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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적통이라 일컬어지나, 사실은 이론이 난해하고 임상에서의 활용도가 낮다하여 비판도 만만치 않은 쟈크 라캉의 이론에 대한 설명입니다. 지식인 마을 시리즈에서 프로이트의 이론과 라캉의 이론을 잘 비교해 둔 좋은 작품이 나와서 그대로 인용해 봅니다. 좀 더 자세한 이론들을 보길 원하신다면 책을 구입해서 읽어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론은 좀 어려울 수 있으나, 2차 서적 중심으로 그의 이론을 이해하고 나면 상당히 매력적인 주장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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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후계자'라 일컬어지는 라캉은 1950년부터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국제정신분석협회(International Psychoanalytical Association, IPA)의 교조주의적인 프로이트주의(Freudianism) 해석과 자아심리학에 맞서 투쟁한다.

'프로이트로의 복귀'는 한편으로는 프로이트주의의 본질적 성과들을 올바로 계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학문적 성과를 차용해 정신분석 이론을 재구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구호다.

라캉은 무의식의 언어적 구조와 본성을 강조하고 욕망을 재해석하므로써 ​프로이트의 발견들을 철학적으로 더 세련되고 풍성하게 다듬었다.

 

라캉의 주장은 '무의식은 대타자의 담론이다'와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로 요약된다.

 

 

​라캉은 주체와 시니피앙(signifiant; signified) 의 관계가 정신분석의 핵심 주제라고 강조하는데, 이는 무의식 주체의 욕망과 관계가 있다.

욕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대상에 대한 집착이나 탐욕을 떠올리지만 라캉이 말하는 욕망은 존재 결여에서 비롯되는 소외의 표현이다.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소비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소비하고 즐기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 의식을 확보한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자신의 저서 [소비의 사회](1970)를 통해 소비가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한 원동력이며, 나아가 소비주의가 일상의 다양한 문화를 지배한다고 분석한다.

 

여기서 ​소비는 대상에 대한 향유가 아니라 차이를 발생시키는 기호의 소비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소비하고 나만의 개성을 보장하는 명품과 상표로 치장하지만, 그럴수록 소외는 더 깊어진다.

​인간은 능동적으로 소비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간다.

라캉이 말하는 ​대타자의 욕망이란 인간의 욕망이 교환의 구조인 상징계에서 타인들의 욕망을 통해 인정될 때만 의미를 갖기에 필연적으로 타자의 욕망에 의존적일 수 밖에 없음을 뜻한다.

​라캉은 욕구(besoin, need), 요구(demande,demand), 욕망(desir, desire)을 세심하게 구별한다.

이것은 어린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염두에 두면 이해가 쉽다.

욕구란 생물학적이고 본능적인 필요성을 말하는 것으로, 철저하게 대상에 의존적이다.

​예를 들어,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면 욕구는 금방 충족된다.

​요구는 욕구를 언어화해서 전달하고 표현하는 양태를 말하며 타인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모든 욕구를 해결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욕구를 어머니를 통해 충족시켜야 함으 배운다.

어머니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욕구를 요구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므로 ​요구는 욕구의 실현조건이 되며, 인간을 타자에게 의존하게 만든다.

욕구가 계속해서 반복되면서, 아이는 점차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요구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아이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젖을 떼야 한다.

 

아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의미하는 젖에 대한 요구를 절대적인 사랑의 요구처럼 표현하지만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결국 아이는 포기를 받아들이면서 원초적인 만족에 대한 향수와 환상에 젖는다.

이처럼 현실 속에서 욕구와 요구가 분열되면서 불가능한 대상에 대한 갈망처럼 나타나는 것이 라캉이 말하는 욕망이다. ​욕망은 사실상 대상들을 상징화해 기호 체계 속에서 교환되게 만드는 언어의 본성에서 비롯된다.

​아이는 이미 주어진 어머니의 말을 배우면서 상징계에 자리를 잡지만, 그것은 동시에 아이가 욕망하는 주체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단 상징계에 들어간 이상 ​계속해서 언어를 통해 욕망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상을 언어를 통해 타자인 어머니에게 요청하고 타자의 응답을 통해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요구는 대상만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을 담고 있기에 언제나 틈이 발생한다. 

 

 

 

​여기서 아이는 자신의 욕망을 타자에게 계속해서 인정받으려 하고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욕망을 보려고 한다. 인정에 대한 욕구 때문에 타자의 욕망이 아이 자신의 욕망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대타자의 욕망이라는 말은 욕망이 결국 타인의 인정과 평가를 필요로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때론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자의 욕망을 맹목적으로 모방하고 좇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 주택보다 아파트를 더 좋아하고, 같은 구조와 평수라도 특정 브랜드에 남달리 집착한다.

​아파트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실용성보다는 남들이 알아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명품성 여부이다. 이것은 욕망이 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대타자의 인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러나 운이 좋아 원하는 아파트를 구입했다 하더라도 만족하고 살기보다 여전히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다른 대상들을 갈망한다.

그러므로 ​주체는 능동적으로 욕망하는 것 같지만 상징계의 지배를 받으며 타자의 욕망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된다. ​그러면서 소외는 계속해서 깊어지고 주체는 욕망의 진실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문학 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Rene Girard)도 욕망의 모방적 본성을 강조하면서 문화의 기원을 모방적 욕망에서 찾는다.

​(르네 지라르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지면에서 더 자세히 나누겠습니다.)

 

​지라르에 의하며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면서 동물적 본능의 지배를 받는 욕구 상태에서 벗어나 문화를 향유하게 된다. 모방은 특정 대상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델의 욕망에 눈을 돌리게 하고, 모방 과정을 통해 대상에 대한 자신의 행동 양식을 새롭게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또래 집단과 어울리면서 자신이 갖고 노는 장난감들의 유용성과 사회적 가치를 배운다.

전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다른 아이가 특정 대상을 탐내자마자 그 대상은 아이에게도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모방이 욕망을 낳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모방은 동일한 대상을 두고 벌이는 경쟁과 그 경쟁의 당연한 귀결인 폭력을 낳기도 한다. 지라르에 의하면, 사회는 폭력으로 부터 공멸을 막기 위해 폭력을 ​전가할 수 있는 희생양을 찾아 그것에 폭력을 전가하면서 유지된다.

​각기 다른 맥락이지만 ​라캉과 지라르는 공통적으로 인간의 욕망이 나로부터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모방과 인정 욕구에서 시작됨을 강조한다.

 

결국 욕망은 타인의 인정과 시선을 통해서만 구성되는 것으로, 대상을 통해서는 결코 충족될 수 없다.

"목욕을 하면 하루가 기분 좋고, 이발을 하면 일주일이 기분 좋고, 새집을 사며 한 달이 기분 좋고, 결혼을 하면 한 해가 기분 좋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욕망의 충족 불가능성을 잘 요약해준다.

​욕망은 궁극적으로 존재 결여에서 비롯되기에 인간은 욕망 대상을 언어를 통해 지시할 수 없다. 주체를 벗어나는 욕망의 말이 라캉이 말하는 무의식이다.

​이처럼 라캉은 존재 상실에 고통받는 현대인으로 하여금 욕망의 문제를 새롭게 사고할 것을 요구한다.

 

-[프로이트 & 라캉, 무의식에로의 초대]에서 - ​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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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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