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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판타지9 이다.

플레이 스테이션1 으로 플레이 했었던 추억의 게임이다.(플레이 한지 십수년이 지나긴 했다.)

 

파이널 판타지8에서 워낙 파격적인 시도들을 많이 하다 보니 기존 팬들의 비판이 많았었고 이를 의식한 스퀘어 측에서 다시 정통 RPG 로 회귀한 작품이다. 중세 판타지 풍의 작품 배경으로의 회귀를 반가워하는 팬들도 상당히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상당히 군더더기 없는 명작 게임임에도, 의외로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빈도가 적은 게임이다.

단점이 별로 없는 반면, 확 튀는 요소가 적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캐릭터는 다시 자그마해 지고, 아기자기한 RPG 의 느낌이 물씬 난다. 전투 방식도 8편과 비교해서 상당히 달라졌는데 안정적이고 재미있는 시스템을 보여 준다.

-그래픽이 일부 개선된 버전 스크린샷이다. 플스1에선 지금 플레이한다면 그래픽이 이보다 더 좋지 않을 것이다-

 

 

전투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기술들이나 박진감은 다소 감소한 느낌이지만 파판 시리즈의 전매특허인 소환수 시스템이라든지, 화려한 연출, 그리고 8편보다 더욱 진일보한 멋진 영상미는 스퀘어의 놀라운 기술력을 보여주는 데 손색이 없다.

8등신 캐릭터로 감정이입해서 게임을 하다가 다시 동화풍의 세상으로 돌아가다 보니,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다소 감소한 감이 있긴 하지만 아기자기하고 동화같은 느낌을 좋아한다면 최고의 작품으로 칭찬할 만한 게임성을 갖추고 있다.

 

(줄넘기 연속으로 뛰기 등의 미니게임도 건재하다. 극악하다면 극악하나, 주는 아이템이 rare 해서 도전욕을 자극한다.)

   - 당시 플스판은 한국어 지원이 안되었으나, 번역집을 보면서 플레이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 

     다.   당시 기술력으로는 플스의 한계치를 돌파한 그래픽, 연출력을 자랑했다-

 

역시 주인공 캐릭터인 지탄의 출생의 비밀 등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며, 파판 시리즈의 대명사인 크리스탈이나 흑마도사 등 정통 캐릭터들의 등장이 반갑다.

플스1 의 그래픽의 극한까지 갔다고 여겨지는 파판9은 판매량 등에서는 다소 저조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맞나요?), 많이들 플레이해 보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흑마도사 비비 - 파판 시리즈 전매특허처럼 각 인물들의 출생의 비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작품의 깊이를 더해 준다. '비비'도 예외는 아니다.

 

PC 버전에서는 한글화가 되었다는 풍문도 있는데,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제대로 즐겨지지 못했던 점도 큰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파판 시리즈는 파판7,8 등에서 최종 보스보다 더욱 강력한 궁극의 보스들이 존재해서 전투 매니아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줬었는데 9편에서도 이를 이어 나간다. 전투에 실리는 힘은 다소 약해진 것 같긴 하지만 이후 파판14에서 모든 시리즈의 향수를 느낄 만한 다양한 연결 요소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서 각 시리즈의 연계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중세풍의 느낌+ 환타지 스러움은 이후 파판12로 계승되는 느낌이며 기계물+현대 SF+ 환타지의 계보를 잊는 파판7,8은 이후 파판10을 거쳐 파판13까지 이어진다.

     -다양한 파판19의 매인 캐릭터들-

 

워낙 매 시리즈의 개성이 또렷하다 보니,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애정하는 시리즈가 다른 것 같다.

워낙 게임 자체가 훌륭해서 RPG 를 차분하게 즐길 여유가 된다면 추천한다.​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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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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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터너]를 보고..

 

3부작 단편 드라마인데, 방영 후 몇 달 뒤에 보게 되었다.

페이지 터너란, 피아노를 연주할 때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 드라마는 상당히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well-made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예술 고등학교에서 1등을 달리고 있는 윤유슬(김소현)이라는 여자 학생이 나오고, 같은 고등학교의 2등을 하고 있는 서진목(신재하)이라는 남자 학생, 그리고 체육고등학교에서 장대 높이뛰기 선수인 정차식(지수)이라는 인물이 주요 인물이다.

 

 

 

<간단한 줄거리>


유슬이와 진목은 늘 사이가 안 좋다.

