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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약이 연구되면서 이런 개념은 더욱 굳건해졌다.

1954년 스위스 제약회사인 가이기에서 소라진의 화학 구조를 살짝 바꾸어 G22355라는 화합물을 만들고 ​이미프라민​이라고 불렀다. 최초의 삼환계 약물이었다.(삼환계 약물은 화학적 구조가 고리 세 개로 되어 있다)

 

더 우수한 수면제를 개발하려고 연구 중이던 스위스 정신의학자 롤란드 쿤이 이미프라민을 환자들에게 주었다. 소라진과 이미프라민은 화학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원자 두 개만 다르다) ​쿤은 이미프라민도 소라진처럼 진정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환자들이 잠들게 하는 대신 활력을 주고 기분을 돋워주었다.

 

​500명이 넘는 환자들에게 이미프라민을 투여해본 쿤은 1957년 취리히 국제 정신의학 회의에 심한 우울증을 겪던 환자들도 이미프라민을 수 주 투여한 뒤에 엄청나게 호전되었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제출했다. 기분이 좋아지고 활력이 솟고 '건강염려증'이 사라지고 '전반적 억제'가 해소되었다고 밝혔다.

"완치도 드물지 않았다. 환자 본인이나 가족들이 이렇게 좋은 상태는 정말 오랜만이라며 효과를 확인해 주었다." 라고 쿤은 보고했다.

가이기는 이미프라민을 창고에서 꺼내어 1958년 ​토프라닐​이라는 이름으로 유럽 시장에 내놓았다.

1959년 9월 6일, 이미프라민이 미국 시장에 나온 날, <뉴욕 타임스>는 [약과 우울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어 ​마르실리드(이프로니아지드, 최초의 MAOI)와 토프라닐(이미프라민, 최초의 삼환계 우울증 약)​을 다루었다.

 

<뉴욕 타임스>는 이 약을 '항우울제'라고 불렀는데, 아마 언론이나 대중 문화에서 이 용어가 사용된 게 이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항우울제를 먹는 사람이 4000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지만, 1957년 롤란드 쿤이 국제 정신의학 회의에서 발표할 때에는 항우울제라는 게 없었다.

 

그런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MAOI와 삼환계 우울증 약이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 낸 셈이다.

​1960년대 초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자이자 스티브 브로디 실험실 출신인 생화학자 줄리어스 액설로드는 이미프라민이 뇌 안의 여러 화학물질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는 연구를 했다.

 

액설로드는 이미프라민이 시냅스에서 ​노르에피네프린 ​ 재흡수를 막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몇 년 뒤 세로토닌 재흡수 역시 막는다는 사실도 발견한다).

 

액설로드는 항우울제가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분이 밝아지고 우울감이 사라진다는 이론을 세웠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이미프라민이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를 막고 환자들의 불안과 우울을 줄여준다면, 노르에피네프린과 정신건강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마르실리드나 토프라닌, 또 비슷한 효과를 내는 코카인은 시냅스의 노르에피네프린 수치를 높임으로써 불안과 우울을 치료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 무렵 매사추세츠 정신건강 센터 의사였던 조지프 실드크로트는 불안과 신경증은 어린 시절의 외상이나 해소되지 않은 심리적 갈등 때문에 일어나므로 프로이트 식 심리 치료를 해야 한다고 믿던 사람이다.

그런데 환자들 몇에게 이미프라민을 주어보았다. "이 약이 마법처럼 보였다." 실드크로트는 나중에 이렇게 밝혔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약학이 연 정신의학의 신세계가." 1965년 실드크로트는 <미국 정신의학 저널>에 [정서장애에 대한 카테콜아민 가설:근거 검토]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스티브 브로디와 줄리어스 액설로드의 작업을 기반으로 해서 뇌 안의 카테콜아민 수치가 올라가면 우울증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카테콜아민은 노르에피네프린 등 싸움 또는 도주 반응과 관련이 있는 호르몬을 총칭하는 말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신에서 분비된다.

실드크로트의 논문은 정신의학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이 되었고 불안과 우울이 화학적 불균형 때문이라는 이론을 이 분야 중심에 당당히 올려놓은 논문이기도 했다.

생물학적 정신의학의 첫 번째 기둥이 세워진 셈이다. ​프로이트 모델은 무의식의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여 불안과 우울을 치료하려 했다. 항우울제가 등장하면서 ​정신병과 정서장애는 점점 더 특정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의 장애 탓으로 돌려지게 되었다. ​조현병과 약물 중독은 도파민 시스템 문제 때문으로 생각되었고, 우울증은 부신에서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 때문이고, 불안은 세로토닌 시스템 결함으로 인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약리학이 불안의 역사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정신의학계에서 불안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변화는, 이미프라민 연구에서부터 시작된다.

 

P.S: 이미프라민 역시 우연 덕에 시장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이 우연이 없었더라면 생물학적 정신의학의 역사도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쿤의 말에 따르면 국제 정신의학 회의에서 이미프라민에 대한 보고를 했을 때 "회의적인 반응이 엄청나게 강했다."고 한다. "그 때까지는 우울증을 약으로 치료한다는 데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전적으로 우세"했기 때문이다. 사실 정신과 약에 관심이 얼마나 적었던지 취리히에서 쿤이 발표를 할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열두 명 밖에 되지 않았다.

(나중에 쿤의 발표는 약리학의 게티즈버그 연설이라고까지 불렀다.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역사에 남게 될 사건이라는 뜻이다.)

 

가이기 사도 시큰둥해했다.

 

정신의학계와 마찬가지로 정서장애를 약으로 치료한다는 생각에 회의적이었고 이미프라민을 판매할 계획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쿤이 로마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가이기 사의 대주주인 로베르 보링거를 만났다. 보링거가 지나가는 말로 제네바에 사는 친척이 우울증이 깊다고 얘기했는데 쿤이 이미프라민 한 병을 손에 쥐어주었다. 보링거의 친척은 약을 먹고 며칠 만에 호전되었다. "쿤 말이 맞습니다. 이미프라민은 우울증 치료제입니다." 보링거가 가이기 이사회에서 단언했다. 가이기 중역들도 마음을 바꾸고 약을 시장에 내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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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에서 -​ 


이미프라민=Imipramine-> 삼환계 항우울제=T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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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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