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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봤던 더 리더(The Reader) 라는 영화입니다. 당시에 심리학적으로 접근해서 리뷰를 남겼습니다.

지금에 와서 다시 영화를 본다면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연기도 훌륭하고, 스토리도 깊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더군요.

한번 쯤 보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1.       남자의 삶의 의미

남자 주인공 마이클에게 있어서 , 삶의 의미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사랑을 했고 , 처음으로 육체적,정서적 친밀함을 누려 봤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 아들이 하는 일이라면 늘 싸고 돌기에 바쁜 엄마 , 그리고 살 얼음 같은 남매 지간 그 모든 것들이 식탁 에서의 식사 장면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한 , 정서적 결핍을 누려 오던 주인공이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배우게 되었고 , 15세와 30대의 어찌 보면 경계선에 서 있는 듯한 아슬아슬한 연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 마이클의 마음은 진실성’(authenticity) 이 가득했다.

혹자들은 마이클을 아직 어리고 , 뭘 모르는 사춘기 시절을 삐딱하게 보낸 한 아이로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말 하기에 마이클의 태도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도중에 여자 주인공인 한나가 보여주는 이상한 행동 때문에 ,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 그 때 남자의 핵심 질문은 이러한 부분을 잘 나타내 준다. ‘Do you love me’? 라는 질문을 한나에게 던짐으로서 , 사랑을 확증받고 싶어 하는 마이클의 태도가 좋은 예이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몇 가지의 의미가 이에 더해지는데 , 중점적으로 나누고 싶은 부분은 비밀이다. 영화 속에서도 나오듯이 , 학교 수업 시간에 비밀에 대한 개념을 배우는 시간이 있다. 마이클에게 있어서 , 이모 뻘 되는 여인과의 불 같은 정사를 나누는 몇 주간의 시간들은 , 결코 공개할 수 없는 비밀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 학교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 가족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으며 은밀하게 움직이곤 했던 것이리라…. 나중에 이 비밀사랑이 결합된 , ‘비밀스런 사랑이 마이클이라는 주인공에게 미친 영향은 가히 엄청나다. 이 부분을 나누기에 앞서서 , 한 가지 더 덧붙여야 할 남자 주인공의 삶의 의미가 있다면 , 그것은 배신감일 것이다.

왜냐하면 , 그토록 열정을 다해 사랑했던 한나가 말 없이 사라져 버렸을 때 , 남자 주인공이 느꼈을 분노와 배신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옷을 다 벗어 버린 체 , 물 속으로 들어간 마이클은 수 많은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아마, ‘생애 최초로 경험해 본 애뜻한 사랑을 물 속에 가라 앉혀 죽이는 시간이었을 것이고 , 커다란 배신감과 분노라는 을 그 은밀한 마음에 덧씌워 놨을 것이고 , 겉으로 보여지는 그의 모습 속에는 , ‘사랑의 감정이 전면적으로 차단되어 버린 ‘emotionless man’ (무감정의 사람) 만 남겨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처음 시작되었던 1995년도의 이야기를 보면,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어 버린, 감정이 결여된 휴머노이드와 같은 느낌이 난다. 심지어 그의 딸에게도 그는 무뚝뚝하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아버지였을 뿐이다.

또한, 마이클이 법대에 들어 가게 된 과정들도, 그가 감정을 다루는 일련의 활동들이 아니라, 옳고 그름이 분명하게 구분될 수 있는 (실제적으로 이게 말처럼 되진 않을 수 있겠지만, 표면적으로 봤을 때), ‘감정을 섞지 않아도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길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부터 이 아이의 모습은 위의 3가지가 결합, ‘사랑이 깊숙한 곳에 억압되어 버린, 분노와 배신감으로 얼룩진 비밀스럽고 알 수 없는 남자라고 볼 수 있다. 법대 안에서, 매력적으로 자신을 유혹하는 여학생이 있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 뭔가를 감추고 있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그러다가, 법정 재판에 견학 차 방문하여 수년 만에 한나를 만나게 되는 마이클…. 그 순간, ‘비밀’ , ‘배신감’ , ‘사랑이 미묘하게 뒤틀리면서, 복합적인 감정 변화를 경험하고 만다. 사실, 한나가 보고서 작성의 핵심 주모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필체 확인 과정을 하는 장면에서 한나가 주저하는 모습을 통해 마이클은 직감했을 것이다.