유슬의 엄마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인데 어린 시절 진목을 가르쳤던 경력이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유슬의 엄마는 어린 진목으로부터 자존심의 상처를 입게 되고, 그 뒤로 그게 한이 되어서 자신의 꿈을 자신의 딸로부터 성취하기 위해 딸의 피아노 선생을 자처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슬은 진목과 라이벌 의식을 느끼게 되고, 엄마의 마음을 반영하여 늘 그와의 싸움에서 이기고자 한다.

한편 차식은 무시를 당하면 빡치는 타입의 성격이다. 엄마를 모욕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견디질 못하고 빡쳐서 장대 높이뛰기로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열정이 있고, 좀 저돌적인 캐릭터다.

어느 날 유슬과 엄마는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나서 유슬은 시력을 잃게 되고, 차식은 장대 높이 뛰기를 하다가 잘못 떨어져서 허리를 다쳐 선수 생활을 못하게 된다.

유슬과 차식은 모두 삶의 목적을 잃고 인생을 마감하러 병원 옥상에 올라가지만 극적으로 서로를 만나 살아남게 되고, 그 이후에 유슬의 등,하교 등을 챙겨주는 도우미로 차식이 발탁되면서 이들이 여러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스스로 선택하는 삶]

유슬의 엄마는 어린 시절 집안 환경이 받쳐 주지 못해서 실력은 좋았으나 작은 피아노 학원 선생 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집안이 굉장히 좋은 진목의 개인 레슨 선생님이 되어 열심히 가르치려 하였고, 진목이 피아노를 무미 건조하게 치는 것을 지적했으나 오히려 어린 진목은 자신이 피아노를 못친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선생 뿐이라며 선생님을 바꿔 달라고 아버지께 조른다.

이런 굴욕의 시간을 겪고 나서 엄마는 자신의 딸 (이 딸이 피아노에 재능이 있음을 그 사건 도중에 눈치채게 됨)에게 자신의 인생을 건다. 좋게 말하면 요즘 말하는 골프 맘이니, oo 맘 처럼 지극정성으로 자녀를 정상의 궤도에 올리고자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는 엄마지만 사실 이 엄마는 자녀를 사랑해서 그렇게 한 게 아니라고 봐야 한다.

자신의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성취하기 위해 딸을 이용할 뿐이었다. 그래서 딸의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늘 자신이 지시하고 딸을 조종하기 바쁘다. 딸도 자신의 엄마가 지닌 한을 알기 때문에 늘 ‘yes’ 로 화답을 하지만, 자신이 왜 피아노를 쳐야 하며, 피아노를 치는 것이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시력을 잃고 나서 유슬은 차식이 해 준 말을 떠올리며 엄마로부터의 정서적 독립을 시도한다. 힘들어도 자신의 삶은 자신이 꾸려 나가고, 자신이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워 나간다. 엄마도 처음에는 이 상황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힘들어 하지만 결국 자신이 딸을 망쳐 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착한 유슬은 자신이 엄마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는 이유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계속 엄마에게 끌려가다가는 선택의 기회가 없었던 자신보다는 자신의 선택을 강요했던 엄마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가, 결국 엄마를 원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슬이 다음과 같은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자살을 하려고 병원 옥상에 올라가 떨어졌을 때 자신을 받아 준 차식의 말의 영향이 컸다.

 

 

 

차식은 유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너는 피아노 치는 거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엄마 앞에서 좋아하는 척 하고, 늘 자신의 입장이나 의견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너가 엄마를 속인 거다라고 이야기 한다. 어찌 보면 상대방의 감정이나 복잡한 context 를 무시한 단순한 해석일 수 있지만, ‘자신의 책임을 강조하는 차식의 조언이 유슬에겐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아들러는 인간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환경 요인, 유전 요인과 함께 주어진 상황에 대한 각 개인의 response(반응)을 강조했었다.

세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인 반응이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유슬도 이 부분에서 자신에게 그 삶을 강요한 엄마를 원망하기 보다는 자신도 결국 그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행동하기로 선택한 면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눈이 멀고 나서 유슬은 좀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에 이른다. 한편, 유슬의 눈이 멀었는데도 끝까지 딸에게 피아노만 치게 하려는 엄마의 모습은 가히 정신 이상자 수준이다.

