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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여전히 권위주의자가 많은 사회이다.

좌에도 우에도 많다.

리더십 연구의 대가 맥그리거 번스(James Mcgregor Burns) 교수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을 연구했다.

 

그가 루스벨트 대통령이 교활한 여우와 용맹스러운 사자의 모습을 다 가졌기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는데,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런 리더십에 가장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즉, 이런 리더십이 권위주의 문화에서 먹힌다는 말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레이건은 별명이 '테플론(teflon) 대통령'이었고 오바마는 '벨크로(velcro) 대통령'이었다.

 

 

테플론은 음식이 팬에 들러붙지 않도록 하는 코팅이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레이건은 ​박근혜처럼 유체이탈 화법을 주로 사용하며, 사과를 하지 않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면 국민이 "맞아, 저런 노인네가 뭘 알았겠어. 우리 불쌍한 대통령"​이라면서 보호해 줬다.

벨크로는 알다시피 등산복 같은 데 붙이는 찍찍이인데, 이는 주위의 먼지를 다 끌어들인다.

 

​오바마가 사과할 때마다 미국민은 "그래, 당신이 잘못했죠? 다 당신 탓입니다."

라고 했다는 뜻이다. 즉 권위주의자들은 사과를 잘 하는 대통령을 우습게 본다.

 

​오바마도 임기 중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기에 퇴임 무렵의 지지도가 임기 중보다 더 높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똑같이, 임기 중에는 걸핏하면 오바마 탓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이유는 오바마 대통령이 사과를 잘 했기 때문이다. 신좌파는 내 행동이 남과 달라서 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했다면, 비록 내가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마음의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 사과가 내 정체성을 손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왕따의 정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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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서구처럼 수백 년에 걸쳐 진보와 보수가 형성된 게 아니라, ​해방 이후 지금까지 몇십 년 동안 갈등을 압축적으로 경험해왔다.

 

이건 순전히 주관적 해석이므로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 진보의 역사는 시민권을 향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고, 시민권의 내용도 세 차례에 걸쳐 변화를 겪어 왔다.

제 1세대 시민권은 참정권이었고, 제2세대 시민권은 경제적 권리(복지권)이었다. 유럽에서는 전후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복지국가가 정착되었지만, 미국에서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복지권을 헌법 개정 조항으로 포함시키려다 갑자기 서거해 아직 시민권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제3세대 시민권은 자치권이다.

소수민족이나 문화를 지키기 위한 시민권인데 이를 헌법에 규정한 나라는 소수에 불과하다. 나는 제 3세대 시민권을 프랑스 68혁명의 참여민주주의 정신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19세기와 20세기는 ​더 많은 보통사람이 참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싸움의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귀족에서 유산 계급으로, 유산 계급에서 평민으로, 그리고 노동자와 여성과 젊은이들로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참정권이 허용되는 방향으로 인류의 역사는 진보해 왔다.

​우리는 일제에서 해방됨과 함께 투쟁 없이 미군정에 의해 참정권을 부여받았다. 그 후 우리의 민주주의는 몇 차례 굴절됐고, 급기야는 독재정권의 등장으로 그 참정권마저 빼앗기게 되었다.

 

참정권을 향한 투쟁이 4.19, 5.18 그리고 6.10으로 이어졌다.

 

투쟁을 통해 드디어 참정권을 획득한 건 1987년 대통령 직접선거를 내세운 개헌운동의 승리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

제1세대 시민권을 향한 운동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운동이기도 했다.

 

1987년의 6.10 항쟁은 화이트칼라가 가세함으로써 성공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민중운동이라기보다는 지식인, 대학생, 중산층 위주의 제1세대 시민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그랬듯이 경제권을 향한 노동자 정당의 제2세대 운동이 일어나면 제1세대 운동에서 진보적이었던 유산계급은 보수화된다.

열린우리당은 탈지역주의 정치개혁을 소명으로 내걸고 창당했기에 영국의 자유당과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영국의 자유당과 참여정부는 달랐다.

 

노무현은 2002년 대선에서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새 정치를 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되었다.

​탈지역정당인 열린우리당의 탄생과 과반수 의석 달성, 노무현 정부의 정치개혁으로 한국민의 정치만족도는 2002년 말 아시아 최하위(25%)에서 2004년 초 1등(75%) 이 되었다.

정치개혁을 1년 만에 거의 완성했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를 의제화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 제2세대 시민권운동에 본격적으로 불을 댕긴 장본인이 노무현이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1980년대 후반에도 노동자의 인권을 변호하기 위해 싸웠다.

그러나 정동영은 노무현이 의제화한 제2세대 시민권을 2007년 대선에서 의제화하지 못했다.

