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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부탁해]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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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어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납니다."

진보정의당 소속 유시민 전 의원(이하 경칭 생략)이 2월 18일(2013년) 트위터를 통해 정계은퇴의 뜻을 밝혔다. 그의 이름처럼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민주당의 뒤끝 있는 반응이다.

"기득권과 기성정치에 끊임없이 도전한 그의 비주류 정신은 높이 살 만하지만 그가 서 있던 곳에는 분열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이러한 논평은 '빽바지-난닝구' 논쟁을 연상시킨다.

'빽바지'는 유시민이 2003년 4월 재, 보선 당선 후 국회 본회의장에 옅은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나타난 이후 개혁파(수도권 친노무현계)의 상징이 됐다.

 

'난닝구'는 2003년 9월 새천년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갈라서기 직전 당무회의장에서 러닝셔츠 차림의 50대 남성이 당 사수를 외친 뒤 당권파(호남 구민주계)를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양측의 갈등은 2005년 4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의 노선 다툼을 시작으로 고비가 있을 때마다 불거졌다.

당내 분란의 한복판에 섰던 유시민은 이후 정치적 롤러코스터를 타야 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야권 대선후보 지지율 1위로 급부상했으나 다음해 6.2 지방선거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패했다.

민주노동당 등과 통합진보당을 꾸린 뒤 2012년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태로 또 한번 위기를 맞았다.

당시 당권파(경기동부연합)의 행태를 비판하며 '유시민의 재발견'이란 말도 나왔지만 결국 '한때는 대통령 후보로 거론됐던 사람인데 아주 망했다." (2012년 11월 거리캠페인)는 자신의 표현대로 되고 말았다.

하지만 민주당이 퇴장하는 유시민의 뒤통수에 대고 '분열의 씨앗'을 거론한 것은 지나친 감을 지우기 어렵다.

더욱이 민주당은 2012년 12월 대선 패배 후 계파 싸움과 무능 정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광주에서 허벌나게 치욕적 비난 받고 목포로 갑니다."

"광주 개XX들아 술 주면 마시고 실수하고 그러면 죽고." 라는 취중 트윗을 날린 것은 그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차라리 BBK 의혹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징역 1년을 살고 출소한 '나꼼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나는 2월 6일 저녁 서울시청 신청사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주최 특강에서 그의 변신을 느꼈다.

그는 교도소 독방에서 단련했다는 식스팩 못지않게 업그레이된 인식을 선보였다.

"지난 대선 때 저들(새누리당)은 잘했고 우리(민주당)는 못했다. 국민들에게 절실하게 다가가는 노력이 부족했다... 정권교체 안돼도 다음 달 세비는 나온다. 당은 반성 못하고 우당탕탕 할 것이다. (국회의원) 임기가 너무 많이 남았다. 나를 버려야 하는데 버리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500여 명의 참석자 중엔 젊은 얼굴들 뿐 아니라 나이 지긋한 얼굴도 있었다. 이들은 속이 후련한 듯 단상을 향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민주당은 이런 민심을 얼마나 체감하고 있을까. 5월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고 달라질 수 있을까.

유시민의 정계은퇴에 대해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페이스북에서 "유시민의 좌절은 우리의 좌절"이라고 했다.

"유시민이 그동안 했던 정치는 정당개혁운동이었다. 더 엄격히 말하면 외부로부터의 '민주당' 개혁운동이었다." 정치인 유시민의 실험은 실패했다.

"왜 저토록 옳은 이야기를 저토록 싸가지 없게 할까." 라는 평도 들었던 그였지만 이젠 한 사람의 시민, 지식소매상으로서 기탄없이 옳은 이야기를 해주길 기대한다.

문제는 빽바지가 사라진 정치권에 오롯이 남은 민주당이다. 솔직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 여당을 견제하고 정치의 생산성을 높일 건강한 야당과 새로운 정치는 불가능한 것인지 답답한 노릇이다.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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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2013년 2월 유시민 전 의원이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장면을 보면서 대학시절의 한 장면이 기억났다. 1985년 6월 학생회관에 대자보가 붙었다. 유시민의 항소 이유서였다. "열여섯 꽃 같은 처녀가 매주 60시간 이상을 일해서 버는 한 달 치 월급보다 더 많은 우리들의 하숙비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맥주를 마시다가도, 예쁜 여학생과 고고 미팅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나쁜 짓을 하다간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돌이켜 보면 가슴을 울리는 글, 공감을 주는 글에 대한 열망이 생긴 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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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부탁해]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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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씨가 2012년 11월 서울 종로 거리를 걷고 있다. 꺽다점, 아니 커피 체인점에 들어간 그는 가판대에서 산 신문을 읽다 미간을 찌푸린다.

