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에 해당하는 글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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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나도 SSRI를 먹는 수백만 미국인의 물결에 동참했다. 그 뒤로 20년 동안 거의 끊임없이 이 계통 약을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약이 효과가 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이 약을 먹는 데 든 돈이나 약으로 인한 부작용, 약을 바꾸는 일에 대한 정신적 외상, 그리고 아무도 알 수 없을 뇌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 등을 고려했을 때 그래도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SSRI를 향한 초기 열광이 지나가고 나자 1970년대 안정제가 일으켰던 우려가 항우울제에도 드리우기 시작했다. 정신약리학사가 데이비드 힐리는 이렇게 말한다. "팍실 중단으로 인한 문제가 다른 어떤 향정신성 약보다 더 폭발적인 기세로 보고되었다는 게 지금은 분명해졌다."


  "팍실은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밀타운을 발명한 프랭크 버거는 2008년 죽음을 앞두고 이런 말을 남겼다. "팍실 복용을 시작하고 나면 끊기가 매우 어렵다. ……리브리움, 발륨, 밀타운은 그렇지 않다." 몇 년 전에 내가 만나는 내과 의사는 환자들이 심한 금단증상을 호소해서 이제는 더 이상 팍실을 처방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금단 효과를 차치하더라도, (프로작과 팍실의 개발 초기 연구에서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기도 했고) SSRI에 그다지 뚜렷한 효과가 없는 듯도 하다. 2010년 1월, 뉴스위크는 미국인들에게 SSRI를 화려하게 소개한 지 정확히 20년 만에 이 약의 불안과 우울 치료 효과가 사탕약보다 별로 나을 게 없다는 연구를 표제 기사로 다뤘다. 2006년의 대규모 연구 두 건에서 항우울제를 먹어도 환자 다수가 회복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첫번째 시도에서 확실하게 호전된 환자는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영국 의학 저널≫은 SSRI의 약효에 관한 연구 수십 건을 검토한 뒤에 프로작, 졸로프트, 팍실 등 SSRI계 약은 "임상에서 헛약과 비교했을 때 의미 있는 이득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나와 내가 아는 사람들을 포함해 수천만 명의 미국인이 해마다 SSRI를 수십억 달러어치씩 소비한다. 그게 약효가 있다는 뜻이 아닌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SSRI의 대량 소비가 불안과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의 수를 감소시키지 않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오히려 약 소비와 불안과 우울증 증가 추세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듯 보인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이렇게 말한다. "1차 세계대전 무렵에 태어난 사람의 우울증 평생 유병률은 1퍼센트 정도다. 2차 세계대전 무렵에 태어난 사람의 우울증 평생 유병률은 5퍼센트 정도다. 1960년대 이후에 태어났다면 평생 유병률은 10~15퍼센트 정도로 나타나는데 이 세대 인구는 아직 생존 중이다. 그러니까 최종적으로는 유병률이 더 높아지리라는 말이다. 우울증 진단이 단 두 세대 사이에 최소 열 배로 늘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추세가 나타난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우울증 발병률이 (SSRI가 개발되기 전인) 1976년에서 2000년 사이에 거의 두 배로 뛰었다. 영국에서는 프로작 도입 4년 전인 1984년에는 우울과 불안 장애로 인한 병가 일수가 3800만 일이었으나 SSRI가 널리 쓰인 지 10년이 지난 1999년에는 같은 이유에 따른 병가가 1억 1700만 일이었다. 300퍼센트로 증가한 셈이다. 미국 보건 조사에서는 우울증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노동 연령 인구의 비율이 1990년대에 세 배로 늘었다. 내가 본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통계는 다음과 같다. 항우울제가 존재하기 전에는 인구 100만 명당 50~100명 정도가 우울증을 앓는다고 추정되었다. 오늘날에는 100만 명당 10만에서 20만 명에 달한다. 우울증을 낫게 해준다는 최첨단 약이 어느 때보다 많은 이 시대에, 우울증 발병률이 1000배로 폭증한 셈이다. 

