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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버전이 아닌 다른 구버전 책이었습니다. 8년 전에 썼던 소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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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을 선택한 동기에 대해 쓰세요


 


일단 매우 유명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읽지 못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퐁스 도데의 을 참 감명깊게 읽었기 때문에 이 분의 글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선정했다. (그런데 이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 속에 별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 나서 큰 충격이었다.결국 이 마지막 수업은 단편집 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수업이라는 단편집은 참 짧고도 많은 여운을 남기는 글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머리 한 켠으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생각나서 이 책을 골랐던 것도 있다. 어떤 글이던지 마지막을 주제 삼아 쓰는 글에는 비장함이 담겨 있고, 진지해 지고, 솔직한 표현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난 좀 더 차분해 지고 싶었고, 좀 더 깊은 생각을 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 많은 흥미로운 소설 작품 속에서 이 책을 당당히 고를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2. 줄거리를 간단히 쓰세요


단편집인지라 15개나 되는 소설을 다 망라하여서 줄거리를 쓰고, 내 감상문을 쓸 수 없기에 난 이 책의 제목 답게 마지막 수업 과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본 에 대해서 글을 쓰고자 한다.


 


 

<마지막 수업>


프랑스가 독일에게 점령 당하고 난 이후, 프랑스 시민들을 중심 인물들로 해서 쓰여진 글이다. 프란츠라는 아이가  이 글의 주인공으로 나오며, 이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런데 프란츠는 어느 날, 지각을 하게 되고, 아멜 선생님께 혼날 것을 염려한다. 하지만 그 날 따라 왠지 교실의 분위기가 다르다. 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프란츠를 추궁하지 않고, 평소에 없던 마을 사람들도 그 수업에 함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수업은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이었다. 이제 아멜 선생님은 떠나가고 이 자리를 채울 새로운 독일어 선생님이 들어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멜 선생님은 화내지 아니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수업을 가르친다. 한 민족이 노예 신세가 됐을 때도, 그 나라 말을 보유하는 것은 마치 그들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거나 같다는 것을 가르쳐 주며 학생들에게 그리고 시민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 준 선생님은 프랑스 만세!!! 를 칠판에 적으며 자신의 마지막 수업을 마친다.


 

 

 

 

 

 


<>
 
프로방스 지방의 순수한 목
동과 아름다운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제는 왜곡되지 않고, 맑은 별과 같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사랑은 목동 쪽에서의 짝사랑이나 다름 없지만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사랑은 뭔가 깊고, 심각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잔잔하고 약간의 여운이 있어야 더욱 빛을 발할 것만 같은 사랑이기에 그리고 아가씨 쪽에서도 꽤 우호적인 감정을 지닌 대다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 아우러져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지니고 있는 상태로 소설이 끝을 맺기 때문에 이 책의 주제는 사랑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 글의 주인공인 목동은 자신과 신분이 다른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마음 속으로 연모하고 있었고,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었지만, 심한 폭풍우로 인해 이 아가씨는 집에 가지 못하고 이 목동과 함께 밤을 보내게 된다.

 

그 속에서 피어 나는 잔잔한 사랑의 감정과 함께 아름다운 별과 자연이 아우러진 파스텔 풍의 이야기 전개가 이 책의 내용의 전부다.


  


3.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을 선택하여 내가 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의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지 쓰세요

 

 

 

             (구글 이미지)

 


<마지막 수업>


내가 선정한 인물: 아멜 선생님


 


내가 만일 선생님이고, 국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에 억압을 당하고, 심지어 우리 나라 말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처해 마지막 수업을 해야 한다면……. 그리고 나는 한국어 선생님이었다면…….난 아멜 선생님처럼 수업 하지 못할 것이다.

