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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수 많은 걸출한 철학자를 배출해 낸 나라이다. 실제로 독일에 가면 테오도르 호이스 다리에서부터 카를 테오도르 다리가 있는 곳까지 이어지는 철학자의 길이 있다고 한다. 이름만 들어도 남다른 위용이 느껴지는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등의 철학자들은 이 길을 걸으며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자신들만의 특별한 철학을 정립하기도 했었다.

 

갑작스레 독일을 언급한 이유는, 이와 같이 인간 지성의 정점을 선점하고 있던 독일이라는 나라로부터 유토피아(Utopia)가 시작될 것이라 기대했던 계몽주의의 환상이 세계대전(The World War)을 일으킨 전범이라는 오명 앞에 사그라 들었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 철학이 가야 할 길이 있을 터인데, 우리는 그 길을 논하기 위해 아주 서툴게나마 주요한 철학의 흐름을 파악하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나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면상의 한계와 글쓴이의 미미한 지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 서툰 흐름 파악조차도 범위를 한정 지어야 할 것 같다.

 

고대 그리스 철학이 자연 중심이었고, 중세로 넘어 오면서 중심이었다면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를 거쳐서 서서히 ’(인간)란 존재를 향해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데카르트는 프랑스인으로서 지성을 중요시한 합리론자였다면, 동시대에 영국에선 경험을 중요시 여기는 경험론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합리론이냐 경험론이냐 치열한 공방을 벌이던 시기에 칸트라는 철학자가 등장함으로써 두 관점을 통합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세계 철학사에서는 만약 칸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칸트를 창조해야만 했을 것이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칸트는 철학을 신학과 과학으로부터 독립시켰으며 독일 관념 철학의 막을 열었는데 이 시기 즈음부터 철학의 본 무대는 독일이 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데카르트로부터 출발했던 에 대한 논의는 계몽주의 철학의 조류를 따라 나란 존재가 지닌 이성과 인식에 초점을 맞추면서 발전해 왔다면 몇 차례의 혁명과 전쟁을 치르고 난 19~20세기에 와서는 이성을 지닌 나란 존재의 본질을 찾기 보다는 현실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나의 존재인 실존’(Existence)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유신론적 철학은 키에르케고르 등을 위시하여, 지금까지도 다양한 갈래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현대 사회에선 엘빈 플란팅가와 같은 유신론적 분석 철학자가 등장하여서 탄탄한 논리로 유신론의 합리성을 변증해 주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무신론적 철학이 지성의 영역에서 이 정도의 지위를 누리게 된 시기도 19~20세기였다고 볼 수 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기반 속에서 사유하던 방식이 의심되기 시작하고 모더니즘을 거쳐 포스트 모더니즘을 향해 세계관이 변화되어 가면서 실존 철학’, ‘분석 철학’, ‘해체주의까지 무신론적 철학은 거침 없는 항해를 이어 나간다.

 

다시 철학의 역사로 돌아가 보자.

 

독일이 낳은 위대한 철학자인 헤겔은 변증법을 통해 인간이 무지한 정신에서 절대정신으로 발전해 간다고 주장했으며, 이와 같은 변증법을 이어받은 칼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주창하여 역사 속에서 실질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다.

 

헤겔은 이와 같은 논리를 인간에게만 한정 짓지 않고, 역사가 발전해 나가는 과정도 절대 속박에서 절대 자유로의 변천이라고 주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헤겔 자신의 변증법이 정,,합에 기초하여 이뤄졌듯이 철학의 도 헤겔이라는 걸출한 철학자의 주장()에 대한 반작용으로 쇼펜하우어의 비합리주의 철학’()이 등장했다는 것이다.(‘에 도달한 철학자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쇼펜하우어가 보기엔 절대 정신을 주장하는 헤겔의 모습 속에서 합리론자의 망령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모든 삶에 회의를 느끼며 염세적인 느낌으로 살기를 촉구하는 반작용을 일으켜 본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내리고 금욕을 체득하라고 독려 하기도 하며 나름의 입지를 굳히던 쇼펜하우어는 니체, 프로이트, 바그너 등에게도 영향을 줌으로써 철학사 뿐만 아니라, 심리학과 음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이 철학의 은 다른 학문들과도 적절한 통섭을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

