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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존감과 인정, 정체감 등 자기 스스로 얻기 어려운 것들을 타인에게서 구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찾는 것은 자기 안에 블랙홀처럼 존재하는 공허감과 절망을 영원한 사랑과 동정심으로 채우면서 돌보아 줄 사람이다.

 

[경계인의 고백]

 

나는 친절해 보이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다가가곤 했다.

그들이 나를 돌봐주리라는 깊은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다가 이 세상 누구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고 돌봐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깨달았다.

 

마음 속의 나는 아직 어린아이였지만 겉모습은 성인이었기 때문이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지닌 강렬한 궁핍감은 그들이 맺는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비경계인 부모와 경계인 자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비경계인의 고백]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열여덟 살짜리 딸을 키우는 일은 휴일도 없이 날마다 24시간 일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것과 같다.

 

딸은 늘 우울해하고, 그럴 때마다 위로가 필요하다. 일상적인 문제들의 해결책을 생각하는 데도 딸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

 

한밤중에 자기 살을 그어 피를 뚝뚝 흘리는 모습으로 울면서 내 침실로 오기도 한다.

 

나는 그 아이를 매우 사랑하지만 이런 일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고, 어떡해야 좋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딸 아이만을 위해 쓰다 보니 다른 자식들이 원망하기 시작한다.

 

_____________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관계를 잃는 일은 마치 팔다리 하나를 잃는 일, 심지어는 죽음과도 맞먹게 느껴질 수 있다.

 

동시에 그들은 자존감이 아주 앉아서, 아무도 자신과 함께하고 싶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경계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애정이 없으며 곧 자기를 떠나리라는 것을 밝혀줄 단서를 늘 찾는다.

 

그러한 두려움이 맞았음이 확인되는 듯하면 분노를 터뜨리거나,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흐느끼거나, 복수를 하려 들거나, 자해를 하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그 밖의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이는 경계성 성격장애의 핵심적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경계성 성격장애로 고통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고 친밀해지기를 무엇보다도 절실히 원한다.

 

하지만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들이 하는 행동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든다.

 

이런 상황은 그를 상대하는 비경계인인 당신에게도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니 이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는 어떨지 상상해 보라.

 

당신은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벗어나 있을 수 있다. 재미있게 놀고, 파티에 가고, 책을 읽고, 해변에서 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경계인은 하루 24시간 내내 자신의 공포, 걱정과 함께 있어야 한다.

 

많은 경계인이 과대 이상화와 폄하의 양극단을 오락가락하는데, 이를 '분열(splitting)'이라고 부른다.

 

경계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사악한 마녀 아니면 착한 요정으로, 성자 아니면 악마로 인식한다.

 

당신이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듯하면 당신을 최고의 영웅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실망시켰다고 보면 한 순간에 당신은 못된 악당이 되고 만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타인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함께 보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 대한 그의 평가는 종종 상대와의 마지막 만남에 근거하게 된다.

 

코미디 쇼인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 나오는 '미스터 단기기억'처럼 말이다.

 

미스터 단기기억에게는 모든 순간이 새롭다.

 

점심 시간이 되면 그는 같이 밥을 먹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자신을 소개하고, 음식을 주문하고 또 주문한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의 감정적 기억도 그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제롤드 크라이스먼은 분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보통 사람은 양면가치를 지니고 있고, 두 가지 모순되는 상태를 한번에 경험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두 상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한쪽에 있을 때는 다른 쪽의 감정 상태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보면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아서 인간의 모순성이나 애매모호함을 용인하지 못한다.

 

그는 어떤 사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조화시켜 일정하고 통일성 있게 이해할 수가 없다.

특정한 순간에 좋거나 나쁜 사람일 뿐, 그 중간이나 회색 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묘하거나 근소한 차이는 아예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주 힘들게만 이해한다.

 

끊임없이 엄습해 오는 모순된 감정들과 이미지들로부터,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에서 오는 불안으로부터 경계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분열' 기제는 종종 역효과를 가져온다.

 

성격이라는 옷감 안에서 처음에는 작게 해어졌던 부분이 나중에는 완전히 찢어진다.