 

난 너무 흥분을 잘하고, 감정을 숨길 줄 모르기 때문에 교실 속에서 마을 사람들, 아이들과 함께 울분을 토하며 그 시간들을 보내던지, 아니면 화가 난 어조로 절대로 쓰러지지 말자는 말을 연발하면서 전투적인, 그리고 격앙된 내 모습을 다 드러낼 것이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나도 우리 나라 언어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모든 이들이 이 한국어를 포기하거나, 단념해 버리지 않도록 다시 한번 강조할 것이다. 말을 지켜야 만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 그리고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며 각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것이다.

 

그들 중에 1명이라도 우리 언어를 지키겠노라는 자부심과 확신이 없는 대답을 한다면 난 그 군인들이 밀어닥칠 때까지라도 그 확답을 얻을 것이다. 두렵다면 무언의 눈빛 만으로도 확인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한 챕터의 진도를 나가거나, 평범한 수업을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퐁스 도데-

 

 

<>


내가 선정한 인물: 목동


 


내가 만일 목동이라면………솔직히 난 목동을 할 자신이 없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목동은 순수 를 대표한다. 정치와 현실 풍자 등에 전혀 때 묻지 않은 인간의 순수한 감정 중 한 부분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내가 이 역할을 담당하는 데는 상당한 부담감이 있다. 가령 어두운 밤 중에 내가 연모하던 아가씨가 내 옆에서 자고 있는데 어떠한 성욕도 느끼지 않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해 하며, 함께 별과 현실 세상을 연관 지으며 깨끗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지 살짝 자신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도 이러한 사랑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지금의 모습이 순수 하든 순수하지 않든 간에 나도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하늘이 보이는 언덕 배기에 살아가는 한 명의 목동이라면…….그러한 당시 상황 속에 살아 가고 있었다면 결코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자주 생각하는 부분이다. 말년에는 이러한 자연 속에 은둔하면서 양을 키우며 살고 싶다라고.(하나님을 믿으면서 이 꿈은 천국으로 미뤄 버렸지만)


누군가 말했 듯이 , 이 소설 속은 진공 상태와 같다. 그 당시 주변 정세라던지, 사회 문제가 닿지 않는 듯한 새로운 차원의 세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주변에 오염 분자가 없는 깨끗한 곳에서 살아가는 목동이라면 난 순수하게 한 여인을 사랑하고, 그 여인과 만나게 되는 상황 속에서 주변 자연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시를 쓰며, 깨끗한 사랑을 키워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한 가지 이 목동과 차이점이 있다면 난 솔직하게 말할 것이다. 난 당신을 사랑해요.. 라고……. 하지만 이건 프로포즈가 아닐 것이다. 그냥 ……숨기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나쁜 감정이 아니기에……그 때 묻지 않은 세상 속에서는 이 정도의 말은 허용 가능하리라 믿는다.



 


4. 이 책을 읽고 난 감상을 쓰세요.


일단 이 책 전체에 대한 소감을 써야 할 것 같다. 일단 이 단편 집 속에서 15개나 되는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전체적인 공통점은 참 섬세한 묘사와 감수적인 문체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작은 일상 생활의 일부도 빼 놓지 않고, 꼼꼼하게 표현할 줄 아는 작가의 능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세히 이 책을 읽다 보면 내가 마치 이 이야기 속의 일부인 듯이, 이야기하고 있는 배경이 눈에 그려지고, 나도 그 속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마을 주민이 된 듯한 착각이 들 때갸 많다. 내용들은 참 짧기 때문에 어떤 짜임새 있는 이야기 전개라던지, 긴박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단지 각 이야기마다 잔잔한 여운이 남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짧은 글 치고는 상당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인 듯 하다. <마지막 수업>, <> ,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 , <마지막 책> 등의 이야기가 꽤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다른 것들도 상당히 슬픈 결말이 많긴 하지만 서도, 마구 슬프지 않고, 잔잔하게 감정을 일깨우는 정도의 슬픔을 가져다 준다 . 한 마디로 이 책은 감정적인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문학 작품으로는 손색이 없는 짧지만 굵은 이야기들을 다룬 책인 것이다.