 그 동안, 한나가 보여줬던 일련의 모습들….. 가령, 책을 늘 읽어 달라고 하고, 여행을 가서도 메뉴판을 잘못 읽고, 쩔쩔 매던 모습들 속에서, 그녀가 문맹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손을 들고 그녀를 변호해 주지 못하는 마이클한나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순간, 굵은 눈물 방울이 마이클의 뺨을 타고 흘러 내린다.

 왜 마이클은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던 것일까?... 그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비밀을 지켜 주고 싶은 것이리라. 철저히 숨기고 싶어하는 그녀의 자존심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까지 그 부분들을 지켜 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사랑비밀이 결합되었을 때는,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비밀로 남을 수 있었겠지만 , ‘배신감이라는 불순물이 개입되고 나서 , ‘사랑은 억압되어 버리고 , ‘비밀무감각’ , ‘무반응으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상처를 , 똑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고 , ‘배신감을 억압해 두고 , ‘비밀스런 사랑만을 떠올리며 그 여인의 선택을 지지해 준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아직 이 남자의 배신감 , 완전히 치유된 상태가 아니다.

또한, 한 가지 더 추가되는 남자의 삶의 의미는 바로 정의’(justice) 일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보여준 배신 행위 , 그녀가 보여준 불의의 모습들이 법대생이 되어 있는 이 남자에게는 분명 내면의 갈등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을 억압 시켜 두고, ‘비밀스런 사랑의 힘을 가지고 다시 한번 옛 열정을 불태워 보는데….. 자신이 예전에 읽어 주던 호머의 <오디세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등의 책을 직접 녹음해서 , 테이프로 만들어 한나에게 보내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한나는 변화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스스로 글을 공부하여, 언어를 깨우치고 마이클에게 편지도 보내기 시작하는데…..

그리고 20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를 몇 주만 남긴 상황에서, 마이클은 한나와 재회를 한다. 이 때, 마이클은 수 많은 갈등 속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한나에게 편지를 받아도 답장을 하지 못하던 그의 모습 속에서 아직도 비밀스런 사랑배신감’, ’정의의 문제가 미묘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신경질 적으로, 편지 보관함을 닫아 버리는 모습이라든지, 그 갈등이 가득 드러나는 표정을 보고 있으면 이 남자의 내면적 싸움이 잘 드러난다.

그래서, 마이클은 한나에게 물었으리라.. ‘옛날 생각을 하느냐?’(나찌 시절)….. 하지만, 한나에게는 그 때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 같다. 한나는 오직 마이클과 보냈던 행복했던 시절들만을 회상했을 뿐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마이클과의 관계를 마이클이 생각하는 것 만큼 크게 여긴 것 같진 않다….. 그 만큼, 마음 문을 닫아 둔, 자기에게 갇혀 살아가는, 어찌 보면 순수한, 어찌 보면 무지한 여인이었으리라.).

글을 깨우치고, 세상을 바로 보기 시작하면서, 이 여인은 비로소, ‘진실한 사랑을 알게 되고, ‘도덕과 정의의 문제를 알아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비록 할머니가 되어 버렸지만, 그녀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자기라는 감옥에 갇혀 있던 외로운 시절들을 벗어나, 비로소 진실된 나로 새로 태어나, ‘사랑’,  정의’,  도덕을 정립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 이런 내막을 다 알 수도 없고 , 설령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용납하기가 쉽지 않았던 마이클은, 한나와 맞잡았던 손을 놓게 되고 , 그녀의 모습 속에서 , ‘회개’ , ‘용서’ , ‘후회의 모습을 보길 원한다.

이것은 자신에게 행한 배신 행위에 대한 용서와 함께, 어리숙 하지만, 어쨌든 수백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녀의 행위에 대한 용서도 함께 녹아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녀의 자살로 이 모든 만남은 마무리가 지어지고, 그 이후에 마이클은 자신의 딸에게 한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자신의 비밀을 공개한다.

