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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가 정확하지 않으나 다른 사이트에서 퍼온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그리스도인이 유학생으로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은데 그 속에서 답을 찾아 나갈 때 참고할 만한 좋은 글인 것 같아서 공유합니다. 원 글의 출처를 아시는 분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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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미국 유학생 1위 국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미국에 유학하고 있는 한국 유학생이 8만 명을 넘고, 동반한 가족만도 3만 명이 넘는답니다. 올해만 해도 5만 건의 유학 비자가 발급되었다니까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국에서 한국 유학생을 아주 많이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유학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학을 하는 것은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아는 사람들을 떠나서, 의지할 곳도 없고, 시스템도 다르고, 재정적 어려움이 있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외국에서, 또한 어설픈 영어로 공부하는 것 자체가 광야입니다. 더구나 가족까지 함께 유학을 한다면 광야는 더욱 깊어집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광야를 더 거칠고 황량하게 만드시지 않아도 외국에서 공부하며 산다는 것이 이미 충분히 힘들고 어렵습니다.


 

경험이 잘 통하지 않고, 알고 있는 지식은 한계가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제한된 곳에서 답답함과 한계를 뼈 속 깊숙이 느낍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렇게까지 바보 같지 않았는데,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실수한 적이 없는데….’라는 한탄을 쏟아냅니다. 나이가 들면서 정말 멍청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존을 위해, 한국에서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하면서 왜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유학을 왜 나왔을까 하는 후회를 합니다. 도대체 유학을 마치면 갈 곳이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유학을 하면서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가족이 없는 청년들은 외로움 때문에 몸부림을 칩니다. 그래서 유학생들 가운데 포르노에 중독된 형제들을 아주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한 남녀 학생들이 동거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커플들이 며칠씩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아무도 말하는 사람도 없고,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외로움이 유학하는 청년들의 가치관과 관계를 철저하게 파괴합니다.


 

그렇다고 가족이 있기 때문에 유학이 더 쉬워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인생은 시간이 지나고 가족이 늘어갈수록 복잡해집니다. 가족의 생존에 대한 걱정과 적응의 어려움은 유학생 가장이 짊어진 큰 짐입니다. 나이 들어 공부하는 것도 힘든데, 아내와 아이들이 아빠의 시간과 관심을 요구할 때 난감해집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학생의 아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남편보다 훨씬 심합니다. 아내가 영어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경우 함부로 밖으로 다닐 수도 없습니다. 언어와 환경에 대한 무능함과 무력함의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집에 갇혀 아무의 도움도 없이 애만 키우는 유학생 아내들은 감기처럼 쉽게 우울증에 걸립니다.


 

 


 

이런 한계와 상황이 가져다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몸부림을 칩니다. 이것을 극복해 보고자 더욱 열심을 내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밤을 새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현실을 도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땅 넓은 미국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답답함을 잊고자 합니다. 친구들을 찾아 이 모임 저 모임을 기웃거려봅니다. 하지만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산과 같은 한계의 벽 앞에 울게 됩니다. 실제로 소리 내어 울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영혼 깊숙이 가득한 눈물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외로움과 생존의 눈물이 가득한 영혼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불안, 불만족, 분노, 긴장, 두려움이 시도 때도 없이 눈물로 가득한 영혼을 요동케 하며 찾아옵니다.


 

