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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작성해 본 글입니다. 비교적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경계성 인격(성격)장애의 관점에서 영화를 고찰해 봤습니다. Borderline personality trait 을 지닌 정도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지만 일단 성격 조직의 방향성을 파악하는데는 꽤 도움이 되는 영화였습니다. 자신의 성격을 분석하고, 알아가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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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성 인격장애를 만나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통해 고찰해 본 경계성 인격장애-

 

 

 

 

경계성 인격장애.

 

생소한 이들도 있을 것이고, 익숙하게 들어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경계성 인격장애가 생소한 이들에게 개념적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과 더불어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이 존재하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좀 더 따뜻하게 포용해 줄 것을 부탁 드리고자 하는 것이다.(그리고 경계성 인격장애를 지닌 이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단 인격 장애(또는 성격 장애)에 대해서 간단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인격장애란, 개인의 고유한 성격특질이 그가 속한 사회, 문화적 기대로부터 심하게 벗어나 있고, 이 특질이 경직되어 있어서 아무 상황에서나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심각한 기능장애를 야기하거나 주관적인 고통을 유발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와 같이 잘 정립된 개념이 이미 존재하긴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 만큼은 좀 더 진보적인 의식을 가지고 이 개념에 다가가 보면 좋을 것 같다.

 

이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좀 더 깊게 들어가 보자.

 

우리는 인격장애’(Personality Disorder)라는 명명을 통해 특정한 사람들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해 뒀지만, 엄밀하게 본다면 정상과 비정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건 너무 단순한 해석이 될 것이다.

 

결국은 동일한 스펙트럼의 연속선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 좀 더 적응하기 힘들어 하고, 일상생활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있는 이들에게 이와 같은 수식어가 붙게 된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들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고 관계를 맺다 보면, 도저히 비정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들을 많이 겪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아내야만 하고, 그들을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며 끌고 가야만 한다.

 

경계성 인격장애의 정의라든지, 특징들은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영화를 통해 경계성 인격장애를 쉽게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대개 영화에 대한 글을 남긴다고 하면 그 영화에 대한 총체적인 평을 남기고, 핵심이 되는 주제를 도출하는 식의 영화 평론을 많이 하곤 하는데 난 조금은 다른 접근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즉 이 영화 속에서 특정한 한 영역에만 집중했고, 그 영역에 대해 짤막하게나마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이 글의 전부이다.

 

일단 이 영화에 대한 표면적이고, 대중적인 평론은 [유쾌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사랑이 도중에 식기도 하고,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바로 알아가면 다시 그 사랑은 회복될 수 있다] 정도인 것 같다대중들이 이해하는 바로는 여자 주인공 정인’(임수정)이 그와 같이 신경질 적이고, 거칠어 지고 사랑스럽지 못한 여자가 된 것은 첫 마음을 잊어버린 남편 두현(이선균)이 아내를 아내답게 대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며 나중에 정인이 느꼈을 외로움을 동일하게 느낌으로써 두현은 정인을 이해하게 되고, 정인 또한 두현을 이해하게 된다는 설정을 많이들 지지하는 것 같다.

 

또한, 자신의 아내를 유혹해 줄 카사노바(류승룡)를 끌어 들이는 설정만 보면 단순하고 코믹하며, 자극적인 요소들이 버무려진 killing time movie로 비춰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집중했던 것은 좀 다른 영역이었다.

나의 눈을 통해 비춰진 정인은 원래부터 인격장애의 tendency를 보이는 캐릭터였다. , 원래는 사랑스럽고, 유순한 캐릭터였는데 사랑이 식고, 애정을 받지 못해서 날카롭게 변해 버린 캐릭터라기 보다는 이미 그 이전의 삶 속에서 그와 같은 히스테릭하고, 의존적이고, (더 나아가 경계성적인) 인격장애 tendency가 있어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여성의 기본 성향 속에는 감정적이고,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경향성이 들어 있긴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질 경우에는 abnormal 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요인이 그와 같은 성격을 형성시켰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정신분석학 적으로는 어린 시절 trauma를 경험했거나 중요한 타인을 상실한 경험을 했거나 부정적이고 비일관적인 부모의 양육방식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도 하는데 명확히 뚜렷한 원인을 찾기는 어렵다.)