즉, 자기 정체감과 다른 사람들의 정체성이 더욱 극적으로, 더욱 자주 바뀌게 되는 것이다.

 

_______________

 

전부가 아니면 무(無) 라는 경계인의 사고방식은 인간관계 뿐 아니라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이 하나밖에 없다고 믿는다.

 

일단 행동을 취하면 되돌릴 수 없다.

 

예를 들면,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여자가 직장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녀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직장을 구만두는 것이었다.

 

경계인의 노력 또한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일 때가 많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한 대학생의 경우, 정치 캠페인에 깊이 관여하게 되자 모든 수업에서 낙제 점수를 받게 되었다.

 

다음 학기에 그는 수업에 전념하기 위해 일체의 정치 활동을 그만두었다.

 

자신의 시간을 두 가지 활동에 나누어 쓸 수 없었던 것이다.

 

경계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흔히 사람 사이의 관계가 명확하게 정의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타인은 친구가 아니면 적이고, 열정적 애인이 아니라면 오로지 정신적인 우정을 나누는 친구인 것이다.

 

이는 경계인이 엣 연인과 정신적인 친구가 되기 힘든 이유 중의 하나이다.

 

확실한 정의에 대한 집착은 타인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 역시 흑백논리로 본다.

 

 

 

경계인들을 위한 책에서 리처드 모스코비츠는 이렇게 설명한다.

 

당신(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아마도 완벽을 향해 진력할 것이고 때로는 그것을 이루었다고 느끼지만, 작은 결점 하나라도 보이면 가차없이 자신을 책망할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만족할 때면 자신이 아주 특별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규칙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지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믿을 것이다. 또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자격이 있으며 이 세상의 좋은 것은 모두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스스로에게 불만스러울 때는, 아무것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세상의 온갖 나쁜 일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으며 벌을 받게 되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만약 그 벌이 찾아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당신을 벌하도록 만들거나 스스로 벌을 내릴 수도 있다.

 

분열은 상시적으로 반복될 수도 있다.

 

경계인의 필요와 기대를 모두 채워 주는 일은 불가능하거나 아주 어렵다.

 

우선,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필요나 기대를 명확하게 말하지 않을 경우가 많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거나, 원하는 것이 있는지조차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계인이 원하는 바를 알았을 경우에도, 거기에 부응하려 들면 그들은 이제 다른 무언가를 원하다고 말하곤 한다.

 

하루 사이에도 몇 번씩 당신은 그에게 영웅이 되었다 악당이 되었다 할 수 있다.

 

반대로 그러한 영웅/악당, 성자/죄인의 순환 주기가 몇 년이 될 수도 있다.

 

'애정의 대상'에게서 '결함'을 확인한 경계인은 때로 새로운 대상을 찾아내지만, 결국은 같은 순환을 반복하게 마련이다.

 

이 같은 상황에 처할 경우, 당신은 자신에 관해 일관성 있고 균형 있는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이는 생각보다 힘들 수 있다.

 

왜냐하면 경계인은 당신이 어떤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 굳게 믿으며, 그 만큼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확신은 결코 연기가 아니다.

 

진실로 그렇게 믿는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이 당신을 열렬하게 긍정적으로 대할 때 당신이 이성적 관점을 유지하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런 관점은 당신이 미움받는 처지에 놓일 때 자신을 굳건히 지탱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분열 습관 때문에,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특히 어렸을 때 학대를 받은 사람들-은 타인을 신뢰하는 일이 아주 어렵다.

 

그러한 신뢰 부족은 인간 관계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예를 들어, 당신을 악당으로 여기는 시기에 경계인은 당신이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바람을 피운다는 비난을 퍼부어 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경계인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려고 더욱 애쓰지만 종종 허사로 돌아간다.

 

불신감은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의 내면에 깔려 있는 것이지 비경계인의 특정한 행동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경계인의 고백]

 

나에게는 항상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갈망 같은 게 있었다.

스스로도 그걸 명확히 규정할 수 없어서 그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욕구의 구덩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나를 보통 사람과 다르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못된 여자이며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여자임을 알아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상을 분산했다.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하지만 누구와도 아주 가까이하지는 않았다.

