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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동일한 개념이라고 생각해서 좌는 진보이고 우는 보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건 단지 20세기에 한해서 그랬을 뿐이다. 둘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자본주의(우)가 보수고 사회주의(좌)가 진보였으며,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구소련이 해체된 러시아에서는 자본주의(우)가 진보고 공산주의(좌)가 보수다.

좌와 우는 20세기의 경제체제 중 어느 쪽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정해지지만 진보와 보수는 다르다.

즉 기존 체제가 무엇이든 이를 지키고자 하면 보수, 변화를 원하면 진보가 되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 왕과 사대부가 권력을 놓고 갈등을 빚었던 것처럼, 유럽의 왕실과 귀족도 마찬가지였다.

​'대헌장'​으로 불리는 마그나카르타는 본래 영국 왕 ​존의 실정을 견디지 못한 귀족들이 왕에게 귀족의 권리를 다시 확인시킨 봉건적 문서였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러서 또다시 왕권과 의회가 대립하게 되자 일반 평의회의 승인 없이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었다.

영국의 명예혁명은 1689년에 공포된 '권리장전'으로 압축되는데 이로써 의회의 입법권, 의회의 승인 없는 과세의 금지, 의회 내의 언론 자유 등 국민과 의회의 권리가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 ​유럽에서도 투표권이 귀족에서 평민으로까지 확대된 것은 19세기 초였다.

 

표면적으로는 평민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것으로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르주아(유산)계급을 위한 것이었다.

​재산의 규모나 교육, 나이의 정도에 따라 행사할 수 있는 표의 수가 다르게 배분되었기에 남성 유산 계급의 전유물이 되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영국에서는 보수당인 토리당이 귀족과 대지주의 권한을 지키려 했고, 진보당인 휘그당은 산업과 상업으로 성공한 유산 계급으로서 신분제 폐지와 자유로운 무역을 주장했다.

휘그당의 후예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활동한 자유당이다.

자유당은 19세기 중반 이후 자유무역 구현, 선거법 개혁, 공장법 제정 등의 개혁을 주도했다.

그렇지만 20세기 이후 ​노동당​이 대두하면서 이들 일부는 보수당에 흡수되고, 나머지는 내분을 거듭하다 졸지에 몰락했다. 자유당의 몰락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이론이 존재한다.

역사적 우연이라는 주장도 있고 리더십의 부재와 내분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입헌 민주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부르주아 계급의 보수화가 진행되는데, 나는 자유당이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몰락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계급이 투표권을 획득하면서 새로운 진보 세력으로 등장하자, 보수화된 자유당 일부가 보수당으로 편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당의 재연합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로써 자본가가 보수가 되고 노동자가 진보가 되는 20세기의 특수한 현상이 시작됐다.

보수를 우, 진보를 좌로 보는 개념은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처음 탄생했다고 한다.

 

 

 


​자코뱅 클럽은 프랑스 전국에 지부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혁명을 주도한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였다. 혁명 이후 이는 자코뱅파와 지롱드파로 분리되는데 둘은 왕정의 폐지와 공화정의 실현을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지롱드파는 부유한 지주, 사교계에 진입한 도시 상공 부르주아 계층으로 해외 망명 은행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반면 민중과의 접촉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온건공화파인 지롱드파는 1791년 120월부터 1792년 9월까지 입법의회를 장악했다.

 

 

이들은 1792년 4월부터 심해지던 경제위기로 민주의 불만이 거세지자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들은 반혁명파를 응징하고 정정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부르주아 자유주의를 안정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쟁에서 패하고 경제위기가 더욱 심각해지자 각지에서 반혁명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지롱드파는 이를 수습하지 못했고, 결국 1793년 민중봉기로 추방되었다.

반면 ​자코뱅파는 농민, 노동자, 수공업자 등 하층민이 지지 기반이었다. 자코뱅당은 공안위원회, 보안위원회, 혁명재판소 등의 기관을 설치해 반대파를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시행했다.

​이들은 농민에게 토지 무상분배를 시행했으며, 서구 체계 최초로 식민지를 포함한 노예제 폐지를 결의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마르크스는 자코뱅당을 공산주의의 사상적 뿌리로 높이 평가했다. 이 시기 우연히 자코뱅파가 국민공회에서 왼쪽에 앉고 지롱드파가 우측에 앉게 된 게 죄파와 우파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19세기 말 영국의 자유당은 정치적으로는 개혁적이었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유산 계급의 사유 재산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노동당이 등장해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진보적인 의제를 제시하면서 자유당은 사라졌다.