 


<마지막 수업>


정말 짧은 글이지만, 이 상황을 생각해 보고 이 상황 속에 내 자신을 포함시켜 보면 참 좋은 소재를 가지고 글을 썼으며, 마지막에 프랑스 만세! 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수업을 마치는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 참 아름다운 애국심도 느낄 수가 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조국의 소중함, 우리 나라 말의 중요성 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내 자신이 과연 이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으며 우리 나라 말을 자유롭게 배우는 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고 있느냐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또한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일본에게 우리 나라 말 사용을 금지 당했을 때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라는 생각도 해 봤다.

 

이런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난 다시 한번 내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내 자신은 어떤 외세의 공격도 받지 않고, 내 말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으며, 배우고 싶은 만큼 부족함 없이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귀결되는 내 마음 가짐은 감사다. 난 불평할 수 있는 그 어떠한 것도 지니지 못한 사람이다. 너무도 당연시 여겼던 것들을 제한 당하고, 금지 당한 이들을 생각한다면 난 공기를 , 물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는 것부터 감사해야 할 존재 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겠다는 적용도 해본다. 만약에 당장 오늘의 수업이 마지막 수업일 수도 있다는 마음 가짐만 있다면 이 책에 나온 프란츠 처럼 전에는 집중치 못했던 내가 정말 매 순간 순간 집중을 다해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 나아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매 순간의 삶을 마지막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살아간다면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떤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나도 이러한 순수한 사랑을 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해 주신 것들 중, 순수를 극대화 시키고 싶다. 순진 과는 다른 것 같다. 무언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철 없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모든 험한 꼴을 다 보고 서도 지켜낼 수 있는 마음 속의 깨끗함……주변의 더러움에 흔들리지 아니하는 견고한 순수를 난 갈망한다.

 

지금 이 세상 속을 살아가면서 내가 느끼는 가장 심각한 죄가 바로 순수의 소멸 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속에서 때론 당하며, 때론 편승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며 난 더욱 간절해진다.

 

나도 이러한 사랑을 하고 싶다. , 내 머릿속에 이미 들어와 버리고, 인식해 버린 더러운 세상의 모습들..주님이 원하시는 때묻지 않은……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별을 바라보며 정말 아름다운 비유를 서로 나누며 커지는 그러한 사랑과는 너무도 다른……지금 세상 속에 만연해 있는 그러한 사랑의 image가 내겐 너무 많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두려워 하거나, 처참한 표정을 짖고 싶지는 않다. 주님을 믿는 자로서, 사랑 그 자체이신 주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남.녀 간의 사랑에서도 주님의 힘으로 이 모든 image를 깨 부수고 목동의 사랑을 이루고야 말 것이다. 아니더 나아가서 주님의 사랑을 이루고야 말 것이다. 남에게 상처를 주


지 않고,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아름다운 자연이 힘을 실어주는 그러한 사랑.. 상대방을 더욱 배려해 줄 줄 아는 사랑……


하지만 이 사랑에 대해 약간의 문제를 제기하자면 이 소설 속에서는 어떠한 다른 외부적 상황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아마 그 모든 것을 배제시켜 버린 것이리라.책을 쓴 작가가 이 책 속의 내용에서는 거의 신이기 때문에 알퐁스 도데가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리라.


하지만 그런 통제 변인이 있었기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순수한 사랑이라면 난 거부한다. 난 현실의 문제와 다양한 방해 세력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 외면할 수도 없는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난 이 속에서 힘겹게 싸워 나가며(하지만 주님과 함께 하기에 기쁨이 있고, 승리가 보장된) 그 사랑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어쩌면 이 소설 속의 목동은 순진한 사랑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알고도, 다 겪어 보고도 이 상황을 진심으로 받아드릴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된다면 난 그것을 순수한 사랑 이라고 부를 것이고, 난 그 사랑을 지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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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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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에 쓴 아래의 혹평은 너무 과한 것 같긴 하지만 전체적인 의미에서는 여전히 이 책은 추천하기가 어렵다.