그 정도로 유슬의 엄마는 피아노에 맺힌 한으로 인생을 살아 왔던 것이다. 그러나 유슬은 과감히 피아노 치는 것을 중단한다. 그리고 차식을 만나면서 서서히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피아노 치는 것을 즐기기 시작한다. 마지막 콩쿨 대회 때 유슬은 처음으로 웃으면서 피아노를 치는 사진을 남기게 된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성을 갈망한다. 부모의 의도가 어떠하든, 자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삶은 사랑이 아니다. 자유는 사랑의 필수 전제이다.

 

 

 

[부모의 사랑과 인정]

진목은 어릴 때부터 사이코 패스 소리를 들을 정도로 까칠하고 건조한 녀석이다. 늘 웃지 않고, 뭔가 날이 서 있고, 인상을 찌뿌리고 다닌다.

그러나 피아노 치는 실력은 상당하다. 늘 유슬과 1, 2등을 다투는 사이이고 말이다. 늘 자신을 무시하고 싫어하는 유슬과 유슬의 엄마를 보며 분노를 키워가던 그는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드린다. 유슬과 유슬 엄마의 오만함을 벌해 달라고….. 그 순간 두 모녀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유슬은 시력을 잃게 된다.

그 사건 이후로 진목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그 죄책감을 달래 보고자 유슬에게 잘해 주려 한다. 처음에는 동정심이나 죄책감의 해소가 목적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마음은 좀 더 따뜻한 무언가로 바뀌어 가기 시작한다.

진목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집안은 부유했고, 가진 것도 많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늘 그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친구와 싸우고 와서 손을 다친 어느날이었다. 밥상 머리에서 아버지는 며칠 뒤에 있을 연주회에 참석하라고 말을 하고 진목은 팔을 다쳐서 참석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때 진목은 팔을 다쳤구나~ 어쩌다가 다쳤니?, 많이 아프니?” 등의 대답을 기대했겠지만 그의 아버지는 오직 연주회에 대한 이야기만 할 뿐이다. 그 모습에 섭섭했는지, 진목은 아버지~ 왜 제겐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느냐!” 고 말을 하자, 그 아비는 나약한 사람은 꼭 그런 관심이나 지지를 원한다고 말한다.

실력이 부족하니까 계속 동정 받는 쪽으로 마음이 향한다는 것이다. 그의 아비는 아들의 노력이나 열심을 지지해 주지 않는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먹고 정체성과 자존감을 만들어 나가는데 그런 성취감이 전혀 주어지지 않으니 진목은 자신이 왜 피아노를 치고 있는지 답을 찾기가 어렵다. 결국 자신은 피아노를 치는 게 맞지 않다고 여기고 수능 공부를 하겠다고 말하자 아버지가 하는 말은 잘 생각했다~ 너 정도로 피아노 쳐 봐야 작은 피아노 학원 선생이나 하겠지~ 그 정도로 살아봐야 시간만 아깝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끝까지 진목의 마음은 만져지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진목은 피아노실에서 차식이 대신 몰래 피아노를 연주할 일이 생기고 그걸 듣던 유슬은 진목에게(사실은 차식이가 친 건 줄 알고 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너는 꼭 피아노를 쳐야 한다고너에겐 재능이 있다고 말해준다.

 그 말을 들은 진목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흘린 땀에 대한 인정과 지지를 받은 것마냥 눈물을 흘린다. 부모로부터 받았어야 할 지지와 인정을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 만한 (자신을 가장 모욕하던 유슬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콩쿨 때도 차식을 대신해서 피아노를 치게 되는데 그 순간에도 진목은 유슬의 엄마로부터 칭찬을 듣는다. 자신의 능력을 깎아내리던 존재로부터 진정한 인정을 받게 되는 순간이다. 진목은 결국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여전히 아버지의 지지는 없지만, 자신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스스로 하게 된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는 삶은 이 부분에서도 중요하게 오버랩된다. 진목이 피아노를 다시 치기로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결핍되었던 인정과 지지가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고, 차식과 유슬이 보여준 모습들도 중요하게 작용했으리라 본다.

마지막 콩쿨 대회 때 차식을 대신해서 진목은 유슬과 피아노를 치게 되고 그 둘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멋진 피아노 연주를 해 보게 된다. 늘 은상만 받아 오던 진목은 처음으로 대상을 받는 순간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사랑과 인정이 오가는 그 무대는 그 어떤 대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대상에 걸맞는 대회였던 것이다.

 

 

[자존감과 자신감 그리고 열등감]

차식은 첫 등장 때부터 몹시 화를 낸다. 누군가 관중석에 있는 자신의 엄마를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친다.

