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에 해당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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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로슬라브 볼프

출판 IVP

발매 2016.04.14.

 

 

 

  IVP 모던 클래식스 시리즈는 뭐 하나 버릴 게 없는 명저들이 많다.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시작으로 해서,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 레슬리 뉴비긴의 저서 등 등

 

  읽은지 10년 가까이 되어가는 책들이 많은데도 여전히 베스트 기독 서적으로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유독 미로슬라브 볼프의 [배제와 포용]은 읽어보질 못했다.

 

  못내 아쉬웠는데, 그의 신작이 나왔다 해서 일단 다른 저서부터 읽어보기로 했다.

 

  볼프는 학대 받은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마치 자신이 정치범이라도 되는 것 마냥, 취조실에 끌려 가서 신체적 학대까지는 아니지만 언어적 학대와 모욕을 들으면서 오랜 심문을 받았던 기억을 지니고 있다.

 

  그에게는 잊혀지지 않을 트라우마이자 상처였을 것이다.

 

  이렇게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우리에게도 적어도 하나 이상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처음 읽었을 때는 뭔가 논리적이면서도, 시원한 맛이 없어서 밋밋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 책이 끈질기게 추적해서 내린 결론은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우리는 고통 받은 피해자 뿐만 아니라 가해자까지도 고려하여서 '기억'을 온전하게 , 잘 해내야 하며 그 '기억'을 계속 붙들고 있기 보다는 결론적으로 '망각' 하는 과정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요약을 하면 뻔한 이야기 같지만 볼프가 이 결론을 내리기까지 네시하는 치밀한 과정과 고뇌들은 직접 읽어 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볼프는 피해자들의 억울함도 신원해 주면서, 가해자들을 향한 자비와 용서의 영역까지도 열어 놓는다.

 

  사실, 나에게 해를 가하는 이들에게 '증오'와 '복수'를 꿈꾸는 건 당연한 듯 보이지만, 이러한 방향성이 결코 피해자 자신에게도 이롭지 않다는 점을 잘 서술해 주고 있다.

 

  상당히 명대사들이 많은데, 몇 가지만 발췌해 보겠다.

 

  피해자들도 자신들이 당했던 사건과 기억을 왜곡하지 말고 최대한 진실되고 정직하게 기억해 내야 할 의무가 생김을 역설하는 부분이다.

 

  "기억 속에서 나는 때때로 그들을 불의하게 대했다. 이 경우에는 '불의'가 적절한 용어다. 물론 피해자가 불의를 저지른다고 말하기가 아무래도 조심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피해자가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의의 한 형태라면, 고통스러운 기억을 왜곡하는 것은 불의의 한 형태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악행에 대한 불의한 기억은 구원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참되고 그러기에 정의로운 기억이 구원의 수단이다. 거짓된 기억은 불의한 기억이고, 따라서 악을 줄이려는 의도와 달리 악을 더할 따름이다. 인정이 행복에 이바지하려면 학대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기억이 참된 기억이라야 한다."

 

  그리고 진실되이 기억한 그 '기억 자체'가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이 온전히 구속 받고 위로부터 임하는 도움이 있어야 비로소 생명의 출발이 될 수 있다는 심오한 지점을 논하는 부분이다.

 

  "괴로움을 당했던 기억은 고난당하는 타인을 위해 행동하도록 만들 수 있지만, 아예 그들을 바라보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악행의 기억만으로는 연대를 만들어 내기에 역부족인 것 같다.

 

  요약하면,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데 악행의 기억이 꼭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할 뿐 아니라 잠재적으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런 기억은 공감을 만들어 내고 억압을 줄일 수는 있지만, 무심함으로 이어지거나 새로운 폭력의 계기가 되는 등 구원의 수단과 거리가 멀 수도 있다. 구원의 수단이 되려면 기억 자체가 구속 받아야 한다."

  사실,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이다 보니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느낌 가는 대로 사고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를 단순화시키지 않고 상당히 세부적이고 섬세하며 논리적으로 접근한다.

 

  감정이 너무 아프고 힘든 이들에겐 이 책이 전혀 읽힐 느낌이 아니다. 그러나, 좀 더 차분한 상태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한발짝 물러나서 객관적인 눈을 가져 볼 수 있는 단계에 있는 '상처 받은 이들'이 읽어 보기엔 나쁘지 않다.

 

  내용이 좋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시련과 고통" 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자세, 왜 그런 일이 우리에게 발생했는가 등에 대한 질문을 다룬 책은 많다. C.S Lewis 의 [고통의 문제] 부터 시작해서, 오스 기니스의 [고통을 말하다], 김기현 목사님의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 등 등...

 

  그런 저서들로부터 얻는 위로와는 또 다르게 이 저서는 우리의 사고와 생각 속에 새로운 논리를 설계해 줄 것이다.

  때론 기억을 지워 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이터널 선샤인> 이라는 영화도 그런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온전하게 기억하려 노력하라', '그리고 기억 그 자체가 구속을 이룰 수는 없다', '우리는 온전한 책임을 묻고, 회개의 기회를 공유할 것이며',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에는 그 기억을 떠나 보내야 한다'

  이런 느낌으로 마무리를 한다.

  괴롭고 힘든 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삶을 지향하고자 한다면 이 책이 말하는 메시지를 주의깊게 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에겐 실로 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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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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