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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상하게도 네이버 책 검색으로 뜨질 않는다.

 

내용은 어렵지 않다.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서 인터뷰한 이야기다.

 

이념 이데올로기에 잡혀 살아야 했던 분단 국가의 아픔..

 

그리고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한번씩 사용했던 카드가 바로 간첩 조작 사건이다.

 

 

이념적으로 너무 나가 버려서 북한의 정권을 찬양하거나, 지지하는 잘못된 종북 집단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런 소수들을 가려내는 과정 속에서 '기존의 정권 유지' 라는 것에 더 큰 목적을 두고, 누군가를 '간첩'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이건 깔끔하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치명적인 인권의 문제가 될 것이다.

(소위 NL 노선을 지지하는 반미, 친북 성향의 이념론자들의 숫자는 음모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 많지 않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대표적인 운동권 출신들도 그런 이념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일찍이 경계를 많이 해 왔었으므로)​

 

정말 물증이 있고, 정황이 의심스럽고 여러가지 면에서 간첩 스럽다면 그 사람은 '간첩' 용의자가 되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처음부터 '간첩이기를' 누군가에게 강요한다는 건, 누군가의 삶 전체를 파괴시키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다행히도 이 책에 나온 이들은 감옥 속에서도 나름의 행복을 찾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곤 했으며 무죄로 판결이 난 뒤에 다시 한번 제 2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물론, 그 시간으로 인해 조국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폐인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들이 진짜 간첩이 아니었기에 결국은 무죄 판결을 받고 자유를 찾게 되는 것일터...

 

어서 빨리 이러한 이념의 싸움이 해결되고, 서로를 간첩으로 의심할 필요 없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기대해 본다.

 

 

영화 <자백> 과 함께 본다면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다 보면, 기존의 독재 정권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위기의 순간마다 터뜨렸던 사건이 바로 간첩 조작 사건이었음을 확인 가능하다.

 

물론, 진짜 간첩이 남침했던 적도 있다. 이러한 부분들을 잘 가려내기 위해 국가는 특정 기관을 만들었을 터인데, 앞으로는 무고한 사람이 간첩으로 내몰리는 나라가 아니라, 진짜 있을 수 있는 간첩을 잘 잡아 내는 전문성을 갖춰가길 바란다.

(특히 재일 동포들 등, 잘 배우지 못한 시골 농민, 어부들 등 간첩으로 조작시키기 좋은 약자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조작 사건이 많았던 점을 보면, 이러한 사건은 다시는 일어나선 안될 일들이었음을 확인 가능하다.)​

 

[간첩 조작 사건 무죄 목록]

1948 최능진 국방경비법 위반 사건, 사형 집행 - 2015년 무죄

1958 진보당 사건, 조봉암 사형 집행 - 2011년 무죄

1959 심문규 이중간첩 사건, 사형 집행 - 2012 무죄

1961 민족일보 사건, 조용수 사형 집행 - 2008 무죄

1961 법무부 검찰국장 위청룡, 중앙정보부 조사 중 사망 - 2013년 국가 배상 판결

1965 지하당 조직 사건, 오진영 등 6명 - 2013년 무죄

1968 납북 어부 간첩사건, 백남욱 외 5명 징역 1년 - 5년 선고 - 2008년 무죄

1968 남조선 해방전략당 사건, 권재혁 사형 집행 - 2014년 무죄

1969 이수근 이중간첩 사건, 사형집행 - 2008년 무죄

1969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박노수, 김규남 사형 집행 - 2015년 무죄

1969 재일교포 임문준 등 간첩사건 무기징역 - 2013년 무죄

1970 대구 간첩사건 최건석 징역 8년 선고 -2015년 무죄

1971 재일동포 구말모 간첩사건, 징역 15년 선고 - 2012년 무죄

1971 조총련 간첩 김용담 사건, 징역 1년 6월 선고 - 2014년 무죄

1972 납북어부 박월림 간첩사건, 징역 4년 선고 - 2012년 무죄

1973 납북어부 최만춘 외 8명 간첩사건, 징역 1년 - 10년 선고 - 2012년 무죄

1973 포철이사 김철우 간첩사건, 징역 10년 선고 - 2013년 무죄

1973 서울대 최종길 교수, 중앙정보부 조사 중 사망 - 2006년 국가 배상 판결

1974 조총련 간첩사건 제주 오성재 사건, 징역 3년 선고 - 2014년 무죄

1974 재일동포 고병택 간첩사건, 징역 10년 선고 - 2013년 무죄

1974 김용준 간첩사건, 징역 10년 선고 - 2009년 무죄

1974 문인 간첩단 사건, 이호철 등 징역 1년 선고 - 2011년 무죄

1974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김장현 등 징역 4년 선고 - 2012년 무죄