처음에는 인격 장애가 있나 싶겠지만, 사실 엄마를 몹시 사랑하고 엄마와 자신이 무시 받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성격이다. 대개 집안 환경이 부유하지 못하고 결핍이 많은 경우에 그런 모습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러더라도 그에겐 열정이 있고 누가 봐도 당당한 자신감이 있다. 그러나 경기 도중 사고를 당해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자신감 넘치던 차식도 한순간에 자신감을 잃어 버리고 병원 옥상에 올라가 생을 마감하려 한다.

그런 아들의 모습이 가여웠던 엄마는 거대한 선의의 거짓말을 해 버린다. 즉 차식의 숨겨진 아빠가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한명세라는 것이다.(이게 거짓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자, 차식은 자신에게 놀라운 재능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믿고 매우 적극적으로 피아노 공부, 연습에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저런 사건을 계기로 유슬과 가깝게 지내면서 둘은 콩쿨 대회에 나가기로 한다.

그러나 콩쿨 당일 날 차식은 엄마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게 된다. 늘 엄마에게 지극 정성이던 차식은 그 날 만큼은 엄마에게 몹시 화가 나 있다. 결국 엄마는 아들이 너무 기죽어 있는게 싫어서 엄마 아들이잖아~ 그러니까 넌 잘 할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엄마 스스로가 대필이나 해주는 초라한 작가 인생을 살고 있고, 월세 집도 면할 수 없는 상황이여서 자신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차마 그렇게 말해주진 못하고 그냥 재능 많은 한명세씨가 아빠야! 라고 말해줬던 것이다. 그러나 차식은 그 순간 그 어떤 때 보다 더 빡친다고 이야기 한다. “자신에게 있어서 엄마는 초라한 존재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멋진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낮은 자존감을 지니고 있다는 게 몹시 화날 정도로, 자신이 느끼는 엄마는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 모자는 저녁에 전봇대에 아르바이트 전단지를 붙일 때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차식이가 피아노 연주를 힘들어 하며 자신감을 잃어할 때 그의 엄마는 정 선생님하면서 아들을 높여준다. 그리고 엄마가 자신감을 잃어 하는 것 같으면 여사님~’ 이라고 부르며 엄마를 높여 준다. 가진 게 없고, 부족한 게 많은 집안이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는 모습. 엄마는 아들을 높게 보고,, 아들은 엄마를 높게 보는 모습이 있기에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 예술 고등학교에 유슬의 도우미로 오면서 차식은 자신이 듣기 싫은 무시 받는 말들을 학교 학생들로부터 많이 듣게 되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분노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무시를 인정하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때론 자신을 무시하는 진목 등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할 만큼 그는 자신감자존감으로 발전시켜 나가기에 이른다.

아들러는 열등감(inferiority)이 우리의 인생을 이끄는 강력한 동력이라고 이야기 한다. 차식도 그런 열등감을 느끼는 말들을 들으면 전투력이 상승한다고 스스로 이야기 한다.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자신감, 열등감, 자존감. 이들에 대한 섬세한 분류가 가능하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성숙한 열등감, 자신감의 사슬을 끊고, 내가 무언가를 지니든 안 지니든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주어진 존재 만으로도 높은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자신의 아빠가 한명세라서, 자신이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길을 걸어가는 것 그 자체로도 존재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차식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고, 그는 누구보다도 그걸 잘 해나갈 것이다.

 

결국 '스스로 선택하는 삶', '사랑과 지지와 인정', '자존감, 자신감, 열등감'의 이슈는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몇가지 인생의 키워드들을 안정감 있게 지닐 수 있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아름다워 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 한가지가 있다. 

이 드라마의 제목처럼 우리는 모두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우리는 혼자서는 이 인생의 키워드들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드라마 속 유슬이 차식과 진목에게 영향을 주고, 진목이 차식과 유슬에게 자극을 주고, 차식이 유슬과 진목에게 영향을 주듯이 우리의 삶에는 모두 '페이지 터너'가 필요하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삶이기에 '스스로 선택한다는 개념'도 결국 타인의 '건강한 선 지켜주기'가 전제되어야 하며 '사랑과 지지와 인정'도 결국 '타인이 주는 몫'이 있는 법이고, '자존감, 자신감, 열등감'이라는 개념도 결국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서툰 실수 속에서 서서히 완성되어 갈 것이다. 함께 이 길을 훈련해 나가게 만들어 주는 좋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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