 

그리하면 어쩌다 내가 방심해서 한 친구가 내가 아주 이상한 사람임을 알게 되어 멀어지더라도, 나에게는 다른 친구가 쉰아홉 명이나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연애라는 것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친밀감이 따라왔다.

 

한 사람이 그토록 소중해지고 나니 위험은 더욱 커졌다. 내 안의 욕구들이 취약한 둑 안의 물처럼 차오르기 시작했다. 욕구들이 둑을 무너뜨리고 분출하지 않도록 나는 안간힘을 써야 했다.

 

아,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이 남자도 나를 필요로 한다.

 

그래, 이번에는 안전할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사나운 물살을 막고 있던 둑에서 큰 돌덩이 하나를 쳐낸다. 그러자 급류가 나를 삼켜 버리고, 거센 물살에 나는 핀볼처럼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로 튕겨진다.

 

세상이 빙빙 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게 물살은 제멋대로다.

 

나와 함께 있어 줘. 매일 낮, 매일 밤. 나를 보고, 내 말을 들어줘. 나 여기 있잖아. 내가 보여? 여기 있어! 여기야, 여기에 있다고!...

 

아 믿을 수 없어! 마침내, 마침내, 이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 거야!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야! 그런데.... 이것 좀 봐! 그가 거부하고 있어. 조용히 텔레비전 좀 보고 싶다고 하네.

 

다른 할 일이 있다네. 그럼 나는 도대체 뭘 하라는 거지? 욕구 좌절! 아아, 정말 짜증 나... 빌어먹

을. 난 이 남자가 미워. 내가 마음을 열었잖아.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 사람은 모른다는 거야?

아니, 나와 이야기하는 대신 텔레비전을 보겠다고? 이 순간 여기서 나와 함께 있기보다 친구들과 나가고 싶다고?

 

 

자기가 대체 뭔데 내게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거야?

 

화가 나서 미치겠네. 그리고 정말 창피스러워. 벌거벗은 내 모습을 보인 거잖아.

 

바닥 모르는 내 욕구의 구덩이를 보여 버린 거야. 그가 나를 웃음 거리로 만들었어.

 

당황스러워서 나는 막 공격한다. 단단히 혼내줘야지.

 

그 나쁜 놈에게 자기가 감히 누구를 가지고 놀려 했는지 가르쳐 줘야해.

이 친구야. 알기나 해? 나는 너 안 좋아해. 아니, 너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구.

자 이것 한 방 먹어! 또 한 방! 봤지? 나는 끄떡없어. 난 강한 여자라구. 나에겐 빌어먹을 어떤 사람도 필요 없어.

 

너 따위는 더욱 그래. 나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분노하고 소리 지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내가 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지 보게 된다.

 

그러고는 나 자신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경멸한다. 죽을 것처럼 무섭다. 그가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미련도 없이 떠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상처받기 쉽다. 나는 전혀 강하지 않다. 제발 버리지 마. 사실 난 강한 여자가 아냐. 네가 정말 필요해.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보여 줄 수 있지?

 

나는 울면서 애원한다. 그가 얼마나 멋진 남자인지, 얼마나 참을성이 많은지 얘기한다.

 

당신이 날 싫어한다는 걸 알아. 싫어하는 게 당연하지. 나 같은 건 죽어야 해!

 

당신에게도 내가 없는 게 나을 거야. 아니, 괜한 말이 아냐. 진짜 내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그가 조금 누그러지는 빛을 보인다. 오, 제발 나에게 만회할 기회를 줘. 언제 어디서든 머서진 사랑을 나누자. 열두 가지 맛있는 코스 요리도 만들어 줄게.

 

너의 어여쁜 정부라도 될게. 너에게 내 열정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게 해줘.

후유, 그가 돌아왔다. 그는 아직 내 곁에 있다. 일을 영 그르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와 함께 있으니 정말 기분이 좋다. 그는 나를 좋아해. 내겐 그가 필요해.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초래했음을 깨닫게 되면, 즉 이러한 순환이 너무 자주 반복되어서 관계가 더는 손쓸 수 없이 망가져 버렸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가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관계를 끊어 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이 끔찍한 과정을 또다시 겪는다.

-[잡았다, 네가 술래야]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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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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