"참말 이상한 일일세."

그는 외투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을 들여다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구보씨의 눈길을 멈추게 한 건 '대권'이란 두 글자였다. 대권 주자, 대권 후보, 대권 행보, 대권 구도, 대권 레이스.

구보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점에서 법전을 뒤적인다. 1987년 만들어졌다는 헌법 어디에도 대권은 없다. 구보씨는 신문사로 전화를 건다.

"나, 구보요. 일본 제국주의나 쓰던 대권이란 말이 아직까지 쓰이다니...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소."

1930년대 소설의 주인공, 구보씨의 물음에서 보듯 일제강점기에 대권은 일본 국왕을 의미했다.

1889년 제정된 메이지 헌법 전문에 "국가통치의 대권은 짐이 조종에게서 승계하여" 라는 대목이 들어 있었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대권의 뜻은 명확해진다.

"천황폐하 칙어, 만세일계의 황위를 계승하야 제국 통치의 대권을 총람..." (1926년 12월)

"신민의 권리의무에 대한 헌법의 보장이 대권의 시행을 방해치 안흠(않음)은 물론..." (1938년 1월)

1945년 8월 미국에 항복할 때도 "천황폐하의 대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양해"를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던 일본은 이후 평화헌법에서 대권을 삭제했다. 문제의 단어엔 주권이 국민이 아니라 한 명의 통치자에게 있다는 전근대적 논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본조차 폐기한 이 단어가 21세기 한국에 시퍼렇게 살아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보씨는 그것이 궁금했던 것이다.

구보씨의 항의 전화를 받은 뒤 나는 중앙일보 기사 DB(1965년~)를 검색해 봤다.

대권이란 말이 광범위하게 유통되기 시작한 건 뜻밖에도 87년 대선 이후였다. 대통령 자리가 각축의 대상이 되면서 대권이 최고의 권력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은 것이다.

대권은 과연 용어만의 문제일까. 정치권과 언론계, 나아가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을 반영하는 건 아닐까.

대통령이 되면 법의 울타리를 넘어 어마어마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들 여긴다.

수퍼울트라 갑의 이미지다. 그 뒤를 검찰 권력, 국세청 권력, 공정위 권력이 따른다. 신문사, 방송사도 언론 권력으로 행세해왔던 게 사실이다.

권력이란 말이 온당한지부터 보자.

권력은 개인이나 집단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다. 이 단어는 헌법 1조에 단 한 번 등장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반면에 권리가 미치는 범위 내지 한계를 뜻하는 권한은 헌법에 열한 번 되풀이된다.

권한 행사, 대통령 권한 대행, 정부의 권한, 행정 각부 간의 권한...​

총구에선 권력이 나오지만 투표함에선 권한이 나올 뿐이다. 민주공화국이라면 대통령이라도 공시적으론 권한이라고 해야 맞다.

그럼에도 우리는 권력을 인격화하고 우상으로 받들며 그 앞에 대라는 수식어까지 붙여주고 있다.

대권의 마력에 중독된 한국의 대통령들은 권좌에 앉아 자기 뜻대로 세상을 바꾸려다 실패를 반복했다. '실세' 완장을 찬 측근들만 단물을 빨았다.

미국 대통령을 보라. 의회에서 법안 한 건을 통과시키기 위해, 의원들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 옆을 지키는 건 측근이 아니라 참모다. 그래서 권력엔 부패가 따르지만 권한엔 책임이 따른다. ​이것이 권력과 권한의 차이다.

유력 후보들이 다짐하듯 이번 대선을 계기로 제왕적 대통령이 사라지길 기대한다. 대통령 한 사람의 각오나 노력만으론 어려운 일이다. 대권이란 말부터, 뿌리 깊은 시대착오부터 걷어내야 한다. 구보씨는 묻고 있다.