 

거짓이든, 진실이든 그저 마음을 편하게만 해준다면 의지하고픈 인간의 본성을 동의한다면 이 책이 위로와 힐링을 줄 수도 있겠으나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체적으로 나와 같은 세계관을 지닌 이들은 시간이 아까운 책인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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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비추하는 책. 1점을 주기도 아까운 책입니다.

 

뉴에이지로 잔뜩 포장 된 책.('뉴에이지'라는 단어를 해석하는 방식이 다양할 텐데, 여기서는 종교적인 함의를 포함했을 때의 '뉴에이지'를 의미합니다.) 

 

달콤해 보이는 말들. 왠지 힘을 줄 것 같은 메세지들.(물론 이런 메시지 만으로도 위로와 용기를 얻는 분들이 많았었기 때문에 이 책은 대히트를 쳤습니다.

 

이 정도로 파워를 지닌 Healing book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건 '거짓'과 '기만'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바라볼 때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입니다.

 

 

 

 

'저런 비밀(secret) 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이거든요.'

 

'인간의 말에 늘 순종하는 그런 자연의 에너지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건 램프의 요정 이야기에 불과하거든요. 우리에겐 힘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 속의 '에너지'는 세상의 기원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양자 물리학을 어색하게 차용하여, 과학이 자신들의 말을

증명해 주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엉뚱한 해석 일색입니다.

(이건 '과학'에 대해서도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요..) 

 

'위장된 진리' 의 종합판.

 

P.S : 이 책을 한국말로 번역하도록 압박을 주셨던 당사자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그 분은 자신이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손에서는 기가 나가서 여럿을 쓰러뜨리고 , 공중 부양도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깁니다..

 

'에너지' , '기'

 

세상의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해 내기 위한 대안으로, '자연주의자' 와는 또 다른 '제 3의 길'을 선택한 책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설명하기 껄끄러운 개념을 하나 추가 시켜 봤지만, 결국 거기서 거기입니다.

 

자신들이 설명해 내지 못하는 '우주의 기원', '인류의 기원' 등을 '설명' 해 내기 위해 '에너지' 를 적극 활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남는 건 , '근거 없는 주장 일색' 에, '인간의 인생' 속에

그저 '긍정적인 듯한 착각' 을 주입시키는 정도 뿐입니다.

 

자기 최면에 가까운 내용들인데, 일단 진실 여부는 차치해 두고 과연 이렇게 살아가면  정말 행복할까?

 

실제로는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해'를 외치며 행복 에너지를 끌어 당기는 상상을 하고 살아가는 나란 존재를 상상해 보자. 그러나 나는 '행복하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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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Stuart Mill <자유론> 을 읽고

 

상당히 깔끔한 책이다. 말 그대로 자유 를 주창하는 책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한번쯤 고민해 봤을 것이다역시 이 책 속에서도 , 자유 를 논함에 있어서 기독교가 빠지지 않고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 그 이유는 쉽게 유추 가능하다.

 

 

 

그리스도교는  유일신 을 믿고 있으며 , 그들이 역사 속에서 지녔던 힘과 권력이 상당했기에 , 자유 를 논함에 있어서 그들의 배타적인 모양새는 분명 언급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기독교가 필연적으로 지니게 되는 내용상의 배타성 이 지적 받는다기 보다 , 그들의 완고하고 , 편협한 태도, 자세 의 문제가 지적을 받는다는 것을....  (중세 카톨릭에 대한 비판까지 실컷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 이 책 속에서는 토론의 중요성 , 열린 대화의 당위성 등을 강하게 그리고 누차 역설한다. ('노암 촘스키'도 이러한 중요성을 역설한다)

 

예를 들어 , 그는 몰몬교에게 가해진 탄압에 반박하는데 , 그도 1명의 사람이 근대에 계시를 받아 형성되고 , 일부다처제를 지지하는 그들의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비판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한다.

(노암 촘스키도 반유대주의자의 글 내용에는 반대했지만 , 그의 책이 출간되는 것은 막아선 안 된다고 이야기 했다가 곤욕을 치룬 적이 있다.)