 

비단 쇼펜하우어 뿐만 아니라 헤겔의 철학이 칼 마르크스를 통해 사회 이념과 사상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좌시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결국 독일을 최고의 지성 국가로 등극하게 해준 칸트의 관념 철학이 쇼펜하우어라는 인물의 반작용으로 인해 비판 받기 시작하면서 철학의 은 새로운 응용과 조합을 이뤄 나가기 시작한다.

 

철학이 발전되어온 길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아무리 간략하게 추려 내고, 요약해서 설명하려 해도 그 복잡성(Complexity) 자체가 철학의 진가이자 매력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실존주의 철학의 시조 격인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헤겔의 절대 정신개념을 비판했었는데 그는 대표적인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가다.

 

즉 그는 현실에 존재하는 나를 실존이라고 지칭했는데 인간의 실존 방법 3단계인 1.미적 실존 2.윤리적 실존 3.종교적 실존 속에서 인간은 종교적 실존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미적 실존에서 윤리적 실존으로 넘어갈 때 필연적으로 나란 실존은 윤리의 벽 앞에서 쾌락과 본성을 죽여야 하기에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고, 우리는 윤리적 실존에서 종교적 실존으로 넘어가기 위해 을 바라보게 된다고 이야기 한다.  

 

이와 같이 종교와 연계되어 새로운 깊이를 더해 가던 실존철학은 기존의 사변적이고, 이성적인 논의였던 삶이란, 인간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 일단 그런 삶과 인간의 개념을 정의 내리는데 에너지를 소모하기 보다는 이미 이곳에 실존하고, 이미 이곳에 놓여 있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종교적 입장을 떠나서라도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실존적 고민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무신론적 실존철학의 대표주자인 니체와 사르트르라는 걸출한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계몽주의와 기존의 모더니즘 적 문명 전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니체의 철학 사상은 또 하나의 큰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고, 실존주의를 휴머니즘으로 정의했던 사르트르의 영향력은 실제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철학의 모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신 없이 철학사를 요약하며 달려왔지만 실상 너무도 놓친 부분이 많음을 부정할 수 없다.

 

대표적인 철학자 몇 명만 더 살펴 보고, 우리는 지금 현재우리의 과 근접해 있는 철학의 을 조명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이후에야 비로소 철학이 장차 나아갈 에 대한 고민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철학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의 별명은 존재의 철학자이다.

 

그에게 있어서 란 존재는 현존재로서 세계와 유리되지 않은 세계 내 존재이다.

 

단순히 합리주의 철학이 행했던 것처럼 세계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를 들여다 보는 삶을 원치 않았던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어떤 사태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러한 사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실존 전체를 미래를 향해 내던져서(‘기투된 존재로 표현함) 실존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존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이해란 사태의 피상에만 머무는 것이므로 진정으로 그 사태를 이해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데 전기 철학에서는 존재자에 대한 존재 구조의 분석에 집중했었다면, 후기 철학에서는 존재 전체인 세계를 그것이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역사성으로 파악했다. 그러므로 현존재가 처한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제 세계는 인간의 실존 방식에 따라 자신을 달리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간에게 자신을 열어 보인다.

 

인간이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인간에게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살짝 나누기만 했지만, 그의 실존 철학은 이해하기가 만만치 않다.

 

이 즈음에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의 다른 흐름을 만들어 내면서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Existence precedes essence)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는데, 우리가 어떤 존재이든 지금 이 자리에 실존하고 있는 게 더 중요함을 역설했다.