노무현 정부 당시 많은 진보 지식인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19세기 영국의 자유당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노무현만 때리면 당시 제 3당이던 민노당이 제1 야당이 되는 줄 알았다고, 민노당 출신 박용진 의원이 2012년 '국민의 명령'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노무현은 19세기 자유주의자가 아니었다.

 

노무현은 21세기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이 점에소 소위 진보 지식인과 언론이 노무현 뿐만 아니라 노무현의 지지자인 친노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왕따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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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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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부탁해] 에서 발췌함

 

'종북' 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글이다. 또한 기존 정부에 반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종북'이라고 규정해 버리는 왜곡된 용어 정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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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이란 이름의 유령이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여기도 종북, 저기도 종북, 이 유령을 잡을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종북이란 용어의 본적지는 보수진영이 아니라 진보진영이었다.

2001년 12월 당시 원용수 사회당 대표가 민주노동당의 통합 논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사용했다.

"민중의 요구보다 조선노동당의 외교정책을 우위에 놓는 종북 세력과는 함께 당을 할 수 없다." (<연합뉴스> 2001년 12월 21일 자)

 

 

종북 논란은 2008년 민노당 내부에서 또다시 불거진다.

당내 진보신당파가 일심회 사건에 연루된 당직자 제명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수파인 민족해방(NL) 계열을 '종북주의'로 규정한 뒤 탈당한 것이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을 계기로 대중 속에 자리 잡았지만 그 의미는 여전히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12부(재판장 배호근)는 2013년 5월 이정희 통진당 대표 등이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판결문에서 종북을 이렇게 설명한다.

"[1] 북한과 연관되었다고 인정된 사건들에 있어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부터 [2]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 나아가 [3]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사회세력에 대해서까지 다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

한 판사 출신 법조인의 설명이다.

"어떤 집단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치적 구호에 가까운 셈이지요. 그래서 더더욱 신중하게 쓸 필요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확대해서 사용하면 여론재판과 같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이다. 검찰 공소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시, 강조 말씀을 통해 '종북좌파 척결'을 오, 남용했다고 제시하고 있다.

"종북좌파들이 한 40여 명이 여의도로 진출했는데..."(2012년 4월 20일)

"국책사업 등의 성과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면 종북좌파들의 현혹에 넘어갈 수 있으므로..."(같은 해 6월 15일)

심리전단 직원들이 야당 후보와 정부 정책에 관한 댓글을 달고 트윗을 전송한 것도 '종북'프레임에 따른 활동이었다.

​그 프레임을 잘못 확장하면 정부 입장에 동조하는 언행 말고는 모든 것이 종북으로 분류될 위험이 있다.

진짜 종북세력은 어떻게 하느냐고?

[3]번 유형에 해당하는 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 실정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처럼 유, 무죄를 가리는 것이다.

[1]번이나 [2] 번까지 종북 카테고리 속에 집어넣는 건 사상의 자유, 토론의 자유를 억누르는 결과를 빚고 만다.

그들의 주장을 얼마든지 반박하고 질타할 수 있지만 분명한 근거 없이 종북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생각과 표현의 자유는 북한식 전체주의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가치다.

한 로스쿨 교수는 "종북이란 과장된 공포의 언어로 시민들을 위축시키는 일이야말로 북한의 유일사상 체제를 뒤따라가는 것, 즉 종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정부, 여당의 방침과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국민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은 묵과하지 않을 것"이란 대통령 말씀에 고개를 갸웃거린다고 해서 종북, 좌빨로 비치지 않을지 걱정해야 한다면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이제껏 자신을 보수주의자라 자부해 온 이들까지 '그렇다면 나도 종북일까' 되내게 하는 게 오히려 체제에 대한 위협 아닐까.

우리가 할 일은 생경하고 철없는 말들을 종북으로 뭉뚱그리는 게 아니다.

 

종북세력([3]번을 의미)이 '무해한 광신도'가 되게끔 헌법 정신을 뿌리내리는 것이다.

항균 능력을 키워 '건강하게'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얻은 건강이 진정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해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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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2013년 8월 검찰이 '이석기 내란음모' 수사에 착수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 법무부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한국 사회에 종북 논란이 불붙었다. 나는 '종북' 딱지를 남발하는 건 오히려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생각에 딱지를 붙이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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