 

그저 맹목적으로 , 누군가의 강요로 의심 없이 믿고 있는 신념 , 신앙 등을 지니는 현대인들에게 , 일침을 가하는 그의 말은 이성적 논리 의 중요성에 꽤나 힘을 실어주는 것들이다.

 

맹신 , 미신 이 되지 않도록 , 이성의 필터기를 거쳐야 진정한 진리 가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그의 말은 , 극단으로 치우쳐 졌을 때는 인본주의적이고 , 자연주의적인 세계관에 갇히게 될 우려가 있지만 , 개인적으로는 동의하는 편이다.(여러분들은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 대체적으로 이성 을 완전 부정할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 분명 이성 으로 판별 가능한 , 실재 를 마주 대하며 살아가는 육적 그리고 영적 인간 이기에..

 

 

무엇보다도 , 우리는 진리 앞에 정직해야 하고 그 진리 진정한 진리 라면 , 결코 가벼이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는 새로운 류의 믿음 도 지녀봄 직 하다.

 

그가 자유 를 주창해 나가는 과정을 좀 더 들여다 본다면 , 편협함과 독선 에 대한 계속 되는 우려를 표명하고 , 비판,비평에 대한 거부 반응 이 심화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자.

 

오늘날에는 긍정적인 진리를 찾아내기보다는 이론상의 약점이나 실천상의 과오만 지적하는 부정적 논리를 좋지 않게 보는 것이 하나의 시대적 조류가 되고 있다. 이런 부정적 비판은 궁극적인 결과의 측면에서 본다면 확실히 보잘 것 없다. 그러나 이것은 이름값을 하는 모든 긍정적인 지식이나 확신을 획득하는 데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더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사람들이 이제 다시 그런 부정적 논리에 체계적으로 숙달되지 않으면 위대한 사상가가 나오기 힘들다. 수학이나 물리학 분야 등을 제외하고는 보통 사람들의 지적 수준 또한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싸움을 걸든지 아니면 스스로 그런 싸움을 붙이든지 , 어쨌든 적극적으로 논쟁을 벌이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 그 어떤 주제에 관한 의견도 지식다운 지식이 될 수 없다.

 

이런 부정적 비판은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 한번 없어지고 나면 복구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논쟁의 기회가 스스로 찾아왔는데도 마다하다니 ,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만약 일반적인 통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 법이나 여론이 이의 제기를 허용할 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 우리는 그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믿음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데, 또는 그 믿음이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다면 아주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그래 준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보다시피 상대방이 비판적으로라도 관심 가져 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것인지 , 그 소중한 가치를 몰라 보는 이들을 보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동의한다)

 

 

무엇보다도 , 자신의 귀를 닫아 버린 폐쇄적인 단체들도 이러한 말들을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근본주의자들이 떠오른다.)

 

  

또한 그는 인권을 수호하고 ,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등 상당히 진보적이고 , 계몽적인 느낌이 난다.

 

그리고 그는 천재 는 자고로 자유로운 분위기 에서 나올 수 있고 , 그러한 걸출한 인물이 많아져야 더욱 멋진 사회를 이룰 수 있을 텐데 , 작금의 시대는 천재 를 죽이고 있다면서 개탄한다.

 

그러면서 천재 , 특별한 자 가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투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 평범한 대중 이 지배하는 사회는 약간 부정적으로 다루는데 , 이 쯤에서는 그의 국가관이 플라톤의 주장과 흡사한 것인지 , 고민해 보게 된다.

 

하지만 끝까지 그의 말을 들어 보면 , 결국 그런 의도가 아니었고 , 단지 천재 등에게도 확실한 자유 를 주고 , 대중의 틀에 그들을 가두지 말아줬으면 하는 의도였음을 알게 되는데.(이렇게 끌고 가면 , 또 빈부격차라든지 , 불공평의 문제가 들고 일어나진 않을지 우려되지만..)

 

결국 그는 책의 제목 답게 철저한 자유 옹호하고 강조한다.(일관성 있게..)