1974 울릉도 간첩단 사건, 무기징역 선고 등 - 2014년 무죄

1974 민청학련 사건, 여정남, 도예종,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오흥선, 송상진 사형 집행 - 2009년 무죄

1974 김도원, 차은영 광양 부부 간첩사건, 징역 2년 선고 - 2016년 무죄

1974 재일동포 유학생 김승효 간첩사건, 징역 7년 선고 - 재심 중

1975 재일동포 김우철, 김이철 형제 간첩사건, 징역 10년 선고 - 2010년 무죄

1975 재일동포 유학생 김동휘 간첩사건, 징역 4년 선고 - 2011년 무죄

1975 재일동포 유학생 김원중 간첩사건, 징역 7년 선고 - 2012년 무죄

1975 재일동포 유학생 이동석 간첩사건, 징역 5년 선고 - 2015년 무죄

1975 재일동포 유학생 김종태 간첩사건, 징역 7년 선고 - 2013년 무죄

1975 재일동포 유학생 조득훈 간첩사건, 징역 10년 선고 - 2014년 무죄

1975 재일동포 유학생 강종헌 간첩사건, 사형 선고 - 2015년 무죄

1975 재일동포 유학생 이철 간첩사건, 사형 선고 - 2015년 무죄

1975 재일동포 유학생 강종건 간첩사건, 징역 5년 선고 - 2015년 무죄

1975 재일동포 유학생 허경조 간첩사건, 무죄 -2012년 국가 배상 판결

1976 납북어부 김수남, 김광윤 징역 2년 등 - 2015년 무죄

1976 잡북어부 이길부, 송기철, 김광국 등 징역 7년 등 - 2013년, 2014년 무죄

1976 납북어부 김이남 간첩사건, 징역 20년 선고 - 2014년 무죄

1976 재일동포 유학생 최연숙 간첩사건, 징역 5년 선고 -2016년 무죄

1976 납북어부 정규용 간첩사건, 징역 15년 선고 - 2014년 무죄

1976 제주 어부 간첩사건, 징역 10년 선고 - 2014년 무죄

1977 재일동포 유학생 류영수 간첩사건, 무기징역 선고 - 2012년 무죄

1977 재일동포 유학생 유서삼 간첩사건, 징역 3년 6월 선고 - 2013년 무죄

1977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 간첩사건, 징역 10년 선고 - 2013년 무죄

