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전쟁 #책 #리뷰 #자연과학 #다윈주의 #신재식 #김윤성 #장대익'에 해당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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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신재식 교수는 유신론적 진화론 과 흡사한 구석이 있는 존 호트의 견해를 받아 들이며 , 그의 견해가 기독교 신학에서 주류에 더 가깝다고 이야기 합니다.

 

(무슨 근거로 존 호트의 견해와 판넨베르크의 견해가 기독교 신학을 대표하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고 , 이러한 견해가 지적설계론보다 더 뛰어난 근거도 무엇인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지적설계가 기존 주류 과학의 권위 와 자주 충돌하니까 , 함께 붙잡고 가기가 껄끄러워서 냉혹하게 버려버린 건 아닌지.)

 

존 호트의 논의를 그리고 신재식 교수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사물이나 생명에 관한 설명에는 다양한 수준의 설명이 있으며 , 이것들은 상보적이며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확고히 지니고 있다. 소위 설명의 다윈주의(explanatory pluralism) 에 토대를 둔 것이며 , 이러한 개념과 우주에 대한 비환원주의적 인식을 지님으로써 종교와 과학이 공통의 연결 고리를 찾게 될 것임.

 

설명의 다윈주의를 통해 유물론적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과학적 환원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디딤돌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기적 세계를 통전적 으로 이해하려는 현대 과학의 시도와 부합한다

 

분명 설명은 그럴싸하고 ,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정말 이렇게만 설명이 된다면 ,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고픈 생각이 간절하구요.

 

하지만 , 철저한 자연과학주의자 들에게는 , 이런 어설픈 제의는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겁니다. 

 

 

자연과학 만으로도 , 풍성하고 완벽한 의미는 설명될 것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도 있겠다. 그 동안 쌓아온 진화론적 분석 자료 들이 있겠다. 인간의 이타적인 행동도 분석해 내고 , 다양한 사회 현상들을 진화론 적으로 해석하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이 와중에 , 뜬금 없이 종교가 손을 잡자고 손을 내민다면 , 그들은 코웃음을 치며 이 제안을 거절할 것입니다.

 

그가 제시하는 다른 입장은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가 주장하는 관점인데요.(차라리, 존 호트의 관점보다는 이 사람의 관점이 그럴싸 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의 저서 [자연 신학] 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만일 성서의 신이 우주의 창조자라면, 그 신을 언급하지 않고 자연 과정들을 완벽하게 , 혹은 적절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역으로 만일 자연 과정들이 성서의 신을 언급하지 않고도 적절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면 , 그 신은 우주의 창조주가 될 수 없을 뿐더러 , 결국 그 신은 진정한 신이 될 수도 , 윤리적 가르침의 근원으로서 신뢰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이 견해에 대해서는 신 교수도 동의하고 ,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판넨베르크의 주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그는 결국

 

자연을 신의 창조물로 설명하는 신학적 해석이 물리학이나 다른 자연 과학의 해석과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대를 여지 없이 무너 뜨리는 게 현재 주류 자연 과학자 들이며 ,또한 순수 자연 과학 이라는 개념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며 , 자연 과학 이 사용하는 방법론 만을 취한다 쳐도 , 주류 진화론 을 수용해야 하고 ,  진화론 을 붙들고 있는 주류 진화론자 들의 모든 견해를 폭 넓게 수렴하다 보면 , 건전한 진화론 개념 속에 숨어 있는 유물론적 사관 , 자연주의적 견해 들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면서 ,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형이상학적이고 , 전혀 중립적이지 않은 과학 을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기독교인들은 진화론 자체를 부정한다 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말에 동의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 함축된 숨은 그림자 를 걷어내고 나면 , 눈에 뻔히 보이고, 명명백백 증명되어 있는 진화론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 과학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편견의 벽을 쌓아 버린 종교인들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구요. 그러한 다수의 모양새를 보고 실망하고 , 종교인들<기독교인들> 진화론 자체를 부정하고 , 사이비 과학 이나 주장하는 억지 투성이라고 성급하게 일반화 해 버리는 과학계 진영 에도 분명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 존 호트의 의견 , 판넨베르크의 의견은 장대익 교수 등이 취하는 과학계 진영에 전혀 구미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신재식 교수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면..

 

제가 보기에 열린 과학 철학을 통해 유신론적 과학을 확립하려는 시도는 과학적 동기에서 출발한 게 아닙니다. 종교적 동기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 시도를 어떻게든지 과학이라고 포장한다 할지라도 , 이것은 기독교 신념에 근거한 신앙의 발현이지 과학 작업은 아닙니다.

