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성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교 교양'에 해당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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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교회사에서 단 한 사람의 신앙인을 고르라면 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꼽는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해설서나 논문에서 "최고의 신학자요 신자"라는 문구를 흔히 본다. 그러니 한 개인에 대한 숭배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허나, 그는 그런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그는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 큰 바위 얼굴이다.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가르침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의 집 마당의 참새처럼 집을 짓고, 제비처럼 새끼를 칠 보금자리를 얻을 테다.

 

그는 사이에 낀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이교도인 아버지와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 사이,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길목, 로마 제국의 해체와 아직 오지 않은 새로운 질서 사이, 진리에 대한 무한한 열망과 더불어 세속적 성공과 육체적 욕망에 대한 탐닉 사이에서 쩔쩔 매면서도 어느 하나를 버리지 못한 사람, 하나님을 만나면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라는 선언에 합당한 삶을 산 사람, 그렇지만 이전 것을 버리기보다는 새것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통합해 낸 기독교 신학의 아버지가 된 사람, 그가 성 아우구스티누스다.

 

그랬기에 그는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이전 것이 필요 없다고, 버렸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그 흔적과 영향력이 완연하다. 

 

 

4권에서는 설교자에게 성경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성경을 읽고 또 읽는 것만으로 말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데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성경 곳곳에 '수사학의 예문'이 매우 많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귀찮을 정도이며, '수사학의 표본'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런데도 당대 최고 수사학자의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그 수사학이 기독교 안에서 수용되고 변용되는 탁월한 재구축의 모델을 보여 준다. 고전 수사학이 말한 웅변의 목적은 셋인데, '가르치고, 매료하고, 설득하는' 것이다. 그는 순서를 살짝 바꾼다.

 

아무래도 진리 전달이 초점인 기독교 설교의 특성상, 설득이 매료보다 앞선다. 전달이 우선인 까닭이다.

 

읽는 것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문자를 해독하는 능력이 없으면, 그러니까 국어 실력이 떨어지면 성경을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혹자는 바울 사도의 말을 인용하면서 문자가 아닌 영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허나, 성경은 언어로 기록된 이상, 그 말과 글을 읽어 내는 능력과 독해 방식을 무시하면 오독하기 십상. 그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을 면밀히 검토하고, 그 안으로 깊숙이 치고 들어간 다음,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김기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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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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