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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정치경제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비판으로부터 닫혀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사이비 과학일 수밖에 없다."는 포퍼의 주장은 그 이론들을 신주단지처럼 떠받들던 당대 지식인 사회를 향한 큰 도발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포퍼가 처음(1940년대)에는 진화론도 사이비 과학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어떤 개체가 살아남느냐고 물으면 진화론은 적응을 잘한 개체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적응을 잘한 개체는 무엇이냐고 물으면 더 잘 살아남은 개체라고 답한다. 이런 식의 진화론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으며 반증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진화론은 사이비 과학이다.

하지만 포퍼는 진화론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얼마나 모자랐는지를 금방 깨닫고 진화론을 사이비 과학으로 규정했던 것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했다.

 

심지어 말년에는 생물 진화론과 지식 변동론을 결합시킨 이른바 진화 인식론(Evolutionary Epistemology)을 발전시켜 [객관적 지식:진화론적 접근](Objective Knowledge: An Evolutionary Approach)(1972)을 출간하기도 했다.

지식 성장의 원리인 '대담한 추측과 혹독한 반증'은 생물 진화의 원리인 '맹목적 변이와 선택적 보존'(blind variation and selective retention)을 빼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포퍼가 일평생 화두로 삼았던 '합리성'은 비판에 직면하여 반증의 시도에 눈을 감지 않는 지식인의 정직성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단 과학 지식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포퍼는 그의 반증주의에 입각하여 자유로운 비판이 가능한 열린 사회를 꿈꿨다.

포퍼의 과학철학과 정치철학을 꿰뚫고 있는 중심 원리는 바로 반증주의였다.

이런 포퍼의 사상을 사람들은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라고 한다.

 -[쿤&포퍼,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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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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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정의에 대해 다루는 상당히 흥미로운 책입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과학철학자들의 답변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 봐야 할 좋은 개론서입니다. 칼 포퍼는 '반증주의'로 이름을 알린 학자인데 그의 이론에 입각해서 프로이트의 심리학이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 점성술을 바라본다면 이들은 '과학'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특정 학자의 정의가 '과학의 참 정의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가 소개되어 있으며 저마다의 정의가 지닌 독창성을 중립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과학을 정의하는데도 이와 같이 단일한 결론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과학의 구체적인 내용들에 있어서는 더더욱 많은 논의와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상당히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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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는 자신의 반증주의에 기초하여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라 믿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을 사이비라고 비판했다.

                             -칼 포퍼-

 

예를 들어 어린이를 익사시키려고 물 속에 집어던지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물속에 뛰어드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두 행동에 대해서 프로이트는 첫 번째 사람의 행동은 억압 본능으로 인한 고통에 그 원인이 있다고 설명할 것이다.

반면 두 번째 사람의 행동은 억압 본능이 '승화(sublimation)'된 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프로이트를 이은 정신분석학자 아들러도 이렇게 서로 상반된 행동을 똑같은 원리로 설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에 따르면 첫 번째 사람은 열등감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죄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필요가 있었던 반면, 두 번째 사람은 열등감 때문에 고통은 받고 있었지만 자신이 그 아이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용감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보일 필요가 있었다.

 

즉 프로이트와 아들러 모​두 상반된 행동을 동일한 원리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포퍼는 바로 이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신분석학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설명하기 때문에 어떤 개별 사례들과도 양립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 이론을 반박할 수 있는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반박할 수 없는 이론이라면 그것은 진짜 과학이 아니다. 사이비요, 짝퉁이다. 포퍼는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한때 아들러 밑에서 방치된 아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펴기도 했지만 정신분석학을 사이비로 규정하고 그들과 결별했다.

포퍼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도 반증 불가능한 사이비 과학이기는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가령 19세기 영국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정책이 도입되었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지배 계급은 빈민 계층의 후생 복리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마르크스 이론과 상충되어 보였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오히려 그런 사례가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우겼다. 그런 정책의 도입이야말로 자본가들이 곧 일어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당근에 불과하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지도 않은 러시아에서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것은 마르크스 이론의 명백한 반증 사례인데도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얼버무렸다.

포퍼는 대학 시절 사회주의 학생연맹에 가입하여 한때 마르크스주의자로 살기도 했지만, 마르크스 이론이 갖는 경직성 때문에 그 이론을 사이비 과학으로 규정할 수 밖에 없었다.

포퍼가 사이비라는 딱지를 붙인 또 한 가지는 점성술(astrology)이다.