사람들은 적응력이 참 뛰어납니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점점 유학 생활에 적응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외로움 때문에 소리 내어 울지 않습니다. 누군가 한국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접습니다. 독해지자고 마음을 먹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사귑니다. 한국을 잊어버리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미국에서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찾기 시작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적응의 양상은 비슷합니다. 신학생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광야는 인간의 본질, 한계, 그리고 적나라한 인간의 무능함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물론, 광야에서 본질과 한계가 드러났다고 해서 성장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어려움을 많이 겪은 사람이 항상 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 자체가 영적 성장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광야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반응했는가가 한 사람의 성장과 미래를 좌우합니다. 그렇다면 유학이라는 광야에서 본능과 한계대로 살아가지 않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로 자신의 한계에서 시작된 탄식과 눈물을 하나님 앞에서 쏟아내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유학생이 흘리는 눈물이 외로움과 생존과 한계 때문이더라도 그 눈물을 하나님 앞에서 쏟아내는 것을 기필코 배워야 합니다. 전화를 붙들고 엄마와 친구들에게 아무리 마음을 쏟아내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외로움은 영적입니다. 한계는 우리의 본질 안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생존은 현실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외로움을 채워줄 수 없고, 한계를 넘어서게 해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우는 것이 무엇인가 잘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로움과 한계와 생존이 가져다주는 강력한 눌림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보통 사람보다 더 울 일이 많은 유학생은 이 기회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우는 것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영혼에 가득한 우리의 눈물을 쏟아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자신을 죽음에서 구원하실 하나님 앞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던 것처럼 이것을 머리가 아닌 온 몸과 영혼으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통곡을 배운 사람만이 외로움과 한계와 생존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는 사람만이 우리보다 더 많은 슬픔과 눈물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강과 바다처럼 많은 눈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눈물이 하나님 앞에서 다 쏟아져 마르게 되면, 그제야 하나님의 눈물이 우리 안에 채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땅을 보시며 아파하시고, 쏟으시는 그 눈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게 가까이 계시면서 우리를 어루만지시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우시는 그분의 눈물을 알게 됩니다. 유학을 하며 흘려야 할 눈물은 바로 이 하나님의 눈물입니다. 하나님의 눈물을 배우지 못한 유학생은 유학을 성공적으로 마쳤더라도 여전히 자신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살아갑니다. 한계를 가리기 위해 위선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생존을 위한 삶을 살다가 죽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학을 하면서 이 땅을 위해 그리고 인생들을 위해 하나님이 흘리시는 눈물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유학을 허락하신 거룩한 소명을 붙드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아무런 생각 없이 유학을 온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유학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많은 희생과 용기와 도전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단 유학을 온 다음에는 생존에 지쳐, 적응하느라 피곤해서, 삶의 계속되는 요구들을 처리하느라 점점 왜 유학을 하는지 잊어버리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유학의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선택된 특권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회와 시간을 특별히 허락하신 것입니다. 유학을 허락하셨다면 그곳에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반드시 있습니다.


 

명확한 소명은 우리의 모든 선택에 영향을 미칩니다. 명확한 소명은 밤을 새워 드라마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선택, 외로움을 위해 이성을 선택하지 않는 선택, 사소한 이익 때문에 인테그러티(integrity)를 버리지 않는 선택, 현재적 생존이 아닌 미래적 비전을 위한 선택을 명확하게 할 수 있게 만듭니다. 거룩한 소명이 이끄는 삶을 살 때만이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여기는 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거룩한 목적에 합당한 것만을 집중하여 선택할 수 있습니다.


 

소명은 현재의 모든 상황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만듭니다. 소명이 확실한 사람은 어려움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쉽고, 편리를 보장하고, 이익을 보장되는 상황이 아니어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무명의 시기를 살며,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나 환경이 삶의 주관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생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명이 있는 자는 그의 생존의 문제가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소명을 주신 자의 삶을 인도하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소명은 우리의 미래를 확고하게 보장합니다. 소명이 우리의 살 곳을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녀의 교육 때문에, 삶의 질 때문에, 봉급 때문에 자신이 살 곳을 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이 한국에 있다면 유학을 마친 후에 반드시 한국에 돌아가야 하고,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소명이 아프리카에 있다면 그곳에 가야만 하고 가게 될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길을 만드실 것입니다. 소명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소명이 우리가 가야할 곳을 정합니다. 소명이 확실한 사람은 유학을 한 뒤에 자리가 있을까, 어디에서 살게 될까, 무엇을 하게 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소명을 주셨다면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생명을 다해 붙든다면, 유학을 마쳤을 때 하나님이 그가 가야만 하는 곳으로 그 사람을 반드시 보내실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이 유학을 오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좀 더 풍성한 섬김을 베풀 수 있는 사람들로 잘 준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이 외로움의 눈물, 생존을 위한 눈물을 하나님 앞에서 흘려버리고 하나님의 눈물을 배우게 되길 소망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을 회복해서 유학을 마친 뒤에는 그들이 있어야만 하는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일들을 성취하는 사람들로 섬길 수 있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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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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