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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흑역사] 책의 내용을 참고해서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 해본 글입니다. 한국 근현

대사와 한국의 교회사가 밀접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에 한국 교회의 본질적 문제를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이와 같은 내용들은 잘 숙지해 두시길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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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과 미국 선교사의 결탁

 

A: J. 한국 기독교 요즘 왜 이런데?

 

J: 뭐가?

 

 

 

A: 도덕적으로도 엉망이라는 기사가 많이 나오고, 극우 정치 세력들과 자주 손을 잡는 것 같더라? 기독교가 지향하는 바가 원래 이런 거야?

 

J: 도덕적인 부분의 타락은 분명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아. 물론 훌륭한 목회자들도 많이 있지만 이들의 소식은 언론이나 대중매체에 잘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지. 대형교회처럼 이슈화 되기 좋고, 권력과 잘 결탁되어 있는 무리들 속에서 문제들이 잘 불거지는 것 같아. 기독교가 극우 정치 세력과 결탁해 가는 과정은 한국의 교회사를 자세히 들여다 봐야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A: 한국의 교회사?... 좀 더 자세히 말해 줘!

 

J: 일단은 일제 강점기 시절, 한국에 복음을 전해준 미국 선교사들이 보여준 모습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구나.

 

 

 

A: 그 분들 덕분에 한국이 복음화 되고, 기독교가 전파된 거 아니야?

 

J: 물론, 그렇지. 좋은 일을 참 많이 해주고 가긴 했어. 그런데 그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어두운 측면들이 있었어. 그 부분을 나눠 볼께.

 

 

 

J: 1910 년을 전후로 한국 기독교는 조직을 정비하기 시작했지. 장로교회는 1907년 최초의 노회(지역조직) 1912년 총회(전국조직)을 발족해. , 북 감리교회는 1910년을 전후로 별도의 연회조직을 만들고 말이야. 그러다가 1930년도에 합동을 하여 기독교조선감리회를 탄생시킴으로써 한국 기독교는 하나의 사회조직이 되.

 

A: 꽤나 오래 전부터 한국 기독교는 태동했었구나.

 

 

 

J. 그렇지. 그런데 식민지 시절 초대 통감이던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기득권을 보장해 주는 조치를 취해. 예를 들어 선교사의 명의로 되어 있는 교회 부지, 전답, 주택 등의 소유권을 인정해 줄 뿐만 아니라 면세 특권도 부여했지.

 

 

 

A: 왜 일본이 한국에 온 선교사들에게 그렇게 잘 해줬지??

 

J: 이는 일본의 조선병합에 대한 국제 여론이 나아지기를 기대했던 이토 히로부미의 계산이 깔려 있던 거였어. 한국에 온 선교사들에게 잘해주면 국제 무대에서 일본의 이미지가 더 개선될 걸 알고 있었던 거야.

 

 

 

 

 

A: 그런 뒷 이야기는 있는 줄은 몰랐는데…..

 

J: 물론 1910년 일본의 조선병합 이후 조선총독부는 한국에 온 선교사들을 압박하는 정책을 취했었어. 1915년 포교규칙을 제정해 선교의 자유도 제한하고 미션스쿨의 종교교육도 금지했지. 그리고 조선총독부는 일본조합교회를 식민지 조선에 침투시키는 간사한 방법도 써.

 

 

 

A: 그렇지. 교회와 선교사를 탄압하는 일본의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걸?

 

J: . 그런데 1919 3.1 운동이 시작되면서 조선총독부는 기독교 정책을 온건하게 바꾸기 시작해.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해 진 것이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에 온 선교사들에게도 잘해주게 된 거야. 한국에 온 선교사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게 미국 선교사였으니까….

 

 

 

A: 어떤 방식으로 선교사들에게 잘 해 준거야?

 

J: 그들의 선교사 회유정책의 핵심은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를 보수화하여 식민지배의 한 축으로 삼는 것이였어. 그걸 가능케 했던 건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의 기득권을 보장해 주고, 그들에게 특권을 주는 방식이었지.

 

 

 

A: 이미 1900년도 초반부터 기독교는 보수화 되었던 거구나.

 

J: 그런 셈이지. 국가 정부와 결탁해서 이득을 취하고 재미를 보는 모양새가 그 당시에도 어느 정도 있었어.

 

 

 

 

J: 구체적으로는 일본은 포교규칙을 개정해서 교회로 하여금 자유로운 선교를 가능케 하면서 교회의 숫자는 크게 증가하게 되지. 그리고 1915년 조선총독부가 교육과 종교의 분리 원칙을 내세우며 금지했던 미션스쿨의 종교 교육도 나중에는 허가를 내줘.