 

그는 탈지역주의 정당인 열린우리당을 깨고 이도 저도 아닌 대통합민주신당을 탄생시켰는데, 선거에서 대패했고 신당은 정당으로서의 역할도 하지 못했다.

 

 

2008년 총선에서 참패한 대통합민주신당은 2012년 총선에서 혁신과 통합이라는 재야 시민단체 세력과 통합하면서부터 노동 분야 전문가를 대폭 공천했으며, 대선 후보가 된 문재인은 복지, 재벌개혁 등 좌파적 경제 공약을 대거 내걸었다.

 

민주당이 경제적 진보정당의 색채를 띠면서 호남의 기득권 정치인과 전문가 출신의 중도 정치인(박영선, 김한길, 변재일 등)이 안철수와 한 편이 되고, 비교적 진보적인 친노/민평련이 연대하는 본격적인 이념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광옥, 한화갑, 김경재 같은 호남 정치인들은 새누리당으로 넘어갔다.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정권교체를 함으로써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됐다고 믿기에 보수화 행보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호남에서의 분열은 민주당이 제2세대 시민권인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자 세대 간 이념 갈등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유럽 역사에서 살펴봤듯이, 제1세대 시민권에서 진보적이었던 자유당이 제2세대 시민권 운동이 등장하면서 몰락하거나 보수당에 흡수되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역사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중도보수정당이었지만, 2012년 이후 세계화와 양극화의 흐름 속에서 경제적 민주화와 제2세대 시민권을 향한 시대적 과제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호남을 중심으로 했던 60대 이상 민주화 세력이 제2세대 운동이 일어나면서 보수화되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중도보수적인 안철수와 호남 정치인들이 국민의당으로 뛰쳐나갈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단지 문재인이 싫어서라기보다는 이념 갈등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호남 출신이었기에 민주당에 몸담았던 것이지 민주당이 경제적 민주화를 지향하는 정당이라서 온 게 아니었다.

 

김수환 추기경, 김동길 교수 등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던 지식인들이 민주화 이후 보수적으로 변화한 이유 역시 단지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유럽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화 이후의 필연적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와 독재의 균열이 사라지자 민주화운동을 했던 일부 유산 계급이 보수화된 것이다.

 

호남인들은 모두 진보여야 한다는 가정 자체가 잘못이라고 본다.

 

​호남인들 중에도 기득권 세력이 있다.

 

우리의 소선거구 선거제도는 지역주의 토호 세력에는 큰 행운이다.

 

호남의 의원들은 공천만 받으면 천년만년 당선될 수 있다. 호남에서 민주당 다선의원이 보수화되는 건 당연하고, 때마침 등장한 국민의당은 민주당에 비해 경제적 쟁점에서 더 보수적이다.

따라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합쳐야 한다는 주장은 과거로 회귀하자는 주장이나 다름 없다.

 

이러한 이념적 분열을 거치면서 지역주의가 약화되는 것이므로, 호남의 분열은 사실 한국 정치 발전에 매우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분열을 안타까워하거나, 서로 간에 원망하고 미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거 역사에서 진보/보수라는 이념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등장한 건 1997년 대선 이후 2000년 총선에서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호남의 한이 풀리면서 호남인들의 분열이 시작된 것이다.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수도권에서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이탈한 것이다. 고소득, 고학력, 성공한 호남 출신 수도권 유권자들이 이익 투표를 하면서 한나라당을 찍기 시작했다.

 

더는 민주당을 찍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지역주의의 약화는 2000년 총선 때 시동이 걸렸다.

서구에서는 20세기에 좌우 대립이 있었다.

영국에서 자유당이 보수당에 일부 흡수되면서 사라지고, 노동당이 좌파 정당으로 등장해 복지권이 확립되었다.

그래서 20세기에는 ​경제적 민주화를 추구하면 좌파, 경제적 자유(사유재산권)를 추구하면 우파가 되었다.

​경제 문제가 정당을 가르는 핵심 균열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 68혁명이 일어났다. 68혁명은 경직되고 비인간화된 공산주의에 대한 염증을 표출했다.

20세기의 자본이냐 노동이냐 하던 경제적 균열은 둘 다 물질주의 뿐이다.

물질주의는 빈곤과 전쟁 등을 겪은 세대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68세대는 ​2차 대전 이후 평화와 풍요 속에서 자란 중산층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전후 세대로서 배고픔과 전쟁의 위협을 모른다. 이들에겐 물질이 더는 중요하지 않기에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기본적으로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좌우가 서로 싸우면서 똑같이 권위주의적이라는 점을 혐오했다.

​권위주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집단주의에 기초한다. 집단주의는 집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데, 이것이 유럽의 신세대에게는 설득력이 없었다.

