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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왜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되고, 기독교적 숙고가 없이는 이런 회개니, 용서니 하는 개념이 큰 의미가 없다. 굳이 상담 심리적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괴롭지 않기 위해 용서하기로 했다." 정도의 답변이 최선인데 그것도 케바케다.)
허버트를 용서하는 것이 내가 말한 바와 같다면, 왜 그런 일을 하는가?
우리 사회는 허버트가 내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그를 탓할 수 없다면 그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내가 그를 탓할 수 있다고 믿을 경우라면, 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봐줄 때 할 만한 방식으로 그를 대하려 하는 걸까?
나는 내가 당한 일을 기억하고, 계속해서 그 일을 나쁘게 여기고, 분하게 생각한다.
나는 그 일을 한 사람이 허버트임을 기억하고, 그가 한 일을 여전히 나쁘게 여기며, 그런 일을 한 그에게 화가 난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대할 때, 그가 한 잘못 때문에 그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겨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왜 그를 용서한단 말인가?
통상, 내가 허버트를 용서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한 일과의 관계를 그가 도덕적으로 의미심장하게 바꾸었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한 일로 인해 여전히 비난받을 수 있고, 그 일은 그의 도덕성의 오점으로 남아 있다. 그는 그 사실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가 자신이 한 일을 잘못이라고 여겨 나와 생각을 같이함으로써, 그 일로부터 도덕적으로 거리를 두었다고 믿게 된다. 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내게 진심으로 말했다.
그 잘못이 배상이 가능한 일이라면,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배상하겠다고 했다.
허버트의 도덕적 상태 전반은 그가 회개하기 전과 크게 달라졌다.
그는 나를 부당하게 대우한 사람과 도덕적으로 다른 사람, 중요한 측면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일로 더 이상 그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부당 행위자의 잘못이 심각하지 않고 피해자가 너그러운 사람이라면, 부당 행위자가 뉘우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에 용서가 수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했다시피, 흔히 용서에는 수고가 필요하고, 많은 이들은 그 수고를 감당하지 못한다.
많은 피해자들이 부당 행위자가 뉘우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도무지 용서하지 못한다. 마음 한 켠은 용서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래도 용서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가 없다.
혹은 용서하기로 마음먹어 보지만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용서는 종종, 어쩌면 대체로, 부분적이며 종종 느리고 어렵다.
-[사랑과 정의] ,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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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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