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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진리]로 칼빈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의 절정을 맛보여 준 낸시 피어시의 신작 [세이빙 다빈치] 는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다. 미학과 철학 신학 과학을 넘나드는 이 책의 거대한 이야기는 읽는 이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야를 굉장히 넓혀준다. 책을 읽고 나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공유한다. (참고로 낸시 피어시의 저서들은 인용구 등을 사용할 때 철저히 출처를 밝혀두기 때문에 출처에 대한 의심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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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감각자료]


모든 세계관은 일말의 진리를 담고 있다. 경험주의에 담긴 진리는 창조주가 그분의 창조세계에 우리가 접근할 수 있도록 우리의 오감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복음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경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사도요한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메시지가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요일1:1,새번역] 이라고 주장한다.


바울은 로마의 통치자들에게 말할 때, 예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은 "어느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행26:26, 새번역] 지적했다. 그 일은 공적인 사건이었고, 그 일을 목격한 많은 증인들이 당시에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러므로 증인들이 반대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면 사도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복음서는 목격자들의 증언에 근거하고 반대신문과 검증이 가능한 공적 진리의 기록이라고 주장한다. 경험적 자료를 존중하는 복음서의 입장에 힘입어 학자들은 신약 성경 속 사건들의 역사적 증거를 탐구하는 경험주의 형식의 변증론을 개발했다.


이러한 변증 방식은 1700년대 Nathaniel Ladner의 [복음 역사의 신빙성] 에서도 볼 수 있고, 게리 하버마스(Gary Habermas)의 [역사적 예수]와 N.T 라이트의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같은 책에 드러난 최신 연구 성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립적인 관점에서 입증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세계관이 걸린 문제다.


그렇지만 신약 성경 속 사건들에 대한 세속주의적 해석에 대해 역사에 근거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그러한 해석의 출발점이 되는 세속주의 세계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 또한 가능하다.


경험적 방법론을 내세우는 현대 과학도 성경적 세계관에 큰 빚을 지고 있다.


기독교가 등장하기 전, 그리스인들은 주로 논리의 관점에서 과학을 정의했다.


그리스 고전철학은 사물이 질료와 형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고, 과학은 형상에 대한 지식이라고 정의했다. 형상은 수처럼 이성적이고 영원한 것이므로, 과학은 수학처럼 논리적으로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다. 과학의 진리는 경험적으로 발견한 내용이 아니라 엄격하게 논리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과학을 이런 식으로 정의하게 되면 애초부터 경험적 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따라온다는 문제가 있다.


어떤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기만 하면 될 뿐, 그것을 직접 살펴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추론만으로 대상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모두 끌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냄비를 살펴보자.


냄비의 목적이 액체를 끓이는 것임을 알게 되면, 그것이 액체를 담을 수 있는 특정한 형태를 가져야 하고, 가열할 때 타거나 녹지 않도록 금속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 등을 연역할 수 있다.


이런 연역적 방법은 모든 지식의 본이 되었고, 그 결과로 고전 사상가들은 구체적인 실험과 관찰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독교 신학자들은 몇 세기에 걸쳐 성경 본문을 숙고하는 과정에서 그리스식 과학의 정의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중세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전능하시니 세상을 수많은 다른 방식으로 만드실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분은 우주를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창조하실 수 있었다.


자연의 질서정연한 패턴은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것이 과학을 향해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 상아탑에 앉아 어떤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고 연역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신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가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고, 하나님이 실제로 어떤 질서를 창조하셨는지 알아내야 한다.


한마디로, 관찰하고 실험해야 한다. 17세기에 뉴턴의 친구 로저 코츠는 이런 식으로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자연이 "하나님의 완전히 자유로운 뜻"에서 생겨났고,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관찰과 실험으로"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썼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우주론에 따르면 모든 요소가 각기 '자연스러운' 위치를 찾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수사이자 수학자였던 마랭 메르센은 그런 식의 연역적 추론에 반기를 들었다.


역사가 존 헤들리 브룩은 이렇게 썼다.

 

 


 

"메르센이 볼 때 우주에 '필연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의 자연스러운 위치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분이 원하시는 곳에 두시며, 그곳이 어디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우리의 의무였다."


이것으로 볼 때 현대 과학의 실험적 방법도 성경의 창조주 개념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 과학 초기의 과학자들은 "연역에 근거한, 논리적으로 확실한 지식"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관을 거부했다.


대신에 그들은 경험적 증거에 근거한 개연성 있는 지식이라는 과학의 새로운 정의를 받아들였다.


철학자 리처드 팝킨이 지적한 대로, 신학자들은 "서구 사상에서 너무나 큰 역할을 감당한 영국 경험주의"가 탄생하는데 과학자와 철학자 못지않게 중요한 몫을 했다.


-낸시 피어시 [Saving Davinci] 210~213page] -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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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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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낸시 피어시

출판 복 있는 사람

발매 2015.03.16.

 

 

 

 

  이 책은 500page에 달하는 분량과 상당한 크기를 자랑한다.

 

  저자는 [완전한 진리]라는 명저를 남겨서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첫 느낌은 이 책은 '미쳤다!' 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수 있지? 라는 놀라움과 함께 프란시스 쉐퍼제자를 정말 잘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청출어람이라는 표현이 이에 적절하지 않을까?

 

  [완전한 진리]가 가져다 준 충격에 비견할 만한 충격...

 

  칼빈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의 끝판왕을 보는 듯한 책이다.

 

  컬러풀한 삽화들도 많이 들어 있는데, 기독교 세계관이 세속주의 세계관 속에서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특히 예술, 과학, 철학 등에 적용되는 기독교 세계관을 보고 있노라면, 교회를 다니면서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눈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리처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 같은 저서를 통해, 칼빈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이 지닌 한계와 문제점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정확히 이 노선을 지지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정말 잘 쓰여졌다.

 

  '문화' 라는 영역과 '종교'라는 영역이 거의 분리되어 버린 작금의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 속에서, 저자는 두 영역을 함께 쥐고, 세상과 소통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미술 작품 하나, 영화 하나, TV 프로그램 하나 속에도 깊은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기에 우리는 분별력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잘 지켜야 한다.

 

  조금은 숨이 막힐 수도 있지만, 이런 넓은 안목을 가지고 문화 생활을 접한다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더 많은 영역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박학다식한 저자의 지식에 일단 감탄하게 되고, 이 책을 다 보고 나면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회고해 볼 만한 내용은 없는지 고민도 해 보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 책을 통해 전적으로 배우는 입장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우리에겐 너무나 생소했던 기독교 세계관 지식 아니던가....

 

  여담이지만 그녀의 스승인 쉐퍼는 정치적으로는 보수를 지향했었다. 그러한 색채가 이 책에서도 조금씩 묻어 나는데, 기독교 세계관의 눈으로 볼 때 기존에 첨예한 논쟁이 되고 있던 분야들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는지를 한번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국의 극우 집단인 존 버치 협회 소속이었다가 그 노선의 위험성을 깨닫고, 전향한 한 여성의 책을 보고 있는데 그 책에 따르면 쉐퍼는 극우 그룹에서 상당히 인정을 받았었다고 한다. 정치 영역을 포괄하면서 공부를 하다 보면,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된다. 어쨌든 쉐퍼는 한 시대를 풍미한 매력을 지닌 인물이긴 하다.)​

 

  좋은 내용이 많아서, 두고두고 공부해도 좋을 책이다.

 

  복음주의 지성에 대한 마음이 많다면 이 책은 한번 읽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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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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