 

 

별의 위치, 모양, 밝기 등을 통해 국가의 안위나 개인의 운명을 예견하는 점성술은, ​서양에서는 아주 오래된 전통이다. 지금 우리로 치면 생시로 사주팔자를 보는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서양의 점이든 동양의 점이든 개인의 운명을 예견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포퍼는 점성술은 너무나 일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반박할 수 있는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가령 '올 한 해 운수 대통할 팔자야' 라는 점괘가 나왔다고 하자. 이 점괘가 정말로 맞는지 틀린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그 점괘를 받은 사람이 1년 내내 힘겨운 삶을 살다가 연말에 다시 점성술사를 찾아가 점괘가 틀렸으니 환불해 달라고 따진다면 점성술사는 어떻게 대응할까? "올해 큰 사고를 당할 뻔했는데 그걸 막은 게 운수대통이지 뭐냐?"라고 발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변명이 가능한 이유는 점성술 체계가 반증 불가능한 진술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포퍼는 점성술이 사이비 과학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쿤&포퍼,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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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승구

출판 합신대학원출판부

발매 2013.10.01

 

 

 

  인기 절정인 톰 라이트에 대해 개혁신학(보수신학)에서 입장을 표명한 책이다.

이승구 교수님은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감안해서 읽어야 한다.

 


일단 한국에선 개혁주의 신학이 '보수주의 신학'을 대변하는 용어가 되어 버렸지만 원래 '개혁주의 신학'은 좀 더 넓은 관점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Term이라고 생각한다.

 


 

톰 라이트의 작금의 주장들이 상당히 논쟁적이고, 사람을 고민되게 만드는 요소가 많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약간은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그의 이론에 대해 적절한 비판을 해주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 속에서 톰 라이트의 입장은 잘 비판되지 못한다. 그러기에는 뭔가 역량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이 책은 톰 라이트의 원서들을 읽으면서 그의 입장을 장황하게 인용하면서 인쇄된 책이기 때문에, 두서가 없고 산만한 느낌이 든다.

 


 

뭔가 라이트의 글을 천천히 곱씹으며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다음에 차분하게 입장을 표명하는 느낌이 아니라 일단 이상하다 싶은 부분들은 다 인용을 해 둔 다음에 그 뒤에 자신의 입장을 빠르게 정리해서 몇 자 적는 느낌으로 전개되는 책이다.

 

 

          

                                                               

                                 (톰 라이트)


 

라이트가 [칭의를 말하다]에서 존 파이퍼 목사님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무시하면서 논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 점에 대해서 이승구 교수님은 라이트가 너무 자신의 입장에서만 관찰한 것 같다고 비판을 하긴 하는데, 이게 라이트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의 [칭의]에 대한 부분을 비판할 때도 딱히 그 논리에 비판을 하지는 못하지만 1500년 경의 전통(orthodoxy)에 기대어서 그와 다른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해 경고를 할 뿐이다.

 


 

그리고 라이트가 성경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모습을 비판하면서 성경에 전혀 비판을 시도하지 않는 이들을 라이트가 문자주의자들,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냉소적으로 평가절하하는 모습을 다시 비판하는데, 이건 이 책의 저자가 지향하는 '독특한 노선'에 기대어서 비판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오랫동안 논쟁적인 주제가 되었던 성경 비평에 대한 부분이니만큼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비판받는 걸 막을 방도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부분적으로 라이트가 성경을 주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에서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다. 역사적인 접근만을 지향하다 보니, 우리가 들어왔던 해석과 너무 다른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라이트의 원서를 직접 본 게 아니라 이승구 교수님의 인용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라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 때는 성경에 대한 다차원적인 해석을 지지하는 이승구 교수님의 접근법에 마음이 더 간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논의는 이승구 교수님의 의견에 잘 설득되지 않는다.

 


 

  톰 라이트가 천주교적인 성찬 이해를 허용한다고 표현한 것이나 동방 교회의 '예수 기도'가 우리에게도 의미있게 사용될 수 있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 극도의 위험성을 드러내며 경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진리를 순수하게 지켜 내려는 그의 열심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앞과 뒤가 다 막혀서 유연성을 잃어버린 모습으로 보일 때도 있다.

 


 

  또한 라이트가 '신조 중심의 기독교'와 '성경 중심의 기독교'를 구분해서 후자에 집중하자고 역설한 부분은 너무도 당연한 해석인데, 이 책의 저자는 모든 신조 작성가들이나 신조를 믿는 분들이 성경으로부터 시작하여 나아갔다는 것을 기억하자며 신조중심의 기독교를 지켜내려 한다.

 


 

  그러다 보니 라이트가 1세기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해야지 16세기의 칼빈에게 충성해서야 되겠는가? 라는 식의 말을 하는 건 당연하다.

 


 

  이승구 교수님의 경고를 들어보자.