"대권을 말하는 자, 또 하나의 천황을 기다리는 게 아니오? 나라를 당신들 바라는 쪽으로 밀어붙이고 미운 놈들, 싫은 놈들 혼내줄 만세일계의 천황을."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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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2012년 대선을 한 달 남짓 앞둔 때였다. 미국 로스쿨을 마친 뒤 30여 년간 현지 로펌에서 활동해 온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외국생활을 오랫동안 해서 그런지 대권이란 말이 너무 낯설다. 꼭 대권이란 말을 써야 하느냐" 고 물었다. 옛날 기사 검색을 해보니 실제로 1987년 대선 이전만 해도 대권이란 말이 자주 쓰이지 않았다. 이 칼럼이 나간 뒤 독자 한 분이 E-mail 을 통해 "일제 강점기 이전인 조선시대에도 대권이란 말이 많이 쓰였다."고 알려왔다. 독자의 질정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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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부탁해] 에서 발췌함

 

'종북' 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글이다. 또한 기존 정부에 반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종북'이라고 규정해 버리는 왜곡된 용어 정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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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이란 이름의 유령이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여기도 종북, 저기도 종북, 이 유령을 잡을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종북이란 용어의 본적지는 보수진영이 아니라 진보진영이었다.

2001년 12월 당시 원용수 사회당 대표가 민주노동당의 통합 논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사용했다.

"민중의 요구보다 조선노동당의 외교정책을 우위에 놓는 종북 세력과는 함께 당을 할 수 없다." (<연합뉴스> 2001년 12월 21일 자)

 

 

종북 논란은 2008년 민노당 내부에서 또다시 불거진다.

당내 진보신당파가 일심회 사건에 연루된 당직자 제명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수파인 민족해방(NL) 계열을 '종북주의'로 규정한 뒤 탈당한 것이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을 계기로 대중 속에 자리 잡았지만 그 의미는 여전히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12부(재판장 배호근)는 2013년 5월 이정희 통진당 대표 등이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판결문에서 종북을 이렇게 설명한다.

"[1] 북한과 연관되었다고 인정된 사건들에 있어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부터 [2]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 나아가 [3]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사회세력에 대해서까지 다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

한 판사 출신 법조인의 설명이다.

"어떤 집단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치적 구호에 가까운 셈이지요. 그래서 더더욱 신중하게 쓸 필요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확대해서 사용하면 여론재판과 같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이다. 검찰 공소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시, 강조 말씀을 통해 '종북좌파 척결'을 오, 남용했다고 제시하고 있다.

"종북좌파들이 한 40여 명이 여의도로 진출했는데..."(2012년 4월 20일)

"국책사업 등의 성과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면 종북좌파들의 현혹에 넘어갈 수 있으므로..."(같은 해 6월 15일)

심리전단 직원들이 야당 후보와 정부 정책에 관한 댓글을 달고 트윗을 전송한 것도 '종북'프레임에 따른 활동이었다.

​그 프레임을 잘못 확장하면 정부 입장에 동조하는 언행 말고는 모든 것이 종북으로 분류될 위험이 있다.

진짜 종북세력은 어떻게 하느냐고?

[3]번 유형에 해당하는 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 실정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처럼 유, 무죄를 가리는 것이다.

[1]번이나 [2] 번까지 종북 카테고리 속에 집어넣는 건 사상의 자유, 토론의 자유를 억누르는 결과를 빚고 만다.

그들의 주장을 얼마든지 반박하고 질타할 수 있지만 분명한 근거 없이 종북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생각과 표현의 자유는 북한식 전체주의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가치다.

한 로스쿨 교수는 "종북이란 과장된 공포의 언어로 시민들을 위축시키는 일이야말로 북한의 유일사상 체제를 뒤따라가는 것, 즉 종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정부, 여당의 방침과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국민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은 묵과하지 않을 것"이란 대통령 말씀에 고개를 갸웃거린다고 해서 종북, 좌빨로 비치지 않을지 걱정해야 한다면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이제껏 자신을 보수주의자라 자부해 온 이들까지 '그렇다면 나도 종북일까' 되내게 하는 게 오히려 체제에 대한 위협 아닐까.

우리가 할 일은 생경하고 철없는 말들을 종북으로 뭉뚱그리는 게 아니다.

 

종북세력([3]번을 의미)이 '무해한 광신도'가 되게끔 헌법 정신을 뿌리내리는 것이다.

항균 능력을 키워 '건강하게'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얻은 건강이 진정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해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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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2013년 8월 검찰이 '이석기 내란음모' 수사에 착수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 법무부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한국 사회에 종북 논란이 불붙었다. 나는 '종북' 딱지를 남발하는 건 오히려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생각에 딱지를 붙이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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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부탁해] 에서 발췌

 

-국정원의 댓글 조작 사건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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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늦은 오후 서울 명동에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다. 거리 양편의 노점들은 하나둘 불을 밝히고 하루를 시작한다. 성당 들머리엔 '명동성당 종합계획 1단계 신축공사' 표지판이 붙어 있다.

