '자유의지 옹호론'(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으므로 모든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과는 조금 다른 관점이다. 이것은 피조세계가 여전히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확고한 긍정에서 나온 하나님 쪽에서의 '행동에 대한 헌신'에 좀 더 가까운 관점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현재의 피조세계를 폐기하고 다른 일을 하시기 보다는 기존의 것을 바로잡으려 하셨고, 사람들이 늘 악하기 짝이 없고, 실수 투성이였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그들을 통하여 일하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라이트는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책임과 주체됨을 무너뜨리지 않으시면서, 악을 심판하고 징벌하시며, 악에 한계를 설정하시며, 새로운 은혜의 순간들과 새 창조를 이루는 사건들- 비록 그것들이 어쩔 수 없이 양면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을 약속하고 그것을 가져오십니다.'

 


 

  하나님을 보호하기 위해 자유의지 옹호론을 주로 사용해 악의 문제를 서술하던 나로서는 라이트의 설명에 설득당하지 않기가 쉽지 않았다.

 


 

  훨씬 더 정교하며 성경의 흐름에 부합해 보인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장일까?

 


 

  라이트는 정말 균형이 잘 잡힌 사람이다.

 


 

  가령 하나님이 결국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것이며, 그 곳에서는 더 이상 고통과 눈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말하면서 이와 같은 주장을 합니다.

 


 

"그런 해결책이 제공하는 정의는 이전에 지나간 모든 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또한, 우리는 단순히 진보를 통해서도 악의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결책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세대만 행복해지면 모든 이전 세대의 비참함이 간과될 수 있다거나, 심지어는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해답은 직접 책을 보면서 들어 보길 추천한다. (꼭 라이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분명 통찰력에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막간의 지면을 할애해서 라이트는 C.S Lewis 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서술된 '악마'에 대한 논의를 언급하며, 자신의 추가적인 의견을 덧붙이는 멋진 시도를 한다. (사탄의 인격성이 좀 저급하다는 그의 주장에서 근거가 좀 의아하긴 하지만,루이스의 지식에 살을 덧붙이는 그의 포스는 상당하다)

 


 

  그는 '악'에 대해 철학적 서술은 깔끔하지 않더라도, 악을 쉽게 치부해 버리거나 이상한 방식으로 해석하길 거부하며 실천적인 방향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그 전에 그가 '악'에 대한 서술이 쉽지 않은 점을 설명하는 부분을 주목해 보자.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도입한 설명은 개인적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 신비의 영역에 속한 일임이 틀림없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우리의 사고에 반영해야만 합니다. 비록 잠시 물리학 이야기로 돌아가서 하이젠베르크적인 의미에서만이라도 말입니다.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실성의 원리를 밝혀냈습니다. 무엇인가를 관찰할 때, 제가 관찰한다는 사실이 제가 보고 있는 대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저는 결코 그 대상을 완전히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도덕적, 영적 방정식에는 불확실성의 요인, 즉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개입되어 우리가 얼마나 잘 조직화 하든지, 우리가 얼마나 많이 기도하든지, 우리의 신학이 얼마나 건전하든지, 우리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작업하든지 간에, 그 곳에는 우리를 거슬러서 작용하는 부정적인 힘들[아마도 '우주적인 부정적 힘'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또한 C.S lewis 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은 '악'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점을 묵상했던 일화도 들려 준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악을 정복하심으로써 악으로 하여금 다시는 하나님을 괴롭히지 못하게 만들었기에 그는 분명 '악'에 대한 책임자는 아니며 결국 악의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은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새로운 세계, 즉 구속받고 새로움을 입은 사람들이 다스리며 하나님의 지혜와 치유의 질서를 실현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발견된다고 라이트는 주장한다.

 


 

  요약하면 악은 철학적인 설명으로 깔끔하게 서술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실재이며 그 궁극적인 답은 새로운 세계에서 반드시 밝혀질 것인데 현재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 아기가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의 범주가 부족하여 바깥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그 문제를 완전히 헤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때에 악은 우리를 향해 아무런 할 말이 없게 되고야 말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승리가 완전히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악의 문제에 대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답을 들으려 하기 보다는 우리는 그저 창조 세계가 아닌 창조주를 바라보며,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악'을 막아낼 수 있는 실천적인 '용서'와 '포용'에 힘써야 할 것이다.

 


 

  '악'을 부정하지 않으며 그 '악'에 대항하여 '용서'와 '포용'의 실천을 힘쓰라는 그의 메시지는 굉장한 힘이 있다.

 


 

  이 영역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1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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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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