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밤'에 해당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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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C.S. 루이스

출판 홍성사

발매 2014.08.10

 

 

루이스의 원숙한 신앙이 담긴 에세이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고 7개의 주제를 짤막하게 나누는 글인데 글 하나하나가 주옥과 같다.

 

 


1. 기도의 효력

2. 믿음의 고집에 대하여

3. 썩은 백합

4. 스크루테이프, 축배를 제안하다

5. 선한 일과 선행

6. 종교와 우주 개발

7. 세상의 마지막 밤

 


 

1챕터: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기도 실험을 했던 것에 대해 반박해주는 챕터이다. <햄릿>에서 왕이 "진심이 안 담긴 기도는 결코 하늘에 닿지 않는다." 라고 말했던 대목을 루이스가 인용한 건 적절하다. 그런 식으로 조건을 걸어서 실험을 하듯이 접근하는 기도가 어떻게 진실된 기도가 될 수 있을까? 자연주의자들이 납득을 하든 안 하든 이 대목을 읽어 보고 자신들의 접근법을 고찰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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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챕터: 무신론자들이 볼 때, 왜 기독교인들은 저리도 근거 없이 맹목적인 믿음을 보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리처드 도킨스, 빅터 스텐저, 데니얼 데넷, 에드워드 윌슨 등은 자신들의 저서에서 그들의 무지함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지적으로 뛰어난 학자들 중에는 무신론자가 많다는 연구 데이터를 늘 자랑스럽게 내놓는다.

 

 


그런 의문을 지닌 이들에게 기독교인의 '믿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도와 주는 챕터다.


루이스의 마지막 말을 인용해볼까 한다.

 


 

"이것은 전달할 수 없는 지식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 동의하고 나면 사변적 사고의 논리에서 필연적으로 벗어나 인격적 관계의 논리라 부를 만한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은 그들도 알 수 있습니다. 그저 견해 차이에 불과하던 문제가 한 인격체가 신적 인격체를 대하는 행동에 관한 문제로 변합니다.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 이 '신에 대한 믿음'으로 바뀝니다. 이 신은 이 하나님, 갈수록 더 많이 알 수 있는 주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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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챕터: 난 이 챕터를 보면서 우리가 높게 평가하는 '교양' 에 대해 재고해 볼 수 있었다. 나는 가끔, 한자락 지나가듯 읽는 웹툰이나 컴퓨터 게임,환타지 소설 속에서도 그 어떤 고전, 예술 작품보다 위대한 가치를 발견할 때가 있는데 사람들은 후자는 '고상하고, 멋지고, 우아하고 교양있는 것'으로 높게 평가하지만, 전자는 '철없고, 유치하고, 배울 점 없는 저급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

 


 

라는 말과 함께 루이스가 인용하는 예시들이 있는데 그 중 한가지를 나눠 보겠다.

 


"제가 어떤 셰리주 파티에 참석했는데, 거기서는 교양이라는 말이 폭포수처럼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어떤 예술, 어떤 사람, 어떤 자연물에 대한 진정한 향유를 암시하는 말이나 시선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파티를 마치고 버스에 오른 저는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판타지와 공상과학 소설>에 푹 빠져 읽고 있는 남학생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살아 있고 조작되지 않은 것, 자발적이고 충동적이고 사심 없는, 진정한 문학적 경험을 만났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소년에게 희망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책이건 정말 좋아해 본 사람은 언젠가 좋은 책도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들 안에는 감상기관들이 존재합니다. 그것들은 무력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 소년이 공상과학 소설보다 더 진지한 책은 보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얻는 게 있을 테니까요."

 


 

이런 마음 가짐으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다면, 훨씬 고차원적인 양육도 가능하지 않을까?

 


나의 인생을 반추해 봐도, 루이스의 표현들은 얼마든지 성립 가능하다. 그들의 표면만 보고 그들을 판단하지 말자.

 

 


꼭 고상한 책을 읽어야 그 사람의 수준이 고상한 건 아니다.

 


 

그러면서 후반에는 현대 교육의 폐해를 지적해 주고 있는데, 이런 논의 자체가 참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교양은 지배 계급의 자격 조건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교양을 갖춘다고 해서 통치할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통치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자비, 재정적 정직, 실천적 지성, 노력 등이 교양 있는 사람들 안에 특별히 더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누구보다 '교양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루이스가 하는 말이기에 이 말들의 진실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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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챕터: <스크루테이프 편지>를 쓰고 나서, 후속편도 써달라는 요청에 대해 너무 악마적인 생각으로 빨려 들어가는게 힘들어서 더 이상 그런 글은 쓰기를 꺼렸다던 루이스가 이번에는 편지글이 아니라 연설문 형태로 그 악마들을 다시 초청했다.

 

 


악마의 입을 빌려서 루이스는 민주주의가 잘못 사용되는 경우, 평등주의의 지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가령 자신과 다른 모습을 용납하지 못하고, 자신의 열등감을 투영해서 그들을 그럴싸한 말로 쉽게 정죄해 버리는 민주 정신을 비판하는데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한다.

 

 


 

"여기 영어를 나보다 더 분명하고 듣기 좋게 말하는 사람이 있네. 잘난 체하고 고상한 척 꾸미는 비열한 가식이 분명해. 여기 핫도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네. 핫도그 따위는 수준에 안 맞다 이거 아냐. 주크박스를 작동시켜 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있네. 교양인입네 하고 뽐내려는 거 아냐. 그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나와 똑같을 게 분명해. 그들이라고 해서 다를 권리가 없잖아. 그건 민주적이지 않아."

 

 


이런 느낌과 더불어서 집단주의, 전체주의 양상이 만연해지다 보니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제 젊은 인간들은 보통 사람들과 달라질까 봐 고전음악이나 훌륭한 문학에 대한 취향을 애초부터 억누르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정직과 정숙과 절제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 구하기만 하면 그 힘을 가져다줄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거부한다고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다른 사람들과 달라지고, 다수가 걸어가는 길에서 어긋나고, 연대에서 밀려나고, 전체와 통합된 상태가 훼손될까 봐 우려하는 겁니다. 개인이 되어 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는 거지요."

 


 

실제로 집단에 들어가면 이와 같은 분위기를 강요 받게 된다.

 


이건 진실에서 거리가 먼 악마적인 모습이라고 루이스는 경고한다. 그의 에언자적 통찰력이 빛나는 부분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를 한다.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악마적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나도 너 못지 않아.', 다른 사람들과 같음, 함께함)가 정치적 민주주의를 지구상에서 제거하는 데 가장 좋은 도구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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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챕터, 6챕터도 나름의 참신한 의견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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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챕터: 재림 교리에 대해 다시 고찰해 보면서 유토피아적이고, 진화론적인 사고관에 비판을 가하는데 과학에만 국한된 진화론은 남겨 두고, 그 영역을 윤리, 문화, 사회, 역사에 공통적으로 적용해서 진보의 법칙을 이끌어 내는 점의 허구성을 파헤쳐 준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마지막 밤'이 도래하는 것을 기다리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으며, 중요한 부분인지를 역설한다.

 


 

 

짧은 글들이지만, 루이스의 균형잡힌 시각과 놀라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 C.S Lew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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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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