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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안: 지금 말한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죠. 한기총이나 NCC가 한국 교회를 대변하는 기관으로 지목되고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은 1980년 이후 상황이지요. 교계연합기구의 등장 이전에는 각 교단이나, 대표적인 기독교 지도자가 그 역할을 상징적으로 했지요.

한경직 목사님 같은 분이나, 고신이나 합동 측에서도 그런 분들이 계셨지요. 그분들이 돌아가신 뒤에는 한기총이나 NCC가 마치 한국 교회를 대변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어요.

이같이 한국 교회를 대변하는 것은 그야말로 목사들의 모임이지요. 장로들도 별로 관여하지 않고 더욱이 일반 성도들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양희송: 그리고 가톨릭과 달리, 개신교 연합기구들은 그 구조상 아래로부터 위임의 절차가 일관되게 연결되지 못하고 중간 중간 연결고리가 다 끊어져 있기 때문에 상징적 수준을 넘어서는 실질적 대표성을 말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강영안: 가톨릭의 경우에는 위에서 위임을 하지요. 교황에서 추기경으로, 추기경에서 대주교로, 대주교에서 주교로, 주교에서 각 본당 신부로 내려옵니다. 일종의 위임이고 명령이며 권면 방식으로 내려옵니다.

 

그러나 사실 개신교는 그런 구조 자체도 없잖아요. 위아래 소통할 수 있는 통로 자체가 없으니, 정부에서도 편의상 한기총이나 NCC를 통로로 삼아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쉬웠지요.

목사들도 나름의 통로로 교단의 목소리를 내봐야 들리지 않으니까 연합의 이름으로 교회의 의견을 발표하고 정치적 입장을 취해 온 것이 사실이지요.

얼마 전에 방송국에서 기독교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어요. 한기총을 중심으로 거세게 항의했더니, 방송국에서 그 프로그램 마지막에 한기총 대표의 의견을 이야기하도록 했다고 해요. 그런데 나오지 않는 것이 더 나았겠다는 의견을 들었어요. 전혀 설득력 없는 이야기였다지요.

그런 상황을 보면서 "목사님들이 다 선수가 됐구나" 라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목사님들이 모두 선수가 되어 공도 차고, 운동장을 누빈다는 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적 목소리를 내는 주요 역할을 목사님들이 맡으려 해요.

마치 현장에서 뛰는 선수처럼, 대단한 착각입니다.

 

목사님들은 선수가 아니라 성도들을 키워 내고 양육하는 코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축구로 말하자면 벤치에 앉아서 코치 일을 보아야 해요. 선수로 뛰는 것은 성도들이에요. 경제나 정치나 문화 영역은 그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갖춘 성도들이 해야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개혁주의 관점에서 목사들의 영역을 중심에 그렸죠.

그러니까 정치, 경제, 사회, 언론, 문화 영역 등 각 분야의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 공동체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이 목회자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 성도 그룹이 해당 분야에 의견을 내고, 필요할 경우 법 개정을 요구하거나 시민운동을 펼쳐야 합니다. 목사들은 성도들을 선수로 키워서 전문 분야로 내보내야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교회의 개념이 너무 넓기는 한데, 그때 교회는 목사만 말하는 건 아니거든요.

- [묻고 답하다]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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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송: 제 고민과 제안을 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국 개신교를 바라보는 데 쓰여 온 '교계(church society)'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개신교인들의 생각을 그동안 소위 '교계 지도자(church leader)'들이 대변해 왔습니다.

 

특히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나 NCC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같은 교계연합기구가 그런 역할을 해왔지요.

 

 

 

 

그런데 이런 구조가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습니다.

사립학교법 개정 논란을 예로 들면, 과거에는 한기총이나 NCC 말을 듣고 '한국 개신교는 이런 입장이구나'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교계 대표가 한국 개신교를 대변하고, 또 대표할 수 있다고 보는 패러다임이었습니다.

이 논란 때 한기총과 NCC 둘 다 사학법에 반대 입장을 천명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기독교사운동 단체에서는 사학법 찬성 입장을 발표했거든요.

기독교사들은 당시 교계 정서에 역행하더라도 그 법이 사립학교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리고 성도들의 절대 다수는 학부모들인데, 이 층에서도 사학법 찬성 입장이 압도적으로 컸습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사학 운영자가 교계 지도자의 주축을 이루고 있고, 그들이 삭발식을 거행하는 등 강경한 반대 입장을 드러내면서 마치 한국 개신교 전체가 사학법 반대 입장인 것처럼 알려졌습니다.

저는 이런 것이 목회자가 한국 교회를 과잉 대표하는 경우라고 봅니다.

그것은 목회자들 스스로 감당 못할 과도한 짐을 지는 불행한 일이고, 성도들은 자기들이 선택하지 않은 대표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여론 왜곡 현상을 겪는 악순환을 초래합니다.

저는 '교계' 패러다임에서 '기독교 사회(Christian society)' 패러다임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는 기독교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과 그룹의 한 부분이고, 이들은 목회 전문가로서 분명한 입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교육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면 교육 전문가, 사학 운영자, 교사 집단, 학부모 집단 등 한국 개신교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그룹 중에서 교육과 관련 있는 이들의 발언을 먼저 경청해야 한다고 봅니다.

앞서의 사학법 논란을 제대로 다루려면, 이런 여러 집단을 취재해서 그들이 같은 입장이라면 '한국 개신교는 이런 단일한 입장'이라고 보도할 수 있겠지만,만약 의견이 엇갈리면 '개신교 내에서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고 알려야 옳습니다.

저는 목회자들이 전문적인 목회 영역을 넘어서, 자기가 대변할 수 없는 주제나, 위임받지 못한 의사에 대해 과잉 대표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교회를 목회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상정한다면 전혀 갈등이 없을 수 있어요. 그래서 앞서 말씀하신 개혁주의 전통이 '기독교 사회' 개념에 잘 부합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럴 경우 큰 원이 기독교 사회가 되는 셈인데, 그러면 그 핵심에는 무엇이 와야 하는지 궁금한 겁니다.

저는 그 핵심에 하나님 나라와 복음에 대한 헌신이 자리 잡아야 마땅하다고 보는데, 이 자리에 어떤 물리적 기관이 놓일 수 있는가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영역을 비워 놓는 것이, 그러니까 그 영역이란 하나의 기관으로 대변될 수 없다고 설정해 놓는 것이 개신교적 신앙고백에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묻고 답하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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