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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을 전공하고, 기자 생활만 25년을 했던 권석천의 책이다.

글을 맛깔나게 쓴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 책이었고, 짤막짤막한 사설들의 '모음집'이라고 보면 된다.

다양한 사회 이슈들에 대해서 권석천의 시각으로 써 내려간 글이다.

그가 했던 고백들 중 표현이 너무 좋아서 몇 부분 발췌해 본다.

"가장 큰 난관은 용기였습니다. 팩트와 팩트를 논리로 이어가다보면 이 선을 넘어도 되는 걸까, 고민되는 지점이 나타나곤 합니다. 자기 검열의 경고등이 켜지는 순간이지요."

이와 같은 치밀함을 가진 그였기에 팩트와 팩트를 논리로 이어갈 때도,글 몇자 추가할 때도 그가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또한 그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그의 기질이 나와 묘하게 비슷한 부분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혹자들도 그의 삶에서 오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들어보자.

"​요약하자면 성장 과정부터 대학 생활, 그리고 직장 옮긴 것까지 늘 주류와의 거리를 의식하며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삶의 궤적들은 중심보다 주변부에, 칼을 쥔 쪽보다 칼끝 앞에 서 있는 쪽에 자꾸 눈길이 가게 했던 게 아닐까, 어쩌면 제 안에서 남들 모르게 내연해온 불화와 반목과 갈등이 글을 통해 표출됐던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점에서 글쓰기는 저 자신도 몰랐던 제 모습을 발견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또한 글을 써 나갈 때 자신의 주관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점을 명확히 인정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한데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자세를 잘 갖추고 있다.

"이것이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제 내면의 비주얼입니다. 이런 저를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제 경험의 눈이 사태를 잘못 읽게 하진 않을까, 경계하고 경계할 뿐입니다."

​그가 심사숙고하며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사설.... 그의 '글쓰기'는 그에게 어떤 의미를 안겨 주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직업적으로 글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우면서도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거리엔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참아가며 살아가는 수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제게 가로 14.3cm, 세로 25.2cm의 '시시각각' 지면을 통해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건 특혜이고 행운입니다. 또한, 제가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의 현장과 조사실, 법정에서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가가면 멀어지는 신기루 같은 정의의 내용을 채우기 위해 분투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의와 명분도 중요하지만 그 거대한 수레바퀴에 깔려 신음하는 이들의 아픔까지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의 고백은, 블로그라는 공간 속에 자유로이 글을 남길 수 있는 나의 '현재의 삶'을 감사하게 만든다.

 

 또한, 이념에 함몰되지 않고, 대의와 명분에 눈이 멀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중요한 '목적'을 잃지 않게 도와준다.

그가 쓴 사설 중에는 때론 동의할 수 없는 내용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시각을 지녔더라도 그 시각을 진지하게 견지하고 타인과 진지하게 대화 나눌 수 있는 이 저자와 같은 '태도'를 지니고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소통 가능하다.

'정의'를 그리워 하며, 사회 속에 깊숙이 들어가 보길 원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자.

화려한 수사나 미사여구가 들어 있는 건 아니지만, 글쓰기가 얼마나 멋진 일인지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정의'를 부탁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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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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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경향신문 기자 -> 2007년 중앙일보 입사 논설위원 -> 현재 JTBC 로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듯 합니다~

 

[정의를 부탁해]의 저자 '권석천'의 여정이다.

 

그의 짤막하지만, 굵직한 사설들을 읽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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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열린책들)는 194X년 알제리 도시 오랑에서 벌어지는 전염병과의 전쟁을 그리고 있다.

 

4월 16일 죽은 쥐들이 쏟아져 나오고 불안감이 엄습하지만 시 당국은 '죽은 쥐 수거'만 지시한다. 방역소가 나서야 한다는 의사 리유의 요청에 방역소장은 이렇게 답한다.

 

 

"명령이 있어야 그렇게 하지." 메르시에가 말했다. .... 시 당국은 자진해서 무엇을 해볼 생각도 전혀 없었고 아무런 대책도 없었지만 논의를 위해 일단 회의부터 소집하기로 했다." (26쪽)

2015년 6월 대한민국, 메르스에 대한 저우의 초기 대응이 실패한 데 대해 세계보건기구(WHO) 합동평가단은 "투명한 정보 공개가 늦었기 때문" 이라고 지적한다. '카톡'소리를 타고 병원 명단과 메르스 확산 지도가 전파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왜 의미 없는 비공개 원칙에 집착한 것인가. 명령이 없었기 때문인가.

"조치들은 허술했고 여론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욕심에 상당 부분 포기한 것 같았다.... 실제로 우려할 만큼 충분히 규명되지는 않았으며, 따라서 시민들이 냉정을 잃지 않으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71쪽)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를 먹지 말라.' 예방수칙은 극소수 미식가를 위한 것이었다.

​병원, 시민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체계적인 방역 매뉴얼로 불안을 불식시켜야 할 골든타임에 정부는 괴담 대응 매뉴얼을 펴들었다.

 

관료들은 감염 확률이나 치사율 같은 통계수치들을 나열하며 '합리적 태도를 잃지 말라'고 훈계했다.

"이렇다 할 신념도 없이 공부 집행하듯 했었지요. 그들(관리들)에겐 상상력이 부족합니다. 재앙에 맞설 수준들이 아닙니다. 짜낸 해결책은 고작 코감기 수준에 불과해요." (161쪽)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책엔 '서민의 삶'이 빠져 있었다.

 

 

 

세종시와 충북 오송에서 일하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실무자들은 대도시 시민들의 생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고위관료들과 정치인들은 승용차 뒷자석 시트에 기대 정부 청사와 국회, 고급 식당 사이를 오갔다. 병원에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어쩔 수 없이 밀접 접촉하며 들숨 하나, 날숨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시민의 불안이나 분노 따위는 그들의 안중에 없었을 것이다.

 

고령, 중증 질환이 아니면 괜찮다는 투의 발표는 또 무엇인가. 고령자와 중증 질환자는 어찌돼도 할 수 없다는 뜻인가.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병균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머지 것들, 예를 들어 건강함, 성실함, 순수함 등은 이를테면 의지, 그러니까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의지의 산물이죠." (324쪽)

그렇다. 병균과 부패, 관료주의가 자연스러운 것이다. 경각심과 의지를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금세 그런 것들에 잠식되고 만다. 관료들이 위만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 정윤회 문건, 성완종 리스트를 거치며 스스로를 여론에서 '자가 격리'시켜 왔다.

 

그 결과 메르스는 궁궐 밖 먼 곳에서 풍문으로 떠돌았다. 권력 내부의 폐쇄주의가 사태를 더 곪아터지게 했다는 혐의를 벗기 힘든 상황이다.

 

"나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많은 연대의식을 느낍니다. 나는 영우주의라든가 성스러움 따위에는 취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327쪽)

메르스가 폭로한 건 공감이 빠진 채 공회전하는 권력의 누아르다. 권력 운용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위험은 확대 재생산된다. 페스트가 변두리에서 시작됐듯 돈 없는 자, 힘없는 자들부터 희생될 것이다.

메르스는 대통령과 정부를 향한 경고다. [페스트]의 마지막은 암울한 묵시록에 가깝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도 않고 사라져 버리지도 않으며... 인간들에게 불행도 주고 교훈도 주려고 저 쥐들을 잠에서 깨워 어느 행복한 도시 안에다 내몰고 죽게 하는 날이 언젠가 다시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96쪽)

-[정의를 부탁해]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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