 

 

이를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근거들은 많이 있다.

일단, 영화에서 묘사되지 않은 일본 유학 이전의 정인의 가정환경과 삶, 그리고 청소년기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화기애애하고, 훈훈한 scene만 보고서, 정인의 성격이 원래 부드러웠다고 유추하는 건 대단한 실수다. 왜냐하면, 인격장애 tendency를 지닌 이들은 다른 이들로부터 거절 당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하며, 스스로를 감추는 데 능하기 때문이다.(초기에는). 또한 기본적으로 외모가 아릅답고, 재능이 많은 여성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남성은 사랑스러운 눈으로 그 여성들을 바라보게 된다.(객관적인 데이터로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실제 상담사로 활동하는 이들은 조금은 가벼운 어투로 이와 같은 이야기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경계성 인격장애를 지녔던 유명 인물들을 찾다 보면 이와 같은 가설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자신의 소유가 되고 자신과 친밀한 관계 설정이 이뤄졌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경계성 tendency를 지닌 여성들은 돌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들을 돌변하게 만드는 유발 요인이 두현(남편) 쪽에 있었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trigger가 되었을 만한 남편의 행동은 결혼 전 보여줬을 정성 어린 보살핌과 극진한 대우가 사정없이 사라져 버림이라거나 무관심’, ‘애정 표현 전혀 없음’, ‘아내를 아내로 보지 않음등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남성들은 자신이 쟁취하고, 소유하게 된 여성을 더 이상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심리학적 분석도 가능하며,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는 건 사실이지만(정복욕구가 성취되었을 테니) 평생토록 한 순간도 빠짐없이 그와 같은 극진한 대우를 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바랄 수 없는 헛된 것을 바라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런 삶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 모두 자신이 그런 희생적인 사랑을 줄 수 없는 존재임을, 그리고 그런 희생적인 사랑을 받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게 관계 회복의 역설적인 첫 걸음일지도 모른다.)

 

결국 바랄 수 없는 이상을 쥐려 했던 정인은 자신이 기존에 지니고 있던 신경질적이고, 히스테릭하며, 충동적인 성향들을 보이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주변 환경과 주변 사람들을 control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남편을 남편으로 대한다기 보다는 남편 또한 자신의 존재를 빛내주고,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경계성 인격장애를 지닌 이들의 특징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과 과도한 집중으로 인해 모든 주변 환경과 주변 사람들을 자신을 빛내기 위한 소모품 내지 엑스트라로 여기는 경향성이 잘 드러나 있다.)

 

두현(남편)이 딱히 나쁘게 대해 준 게 아니건만, 정인이 느끼는 예민한 기질과 작은 사건에 대한 민감한 반응들은 너무 무리한 측면이 많다. 그와 같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세밀하고 작은 영역 하나 하나에 두현이 모두 동의를 해 주고, 긍정을 해 주는 건 불가능한 노릇이다.

 

그리고 인격 장애 tendency가 있는 여성이라면 10번을 긍정하다가도 1~2번의 부정이 개입되면 이를 사랑이 식었다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니, 남성의 입장에서는 괴로울 수 밖에 없다.(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구원자처럼 떠받들다가, 그 사람이 1~2번 사소한 실망을 남겨줬다 해서 그 사람을 쓰레기라고 모욕하는 게 경계성 인격장애를 지닌 이들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 만큼, 작은 것을 쉽게 포착할 수 있고 섬세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건 잘 활용하면 좋은 재능이 될 수 있고, 선하게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작은 것에도 쉽게 상처 받고, 작은 것으로도 쉽게 분노하는 상대하기 힘든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물론 당사자는 더더욱 힘들 것이다.)

 

특히 인격장애로 분류가 되기 위해서는 ego-syntonic(자아 동질적)한 기질이 드러나야 하는데, 즉 스스로가 문제가 있다고 여기기 보다는 자신은 정상인데 세상이 부조리한 것이며, 세상이 바른 길을 걷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강하게 휩싸여 있어야 한다.