(그러다 보니 , 소위 자신의 선택 , 자신의 기호 , 자기 자신 기준 됨으로써 , 절대적 진리가 설 자리가 사라지는 듯한 인상도 받게 된다)

 

획일성 을 경계하고 , 다양성(개별성) 을 찬양하는 삶.

 

 

분명 나쁜 말은 아닐 것이다. 다양함 속에는 창조성

 

숨어있으니 , 이 얼마나 아름답고 독려할 만한 것인지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상대주의 가 태동하게 되었다는 건 간과할 수 없다.)

 

또한 이 책이 나오게 된 데에는  그리스도교의 편협한 만행 이 큰 몫을 했기에 , 우리는 기독교의 신앙관 과 함께 빗대어 이 책을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다.

 

책의 후반에 가면 밀이 자신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챕터가 나오는데 , 막상 현실 적용 을 한 그의 이론은 기준이 좀 모호하고 , 불안정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의 말의 지혜는 상당하지만 말이다)

 

때론 그는 , 금주법 등과 연계시켜 , 그의 이론을 적용해 보기도 하고 , 교육론 에 있어서도 그의 이론을 적용해 보는데 , 피히테가 말했던 교육론 과는 배치되는 듯 하다.

 

그는 , 자유 사회주의자 라는 역설적 칭호를 얻었다는데 , 여기서 자유 라는 단어는 개인을 중시 하는 느낌이라면 , 사회주의 , 사회 를 중요시 하는 것 아닐까.

 

이러한 나름의 균형을 지닌 밀에게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성 논증의 중요성 , 토의 , 토론의 중요성 , 상대방의 권리도 마땅히 인정해 주는 윤리관 등으로 가볍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관련된 지적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 꼭 참고해 볼 만한 고전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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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에타 린네만

출판   부흥과개혁사

발매   2010.08.24

 

 

  상당히 논란이 될 만한 책이다. '성경 비평학'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인데 보수 기독교에서는 좋아할 만한 책이고, 칼 바르트 등을 위시한 신정통주의 신학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책이 될 것 같다.

 


 

  일단, 난 칼 바르트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고, 성경 비평학에 대한 공부가 아주 부족한 상태이긴 하지만 적절히 활용한다 해서 보수 기독교가 말하는 것처럼 '기독교의 위기'가 오거나, '정통'이 무너진다고 생각하진 않는 편이다.

(혹시 공부를 해 나가다가 이 부분이 상당히 중요하게 다가온다면 입장은 바뀔 수도 있다.)

 


 

  그의 책은 일단 시종일관 두서가 없고, 산만하다. (노력은 많이 하고, 열심히 논증을 하려고 애를 쓰는데 책이 시원하게 읽히지 않는다)

 


 

  초반에 칼 바르트를 비판하기 전에 스피노자가 한 이와 같은 말을 비판한다.

 


 

"믿음을 미신으로 변화시키고 하나님 대신에 종이와 잉크를 경배하는" 위험에 빠져 있다.!! -> 이 말을 비판하며, 이러한 논리가 역사비평가들에 의해 사용되어졌고 칼 바르트의 신론의 배경을 이룬다면서 바르트를 이어서 강하게 비판한다.

 


 

  성경 지상주의를 표방한다면 이와 같은 말이 무섭게 들리겠지만, 사실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주장하기를 바르트가 성경이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했다고 한다.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으나, 이렇게 말한 게 맞다면 심각하긴 하다)

 


 

  이 책의 저자는 역사비평 신학자들은 철학을 신뢰하고 성령으로 영감된 성경을 믿지 않는다고 개탄하며, 그와 같은 역사비평이 스피노자의 이론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철학은 "거짓의 아비"(요8:44)로부터 영감을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견 맞는 부분도 있지만, 모든 방법론을 다 거짓의 아비로 매도할 건 없어 보인다.)