더 나아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생존자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공개함으로써 스스로의 치유를 경험한다. 이게 완전한 의미의 치유가 될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벌어진 사건들과, 이미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돌이킬 수 없는 인간 존재이기에, 이 모든 것을 묵묵히 수용하고, 있는 자리에서 그 모든 것들을 견뎌내고자 하는 생의 의지’ , ‘회복으로의 발로가 엿보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자살을 통해 마이클은 배신감의 감정을 작게 나마 치유 받고(그녀는 자살을 통해 용서를 구한 측면도 있을 것 같다.), ‘비밀스런 사랑만은 끝내 변질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남겨 두는 길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2.       여자의 삶의 의미

여자는 순수했다. 그녀의 이름은 한나다. 30대가 되어서도 문맹인 걸 보면, 아마 변변찮은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도 일반 사람들과 똑 같은 자아를 지니고, ‘자존심을 지니고 , ‘감정을 지니는 동일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분명 솔직하고, 따뜻한 구석도 많이 있다. 그러나 폴 투르니에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이 되려는 본능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그러한 자신이 흔들리는 순간 우리는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이 여인의 삶도 분명 그러한 상처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어리디 어린 꼬마 아이들도 자기가 보지 못하는, 음식점 메뉴판을 잘 읽어 내며 깔깔 거리며 웃고 있는데, 아무것도 볼 수 없고 ,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한나의 모습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마치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 등장하는 어머니가 글을 읽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모습과도 흡사해 보인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끊임 없이 던졌을 그녀에게 있어서, 배우지 못함에 대한 한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나 보다.

그녀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는 배움’, ‘계몽이 아니었을까…. 더 나아가서는 이 영역이 자신의 정체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말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는, ‘배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나였다. 그렇다. 그녀는 이미 시작부터 마이클과 달랐다. 마이클은 사랑을 배움으로써, 상대방을 배려하고 , 생각해 주는 마음이 큰 동력이 되었지만 , 그 당시 한나에게 있어서, 마이클은 수단에 더 가까웠다.

 

 

 ‘배움에 대한 한과 열망을 지닌 나를 위해, 그 아이를 도구로 삼은 것이다. ‘섹스는 그녀가 자신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래서, ‘책을 읽어 주면, 그 뒤에 잠자리를 같이 하자라는 식으로 rule 을 바꾼 것이리라자신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영역을 십분 활용하여, ‘를 채워 가려는 욕망. 지독하게 에게 집중되어 있던 그녀에게, ‘도덕’ , ‘사회’ , ‘타자’ , ‘에 대한 의미는 희미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어찌 보면 그녀는 경계선에 서 있는 성격 장애를 지닌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도, 지독한 예민함이 바닥에 깔려 있으며, ‘에게 집중되어 있기에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도 지독하게 자의적이다.

그래서, 세상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더군다나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크나큰 상처가 덧붙여져서, 자신의 존재를 바르게 인식하는 게 너무도 약했던 여자…. 그래서 영화 도중에, 마이클이 왜 나만 늘 사과를 해야 하는 거야?” 라고 외쳤을 때, 그녀는 아무도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 라는 말로 응수를 한다.

를 바로 보지 못하고, ‘에 대한 끊임 없는 의문을 품고 있는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한 책임’(responsibility), ‘나의 결정그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결과등을 인지하고 수용하기가 쉽지는 않았나 보다. 어찌 보면 지독하게 순수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 만큼 무지했고, 또 위험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게 노출되는 게 두려워, 사무직으로 승진했을 때도 저 멀리 도망가 버렸고, 수용소의 경비원으로 일했을 때도 깊은 사유와 고민을 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철저히 잘 하면 되는 줄 믿고 있었다.

어찌 보면,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 하는, ‘자아 의식’ , ‘자존감이 지독하게 낮은 한 여인일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이 낮게 평가 받는 것을 두려워 했을 것이며, 그래서 그녀의 삶은 일종의 완벽주의기질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맡은 일에 있어서 만큼은 철저하고, 성실하게 움직였던 것이리라…. 그러한 기질은 결벽적으로’, 자신의 몸을 샤워하고, 씻곤 하는 중간중간 장면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또한 그녀는 시종일관 순진했다. 다른 5명의 경비원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부정하고 뒤로 뺄 때도, 그녀는 너무도 천진난만 한 표정으로 자신이 그 일을 했노라고 말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 하는 주장도 펼친다. (도덕적 난제가 담긴 질문일 수는 있지만,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봤을 때는 너무 기계적이고, 생각 없는 답변이다.).