 

물론, 실제로 상담을 해 보면 그와 같은 여성들은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은연 중에 느낄 때가 많고, 극도로 낮은 자존감을 지닌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겉으로 표현되고, 드러나는 모든 측면에서는 자신을 세상의 기준으로 세워 두고,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에 부합하지 않는 주변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퍼붓는다. (또는 괴로워 하며 절망한다). 정인이 영화 속에서 독설녀의 이미지를 굳힐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격장애 중에서도 히스테릭성 인격장애와 겹치는 부분도 많은 게 사실이지만, 전반적인 근거는 경계선 인격장애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해 본다. 큰 특징 중 하나인 감정적 충동성을 제어하지 못하고, ‘공허함을 잘 느끼는 특성도 일견 잘 드러나는데, 격렬한 성적충동에 휩싸여서 남편을 Sexual 한 방식으로 휘어잡고, 자극적인 요소가 개입될 때는 살아 있음을 느끼는 듯한 정인의 모습 속에서 감정적 충동이 잘 제어되지 않는 경계성 환자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으며, 혼자만의 시간이 돌아올 때 마음 속에서 느껴지는 emptiness(공허함)을 달래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는 정인의 모습 또한 잘 나타나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정인이 영화 도중에 나누는 대사들이다.절 버리시려는 건가요?이와 같은 고백은 흔히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사실, 영화감독이 심리학과 상담에 해박한 지식이 있고, 이와 같은 경험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해 봤을 가능성이 크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만들 때, 여고생들과 오래도록 인터뷰도 하고, 대화를 나눴으며 그녀들이 쓴 일기도 꼼꼼하게 분석해서 섬세한 심리묘사를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인격 장애 tendency를 보이는 여성들의 심리 묘사가 매우 섬세하게 들어 있음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경계선 인격 장애에서 두드러지는 큰 특징 중 하나인 ‘abandonment(유기,버림)에 대한 두려움이 잘 드러난 대사가 위의 대사이다. 영화 장면 중에서도 전화를 통해 확 죽어 버릴 것 처럼 이야기 하는 scene이 나오는데, 이와 같은 말들은 일종의 떠보기.

 

내가 이렇게까지 행동하는데 그래도 날 사랑해 줄 수 있어?’ 라는 모종의 test인 것이다. 다시 유기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버림 받을 것 같은 두려움. 모든 인간은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인정을 추구하며, 누군가로부터 버림 당할 것을 두려워 할 것이다. 난 이 글을 통해 특정 성향을 지닌 이들을 인격 장애가 있는 환자로 낙인 찍으려는 게 아니다.

 

Normal(정상)abnormal(비정상)이 서로 연장선 상에 있는 개념이며 이 둘을 나누는 구분이 모호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힘겨워 하는 모종의 지점이라는 건 있기 마련이다.(사람마다 상대적인 위치이겠지만)

 

자신이 느낄 때 문제가 있다고 느끼거나 다수의 주변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면 대개는(100%가 아니더라도) 모종의 표현을 사용하여 그와 같은 영역을 구분 지어 줄 필요도 있는 것 같다.(그렇기 때문에 인격장애라는 분류는 유용하고, 필요하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 보면 정인이 남긴 편지글이 잠깐 언급되는데, 남편이 자신의 이야기에 호응을 잘 안 해 주고, 지지해 주는 말을 안 해 주고, 가르치려 들거나 깎아 내리는 말을 할 때는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 버리는 느낌을 받는다는 표현도 나와 있다.

 

경계선 인격 장애가 지닌 큰 특징인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잘 나타나 있다.(또는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고, 자기로부터 소외, 분리를 경험하는 이인화(Depersonalization) 현상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 또한 경계성 인격장애의 중요 소견이다.) 이 또한 모든 인간이 근본적으로 중요시 여기는 영역이지만, 이들을 인격 장애로 분류하는 이유는 정체성의 이슈에 극도로 집착하기 때문이다. (때론 병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욱 심한 긍정과 지지가 요구된다.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일반적이지 않는 특이성을 지녔더라도 그 모습이 있는 모습 그대로 긍정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사실 오죽 견디기 힘들었으면(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다는 걸 일반인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가장 신뢰하고,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그와 같은 병적인 사랑과 관심을 요구하겠는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와 같은 상태에서는 원만한 가정생활을 꾸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병적인 집착과 끊임없는 사고, 충동적인 성향들은 조금만 잘 다듬어 지면 섬세함과 예리함, 명민함, 놀라운 예술성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가 경계성 인격장애에 가까운 인물이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이외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이와 같은 기질을 보이고 있다.) 또한 정체성과 연계된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다 보니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되면, 매우 건강한 모습으로 변화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구체적인 직장을 잡고, 자신이 즐겁고, 자신있고, 인정받으며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정인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또한 카사노바를 통해서 자신의 구미에 맞고, 자기가 원하는 needs(욕구)를 충족시키게 되자 날카로워진 감정이 누그러들고 평온을 되찾는 장면들도 많이 나온다.