 

계속 이런 식입니다. 지적 설계 그 자체 에 대한 비판은 충격적으로 적습니다. 그리고 너무 싱겁게 논의를 끝내 버리고 , 계속 자신이 붙들고 있는 창조과학에서 탈을 바꿔 쓴 지적설계론자들은. 논의할 필요조차 없는 사이비 과학자들이다. 라는 전제를 반복해서 언급할 따름입니다.

 

오히려 , 신 교수 스스로가 자신이 겪어 왔던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위선과 독선’ 등에 대한 앙금을 제대로 걷어 내지 못하고 , 이렇게 펜을 든 건 아닌지 , 염려가 됩니다. 이 문제는 장대익 교수나 김윤성 교수도 마찬가지인데요. 다들 , 기독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고, ‘신의 존재’ 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 왔고 , 동일하게 ‘창조과학’ 에 대한 뼈아픈 체험이 있기에…. 이 분들이 ‘창조과학,지적설계론’ 에 있어서는 유독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도 , 그들이 ‘객관적’ 으로 ‘이러한 학문’ 을 논의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님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앙금이 계속 글 전반에서 표현됩니다. 창조과학이라는 것을 접하면서 , 신앙과 과학의 조화를 한껏 기대했지만 , 막상 들여다 보니 편협하고 , 엉뚱하고 , 끔찍했으며 , 그러한 시대를 겪어 오다가 , 이젠 지적설계 라는 개념이 생겼고 , 자신이 그토록 실망했던 이들이 다시 그러한 지적 설계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 그 두 개념은 동일하게 보이게 되어 버리는……그 학문을 다루는 보게 되기가 쉽지만, 그 개념 자체 를 순수하게 바라보기는 힘든 위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런 앙금들이 씻겨진 상태였다면 , 지적 설계론에 대해서 좀 더 심화된 논의를 해 주고 , 좀 더 철저하게 해부해서 반박을 해줬어야 하는데 , 기이하리만치 그러한 반박이 보이질 않는다는 점에서 , 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논쟁의 큰 한계 를 느끼게 됩니다.

 

또한

 

신 교수는

 

“’일치주의 는 신앙에 과학 지식을 일치시키려는 시도로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이 과학을 보는 태도에 적용할 수 있을 것니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신앙과 과학을 일치시킨다는 말이 굉장히 모호한데요. 여기서도 토의해 볼 만한 구석이 많이 남아 있는데 , 너무 성급하게 글을 마무리 하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성경 문자주의자 들이라면 , 신앙에 과학 지식을 일치시키려는 시도를 할 것이고 ,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 을 하기도 하겠지만 , 성경의 권위 를 인정하면서도 , 그 성경 문자 하나 하나에 과학을 끼워 맞추지 않는 견해가 충분히 있을 수 있음을……..소위 온건한 의미의 보수 신학도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신 교수 스스로가 그러한 신학을 하고 있지 않다 할지라도 말이죠.

 

그리고 일치주의 는 시종일관 비판만 하고 , 적응주의  포괄주의 설명은 중립적으로 (또는 자신의 시야를 적용해서)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 이미 색안경이 끼워진 상태는 아닌지. 다시 한 번 우려가 됩니다.

 

김윤성 교수도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무조건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 무신론은 방법적 차원에서는 과학의 핵심 토대지만 , 실재의 궁극적 본질을 탐구하는 차원에서는 그저 여러 선택지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신 교수와 동일한 견해입니다.)

 

(결국 , 순수 자연 과학  형이상학적 자연 과학 이 어떤 기준으로 , 어떤 방법에 의거하여 분리 가능한지를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제 주장은 분리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 그에 대한 증거로는 리처드 도킨스 , 데니얼 데넷 , 윌슨 ,장대익 교수 등이 걷고 있는 길을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 김윤성 교수가 이야기 하는, 신 존재 증명  신 부재 증명 과 함께 , 성공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 부분들은 동의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 한 쪽은 신이 없다는 전제 하에서 이야기를 전제하고 , 다른 쪽은 신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니 실상 양쪽이 다 할 말들이 있는 상태이므로 (한 쪽이 더 어설프고, 세상을 불명확하게 설명한다고 논박하고 토론할 수는 있겠지만) , 이 책의 저자인 장대익 교수와 유신론 진영인 신재식 교수 등은 (서로가 자신의 기준을 어느 정도 지키고 있다면) , 결코 타협점을 찾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신재식교수가 기준을 벗어나 , 너무 타협해 버린 것 같아서 상황이 좀 독특하게 흘러가는 책이지만..물론 ,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각 분야의 대표가 3명 모였다고 하지만 , 각 분야 내에서도 분파가 갈리기 때문에 , 그 분야를 대표 한다는 말이 사실 유명무실 할 수 있다라는 언급을 하시긴 합니다.섬세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게 이 책이 지닌 가장 근본적인 한계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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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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