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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하성 정책실장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다소 이상주의적으로 들릴 순 있으나, 일반 재분배(복지를 확대)를 통한 방식은 한계가 있으며 원천 재분배(임금 격차 해소)를 통해 경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그의 관점은 상당히 신선했다.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이 미비하거니와, 주로 일방적으로 학습하는 수 밖에 없으나 객관적인 그래프를 제시하면서 꼼꼼하고, 치밀하게 기록된 책은 상당히 중요한 통찰력을 안겨준 게 사실이다.

분명히 경쟁력 있는 이들이 더 많은 자원을 가져가야 하는 건 맞지만 그런 것 치고는 임금의 격차가 너무 심하며(1년 연봉이 1억 5천인 사람과 3000만원인 사람의 차이는 너무 가혹하다), 더 나아가 비정규직/정규직 간의 문제들도 포괄적으로 조망하는 내용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지금 읽고 있는 강준만 교수의 [바벨탑 공화국]에서는 서울에 모든 인프라,자원이 밀집되어 있는 hyper-centralization(초집중화) 문제를 다루는데 이 영역도 시사점이 많은 것 같다. 더 나아가서 아파트, 부동산, 서울에 과밀집된 대학 등의 문제를 함께 살펴봄으로써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존망을 논하는 데 논조는 상당히 강하지만 알아둘 만한 내용이 꽤 많이 들어 있는 책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는데 한 가닥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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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또는 서울이 바벨과 비슷하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초고층 아파트엔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우선 바벨탑의 이미지만 빌려오자. 아파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한국은 현재 50층 이상 주거용 초고층 건물을 세계적으로 4번째로 많이 보유한 나라인데, 2008~2014년 사이 31층 이상 고층 건물은 503동에서 1319동으로 2.6배 급증했다.

이런 급증 추세는 더욱 가파르게 위를 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왜 그럴까? 물론 돈 때문이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다.

초고층 아파트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다.

 

 

땅값이 비싼 곳에 있어야 한다.

어디가 땅값이 가장 비싼가?

서울이다.

그리고 강남이다.

강남에 대한 열망은 강하고 강남의 땅은 제한되어 있으니 높이 올라가는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런 '경제 원리'의 메커니즘은 전국으로 확산된다.

바로 여기서 바벨탑의 이미지가 생겨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벨탑은 오만할망정 신에게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한 각자도생형 투쟁이다.

그래서 수많은 바벨탑이 세워지며, 상호 소통이 불가능해진 불통은 이미 이 단계에서부터 나타난다.

 

이 바벨탑들은 탐욕스럽게 질주하는 '서열 사회'의 심성과 행태, 그리고 서열이 소통을 대체한 불통 사회를 가리키는 은유이자 상징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은 추상적 당위일 뿐, 구체적 현실은 바벨탑 공화국이다.

헌법 제 2장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고 했지만, 이 아름다운 말은 과거의 신분제를 대체한 서열제 앞에선 무력해지고 만다.

우리의 삶을 보자.

주거지만 서열화되어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은 대학 입시에서부터 취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다 서열화되어 있는 나라다.

이 지구상에 서열 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겠는가.

문제는 서열 격차다. 예컨대, 서열 의식이 한국 못지 않은 일본만 해도 중소기업의 연봉은 대기업의 80%를 넘지만, 한국은 겨우 절반 수준이다.

 

사회적 대접까지 돈으로 환산하자면 절반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일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간의 임금은 최대 4.2배 차이가 난다. 이게 바로 한국의 청년 실업률이 일본의 2배가 넘는 결정적 이유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걸 당연시하면서 방치한다. '모든 노동자의 대기업 노동자화'와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목표를 진보적인 것이라고 내세우면서 언제 실현될지도 모를 기약 없는 목표에만 매달린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경향신문] 논설위원 박종성이 잘 지적했듯이, 한국 사회에서 정규직 진입은 '사활의 문제'가 되고, "정규직의 성안으로 들어가면 문을 닫아버리고 자신만 살겠다"고 혈안이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분신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차별에 한이 맺힌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는 "우리도 정규직 드나드는 정문 앞에서 데모 한 번 하고 싶다"고 절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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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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