 

이와 같이 회복이 있고나서의 정인은 당연히사랑스럽다. 그 어떤 여성들보다 재능도 많고,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는 남편인 두현이 그 사이에 많이 변했다기 보다는 비정상tendency를 정인이 극복한 것이다. 극복을 하게 된 요인들이나, 구체적인 방법들은 얼마든지 더 분석이 가능하다.

 

 

진실되이 마음을 열고 친밀한 관계를 주고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질환은 치유될 가능성이 있으며, 바른 길을 찾아 자신의 존재를 일으켜 세운다면 충분히 충동적인 성향이나, 공허한 마음들을 조절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카사노바라는 캐릭터가 보여준 헌신적이고, 이상을 충족시키는 듯한 이타적 사랑은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1~2달 정도 그런 역할을 해 달라고 하면 잘 할 사람은 꽤 있다. 그러나 그런 모습으로 수십년을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카사노바도 손사래를 치게 될 것이다. 이미 두현(남편)을 통해 내 아내의 모든 것list로 받은 상태였었기에 초반부터 smooth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거지, 그런 사전 지식 없이 1~2달 붙어 있었다면 아마 오래 버티진 못했을 것이다.

 

아니면 굉장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겨우 그 여자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카사노바도 사랑에 대한 아픔을 지녔었고, 이를 치유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훈훈한 중도 마무리가 된 것이지, 실제로 두현과 같은 입장에 서 있었다면 과연 두현보다 더 정인을 사랑해 줄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또는 카사노바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와 같은 여성들의 성향을 잘 파악했다면 충분히 그 여성을 control하며 살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control이 과연 진정한 control인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많이 죽이고 들어가야 그와 같은 여성들의 어그러짐이 바로 잡아질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정인이 회복되어, 자신이 주변에 끼친 잘못들도(특히 남편이 느꼈을 괴로움) 나름 반성하고 두현 또한 아내의 소중함을 알게 된 점은 아주 아름다운 결과이지만, 사실 인격장애 tendency가 있는 여성이었다면 자신의 남편이 자신을 배신하려 했다는 한 번의 실수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미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고, 마음이 많이 부드러워진 상태였기 때문에 성숙한 사고가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1차적으로 보면 그런 여성들은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를 지니고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의 구원자였던 한 남자의 배신은, 그 남자를 악마로 보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결국 용서 받을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것이다.(정인이 더욱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영화의 빠른 전개를 위해 회복의 시기가 일찍 표현되어 있었던 것 뿐이지, 실제 삶의 현장 속에서는 이와 같은 여성이 회복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처음과 중간 끝의 묘사가 너무 치밀했고, 이와 같은 결과를 보는 건 분명 가능하며 이와 같은 인격장애를 지닌 여성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변모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랑과 재능을 발산하게 되는지를 알게 된다면 회복의 작업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다분히 심리학적이고, 상담학 적인 지식을 많이 가미했지만 우리 주변에서 드물게나마 볼 수 있는 여성상이었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도 있다. 그 분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건강하게 변모한 정인의 모습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제어되지 않는 감정을 지켜내고, 세상을 세상 본연의 모습으로 바라보며, 사람을 사람의 본질에 맞게 용납하고 수용할 수 있는 자세와 태도, 세상 속의 수 많은 아이러니와 역설을 그 자체로 수용하는 마음가짐 등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답을 찾으려 하다가는 길을 잃게 되거나 내면의 감옥에 갇혀 돌이킬 수 없는 역행을 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수면 위로 올라와 아프더라도 소통해 보고, 자신이 지닌 약점이 사실은 남들이 지니지 못하는 강점이었음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사실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색채가 가미된 상담 치료법이 아니고서 이들이 건강한 삶을 되찾는 경우를 본 사례가 별로 없긴 하다.(2차적으로 나타나는 생리적, 신체적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의학적 치료가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마음과, 정신의 문제를 감당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경계성 인격장애를 잘 다룬 책 두 권인 [나는 재즈광, 히피, 마약중독자, 경계성 인격 장애 환자였다]->[키라의 다이어리]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프로작네이션]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결국 선불교에 입문해서 마음의 평화를 누려 보려 발버둥 치든지, 프로작(Prozac) 같은 항우울제에 의존하며 버티기를 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이 정도 수준을 넘어서는 더 깊은 차원의 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는 건 나의 조심스로운 주장이다.)