1977 재일동포 강우규 간첩사건, 사형 선고 - 2014년 무죄

1977 납북어부 안 씨 부부 간첩사건, 징역 15년 선고 등 - 2015년 무죄

1978 태영호 사건, 징역 10년 선고 등 - 2008년 무죄

1978 정하진 반공법 위반 사건, 징역 2년 6개월 선고 - 2013년 무죄

1978 조총련 간첩사건, 제주 양한병, 양동우 징역 7년 선고 등 - 2014년 무죄

1978 납북어부 박우용 징역 10년 선고 - 2013년 무죄

1978 납북어부 김흥수 징역 15년 선고 - 2014년 무죄

1978 조총련 관련 박순애 징역 12년 선고 - 2015년 무죄

1979 삼척 고정 간첩단 사건, 진항식, 김상희 사형 집행 - 2014년 무죄

1979 납북어부 간첩사건, 배일규 징역 6년 선고 - 2015년 무죄

1980 신귀영 일가 간첩사건, 신귀영 외 3명 징역 15년 선고 등 - 2009년 무죄

1980 석달윤 등 간첩사건, 무기징역 선고 등 - 2009년 무죄

1980 김기삼 간첩사건, 징역 7년 선고 - 2009년 무죄

1980 재일동포 간첩사건, 윤정헌 징역 7년 선고 -2011년 무죄

1981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 김정인 사형 집행 - 2012년 무죄

1981 납북어부 강경하 간첩사건, 징역 7년 선고 수형 중 사망 - 2011년 무죄

1981 납북어부 이성국 간첩사건, 징역 10년 선고 - 2011년 무죄

1981 재일동포 이헌치 간첩사건, 무기징역 선고 - 2012년 무죄

1981 아람회 간첩단 사건, 박해전 외 4명 징역 10년 선고 등 -2009년 무죄

1981 부림 사건, 징역 7년 선고 등 - 2014년 무죄

1981 조총련 관련 제주 김평강, 허간회 간첩사건, 징역 7년 등 - 2014년 무죄

1982 오송회 사건, 이광웅 등 9명 징역 4년 선고 등 - 2008년 무죄

1982 차풍길 간첩사건, 차풍길 징역 10년 선고 등 - 2008년 무죄

1982 재일동포 유학생 이종수 간첩사건, 징역 10년 선고 - 2010년 무죄

1982 재일동포 유학생 박영식 간첩사건, 징역 15년 선고 - 2014년 무죄

1982 송 씨 일가 간첩사건, 송지섭 외 일가족 12명 징역 6년 선고 등 - 2009년 무죄

1982 납북어부 김영일 간첩사건, 징역 10년 선고 - 2012년 무죄

1982 일본 방문 김장길 간첩사건, 징역 10년 선고 - 2012년 무죄

1982 재일동포 김양수 간첩사건, 징역 8년 선고 - 2014년 무죄

1983 함주명 간첩사건, 무기징역 선고 - 2005년 무죄

1983 조총련 간첩사건, 오주석 징역 7년 선고 - 201년 무죄

1983 조총련 간첩사건, 김상순 징역 12년 선고 - 2015년 무죄

1983 조총련 간첩사건, 최양준 징역 15년 선고 - 2011년 무죄

1983 조총련 간첩사건, 구명우 징역 7년 선고 -2011년 무죄

1983 납북 귀환 어부 정영 간첩사건, 무기징역 선고 - 2010년 무죄

1983 납북 귀환 어부 이상철 간첩사건, 징역 17년 선고 - 2012년 무죄

1983 재일동포 유학생 박박 간첩사건, 징역 10년 선고 - 2012년 무죄

1983 재일동포 이주광 간첩사건, 징역 15년 선고 - 2015년 무죄

1983 조총련 간첩사건, 김상원 징역 7년 선고 - 2013년 무죄

1984 납북어부 서창덕 간첩사건, 징역 10년 선고 - 2008년 무죄

1984 조총련 간첩사건, 이장형 무기징역 선고 - 2008년 무죄

1984 조총련 간첩사건, 조봉수 징역 11년 선고 - 2013년 무죄

1984 재일동포 조일지 간첩사건, 징역 7년 선고 - 2012년 무죄

1984 재일동포 유학생 허철중 간첩사건, 징역 8년 선고 - 2013년 무죄

1984 재일동포 유학생 윤정헌 간첩사건, 징역 7년 선고 - 2011년 무죄

1984 납북 귀환 어부 윤질규 간첩사건, 징역 10년 선고 - 2012년 무죄

1984 납북 귀환 어부 김용태 간첩사건, 징역 14년 선고 - 2014년 무죄

1985 이준호, 배병희 모자 간첩 사건, 징역 7년 선고 등 - 2009년 무죄

1985 납북 귀환 어부 정삼근 간첩사건, 징역 7년 선고 등 - 2009년 무죄

1985 조총련 간첩사건, 구명서 징역 7년 선고 - 2011년 무죄

1985 조총련 간첩사건, 류한기, 황병구 징역 5년 선고 등 - 2011년 무죄

1985 홍종열, 박희자, 변두갑 등 간첩단 사건, 징역 7년 선고 등 - 2012년 무죄

1985 납북 귀환 어부 이병규 간첩사건, 징역 7년 선고 - 2011년 무죄

1985 납북 귀환 어부 김춘삼 간첩사건, 징역 2년 선고 - 2014년 무죄

1986 광주보안대의 가혹행위로 임성국 사망 - 2009년 국가배상 승소

1986 서울서부경찰서에서 국가보안법 혐의로 조사받던 신호수 사망 - 2010년 국가배상 승소

1986 조총련 간첩사건, 김양기 징역 7년 선고 - 2009년 무죄

1986 재일동포 이동기 간첩사건, 징역 7년 선고 - 2015년 무죄

1986 재일동포 김순일 간첩사건, 징역 12년 선고 - 2015년 무죄

1986 심진구 고문 피해 사건, 징역 2년 선고 - 2012년 무죄

1988 조총련 간첩사건, 김철 징역 7년 선고 -2013년 무죄

1993 김삼석, 김은주 남매 징역 3년 6월 등 선고 - 2016년 간첩 부분 무죄

1994 구국전위 사건, 징역 3년 선고 - 1997년 무죄

1997 동아대 자주대오 사건, 징역 10년 선고 등 -1999년 무죄

2011 탈북자 한준식,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 받던 중 사망

2013 유우성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 2015년 무죄

2014 홍강철 보위부 직파 간첩 조작 사건 - 2016년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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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부탁해] 에서 발췌

 

-국정원의 댓글 조작 사건에 관하여-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0월의 늦은 오후 서울 명동에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다. 거리 양편의 노점들은 하나둘 불을 밝히고 하루를 시작한다. 성당 들머리엔 '명동성당 종합계획 1단계 신축공사' 표지판이 붙어 있다.

