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종교 #방해'에 해당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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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정말 사실일까?

 

모든 종교인들은 편견에 사로잡혔고 아는 것이 없다고 무시해야 할까?

따지고 보면, 그들 중 일부는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이 아닌가.

 

그들이 정말 과학이 절대 빛을 비출 수 없는 우주의 어두운 구석을 찾아내기를 바라고 있을까?

 

이것은 과학의 초기 선구자들 대부분에 대한 공정한 묘사도, 참된 묘사도 아니다.

 

케플러처럼 그들은 다름 아닌 창조주가 존재한다는 확신에 영감을 받아 점점 더 높은 수준의 과학에 이를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과학이 빛을 비춘 우주의 어두운 구석이야말로 신의 천재성에 대한 증거의 보고였다.

 

그럼 생물권은 어떨까?

 

생물의 정교한 복잡성은 피터 앳킨스의 든든한 동료인 리처드 도킨스가 믿는 대로, 설계된 것처럼 보일 뿐일까?

 

자연법칙의 제약 하에서 우주의 기본 물질들에 무작위로 작용하는 눈먼 자연적 과정을 통해 정말 합리성이 생길 수 있을까?

 

이성적 정신이 맹목적이고 정신없는 과정에 의해 정신없는 몸에서 "생겨났다"는 것이 심신관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자연주의적 이야기의 지위를 둘러싼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여전하다.

 

그렇다면, 자연주의는 실제로 과학이 요구하는 것일까? 아니면 과학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과학에 덧붙여진 철학이라고 봐야 할까?

 

자연주의가 종교적 신앙과 비슷한 신앙의 표현에 더 가깝지 않느냐고 감히 물을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때로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보면 자연주의가 신앙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전 시대의 종교적 이단자들이 순교를 당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보조금 지원이 중단되는 형태로 일종의 순교를 당할 수 있는 까닭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성공하려면 올바른 질문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떤 질문들은 묻는 것도 위험하고, 답변을 시도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과학의 정신에 부합하고 과학에 이롭기도 하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것 자체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예를 들어 중세에는 과학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어떤 측면에서 벗어난 이후에야 진정한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달 위로는 모든 것이 완전하다고 생각했고, 그가 볼 때 완전한 운동은 원운동이므로, 행성과 항성이 완전히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고 가르쳤다.

 

달 아래로는 움직임이 선형적이었고 불완전했다. 이 견해는 여러 세기 동안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통해 가장자리가 울퉁불퉁한 달의 분화구를 보았다.

 

우주가 말을 걸었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선험적인 완전 개념에서 연역한 일부 결론이 망가졌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운동에 집착했다.

 

"우주의 그 영역에서 완전한 질서가 유지되려면 움직이는 천체들이 원운동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원운동도 운이 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부에 계속]-  /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에서 -

 

*모든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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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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