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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몇 십 년간 이탈리아에서 태양중심 모델에 관한 새로운 논란이 시작되었다.

이번 논쟁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계 이론의 대표적인 옹호자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입장을 둘러싼 것이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결국 가톨릭교회는 갈릴레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고, 오늘날 이는 일부 교회 관료들이 저지른 명백한 판단 착오로 인식되고 있다.

​처음에 갈릴레이의 의견은 고위 성직자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그가 교황의 총신 치암폴리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일부 작용했다. 치암폴리의 권력 실추로 갈릴레이는 교황 측근의 지지를 잃었고, 결국 적들의 공격 대상이 되어 유죄 선고까지 받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록 갈릴레이를 둘러싼 논쟁이 과학 대 종교, 또는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성경의 올바른 해석에 있다.

과거에는 이 논쟁과 관련된 신학적, 더 정확하게 해석학적 쟁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올바르게 조명되지 않았다. 이 논쟁에 관심을 가진 학자 상당수가 과학자나 과학 역사가였다.

고도로 복잡했던 시대에 성경 해석에 관한 논쟁의 얽히고설킨 내막을 잘모르는 사람들이 벌였다는 사실도 부분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여하튼 갈릴레이와 그의 비판자들이 벌인 논쟁에서 최대 쟁점은 특정 성경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논쟁에서 조정(accommodation)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점을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1615년 1월 발표한 중요한 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갈멜 수도사였던 포스카리니(Paolo Antonio Foscarini)는 <피타고라스학파와 코페르니쿠스의 의견에 관한 서한,Letter on the Opinion of the Pythagoreans and Copernicus>에서 태양중심 모델이 성경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포스카리니-

 

포스카리니는 그의 분석에서 어떤 새로운 성경 해석 원리를 내세우지 않았고, 오히려 전통적인 해석 방식을 제시하고 적용했다.

성경에서 ​부적절하고 부적당하다고 여겨질 만한 속성을 신이나 피조물에 부여하려면 다음 방법 중 하나 이상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야 한다.

​[1] 은유나 비교, 비유의 목적을 지닌 것

[2] 우리의 고찰과 판단, 이해, 인식 등의 방식에 맞게 말한 것

[3] 서민의 생각과 보편적인 화법에 맞게 말한 것


(Blackwell, 1991, pp.94~95)

포스카리니가 말한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세 번째 성경 해석법인 '조정'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말한 대로 이 해석법의 기원은 초기 기독교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에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았다.


포스카리니는 그가 채택한 해석법이 아니라, 그 해석법을 적용한 성경 구절에서 혁신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포스카리니는 ​당시까지 많은 이들이 문자 그대로 해석하던 일부 구절에 조정 해석법을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지구가 정지해 있고 태양이 움직인다는 의미로 여겨지던 구절에 대한 것이었다. 포스카리니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성경은 우리의 이해 방식과 형세에 따라 우리를 고려해서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내용이 우리와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인간의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고방식에 맞게 묘사된다. 즉 지구는 멈춰있고 움직이지 않으며 태양이 그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를 생각해서 평범하고 보편적인 말투로 얘기한다. 우리에게는 정말 지구가 한가운데 단단히 고정된 상태에서 태양이 그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이지 그 반대로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Blackwell, 1991, p.95)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더욱 신봉하게 된 갈릴레이 역시 포스카리니와 비슷한 성경 해석법을 채택한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관건인데 갈릴레이 비판자들은 성경의 몇몇 구절이 갈릴레이의 의견과 반대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 10장 12~13절에는 여호수아의 명령으로 태양이 멈췄다고 하는데, 바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없이 입증한 것이 아닌가?

 

갈릴레이는 <대공비 크리스티나께 드리는 서한, Letter to the Grand Contess Christina>에서 그와 같은 표현은 단지 보편적 화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맞섰다.

여호수아가 천체역학의 복잡한 원리를 알았을리 없고, 결국 그는 '조정된' 화법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두 가지 근거로 공식적인 지탄을 받았다.

[1] 성경은 '단어들의 올바른 의미'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직해적인 해석법이 힘을 얻으면서 포스카리니가 택했던 조정된 해석법은 거부되었다.

그런데도 두 가지 다 기독교 신학계에서 타당성을 인정받았고, 오랜 역사를 지닌 해석 방법이라 문제의 성구에 어느 쪽이 적합한가를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졌다.

[2] 성경은 '교황 성하와 박학한 신학자들의 공통된 해석과 이해에 따라' 해석해야 했다.

다시 말해 그때까지 중요한 인물 중 포스카리니의 해석을 따른 이가 없었고, 따라서 그 해석은 새로운 것이므로 일축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포스카리니와 갈릴레이의 견해는 기독교 사상 전례가 없는 새로운 주장인 만큼 거부해야 했다.

두 번째 논점은 매우 중요하다. 향후 오랫동안 계속된 프로테스탄티즘과 로마가톨릭 간의 치열한 논쟁의 맥락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새롭게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정통 기독교의 회복인지를 따졌던 이 논쟁은 17세기에 일어난 30년 전쟁(1618~1648) 때문에 더욱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가톨릭 전통의 불변성이라는 개념은 로마가톨릭이 프로테스탄티즘에 맞서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로마가톨릭을 옹호하는 대표적 인물인 보쉬에(Jacques-Benigne Bossuet, 1627~1704)가 1688년 그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교회의 가르침은 언제나 한결같다....복음은 이전의 내용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과거에 언급되지 않았더너 뭔가가 신앙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이단, 즉 정통 교의에서 벗어난 것이다. 거짓된 교의는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언제 나타나든지 즉시 알아볼 수 있다. 새로운 개념이니까..... (Chadwick, 1957, p.20)

17세기가 시작될 무렵 이러한 주장들은 널리 확산되었고, 포스카리니에 대한 공식적인 비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가 제안한 해석법은 전례가 없었고 그 이유만으로도 옳지 않았다.

​이처럼 성경 해석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은 복잡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극도로 정치화된 일촉즉발의 시대에 어떤 새로운 접근법이라도 용인했다가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적법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일까 두려워해 당시의 신학 논쟁은 크게 편향되어 있었다.

어떤 중요한 사안에 대해 로마가톨릭의 가르침이 '바뀌었음'을 인정한다면 필시 프로테스탄티즘 핵심 교의, 즉 이제까지 로마가톨릭 교회가 '새로운 것'으로 여겨 거부해왔던 가르침을 정통 교의로 받아들이라는 요구로 이어질 수 있었다.

따라서 ​갈릴레이의 견해가 저항에 부딪힌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신학적으로 새로운 개념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특정 성구에 대한 갈릴레이의 해석을 수용한다면 가톨릭의 프로테스탄티즘 비판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었다.

프로테스탄티즘에서 특정 성구에 새로운, 새롭기 때문에 잘못된 해석을 도입했다는 주장에 기초한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갈릴레이의 주장이 배척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이와 같은 간단한 분석을 통해 갈릴레이 논쟁의 배경에 성경의 해석과 과거 교의의 전승을 두고 갈등을 빚은 프로테스탄티즘과 가톨릭교회의 관계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행히도 갈릴레이는 이 논쟁의 십자포화와 암류에 휩쓸렸던 것이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과학과 종교] 에서 발췌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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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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