귀에 익은 노랫가락이 어디선가 들려온다. <잘할걸>. 버스커 버스커다.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은 난 다시 그대 생각에..."

성당으로 향하는 철제 계단을 따라 성당의 연대기가 공사 가림막에 펼쳐져 있다. 1984 요한 바오르 2세 방문. 1987 인권,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 글귀 밑 미사 사진 속에 청년 박종철의 영정이 있다. 그렇다. 87년 6월이 있었다. 함성과 구호와 최루탄의 시간. 지금 우리는 그해 6월이 놓은 길 위에 서 있다.

 

 

"그때는 우리가 완벽했을지라도 지금은 닿을 수 없어..."

며칠 전 여론조사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2012년 하반기, 정말 이상했어. 야권 후보들을 비난하는 트윗들이 주말에 사라졌다가 월요일부터 급증하곤 했거든. 트위터 순위 사이트를 봐도.... 국정원 수사를 보니 왜 그랬는지 알겠더군.

컴퓨터 앞에 종일 앉아 있다 퇴근하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들도 보통 샐러리맨들처럼 '불금'(불타는 금요일)과 주말이 기다려졌을 것이다. 그들은 댓글 올리고 리트윗(재전송)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문제는 그렇게 '평범한' 일상에 있었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도대체 우리가 왜 이렇게..."

1987년 6월 한국 사회는 대통령 직선제만 하면 민주주의가 이뤄질 거라 믿었다. 일상까지 민주주이 원칙에 따라 재편되지 않는 한 민주 정치는 요원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정보기관 직원, 군 사이버사령부 요원의 업무 내용이 상식적이지 않다면 정상적인 사회라 부를 수 없다는 사실도 예감하지 못했다.

그 책임이 정치인들에게만 있을까. 준비된 대통령은 준비된 시민이 있을 때만 유효하다. 안타깝게도 우린 준비되지 않았고 깨어 있지 않았다. 우리가 깨어 있었다면 우리의 친척이나 대학 동창인 그들이 선거 개입으로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이었다면 과연 거부할 수 있었을까. 고통스럽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도 있다.

"조금만 더 잘할걸, 조금만 더 참을걸..."

그 해 6월 우린 서둘러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자기 자리로의 복귀를 조금 미루고 한국 사회, 한국 정치의 미래를 놓고 토론을 벌였어야 했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묻고 답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상식과 일상을 만들어가야 했다.

권력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어떤 이유로도 국가기관이 시민들의 여론에 검은 손을 뻗으려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서로의 가슴에 새겨 넣어야 했다.

 

입으론 노동자, 농민을 말하면서도 다들 자기 앞의 생에 초조해 했다. 구호 소리만 높았을 뿐 생각을 나누지 않았다. 어쩌면 그 철저하지 못함에 보복당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상처가 덧나고 고름이 터진 뒤에야 '철저 수사'를 다짐하는 총리 담화문에서, 국정원 방어에 급급한 여당 의원들의 모습에서, '구국의 결단'과 '아버지 대통령 각하'를 거론하는 발언록에서 상식의 퇴행을 확인하고 있다.

"조금만 더 잘할걸, 조금만 더..."

현실은 홍상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통속적이고 비루하다. 그래도 개선하려는 의지까지 접지는 말아야 한다. 젊은 공무원들이 허접한 글들을 리트윗하면서 안보 업무라고 믿는 현실만큼 소름 끼치는 일은 없다.

이제 의식의 일대 변화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때 대학생이었던 40대, 넥타이 부대였던 50대, 60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매번 비슷한 곳을 맴도는 회로에서 벗어날 순 없는 걸까. 착잡한 마음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점령한 거리로 들어갔다. 세상은 상점과 노점의 불들로 환했지만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다.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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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2013년 9월 서울고법이 전 국정원 차장과 심리전단장에 대한 재정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어 검찰 수사에서 국정원 댓글과 관련된 트위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국정원 직원들이 댓글 활동을 공무원의 정상적 업무로 여기는 현실이라니.... 착잡함을 달래려고 명동성당 언덕에 올랐다가 87년 6월을 기억해냈다. 성당 앞 빌딩 숲 위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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