 

 

 

A: 미션스쿨이 허가를 받은 과정에서도 일본의 도움이 있었구나.

 

J: 그러다 보니 미션스쿨은 지정학교로 인가된 이후에 일제가 요구하는 교과가정을 따르기 시작했고, 다른 학교들도 지정학교로 인가 받기 위해 총독부의 눈치를 보며 그들에게 잘 보이려는 입장을 지니게 되어 버렸지. 경신학교, 계성학교, 신흥학교, 신성학교 등의 미션스쿨들이 지정학교로 인가된 후 일제가 요구하는 교과과정을 따랐던 아픈 기억이 있어.

 

 

 

A: 미션스쿨이 그렇게 중요한가?

 

J: . 식민지 시기 장로교회의 재정 총회록을 보면 미션스쿨의 유지와 운영에 가장 큰 몫이 할당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어. 그러다 보니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장로교회는 미션스쿨을 유지하기 위해 타협했던 부분이 있었지.

 

 

 

A: 일제에게 타협한 미션스쿨은 어땠을까?

 

J: 그러다 보니 나중에 일본의 아시아, 태평양 침략 전쟁을 벌였을 때 미션스쿨들은 이를 지지하는 부끄러운 교육기관이 되어 버렸지.

 

 

 

A: 결국 미션스쿨을 세워서 바른 기독교 정신을 함양한 그리스도인을 양성하고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 과정과 그 수단과 그 중간 과정은 어두운 타협이 있었던 건가?

 

J: 말하자면, 그런 부분이 있었지.

 

 

 

J: 그리고 조선총독부의 선교사 회유정책 중 기독교단체의 법인설립을 허용해 준 부분이 아주 중요했어. 이게 1920년도에 있었던 일인데 그 이전에는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는 재산을 개인 명의로만 등기해야 했어서 안정적인 재산 보호가 어려웠어.

 

A: 그러면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생기면 교회의 권리가 잘 보장되지 않았겠구나.

 

 

 

J: 그렇지. 그러다가 1919 3.1 운동이 있고 나서 선교사들은 교회 및 선교사 명의로 재산을 등기할 수 있는 법인 설립을 요청하였고, 총독부는 1924년에 이를 수용했어. 이를 계기로 기독교 단체는 재산권 행사의 주체가 되어 법의 보호를 받으며 재산을 지킬 수 있게 되었지.

 

 

 

 

 

A: 교회의 재산이 이 때부터 축적될 수 있는 구조가 된건가?

 

J: 그런 측면도 있었지. 그 당시 세금 감면을 받았던 기록도 남아 있고…. 무엇보다도 이런 여러가지 혜택을 받고 나서 선교사들은 조선총독부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거야. 당시 한 잡지에서는 선교사들이 그 아래에 있는 신도에게 향하여 정치운동과 종교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모든 권세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니 권세자에게 굴복하라고 일러주는 모습을 꼬집을 정도였지.

 

 

 

J: 이렇게 선교사들이 일본을 돕는 형국이 되면서 식민지 조선 백성들은 반감을 키우게 된 측면도 있어.

 

 

 

J: 그리고 재단법인의 설립으로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는 기득권은 지킬 수 있게 되었지만 조선총독부의 통제를 받기 시작해. 재산목록과 사업상황, 지출과 수입 등 재산상황과 관련된 정보들이 조선총독부에 보고되는 식으로 말이지. 장로교회도 지속적으로 조선 총독부에 의존을 했는데 기독교인 공동묘지 설치를 위해 총독부와 교섭하기도 하고, 총회 참석자의 경비 절감을 위해 철도 할인권을 총독부에 요구하기도 해.

 

A: 서로 이익을 주고 받기 시작하니까 감시하고 의존하고 뭔가 관계가 꼬이기 시작하는 걸?

 

 

 

J: 그러게. 이러한 역사적 정황 속에서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는 제도적 기독교화되기 시작해. 제도화 된 기독교는 국가권력에 대한 절대적 의존성을 지니고 조직의 생존과 확장에만 큰 관심을 두기 시작하지. 그러다 보니 교회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속성과 의미에 대한 고민은 약해지고 눈에 보이는 교회, 눈에 드러나는 교회 건물, 눈에 보이는 교회 재산 등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되기 시작한 거……. 소위 메가처치 현상도 이렇게 기독교가 제도화되면서 발생한 측면이 있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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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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