 

그리고 실존주의를 휴머니즘과 연계시키며 나란 존재를 사회적 존재로 바라보며 사회에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함으로써 나란 존재의 참 가치를 발견해 나가는 시도를 해 보인다. 현실에 참여하는 삶을 지향했던 그의 철학은 학생 혁명에 불을 당겨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철학의 을 간략히 나누고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

일상 언어, 학문 용어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중요시하는 철학을 우리는 분석 철학이라고 부르는데 기존의 관념 철학은 현실과 동 떨어진 막역한 것에 대한 논의만 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태동한 철학이 바로 분석 철학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버드런트 러셀을 들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분석 철학의 조류는 19세기에는 의식을 분석하는데 더 집중했다면, 20세기에는 언어를 분석하는 길이 더 득세했다고 보면 된다.

 

 

 

존재에 집중했던 하이데거완 달리 의미에 더 중요성을 두고 고민했던 언어 분석 철학의 대가 비트겐슈타인도 놓칠 수 없는 철학사의 중요 인물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분석함으로써 사유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한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와 그 구조를 알면 그의 내면 세계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위 언어 게임’(Language Game)이라는 틀 안에서 논의가 가능한 영역만을 철학적으로 분석했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해서는 개입하려 들지 않았다.

 

자신이 분석할 수 없고, 자신이 설명해 낼 수 없다고 해서 그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자들과는 달리 그는 표현할 수 없는 세계의 무궁무진함과 귀중함을 자주 강조했다는 점이 인상 깊다.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엔 수 많은 철학자들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변증법이라느니, ‘실존재라느니, ‘초인이라느니 다양한 가짜 언어로 규명하려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의 업적은 철학의 주제를 존재사유로부터 언어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그가 쓴 책은 <논고>로서 논리학을 기초로 사용하는 철학에 관한 논고라는 뜻인데, 2만자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책이었지만, 이 책 한 권에 대한 연구 논문이 수 천편에 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 만큼 비트겐슈타인은 천재적인 철학자였나 보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철학의 은 구조주의와 해체주의다. 2차 세계 대전 직후까지는 실존주의가 철학의 중심에 있었다면 프랑스 등의 서구 철학은 1960년대 이후 구조주의와 해체주의라는 급격한 물살을 타게 된다.

 

먼저 구조주의는 사회나 현상은 각각 다른 모습, 특성을 지녀도 그 안의 공통적인 몇 가지 일반 법칙으로 참된 결론이 도출된다는 사조로서 인간의 행동이 구조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던 데카르트의 계몽주의 철학이나 인간의 자유와 의지를 강조한 사르트르의 실존적 철학에도 반기를 드는 철학 사조다.

 

요즘 가장 주류를 이룬다는 해체주의의 대표적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는 절대로 선 언어적, 선 개념적인 실재와 만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현존(present)은 실제로 부재(absent)이며, 소여는 한갓 인간 담론의 구성물일 뿐이다. 그가 바라보기에 서양 철학의 지배적인 전통은 실재론이다. 약간의 부연 설명을 하자면 실재론자들은 소박한 실재론자(naïve realist), 관점주의적 실재론자(perspectival realist)로 나뉠 수 있는데 전자는 심판이 야구 경기 후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하기를 볼이면 볼, 스트라이크면 스트라이크야. 나는 있는 그대로 정확히 선언한다네.” 라고 말할 것이고 후자는 볼이면 볼, 스트라이크면 스트라이크지. 그런데 나는 내가 보는 대로 선언한다네.” 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재론을 쇠퇴시키고 포스트 모던적인 관점에선 심판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볼이면 볼, 스트라이크면 스트라이크지. 하지만 내가 선언하기 전까지 그것은 볼도, 스트라이크도 아니야.” 라고 말이다. 즉 데리다가 바라보기에 서양 철학은 실재론이 주를 이뤘기에 진리의 개념 체계 내에 현존한다고 전제된 것은 언어와 사고보다 앞서 존재하는 참된 소여를 통해 파악이 가능하며 언어와 사고를 통해서도 적합하게 파악이 가능하다고 보는 게 서양 철학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즉 서구 모더니티 사상은 실재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이론은 실재와 실재에 대한 기술’(description) 사이에 본질적 유사성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해체주의자들은 이런 전제를 비판한 것이다. 사고방식의 획일화도 그 본성상 폭력적이라고 규정하는 해체주의식 철학 앞에서 우리는 어떤 논의를 더 전개할 수 있을까?

