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용서 #기독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에 해당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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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정의의 문제.....고민이 많이 됩니다.. 영화 [밀양]도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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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저서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에서 "인간사의 영역에서 용서의 역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나사렛 예수였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예수가] 이것을 종교적 맥락에서 발견했고 종교적 언어로 표현했다는 사실은, 이것을 엄격한 세속적 의미로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용서는 "행동에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피해에 꼭 필요한 교정책"이다. 그것은 "비가역성(irreversibility), 즉 자신이 한 일을 무효로 만들 수 없는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이에 반해 예측 불능에 대한 교정책은 "약속을 하고 지키는 능력에 있다. [용서하고 약속하는] 두 능력은 서로 짝을 이룬다.

 

그중 하나인 용서는 과거의 행동을 원상태로 돌리는 역할을 한다. 과거의 '여러 죄'는 다모클레스의 칼처럼 모든 새로운 세대 위에 매달려 있다.

 

다른 하나인 약속으로 자신을 붙들어 매는 일은 미래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확실성의 섬들을 세우는 역할을 한다.

 

확실성의 섬 없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종류를 막론하고 그 어떤 영속성은 물론 연속성조차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가 인간사에서 용서의 역할을 발견한 사람이라는 아렌트의 말이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의 '발견'에 대한 그의 설명은 그리 정확해 보이지 않는다. 예수가 인간사에서 용서의 역할을 발견한 사람이라는 아렌트의 주장에는 고대의 이교도 윤리저술가들이 용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전제가 있다.

 

다음 장에서 나는 그의 주장을 옹호할 것이고 고대 이교도 저자들이 용서를 찬미하거나 촉구하지 않은 것이 그저 우발적 행위였는지 따져 볼 것이다. 그러나 아렌트의 주장은 히브리성서의 저자들도 이 문제에서 고대 이교의 윤리저술가들과 다르지 않았다고 전제하고 있다.

 

히브리성서 저자들은 엇나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죄인 용서에서 드러난다고 거듭 선언한다. 앞서 우리가 여러 장에 걸쳐 살펴본 것처럼, 현대 아가페주의자들은 이 선언에 근거해, 하나님의 용서가 하나님 사랑의 여러 발현 중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일반의 전형이자 우리가 가져야 할 사랑의 본보기가 된다고 추론했다.

 

하지만 히브리성서 저자들이 인간의 용서를 말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내가 아는 한) 누군가에게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고 명하지도 않는다. 예수가 나타나 사람들이 서로를 용서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신 것은 정말 새로운 주장이었다. 누가는 예수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한다.

 

"믿음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 주어라. 그가 네게 하루에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서 '회개하오' 하면, 너는 용서해 주어야 한다'(누가복음 17:3~4). 이 명령을 놓고 서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며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정말 일곱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 것일까? 마태의 기록을 보면, 거듭해서 잘못을 저질러도 회개하면 용서해 주라는 말씀의 진의를 확인하고자 베드로가 예수에게 이렇게 묻는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예수는 과장된 대답을 하신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마태복음 18:21~22).

 

그러고 나서 예수는 비유를 하나 들려주신다. 어떤 종이 엄청난 빚을 주인에게 탕감받았는데 자기가 남에게 빌려준 소액의 빚은 탕감해 주지 않았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주인은 종을 엄중한 벌로 다스렸다. 예수는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비유의 요지를 설명하신다.

 

예수의 가르침과 실천이 용서의 역사에서 결정적으로 새로운 사건이었다는 아렌트의 주장은 옳았다.

 

그러나 그의 생각처럼 "끈끈하게 맺어진 작은 제자 공동체에서의 여러 경험"에 힘입어 예수가 그런 "발견"을 하게 되셨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예수를 그런 "발견"으로 이끈 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서로에 대한 우리의 용서가 이어져 있다는 그분의 확신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아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듯 하나님도 우리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사랑과 정의] ,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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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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