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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첨예한 요즘 분위기에서 둘 간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책입니다. 과학사에서 잘못 알려진 역사적 진실을 추적해 보기도 하고, 맥그라스 특유의 논리를 바탕으로 섯부른 이분법적 접근이나 굴드 식 NOMA 개념을 거부하는 책입니다. 평소 맥그라스의 저서를 좋아한다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책이 될 것이며 이 책을 입문서로 시작해 개론서들을 찾아 읽으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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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근대에 인류가 세 가지 '자기애적 상처'(narcissistic wound)를 입었고, 각각의 상처는 인간의 자긍심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단언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 퍼옴)​


첫 번째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 있음을 알려준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입힌 상처였다.

두 번째 상처는 심지어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음을 입증한 다윈주의였다.

세 번째는 인간이 자신의 한정된 영역에서도 주인이 아님을 밝히는 프로이트 본인이 입힌 상처라고 그는 당당히 밝혔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러한 혁명적 전환은 전자가 가져온 고통과 상처를 가중시키면서 인류의 위치와 중요성에 관한 철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 프로이트의 견해가 갖는 종교적 의미는 이 책에서 나중에 다시 조명할 것이다.

​여기서는 그 '상처' 중 첫 번째인 코페르니쿠스 혁명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각 시대는 그 시대의 세계관을 뒷밤침하는 일련의 확립된 신념들이 존재한다.

중세도 예외는 아니다. 중세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태양과 다른 천체(달, 행성 등)가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는 믿음이었다. '지구 중심적' 우주관은 자명한 사실로 간주되었다.

성경도 이러한 믿음을 근간으로 해석했다 .많은 성경의 해석에 지구중심적 가정이 적용되었다.

현재 사용 중인 언어 대부분도 지구중심적 세계관을 여전히 반영한다.

예를 들어 현대 영어에서도 '해가 오전 7시 33분에 떠올랐다.'고 말하는데, 여기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믿음이 반영되어 있다.

태양계의 지구중심 모델이 참이냐 거짓이냐는 일상생활에 별 영향을 주지 않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중세 초기에 가장 널리 받아들였던 우주관은 2세기 상반기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Claudios Ptolemaeos)가 구상한 것이었다. 그는 <알마게스트,Almagest>에서 달과 행성의 운행에 관한 기존의 개념을 집대성하면서 다음 가정에 근거하여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다.

2. 모든 천체는 원을 그리며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

3. 회전은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그 중심 역시 또 다른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형태를 띤다. 본래 히파르코스(Hipparchos)가 주창했던 이 중심론은 '주전원'(epicycle), 즉 원 운동 위에 원 운동이 부여된다는 개념에 근거한다.

행성과 항성의 움직임이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관측되면서 이론은 갈수록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주전원을 추가하는 방법으로 모순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5세기 말 무렵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루기 힘든 이 모델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에 있었다. 하지만 무엇으로 대체한단 말인가?

16세기 들어 지구중심 모델은 태양 중심 모델, 즉 태양을 중심에 놓고 지구는 그 주위를 도는 많은 행성 중 하나라고 보는 관점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는 기존 모델과 완전한 결별을 뜻하며, 지난 1000년 간 인류의 실재관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임이 분명하다. 이 사고의 전환을 흔히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이라 부르며, 이것이 자리잡기까지 세 명의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폴란드 학자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동심원을 그리며 회전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 뿐 아니라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했다.


 

(코페르니쿠스- 퍼옴)


그러므로 항성과 행성이 움직이는 듯 보이는 것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조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모델은 차츰 버거워진 프톨레마이오스 모데렝 비해 단순하고 정밀하다는 장점을 지녔다. 그러나 이 모델 역시 모든 관측 데이터를 설명하지는 못했고, 이 이론을 받아들이려면 수정이 필요했다.

덴마크 학자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는 코펜하겐 인근 섬의 관측소에 있으면서 1576년부터 1592년까지 행성 운동에 관한 일련의 정밀 관측을 실시했다.

이 관측 자료는 케플러(Johann Kepler, 1571~1630)가 수정한 태양계 모델의 토대가 되었는데, 그는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2세가 사망한 뒤 브라헤가 보헤미아로 이주할 때까지 브라헤의 조수로 일했다.

(요하네스 케플러)

케플러는 행성인 화성의 운행을 관측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행성이 태양 주위를 원형 궤도를 그리며 돈다고 가정하는 코페르니쿠스 모델로는 실제 관측된 화성의 운행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609년 케플러는 화성 운행의 일반 원칙 두 가지를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

[1] 화성이 타원형 궤도로 회전하며, 이 때 태양은 두 초점 중 하나다

[2] 화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선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면적을 휩쓸고 지나간다.

1619년경 그는 이 두 원칙을 나머지 행성에 확대 적용해 세 번째 원칙을 밝혀냈다.

[3] 행성의 공전 주기(행성이 태양 주위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의 제곱은 행성과 태양 간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케플러의 모델은 코페르니쿠스의 개념을 상당히 수정한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획기적인 새 모델은 개념이 정밀하고 단순한데도 행성의 궤도가 원형이라는 잘못된 가정 때문에 관측 데이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흥미롭게도 이 가정은 유클리드 고전 기하학에서 유래한 듯하다.

코페르니쿠스는 그리스 고전 철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원은 기하학적으로 완전한 형태지만 타원은 왜곡된 형태였다.  왜 자연이 기형적인 기하학 구조를 사용하겠는가?

-알리스터 맥그라스 [과학과 종교] 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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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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