 

 

  "그러나 우리는 신학을 한 시대를 대상으로만 하는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 모두를 의식하면서 하는 것이다. 라이트는 미래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평가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지금 그가 논의하는 것은 결국 성경에 충실하려는 개혁자들의 논의 방식을 사용해서 개혁자들의 논의 내용을 부정하는 것이 되며, 이는 결국 종교개혁이 내용적으로는 잘못된 것이거나 지나친 것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라이트는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이런 식이다. 라이트는 종교 개혁을 부정하지도 않고, 그 가치를 폄하하지도 않는다. 놀라운 사건이었고, 하나님의 중요한 이끄심이었음을 믿지만 그 개혁 역시 인간의 손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완전히 무오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보수주의자들은 그런 식의 해석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성경무오설도 문자 그대로 신봉하게 된 건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개혁의 형식적 원리인 성경에 충실할 것과 함께, 종교개혁의 내용적 원리인개혁자들이 이해한 이신칭의 교리에도 충실해야만 한다는 점을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이다. 라이트에게 아쉬운 점이 바로 이점이다. 부디 라이트가 종교개혁의 형식적 원리에만 충실하지 말고, 그 내용적 원리에도 충실할 날이 오기를 원한다."

 


 

이런 충격적인 입장을 지지하면서 라이트에게 훈수를 둔다는 게 당혹스럽다.

 


 

세계관 분석 방법론 같은 챕터는 상당히 중요한 접근법이고, 좋은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저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인용하며, 정리를 한 건지 약간의 의구심이 생기는 구성과 짜임새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라이트의 입장에 따르면 그 어떤 인간도 신적인 관점을 가질 수는 없으니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진술을 할 수는 없고, 우리 모두 다 제한된 의미에서 각자의 주장을 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라면서 그는 이와 같은 견해를 반박하는데, 그렇다면 종교개혁을 100% 형식적, 내용적으로 다 받아들이는 누군가는 그런 절대적인 진술을 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는 것일까?

 


 

  글을 보다 보면 이승구 교수님은 워필드, 반틸 등의 성경 해석법을 동의하는데, 코넬리우스 반틸은 쉐퍼의 스승이었지만 쉐퍼조차도 등을 돌린, 극단적인 보수주의자 아니던가...... 진리를 엄밀하게 지키기 때문에 자신은 그 입장에 설 수 밖에 없다고 호소하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늘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는 라이트의 열린 관점, 논의를 하고자 하는 넓은 자세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는데 결국 그의 말에 따르면 이성논증은 하지 말아야 하고, 학문적인 접근은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책의 저자는 자신도 이성을 활용하여 학문적 접근을 하면서 라이트를 비판하고 있으니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마치 절대 진리는 없다고 주장하는 상대론자들,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의 '그 주장'을 절대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모순되어 보인다.

 


 

  세부적이고 사소한 해석에 있어서는 이승구 교수님의 라이트 비판이 동의가 되는 부분이 있고, 고민이 되는 영역도 있으나 크게 봤을 때는 결국 이승구 교수님은 자신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잣대를 가지고 라이트의 안 좋은 부분을 꼬집어 낸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24장에 대해서 대개 영적인 해석을 많이 첨가하는데 라이트는 이 속에 예수님의 재림이나 '때의 징조'에 대한 생각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부분들은 좀 더 고민이 된다. 그리고 다차원적인 해석의 용도로도 하나님이 쓰실 수 있다고 믿는 견해를 나는 지지한다.

 


 

  그리고 이 책은 라이트가 공헌한 부분도 앞에 조금 써주긴 하지만 대부분은 뒤에서 잔뜩 비판하고 싶은 전조에 불과하다.

 


 

  라이트가 지닌 하나님 개념에 대해서는 칼 바르트를 따르는 이들에게서 듣던 말을 라이트가 한다면서 그 말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냥 자신은 칼 바르트 입장을 반대하고, 정통적인 해석이 맞다고 믿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비판의 근거가 되나 보다.

 

(21세기의 C.S 루이스라 불리며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톰 라이트, 퍼옴)


 

  그리고 예수님의 제사장직에 대한 논의가 별로 없고 선지자직(그리고 왕직)에만 집중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트집을 잡는데, 이런 건 책의 분량을 채우기 위한 유치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라이트보다도 좀 더 균형잡힌 성경해석자들을 갈구하게 되고, 우리들의 성경해석에서 이와 같이 한 해석에 집착하여 균형을 깨는 무리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이 논의를 통하여 우리들은 스스로 흥미롭다고 발견한 한 해석에 사로잡혀서 성경 해석 전체를 그르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로고 주의하여 가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게 된다."

 


 

  라이트의 시각이 균형잡히지 않았다면 어떤 것이 균형잡힌 시각일까? 역시 답은 정통주의적 해석을 충실히 따라주는 게 바로 '균형 잡힌 것'이라고 그는 말할 것이다.

 


 

  일단 이 책은 라이트의 입장을 너무 곧이 곧대로 듣지 말고, 좀 더 비판적인 눈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나도 라이트의 글을 보면서 놀라곤 하지만, 동의가 안되는 부분이 몇 가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승구 교수님의 입장이 더 균형잡힌 시각이라고 보이진 않는다.

 


 

  반틸의 전제주의를 다시 가져오자고 말하는 순간, 그의 입장은 그의 노선은 오른쪽 그 어딘가에 고착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관련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저자의 '진리'를 향한 열정과 노력에는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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