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진화'에 해당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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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적 자연주의자의 트로이카라 불리는 리처드 도킨스, 애드워드 윌슨, 데니얼 데닛.

 

이 3인방 중 한 명인 데니얼 데닛의 저서다.

 

그가 공략하고자 하는 분야는 바로 '마음'이다.

 

그 동안 자연계의 유물론적 설명, 우주에 대한 유물론적 설명에 이어 이번에는 정신과 마음의 영역까지도 그와 같은 서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책은 포인트 자체도 대담하고, 상당히 고 난이도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일단 책이 지닌 색깔 자체가 강경한 유물론적 자연주의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전제로 깔아둔다.

 

 

"우리는 자기 복제 로봇의 직계 자손이다" 라는 견해에는 더 이상 심각한 반론이 제기되지 않는다.

우리는 포유류고 모든 포유류는 파충류 조상에서 나왔으며 파충류의 선조는 어류였고 어류의 조상은 벌레와 비슷한 해양 생물이었으며 그 해양 생물은 다시 몇 억 년 전에 단순한 다세포 생물로부터 나왔고 그 다세포 생물은 지금부터 약 30억 년 전에 자기 복제하는 거대 분자에서 유래한 단세포 생물에서 나왔다. 동물만이 아니라 식물, 조류, 세균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지구에 살았던 모든 생명체가 등장하는 계통수를 이런 식으로 그릴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침팬지, 모든 벌레, 모든 풀입, 모든 삼나무와 조상이 같다. 우리의 선조 중에는 거대 분자도 있었다."

 

극단적인 유전자 결정론의 전형이 아닌가 싶다.

 

과연 이런 삶을 살고 싶은지 반문해 보고도 싶으며,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한 근거는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창조를 납득하기 어렵더라도, 그와 동등한 수준, 그 이상의 수준으로 이 논리들도 동의가 어려운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들이 과학계를 주도하고 있으니, 주류라고 주장하는 게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논리를 극한으로 끌고 나가다 보니 이런 주장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는 다른 식의 설명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로봇의 후예라고 해서 우리가 곧 로봇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로봇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몇 조개에 이르는 거대 분자들의 집결체다."

 

이런 논증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싹틀 만한 여지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한결같이 도덕론을 세우고, 윤리관을 지킬 수 있으며, 이와 같은 논증이 가장 '과학적'이고 깔끔하다고 말하는데, 과연 그런가?

 

 

"수십억 년 동안 이유는 늘 있었지만 이유를 세우는 존재, 이유를 떠올리는 존재, 심지어는 엄격한 의미에서 이유를 헤아리는 존재도 없었다."

 

일관성 있는 논지를 따라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결론에도 도달할 수 있다.

 

"아무 재료로든 인공 심장처럼 인공 마음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마음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 핵심만 파악하면 기준에 맞는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마음 (또는 마음의 구성 요소)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도 이러한 논증이 성공적인 '사실'에 도달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유물론적 세계관'을 기정 사실화 해 놓고, 접근하다 보니 이런 일반인이 보기엔 재미난 결론이 계속 도출된다.

 

대담하다고도 볼 수 있고, 이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아주 쇼킹한 방식으로 세상이 설명된 건데, 설득력이 그렇게 큰 책은 아닌 것 같다.

 

그의 이야기는 흥미로우니 몇 군데를 더 살펴보자.

 

"마음과 몸에 대해 데카르트가 천명한 악명 높은 이원론의 유산은 상아탑을 넘어 보통 사람의 생각에도 깊숙이 박혀 있다. "이 선수들은 몸도 마음의 준비가 끝났다." , "네 몸에는 탈이 없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라는 표현이 좋은 예이다.

 

데카르트와 격투를 벌이는 우리 같은 사람 안에도 마음(다시 말해서 뇌)을 몸의 주인 내지는 배의 선장으로 이해하려는 습벽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이런 통념에 젖다 보면 마음을 수많은 신체 기관의 하나로 보는 중요한 관점을 놓친다.

 

음이 주도권을 잡은 것은 진화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마음을 우두머리가 아니라 부리기 까다로운 일개 하인 (자신을 보호하고 먹여 살리며 자신의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몸을 위해 일하는 존재)으로 여겨야만 마음의 기능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타파되었다 해서, 모든 설명이 진화 생물학과 진화 심리학적 해석을 따라가야 할 필요가 있는 걸까? 안일하고 극단적인 주장이 아닌가 싶다.

 

3장에서 감지력과 감응력을 구분해서 설명하는 부분은 상당히 참신한데, 이와 같은 참신함을 가지고 이와 같은 대담한 논증을 완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끝까지 밀어 붙여 보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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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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