그러다가, 5명의 경비원들이 한나가 주동자라고 몰아 붙일 때, 그녀는 자신이 문맹인 것이 밝혀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심정으로 자신이 주동자였음을 시인해 버린다. 그녀의 삶의 의미는 끝까지 . ‘배우지 못한 나’ …. 그게 자신의 인생을 끝까지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을 중심으로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그러했기에 순수했을지는 몰라도, 그녀의 행동은 많은 사람을 죽이는 데도 능통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타자의 목숨세상의 질서는 그녀에게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지 못한 나가 회복되기 전에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심지어, 마이클과 불 같은 사랑을 나눴던 것도, 그 당시에는 마이클이 느꼈던 것 만큼 진실한 사랑을 한나는 지니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Do you love me?” 라는 마이클의 질문에, 한나는 아니라고 고갯짓 하려다가, 마이클의 슬퍼하는 표정을 보고 마지못해 끄덕거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또 한번 스스로를 자책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 그들에게 버림 당하느냐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데, 또 그러기는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자신을 수그리고 남의 감정과 기분을 맞춰 줬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혐오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러한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사랑의 참 의미를 잘 모르던 그녀는 친밀했던 관계를 순식간에 정리하고 너무도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더 이상, 마이클과 친밀해 지다가는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어, 상대방으로부터 버림당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는 그녀만의 분명한 이유가 존재했고, 그 이유에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 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행동으로 보이곤 한다. 그녀에게 마이클의 마음은 너무도 부차적인 문제다. ‘배우지 못한 라는 감옥은 그 만큼 단단하고, 두텁다. 그런 그녀가, ‘자기라는 감옥을 깨 부수는 순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감옥 속에서 녹음 테이프를 받기 시작한 때부터다.

스스로가 글을 깨우치기 시작하면서, ‘배우지 못한 나라는 한과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고, 감옥을 나오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시작한다. 그녀 스스로는, 수 십년 간 자신을 괴롭혀 온, ‘지독한 정체성 문제가 해결되어서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십 년 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마이클과의 사랑도 새롭게 느껴지고, 풍성하게 와 닿았을 것이고, 자신이 수용소에서 행했던 부도덕하고, 불의한 일들에 대한 깊은 반성의 시간도 가졌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가 원했던 건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지난 과거들을 다 청산하고, 새롭게 인식하고, 처음으로 깨달은 진정한 삶을 살아내고자 하는 열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건, 그녀가 지독한 자기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녀가 저지른 수 많은 행각들이었다. 마이클이라는 한 남자가 받은 상처와, 수용소 생존자들이 겪었던 아픔들, 사회의 혼란 등…… 이 모든 것들이 깨끗하게 정리되고 다시 원점에서 시작될 수 있는 세상이라면, 그녀의 다시 태어남은 기쁜 결실을 맺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기에는 그녀가 행한 에 대한 대가’, ‘책임이 너무 무거웠다. 그러면서, 마이클은 끝내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사랑은 했지만, ‘사랑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한나로서도 마지막 희망의 원점이 좌절되는 느낌과 함께,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죄책감도 함께 올라왔을지도 모른다.

 (과연 그녀에게 있어서 그 죄책감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인식은 했을 것이다. 수용소 생존자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가져다 달라는 말을 통해, 이런 부분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난 죄책감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서 자살을 한 것 보다는, ‘희망이 좌절되어서 목숨을 끊었다고 해석하는 것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그 만큼, 그녀는 자기에게 갇혀 있던 사람인지라, 남을 배려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의식이 어린 아이와 같았기에, 그런 거창한 도덕적 함의를 지니고 자신을 희생했을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이제 막 타자’, ‘이웃’, ‘사회를 보기 시작한 그녀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지독한 희생적 사랑을 가진 한 남자가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희망의 원점은 전능자 하나님께 둬야 마땅했을 것이다. 사람에게 그것을 요구하기에는, 너무 감수해야 할 부분이 많지 않겠는가..). 마이클이 그 희생을 받아 들이길 거절한 부분에 대해서 난 아무런 비난도 할 수 없다.

오히려, 마이클의 선택은 충분히 정당했다고 생각한다. 마이클의 입장에서도, 그녀의 죽음이 시원하게 다가왔을 리가 없다. 그리고 마이클은 알았을 것이다.

그녀가, ‘속죄의 의미보다는, ‘자신의 희망이 말살된 것에 대한 실망이 더욱 컸던 것을…. 하지만, 한나라는 여자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그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속죄 형태가 된 것이기도 하기에, 마이클은 이 모든 것을 끌어 안고 , 이 삶을 수용한 것이리라….

결국 한나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는 자기를 찾는 것’. 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하나님에게서 찾았더라면, 이 여자의 삶은 크게 바뀌었을 텐데 ….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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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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