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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측정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다.

아니 지능을 가진 어떤 존재도 아니다.

적어도 C60이 어느 슬릿을 지났는지 '공기 분자가' 알 수 있으면 측정이 일어난 것이다.

(60은 아래 첨자)

​그렇다면 측정의 주체는 공기 분자일까? 차일링거는 또 다른 실험을 한다.

C60은 온도가 높은 오븐에서 생성되어 튀어 나간다. 물을 끓여 수증기를 발생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 실험에서는 섭씨 1500도 정도의 온도로 가열한다.

이 정도의 온도가 되면 C60이 빛을 방출한다. 대장간에서 금속을 가열하면 붉은색 빛이 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다. 흑체 복사라고 부르는 현상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퍼옴)


이렇게 방출된 빛은 C60의 위치를 '외부'에 알려준다. 어둠 속에서 전등이 달린 모자를 머리에 쓴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그러면 다시 여러 개의 줄무늬는 2개의 줄무늬로 바뀐다.


측정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여기서도 방출된 빛을 우리가 직접 받아 볼 필요도 없다. 빛이 방출되기만 하면 그만이다.

사실 C60 하나가 방출하는 빛의 양은 너무 작아 보기도 쉽지 않다. 아무튼 여기서 측정의 주체는 누구인가? 결국 측정(관측)의 주체는 우주 전체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엄밀히 말하면 C60을 제외한 우주 전체가 측정의 주체다. 양자 역학, 아니 모든 과학은 이 세상을 최소한 둘로 나눈다. 관심 있는 대상과 그 대상이 아닌 것.  대상이 아닌 것을 '환경(environment)' 이라 부른다.


당신이 앞에 놓인 고양이에 관심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우주는 고양이와 고양이가 아닌 모든 것, 즉 환경으로 나뉜다. 고양이와 환경을 합치면 우주 전체가 된다. 고양이를 들여다보고 있는 당신도 환경의 일부일 뿐이다.


양자 역학에서 측정의 주체는 환경이다. 당신이 측정을 하지 않더라도 환경이 실험 대상에 대해 뭔가 알게 되면 측정이 일어난 것이다.


환경이 의식을 가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측정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이렇게 설명해 보자. 첫 실험에서 공기 분자가 측정의 주체다. 공기 분자는 물론 환경의 일부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C60 주변의 공간이다. 빛이 C60에서 환경으로 이동한 것이다.

 

 


누군지 정확히는 말하기 힘들지만 환경은 C60의 위치를 안다. 이처럼 환경이 주체가 되는 관측을 '결어긋남'이라 부른다.

당신도 약자 역학의 지배를 받고 있다.  당신의 몸은 원자로 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당신은 2개의 문을 동시에 지날 수 없다. 이것은 끊임없이 결어긋남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결어긋남을 막을 수만 있다면 당신도 2개의 문을 동시에 지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숨도 쉬지 말아야 하고, 단 하나의 공기 분자와 부딪쳐도 안 되며, 심지어 빛과 부딪쳐도 안 된다.

당신 몸을 이루는 단 하나의 원자라도 외부에 떨어뜨리면 안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실상 너무 어려워서 우리는 양자 역학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슈뢰딩거 고양이를 누가 죽였는지 답할 수 있을까?

-[김상욱의 양자 공부]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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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어긋남. 용어가 좀 뚱딴지 같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측정 문제 혹은 거시, 미시 세계의 구분 문제에 난데없이 '결'과 '어긋남'이 라니!

사실 이 용어는 파동에서 나온 것이다.

이중 슬릿 이야기를 할 때 파동은 여러 개의 줄무늬, 즉 간섭 무늬를 보인다고 했지만, 모든 파동이 그런 것은 아니다.

파동이라도 간섭 무늬를 제대로 보이려면 결이 잘 맞아야 한다. 결이 맞지 않아 엉망으로 되어 있는 파동은 파동이라도 간섭 무늬를 만들 수 없다. 예를 들어 야구장에서 파도 타기를 할 때,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일어났다가 앉지 않으면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이처럼 결이 맞지 않은 파동을 '결어긋난 파동'이라 부른다. 파동이 간섭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을 때, 결어긋남이 일어났다고 한다. 결어긋난 파동이 이중 슬릿을 지나면 입자가 지난 것처럼 2개의 줄무늬가 나타난다.

결어긋남을 지지하는 수 많은 실험적 증거가 있다.

이 가운데 직관적으로 가장 이해하기 좋은 것이 바로 1999년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의 안톤 차일링거 교수 연구팀의 실험이다. 슈뢰딩거 고양이의 역설을 들은 차일링거의 반응은 이랬다.

"뭐가 역설이야? 그냥 실험해 보면 되지!"

물론 이들이 고양이를 가지고 실험을 한 것은 아니다. C60 이라는 거대 분자로 이중 슬릿 실험을 수행한 것이다.

(C60 의 분자 구조)

C60은 탄소 분자 60개가 축구공 모양으로 모인 것으로 지름은 1나노미터에 불과하다. 수십만 개를 일렬로 늘어쉐어 봐야 머리카락 두께 정도 밖에 안 된다. 크기만 보면 여전히 작다고 할 수도 있지만, 원자가 60개나 모인 것이다.

물리학자의 입장에서는 고양이만큼이나 큰 느낌이다. 그래서 거대 분자라고 부른다.

실험의 결론은 간단하다.

​이런 거대 분자도 파동성을 보인다. 즉 여러 개의 줄무늬가 나온다는 말이다.

끝!

현재 차일링거 그룹은 분자의 크기를 점점 더 키워 가면서 실험을 하고 있는데, 1차 목표는 분자량 5800의 인슐린으로 파동성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양이로도 파동성을 보일 수 있다는 말일까? 차일링거의 대답은 간단하다. "물론! 단, 결어긋남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 
(안톤 차일링거 교수)


사실 C60의 실험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이 분자가 이중 슬릿을 지나 스크린에 도달할 때까지 절대로 측정(관측) 당하지 말아야 한다. . 여기서 측정이란 무엇일까? 내가 안 보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분자가 날아가는 중에 공기 분자와 부딪치면 적어도 부딪힌 공기 분자는 C60이 어느 슬릿을 지나는지 알게 된다. 즉 측정을 당했다는 말이다.

​(필자: '측정'의 정의 자체가 상당히 광범위 해진다.)

따라서 여러 줄무늬를 보려면 반드시 진공을 만들고 실험을 해야 한다. 공기 분자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다.


진공도가 나빠져서, 즉 공기 분자가 하나 둘 돌아다니기 시작해서 C60이 이중 슬릿을 지나는 동안 공기 분자와 적어도 한 번 부딪치면 여러 줄무늬는 2개의 줄무늬로 바뀐다.

C60과 부딪치는 순간 공기 분자는 C60의 위치를 알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공기 분자를 붙잡고 물어보면 우리도 알 수 있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즉 공기 분자는 C60의 위치를 알고 있고 우리는 모르더라도 간섭 무늬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김상욱의 양자공부] 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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