 

([프로작네이션]의 주인공은 자신이 우울증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투쟁을 해 나가지만, 사실 이 책에 묘사된 주인공의 모습은 경계성 인격장애에 훨씬 더 가까워 보인다.)

 

Marsha M. Linehan(리네한)경계성 인격장애환자들을 위해 개발한 변증적 행동 치료(Dialectical Behavior Therapy, DBT)’ 등이 있다고는 하지만, 한 사람의 깊고도 깊은 마음과 기질이 온전히 바로 서는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은 의지할만한 또 다른 인격이 필요하게 되리라 생각해 본다.(그 인격체는 신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아주 인내심이 깊고 성숙하며 따뜻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간절히 소원하는 바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지닌 이들이 정말 마음이 맞는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만나, 서로 아프고 힘들더라도 이겨내 나가면서 한 걸음씩 전진해 나가는 것이다. 시간은 오래 걸릴지언정 정인과 같은 level의 성숙은 충분히 누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두서없이 이야기가 길긴 했지만, 결국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희망이었다. ‘경계성 인격장애로 힘들어 하던 이들을 가까이에서 많이 목격해 왔고, 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치를 많이 지니고 있는지도 봐왔다. 그리고 그들이 놀랍게 회복되는 모습도 드물게나마 목격해 왔다. 더 많은 이들이 경계성 인격장애를 진지하게 인식해 주고, 더 많은 경계성 인격장애를 지닌 이들이 용기를 내며 살아갈 세상을 꿈꿔 본다.

 

경계성 인격장애의 진단 기준(DSM-IV)

[지금은 DSM-5 가 나온 상태이지만, 참고 정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DSM-5 진단 기준은 본 블로그의 DSM-5 [인격장애] 글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인간관계, 자기상, 및 정서의 불안정성과 현저한 충동성의 지속적 패턴이 초기 성인기부터 발현되고, 다음에 제시되는 것들 중 다섯 가지 이상이 다양한 맥락에서 나타나는 경우.

 

(1) 실제 혹은 상상적인 유기(Abandonment)를 피하려는 극도의 노력 (주의: 기준 5 에 포함되는 자살 혹은 자해행동은 포함하지 않음)

(2) 이상화와 평가절하의 양극단 사이를 오가는 것으로 특징지워지는 불안정하고 강렬한 인간관계 패턴

(3) 정체성 장애: 자기상 혹은 자기에 대한 감각이 현저하고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경우

(4) 잠재적으로 자기손상적 성질을 지니는 최소한 두 가지 영역에서의 충동성 (: 소비 남용, 성적 충동, 약물 남용, 부주의한 운전, 폭식) (주의: 기준5에 포함되는 자살 혹은 자해행동은 포함하지 않음)

(5) 되풀이되는 자살행동이나 제스처 혹은 위협, 또는 자해행동

(6) 기분의 현저한 반응성으로 기인하는 정서적 불안정성 (: 며칠마다 간헐적으로 나타나 몇 시간 동안 지속되는 강한 기분저조나 초조 혹은 불안 에피소드)

(7) 만성적인 공허감

(8) 부적절하고 강렬한 분노 혹은 분노 통제의 어려움 (: 빈번한 분노 폭발, 지속적 분노 상태, 되풀이되는 신체적 충돌)

(9) 스트레스와 관련된 일시적인 편집증적 사고 혹은 심각한 해리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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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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