귀에 익은 노랫가락이 어디선가 들려온다. <잘할걸>. 버스커 버스커다.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은 난 다시 그대 생각에..."

성당으로 향하는 철제 계단을 따라 성당의 연대기가 공사 가림막에 펼쳐져 있다. 1984 요한 바오르 2세 방문. 1987 인권,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 글귀 밑 미사 사진 속에 청년 박종철의 영정이 있다. 그렇다. 87년 6월이 있었다. 함성과 구호와 최루탄의 시간. 지금 우리는 그해 6월이 놓은 길 위에 서 있다.

 

 

"그때는 우리가 완벽했을지라도 지금은 닿을 수 없어..."

며칠 전 여론조사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2012년 하반기, 정말 이상했어. 야권 후보들을 비난하는 트윗들이 주말에 사라졌다가 월요일부터 급증하곤 했거든. 트위터 순위 사이트를 봐도.... 국정원 수사를 보니 왜 그랬는지 알겠더군.

컴퓨터 앞에 종일 앉아 있다 퇴근하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들도 보통 샐러리맨들처럼 '불금'(불타는 금요일)과 주말이 기다려졌을 것이다. 그들은 댓글 올리고 리트윗(재전송)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문제는 그렇게 '평범한' 일상에 있었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도대체 우리가 왜 이렇게..."

1987년 6월 한국 사회는 대통령 직선제만 하면 민주주의가 이뤄질 거라 믿었다. 일상까지 민주주이 원칙에 따라 재편되지 않는 한 민주 정치는 요원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정보기관 직원, 군 사이버사령부 요원의 업무 내용이 상식적이지 않다면 정상적인 사회라 부를 수 없다는 사실도 예감하지 못했다.

그 책임이 정치인들에게만 있을까. 준비된 대통령은 준비된 시민이 있을 때만 유효하다. 안타깝게도 우린 준비되지 않았고 깨어 있지 않았다. 우리가 깨어 있었다면 우리의 친척이나 대학 동창인 그들이 선거 개입으로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이었다면 과연 거부할 수 있었을까. 고통스럽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도 있다.

"조금만 더 잘할걸, 조금만 더 참을걸..."

그 해 6월 우린 서둘러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자기 자리로의 복귀를 조금 미루고 한국 사회, 한국 정치의 미래를 놓고 토론을 벌였어야 했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묻고 답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상식과 일상을 만들어가야 했다.

권력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어떤 이유로도 국가기관이 시민들의 여론에 검은 손을 뻗으려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서로의 가슴에 새겨 넣어야 했다.

 

입으론 노동자, 농민을 말하면서도 다들 자기 앞의 생에 초조해 했다. 구호 소리만 높았을 뿐 생각을 나누지 않았다. 어쩌면 그 철저하지 못함에 보복당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상처가 덧나고 고름이 터진 뒤에야 '철저 수사'를 다짐하는 총리 담화문에서, 국정원 방어에 급급한 여당 의원들의 모습에서, '구국의 결단'과 '아버지 대통령 각하'를 거론하는 발언록에서 상식의 퇴행을 확인하고 있다.

"조금만 더 잘할걸, 조금만 더..."

현실은 홍상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통속적이고 비루하다. 그래도 개선하려는 의지까지 접지는 말아야 한다. 젊은 공무원들이 허접한 글들을 리트윗하면서 안보 업무라고 믿는 현실만큼 소름 끼치는 일은 없다.

이제 의식의 일대 변화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때 대학생이었던 40대, 넥타이 부대였던 50대, 60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매번 비슷한 곳을 맴도는 회로에서 벗어날 순 없는 걸까. 착잡한 마음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점령한 거리로 들어갔다. 세상은 상점과 노점의 불들로 환했지만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다.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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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2013년 9월 서울고법이 전 국정원 차장과 심리전단장에 대한 재정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어 검찰 수사에서 국정원 댓글과 관련된 트위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국정원 직원들이 댓글 활동을 공무원의 정상적 업무로 여기는 현실이라니.... 착잡함을 달래려고 명동성당 언덕에 올랐다가 87년 6월을 기억해냈다. 성당 앞 빌딩 숲 위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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