 

헤겔, 하이데거, 칸트의 철학을 해체시켜 나가며 소위 로고스 중심주의를 격파해 나가는 그의 대담함은 언어를 가지고 마치 유희를 즐기듯이 꼬투리를 잡고, 애매모호함과 어중간한 표현들로 자신의 사상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을 당혹시킨다. 아마 지금 쓰고 있는 글 자체도 그 앞에선 조목조목 해체될 것이기에 이 정도 선에서 논의를 마쳐야 할 것 같다.

 

해체주의 철학 그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 속에서 모든 것이 상대화 되어 가고 있고 모든 기준이 부정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철학이 나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음 번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신 철학을 좀 더 심도 있게 들여다 보며, 그러한 철학의 강점과 한계점에 대해 논의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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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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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예술은 우리의 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수 많은 예술가들은 음악,그림,

,건축 등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왔고, 자신이 지닌 신념이나 사상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그와 같은 매체를 활용해 왔다.

 

예술에 대한 관점들은 시대에 따라 변천해 왔는데 특히 헤겔(Hegel:1770~1881)이 예술을 철학(학문), 종교와 더불어 인간의 고등 정신활동의 하나로 간주한 이후로 예술의 권위는 격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예술의 을 논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술의 변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실존이 지니는 감춰진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고, 삶의 복잡다단함이 예술을 통해 말끔하게 서술되는 듯한 경험들을 하기도 하며, 우리의 감정과 마음이 예술이라는 수단을 통해 때론 강렬하게, 때론 부드럽게 회복되는 걸 느끼기도 한다. 그 만큼 예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심대하다.

 

하지만 너무 방대한 지식을 함께 나누기는 어렵기 때문에 미학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작게나마 소통해 보고 싶다.

 

우리가 어떠한 그림 작픔을 해석함에 있어서 개개인마다 해석하는 방식이 다를 터인데 그렇다고 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그림의 해석을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해석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다양한 견해들이 공존할 수는 있지만, 그와 같은 견해를 피력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논리와 합리성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론 미술은 과학과 교묘하게 손을 잡는다. 일반적인 견해처럼 미술가들은 영감이나 직관, 감정에만 의지해 작업하고, 과학자들만이 지성과 이성으로 탐구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미술과 과학은 역사적으로 상당한 동맹을 맺던 시절들이 있었다.

 

중요한 미술사의 역사를 언급하는 것도 정보를 제공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 때미술은 중세 시대로부터 벗어나 창의성과 나름의 독창성을 내세우는 모더니즘의 길로 입문하게 되었고, 자연을 더욱 합리적이고 이상적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했기에 수학적인 사고와 지식이 근간이 되는 원근법이나 인체에 대한 생리학적 지식으로 연결되는 해부학의 발전이 미술가들을 통해 이뤄졌었다.

 

대표적인 미술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미술을 과학과 동일시 했으며, 당대의 지도적인 인문학자들도 미술을 응용과학으로 정의하거나 자연철학과 수학에 포함시켰다.

