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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인들은 오래 전에 이런 반민주주의적 정서를 보인 탓에 큰 홍역을 치렀다.
미국에서 범미주경기대회(Pan-American Games)가 열렸을 때 쿠바 선수들에게 프로선수가 되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며 유혹하는 대대적인 프로파간다를 벌였지만 그들이 넘어가지 않자 미국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쿠바 선수들은 조국과 동포를 배신할 수 없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공산주의의 세뇌 공작과 마르크스주의의 파괴적인 영향을 깨뜨리기엔 미국의 분노도 역부적이었다.
미국이 경제 전쟁을 획책하면서 쿠바를 빈곤의 수렁으로 몰아넣었지만 쿠바가 '당신들의 노예'가 될 수 없다며 달러를 거부했다는 사실이 미국인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최초의 독자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로 여겨지는 1994년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쿠바가 미국에 종속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 결과는 마이애미에서 발간되는 에스파냐어판 신문에만 발표되었을 뿐이다.
어쨌든 쿠바인의 88%가 '쿠바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대답했고, 58%가 '혁명에서 성공한 부분이 실패한 부분보다 훨씬 크다'고 대답했다.
또 69%는 '혁명가'라고 자처했고 (그러나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로 자평한 사람은 21%에 불과했다), 76%는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오직 3%만이 '정치 문제가 화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라 생각했다.
공산주의자들의 잔혹 행위라도 밝혀졌다면 기아와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쿠바에 '민주주의'를 선물하기 위해서 아바나를 대대적으로 공습할 핑곗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민주주의'는 쿠바의 목을 조일 새로운 구실이 되었다.
미국은 기어를 변속할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쿠바는 이제 크렘린의 하수인이 아니었다. 공포에 떨면서도 라틴 아메리카를 접수 해서 호시탐탐 미국을 정복할 기회를 엿보던 크렘린은 이제 사라졌다.
30년간의 거짓말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었다.
그런데 테러와 경제 전쟁은 과거부터 민주주의를 효율적으로 전파하는 수단이 아니던가!
따라서 우리는 경제봉쇄를 더 강화해야만 했다.
그러나 1994년 10월 미국 의학 저널들에 기고한 건강 전문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 세기에 경제봉쇄는 기아와 질병과 죽음을 불러온 사신이었고,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유행성 신경 질환을 일으킨 주범이었다."
한 전문가는 "식량과 의약품만이 아니라 의료 기구를 생산할 설비를 들이는 것마저 봉쇄함으로써 우리가 그들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식인의 책무], 노암 촘스키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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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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