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무엇인가 #기독교적 #답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에 해당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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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사랑'과 '정의' 사이에서 고민한다. 용서라는 개념이 '정의'를 침해하는 것 같을 때...우리는 고민을 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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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본질에 대한 합의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곧장, 용서가 정의의 침해라는 주장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합의가 없다. 용서에 대한 20세기의 철학, 신학 문헌을 대충 살펴보기만 해도 근본적 의견 불일치가 드러난다.

 

제프리 머피(Jeffrie Murphy)는 이렇게 말한다.

 

"용서는 주로 내가 당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당신을 어떻게 대해는가가 아니라)의 문제다. 따라서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당신을 용서할 수 있고, 당신이 죽은 후라도 용서할 수 있다."

 

리처드 스윈번(Richard Swinburne)은 이와 정반대인 주장을 말한다.

 

당신이 나를 용서한다는 것은 "앞으로 당신은, 당신을 부당하게 대우한 행동의 원인으로 나를 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감정이 개입할 필요는 없다."

 

 

머피는 버틀러 주교(Joseph Butler)를 인용해, 용서는 분노와 분개의 감정을 극복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진 햄튼(Jean Hampton)은 여기에 한 가지 구분이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용서는 부당 행위자에 대한 증오를 극복하는 것이지만, 자신에게 가해진 일에 대한 분노와 분개의 감정을 극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저런 의견 차이를 고려하면, 용서의 본질을 이해하는 작업에 이번 장의 나머지 부분을 할애할 수 밖에 없다.

 

용서의 본질을 이해한 다음에야 용서가 정의를 침해하는지 여부를 다룰 수 있다.

 

용서에 대해서는 내가 앞으로 말할 내용보다 훨씬 많은 말을 할 수 있지만, 나는 용서가 정의를 침해하는지의 여부를 고려할 수 있을 만큼만 이야기하려 한다.

 

용서는 여기저기에 무차별적으로 나눠 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부터 지적해야겠다.

 

4장에서 주장한 것처럼, 용서는 누군가가 부당한 대우를 당했고, 자신에게 정당한 권리가 있는 무엇인가를 빼앗긴 상황을 전제한다. 용서는 불의가 벌어진 상황을 전제한다.

 

더 나아가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이 누군가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을 인식하고 불의가 벌어졌다는 것을 인식하는 상황을 전제한다. 이 문제를 다룬 대부분의 저자들은, 용서를 피해자 본인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당연시한다.

그렇건 아니건, 내겐 중요하지 않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고 본다.

 

-> (충격적이다. 이거 아주 고민되는 지점이다. )

 

우리는 이런 말을 한다. "아버지를 이용해 먹은 삼촌을 마침내 용서했다." "우리 필드하키 팀을 그렇게 부당하게 대우한 대학 당국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누군가는 이런 발언들이 의미하는 바가 '본인만이 용서할 수 있다'는 명제를 폐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부당한 대우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할 것이다.

 

-[2부]에 계속-

-[사랑과 정의] ,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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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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