 

레오나르도는 미술가로서도 천재적인 면모를 보였지만 과학에 있어서도 시대를 앞선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지식은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해서 지동설을 예측하기도 했으며, 뉴턴의 중력의 법칙이나 하비의 혈액순환이론도 예견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회화는 화가의 마음을 자연의 심성 그 자체로 전환시켜 그를 자연과 미술 사이의 해설가로 만든다. 그것은 자연이 그 법칙에 따라 현현하는 원인을 설명한다라고 말하며 실상 미술을 과학처럼 취급했다. 이 시기는 16,17세기 즈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와 같이 미술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인식되던 당대의 분위기는 18세기 이후에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이 즈음을 기점으로 해서 순수미술 개념이 태동하기 시작하면서 작가의 주관성이 강조되고 미학과 낭만주의 사조가 대두되어 지금의 시대에 이르렀다고 보면 될 것이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좀 더 다양한 해석학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같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류를 따른다고도 볼 수 있겠고, 수 많은 이성주의, 합리주의의 논의 속에 염증을 느낀 학문의 반란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규정되고, 규율화 되고, 제도화 되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하는 현대 사조 속에서 하이데거의 제자이기도 했던 가다머라는 철학자는 예술작품 앞에는 무한한 해석이 펼쳐져 있기에, 단 하나의 절대적으로 옳은 해석을 내리려 하는 것은 작품의 영원한 생명을 끊어 버리는 짓이라고까지 말했다.

 

합리성과 단단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며 굳건히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있던 미술은 이런 식으로 심판대에 오르기 시작한다.

 

가령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등장하면서, 무의식을 활용하여 그림을 해석하는 방식도 등장하게 되었다. 정신분석학적 해석의 전제는 겉으로 보이는 것 이면에 감추어진 인간의 무의식이 그림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이론을 펴기 위해 먼저 예술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곤 했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는 다빈치가 지닌 기질적 특징인 왕성한 호기심을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성욕의 변형으로 해석해 버린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다재다능함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강한 성적 욕구(동성애)가 예술적으로 승화된 형태라는 것이다. 결국 다빈치는 강한 정력의 소유자로 규정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다빈치가 여자를 많이 그렸지만 그들에게서 성적 매력을 느끼지 않았고, 여인과 정신적 혹은 육체적 사랑을 나누었다는 기록도 없으며 단지 선생인 베로키오 집에 머무는 동안 다른 젊은이들과 동성애를 누렸다는 기록만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프로이트의 해석이 묘한 설득력을 지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6~17세기로 다시 돌아가서 다빈치의 그림을 해석하라고 한다면 어느 누가 감히 이와 같은 해석을 꿈꿀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정도의 변화는 급진적이라고 표현할 수 조차 없다. 그 이후에 전개되는 미술사의 변모는 더욱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좀 더 수려한 비유를 빌려 보자면, 과거의 미술은 세계를 창조하려 했다면, 현대의 미술은 세계를 빨아들여 블랙홀이 되고 싶어 한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1915년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1878~1935)라는 화가는 하얀 바탕 위에 검은 사각형 하나만 그려 넣고 이 작품을 미술 작품이라고 버젓이 내밀었다. 이와 같이 회화 속에 대상성이 사라져 버리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진리 미학은 힘을 잃게 되었고 고전 회화와 달리 현대 회화는 내용자체를 지니지 않는 방향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

 

 

 

대상성이 사라진 추상적인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그림의 본질을 내용의 올바름에서 찾기 보다는 형식의 아름다움에서 찾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추상이 극한에 이르다 보니 칸트의 형식미학으로도 서술될 수 없는 모양의 끝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곳에는 하얀 바탕 위에 검은 사각형만 남을지도 모른다. 그림 속에서 세상을 끌어 내고, 의미를 부여 하고, 해석을 하려는 모든 시도는 해체되고 그저 모든 세상이 사라지고, 의미는 소멸되며, 해석은 부질 없는 짓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물론 19세기 즈음인 현대 미술사의 역사 속에서 과학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려 했던 인상주의와 같은 분파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문자언어로 쓰인 과학이론을 미술이라는 메타언어로 옮겨서 세계를 재현해 보려는 그들의 작업은 가상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거부했으며, 일상의 사물과 예술작품의 경계는 모호해 져만 갔다.

 

요제프 보이스는 모든 사람이 다 예술가다.” 라는 대담한 주장까지 한 걸 보면, 이젠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도 크게 바뀌어야 하는 건 아닐까?