 


 

  주로 스피노자, 칸트, 흄 등을 언급하면서 철학과의 절교를 선언하고 신정통주의 색깔이 드러나는 신학자들을 한번씩 언급하면서 그들의 위치를 부끄럽게 만드는 전개를 보여주는데 가령 디트리히 본회퍼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현대인에게는 하나님이라는 목발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초월에 대한 언급 없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

 


 

->기적을 부인한 것에 분개한 것 같은데, 뭐 이렇게 까지 간게 사실이라면 문제가 있는 발언이긴 하다.(그러나 일단 출처를 잘 모르겠고, 앞뒤 문맥을 쏙 잘라먹고 이야기 한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불편하다)

 


 

  불트만은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고, 자유주의 신학자인 슐라이어마흐는 칸트의 철학을 고려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자유주의 신학은 나도 지지하기 어렵다)

 


 

  성경비평 방법으로는 '역사비평 방법'이 사용될 수 있는데 저자는 이게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방법을 따라가 버리면 시편은 모세 오경보다 더 늦게 쓰였으므로 바벨론 포로 시절에야 쓰일 수 있게 되고, 그러면 다윗이 쓴 시편은 하나도 없게 된다고 한다.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이렇게 흘러가면 보수 기독교가 위기를 느낄 만도 하다. 더 제대로 된 비평을 하면 이런 극단적인 상황으로 안 가지 않을까?)

 


 

  그리고 기존에 알고 있던 마가복음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원전으로 사용되었다는 것도 사실은 거짓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것은 바이세가 주장한 것인데, 이는 고대 언어학자 칼 라흐만의 권위에 의존했다고 하는데, 라흐만은 실제로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한다.

 


 

  사비평에 대한 부분은 어려워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반대측 의견도 좀 들어보고 싶다)

 


 

  그 이외에도 문학비평, 양식사와 편집사 비평 방법도 비판하는데 이 부분은 책을 읽어보면서 공부해 볼 것을 추천한다.

 


 

  일단 저자가 우려하며, 성경 비평학에 칼날을 세울만 한 가치는 충분하다.


 

  각각의 비평 방법에 대해 이해를 해 보고, 자신의 입장을 전개하면 될 것 같은데 이 책의 문제점은 계속 같은 말이 반복되지만 속 시원한 비판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계속 이러한 비평들은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은 하는데, 그 근거들로 내세우는 것은 뭔가 허전한 느낌?

 


 

  각각의 비평들이 활용되는 예시는 하나 언급해 두겠다.

 


 

Q. 복음서 기자는 복음서의 테두리를 결정하는 데에서 자신의 신학이 반영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분명하게 집어낼 수 있는가?

문학 비평: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그 저자들이 여러 자료를 편집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단락 사이의 연관성은 부분적으로는 편집자, 부분적으로는 자료에 상관 있다고 한다. 저자가 한 일은 초보적인 편집 활동으로 평가된다.

 


 

양식사: 예수님 이야기의 테두리를 이차적인 부가물로 보고 이에 관심을 두지 않고 단지 원래 전승의 생성과 그 변형의 역사에만 관심을 둔다.

 


 

편집사: 복음서 전체에서 특히 그 테두리에서 신학적인 의도를 가진 복음서 기자의 신학적 작업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복음서 구조에서 사소한 차이에 신학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저자의 창조적인 개관에서 각 복음서 기자 고유의 신학적인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느낌으로 비평이 전개되는데, 사실 불완전한 인간을 통해 완전한 진리의 성경을 주셨기 때문에 이와 같은 맥락으로도 탐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성경의 권위가 떨어져 버리면 안될 사람들에겐 이건 죽어도 막아야 할 암 적인 요소임에 틀림 없다.

 


 

  성경 무오론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논쟁이 함께 작용하게 될 이 책은 일단 빠르게 읽어 보고 반대측 의견도 들어보자.

 


 

  책이 초반부터 성경 비평학을 완전히 쓸어버릴 것처럼 호언장담 하긴 하지만 동어반복만 하다가 맥 없이 끝나 버리는 것 같아서 아쉽긴 하지만, 고민해 볼 만한 부분은 어느 정도 어필해 주기 때문에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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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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