  저널리스트 로버트 휘터커는 2010년에  『어떤 유행병의 해부』라는 책에서 SSRI가 실제로는 우울과 불안을 일으킨다는 자료들을 모아 제시했다. 그러니까 지난 20년 동안 SSRI를 먹은 수천만 명의 뇌에 유기적 변화가 일어나 이들이 더욱 불안하고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지난 45년 동안 세계에서 자살률이 60퍼센트 증가했다. 이걸 근거로 세계적인 불행이 SSRI 소비가 맞물려 늘어났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약이 정신병을 일으킨다는 휘터커의 주장은 논란의 대상이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부인하고, 확실히 입증된 바도 없다. 그렇지만, SSRI 처방의 폭증으로 우울과 불안장애의 정의가 급격하게 확장된 것은 분명하다. (우울과 불안을 구실로 일을 쉬는 것이 널리 용인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우울과 불안 진단을 맏는 사람의 수는 또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 스콧 스토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중에서

 

※ 모든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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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조디아제핀은 거의 반세기 전부터 대표적인 불안 치료제로 자리 잡아 왔다. 그렇지만 벤조디아제핀의 핵심적 화학 작용이 무엇인지 마침내 밝혀진 것은 1970년대 후반이 다 되어서였다. 역시 국립보건원 스티브 브로디 연구실 출신인 에르미니오 코스타라는 이탈리아 신경과학자가 벤조디아제핀이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이라고 하는, 뉴런 발화 속도를 억제하는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냈다. 
 

 신경과학적 원리를 아주 간략하게 줄여 설명하자면, 글루탐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은 뉴런을 자극하여 더 빨리 발화하게 한다. 반면 GABA는 뉴런을 억제해 발화를 늦추고 뇌 활동을 진정시킨다. (글루탐산이 뇌 신경회로의 가속 페달이라면 GABA는 브레이크다.) 코스타는 벤조디아제핀이 모든 뉴런에 있는 GABA 수용체와 결합하여 GABA의 억제 효과를 강화하고 중추신경계 활동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벤조디아제핀은 GABA 수용체와 결합하며 수용체의 분자 구조를 바꾸어 GABA 신호가 더 오래 지속되게 하고, 그러면 뉴런이 계속 더 느린 속도로 발화하여 뇌 활동이 진정된다. 

  신경과학에 대해서 이 정도 겉핥기식으로만 알아도 내 뇌에서 불안이 생겨나고 자낙스가 그걸 줄이고 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불안이 자라면 자율신경계가 싸움 또는 도주 모드로 들어가고, 머릿속이 마구 돌아가고, 온갖 종류의 재앙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몸은 완전히 고장 나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시냅스가 파열된 엔진처럼 점점 더 빨리 발화하는 게 상상이 된다. 자낙스를 먹으면, 운이 좋으면 30분 정도 지난 뒤에 벤조디아제핀이 GABA 수용체와 결합해 신경 발화를 억제하며 브레이크를 거는 게 느껴지는 듯하다. 모든 게……조금씩……느려진다. 

  물론 아주 단순화한 은유다. 나의 불안을 정말로 염화이온 통로를 얼마나 잘 막았는지, 편도의 신경 발화 속도가 어떤지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나? 사실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다. 편도의 신경 발화 속도는 불안이 느껴지는 정도와 상당히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렇지만 나의 불안을 편도 속의 이온으로 환원해 말한다는 건 내 성격이나 영혼을 뇌세포를 구성하는 분자나 그게 만들어지는 바탕이 된 유전자로 환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편협하다. 

  한편 실질적 고민도 있다. 벤조디아제핀에 장기간 의존하면 내 뇌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지금 현재 나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발륨, 클로노핀, 아티반, 자낙스)을 용량과 빈도는 계속 바꾸었지만 어쨌든 30년 넘게 먹어온 셈이다. 한 번에 몇 달 동안씩 날마다 복용한 때도 꽤 있었다.

  "발륨, 리브리움 등 이 계열의 약은 뇌 손상을 일으킨다. 약물 복용 때문이라고 생각되는 대뇌피질 손상을 확인했는데 영구적 손상인지 의심하고 있다." 테네시 대학교 의사 데이비드 노트가 1976년에 이미 이런 경고를 했다. 그 뒤 30년 동안 학술지에 장기간 벤조디아제핀 약물을 복용한 사람의 인지 기능 손상을 보고한 글이 수십 편에 달한다. 1984년 맬컴 레이더의 연구는 오랜 기간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사람의 뇌가 물리적으로 수축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후속 연구에서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 중에서도 어떤 종류냐에 따라 뇌의 어떤 부분을 수축시키는지 차이가 나타났다.) 그래서 마흔네 살이 된 내가, 먹다 끊다 하긴 했지만 수십 년에 걸쳐 신경안정제를 먹어왔기 때문에 전보다 머리가 나빠진 듯한 느낌이 드는 걸까? 

 


 

-스콧 스토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중에서

 

 

※ 모든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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