 

미술의 역사, 그리고 미학은 철학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화가들이 자신들의 머릿속에 체계를 미리 정해 놓고 그것을 그림 속에 표현하려는 표상주의’, ‘재현주의지니고 그림을 그려왔었던 과거와는 달리, 쟈크 데리다나 질 들뢰즈와 같은 해체주의 철학자들은 표상주의적 태도자체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표상주의는 현실의 모든 존재에 잠재해 있는 저마다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목소리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칸트는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이미지를 도식(Scheme)이라고 불렀다. ‘한 점에서 동일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이라는 원의 정의가 개념이라면 그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 머릿속에 떠올리는 동그란 형상의 이미지가 바로 도식이라고 볼 수 있다.

 

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은 개념의 밑바닥에 숨어 있는 도식을 새롭게 바꿔 주면 기존의 개념은 파괴되고 새로운 개념이 들어설 것을 기대했다. 그리고 진부하고 일정한 개념을 거부하는 그의 철학이 미학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쟈크 데리다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학자들은 칸트가 근대 미학을 대변하는 철학자라고들 말한다. 그는 다빈치의 그림처럼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있는 예술 작품을 보고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떤 편견이나 사념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었다. 칸트에겐 나름의 기준이 있었고, 절대성이 있었다.

 

 

      -쟈크 데리다-

 

 

또한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그 작품 자체를 에르곤(ergon)이라 부르고, 그 작품을 둘러 싸는 장식들이나 액자 등을 파레르곤(parergon)이라 부름으로써 이 두 가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바로 칸트를 포함한 전통적인 사상가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데리다는 미술작품의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을 반대한다.

 

 

데리다는 결국 파레르곤이 에르곤에 포함됨을 나름의 방식으로 증명해 낸다. 이와 같은 철학적 논의는 결국 미술 작품 그 자체를 구성하는 어떠한 고정된 의미도 쉽게 해체시켜 버린다. 이와 같은 해석학적 기법 또한 미학 속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일찍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저서 [논리철학 논고]에서 이런 구절로 끝을 맺었었다.

말할 수 없는 것, 그것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이렇게 언어가 침묵하는 곳에서 예술은 시작되며, 언어가 세계에 대해 말을 한다면, 그림은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세계를 보여준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모든 이해는 결국 언어적 이해라고 볼 때, 우리는 언어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림을 감상하며 미적인 경험을 강렬하게 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언어로 돌아온다.

 

하지만 해체주의 앞에선 모든 텍스트 또한 그림 작품이 해체되듯이 해체될 것이 자명하다.

 

이와 같은 해체주의 철학미학에 미친 영향을 염두에 두면서 다시 현대 미술의 포스트 모더니즘적 분위기로 돌아가 보자.

 

앞에서도 서술했던 것처럼 현대 미술 그 자체는 너무도 추상화 되어 버리고, 주관성이 강화된 나머지 비평가의 근사한 해석의 도움을 받든지, 아니면 예술가 스스로 이론가가 되어 자기 작품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해 줘야지만 이전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드넓은 바탕 화면에 점을 하나 찍어 두고, 이게 바로 놀라운 미술 작품이라고 주장한다면 어찌 그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현대 미술에선 단 하나의 진리가 강요되기 어렵다. 미술 작품을 보는 란 존재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 미술 작품완성되는 것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고정되고 고착되는 것을 거부하는 미학의 길’. 더 나아가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는 것 조차도 언어의 빚을 지고 엉거주춤 움직여야 한다면 그 해석마저도 해체시켜 버릴 수 있는 시대.

 

그게 바로 작금의 미학이 걷고 있는 이 아닐까 싶다.

 

미술이 걸어가고 있는 은 과연 이전보다 더 발전된 것일까? 아니면, 더욱 퇴보하게 된 것일까?

 

모든 것이 해체되고, 모든 진리가 상대화되고 나면 우리는 진정한 미학의 아름다움에 심취할 수 있게 될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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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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