경제가 풍요로워 질수록 인간은 개인주의적으로 변한다. 마치 물리학에서 온도가 올라갈수록 분자의 운동이 활발해져 고체에서 액체, 액체에서 기체로 변하는 것과 같다. 68세대에게는 물질보다 자아실현과 정의 같은 가치관이 더 중요했다.

예컨대 인권과 일상 속에서의 민주주의, 환경, 생태, 여성 등의 가치를 높이 사고 이를 위해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들이 물질 이후의 가치를 추구한다고 해서 탈물질주의자라고 부른다. 유럽은 1968년 이후 30년간 혁명적 변화를 거치며 21세기에 도달했다.

.................

민노당이 원내에 진입하면서 경제 균열이 한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자, 진보언론과 지식인은 영국처럼 자유주의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사라지면서 민노당이 제1 야당이 되리라 기대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와 열린 우리당에 가혹하게 굴었다. 불행히도 한국은 분단과 6.25를 겪은 나라다. 빨갱이, 좌파 기피증이 민노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가로막았다. 이것이 우리가 유럽과 달리 제2세대 시민권을 성취하기도 전에 건너뛰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김대중 대통령이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세계 최강의 IT 국가가 되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인터넷은 시민에게 정보를 주며 정보는 곧 권력이다. 제2세대 시민권을 확립하기도 전에 권력을 가진 시민들이 제3세대 시민권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게 노사모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한 노사모가 한국 탈물질주의 운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은 인터넷을 활용해 대통령이 되었는데, ​미국의 오바마는 2008년에야 이를 벤치마킹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우리가 미국보다 6년이나 빨랐던 것이다.

​우파는 노무현을 좌파라고 공격했고, 좌파는 노무현을 신자유주의자라고 공격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노 대통령은 "그럼, 참여정부가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거냐"고 한탄했다.

 

그랬더니 좌우 언론은 노 대통령도 스스로 참여정부를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인정했다며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된 시민들은 양쪽의 공격이 다 부당하다고 느꼈다.

노무현은 분명히 공공성을 추구했으면서도 세계화와 시장경제의 장점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탈권위주의적인 그의 모습이 좌우 정치인 누구보다 진보적으로 보였다. 이 때문에 나는 노무현 왕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론을 보수, 진보가 아니라 우파, 좌파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인 노무현과 좌파 언론이 갈등을 보이는 이유는 좌파 언론이 노무현만큼 진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좌파 언론이 20세기 경제적 평등이라는 구좌파 이념을 추구한다면, 노무현은 21세기의 진보라고 할 수 있는 탈물질주의 이념을 추구했다.

​탈물질주의의 요체는 탈권위주의적이며, 이들을 유럽에서는 신좌파라고 부른다.

​신좌파는 좌파의 아류가 아니라 우파(시장)와 좌파(국가)를 모두 배격하고 제3의 영역에서 합리적 개인의 연대를 통한 공동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제3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진보적 자유주의'라고도 부른다.

영국의 자유당이 아니라 신좌파였던 노무현은 우파 언론뿐만 아니라 구좌파 언론과도 이념 갈등을 겪었던 것이다. 나는 늦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의 정체성을 찾아 주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21세기 진보적 자유주의자였습니다."

-[왕따의 정치학]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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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1년 6월 7일자 [미디어 오늘] 이영태 기자와 나눈 인터뷰에서 그의 '언론관', '조선일보관'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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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는 좋은 언론과 나쁜 언론이 있다.

정당을 나눌 때 보수와 진보로 구별한다.

그러나 이를 나누기 전에 정당은 정통성 합리성 신뢰성을 갖춰야 하며 이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이 기본적으로 합리적이고 정당한 방법으로 보도하는가,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가, 사실의 취사선택에 있어 합리적 균형을 유지하는가, 일관된 관점을 견지하는가 등이 중요하며 이 원칙을 지키면 좋은 언론, 합리적 언론이라 할 수 있다.

언론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만큼 정확한 사실과 가치 있는 보도를 해야 한다.

정치인을 비판하기에 앞서 스스로 과거를 고백하고 사죄해 겸손하고 품위 있는 언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언론이 달라지면 정치도 달라지고 국민도 달라진다.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이론이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 통념이 됐을 때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는데 공론화와 통념에 기여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며 언론을 통해 변화의 계기가 마련된다.

​도대체 언론이 비판하는 실업자 문제, 탈북자인권, 의약분업 등에 대한 대안이 뭐냐고 묻고 싶다.

언론개혁은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 편집권과 인사권 독립이 우선이며 언론간의 경쟁은 보도의 품질로 이뤄져야 한다.

언론사가 배송 시스템의 기득권이나 우위를 갖고 경쟁하는 것은 문제이며 공동배송제 등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광고주로부터의 독립도 큰 문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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