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민에게 고함…
셸링, 헤겔과 함께 독일 관념주의 철학을 이끌어 갔던 대표적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피히테....
사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사이에는 , ‘독일’ 이라는 단일 국가가 아니라 다양한 연방 국가 중에 하나였던 ‘프로이센’(그러나 가장 힘이 셌기에 , 독일 연방 국가 중 대표나 다름 없었던) , 또는 영어식 발음으로 ‘프러시아’ 라는 나라에서 피히테가 했던 연설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대개, ‘교육’ 을 강조하고 있기에 많은 사범대학이나 교육학 강의에서 배우게 된다고 하는데 , 이 쪽 방면으로 아는 게 없어서 그냥 별다른 생각 없이 읽은 책.
요약을 하자면…
“독일이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에게 점령을 당하고 (이 연설을 베를린 대학에서 하던 와중에도 그 주변에 프랑스의 군대가 감시를 하고 있었다)
이토록 굴욕적인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 , 이것은 국가 존망의 위기이다.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 에 문제가 있어서인데 , 그 중에서도 특히 ‘청소년 교육’ 이 시급하다.”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 죽어가는 민족을 일깨워 주는 그의 사자후는 굉장히 멋있어 보이며 그가 지닌 자국에 대한 자부심 등이 때로는 과도해 보일 때도 종종 자주 있지만 , 또 한편으로는 그 만큼 자국을 사랑하는 그의 ‘애국심’ 에 훈훈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 궁금한 것은 그가 제시한 교육론이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 쪽 방면으로 무지하기에 , 전문가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름.)
기존의 교육은 학생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 그들의 ‘책임성’ 을 길러주는데 , 중점을 뒀었다면 , 피히테는..
“솔직히 말하면 , 이와 같이 학생들의 자유의지를 인정하고 거기에 기대를 건 것이 지난날의 교육이 범한 첫째 과오이며 , 학생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나로선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물음이다.
이런 부분이 있는가 하면, 그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정신 적인 면에 도움을 주는 기억이 아니라 단지 기억 자체만을 필요로 하게 되면 , 이것은 정의의 능동이 아니라 수동이라고 볼 수 밖에 없으며 , 학생들은 싫어하는 공부를 마지못해 하는 현상을 나타내게 된다.”
한국의 단순 무식한 암기식 교육 , 결과 중심적 교육 , 치열한 경쟁 구도식 교육과도 일견 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동의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 역시 극단적인 그의 주장은 다시 등장한다.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와 같은(자신이 주장하는) 새 교육의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시켜 모든 접촉을 막아 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 로 보고 있지 않는 건 아닐지… 전체주의 , 민족주의 사상에 물들어 개개인을 바라보는 눈을 상실한 건 아닌지…… 심히 염려되는 주장들이다.
위와 같이 학생의 자유 의지를 박탈하고 , 그들을 감금? 시켜서 자신이 주장하는 사상 교육을 시키는데 , 그들에게 단순한 암기가 아닌 정신적인 면에 도움을 주는 기억을 시키겠다는 것인가?....
결국 그가 정의내리는 ‘정신적인 면에 도움을 주는 기억’ 이라는 것도 한낮 허상에 지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는 철저한 이상주의자일까.?
“새 교육은 학생들이 자유로운 정신 활동을 하여 자진해서 생활에 필요한 도덕적인 질서의 영상을 머리에 그리고 , 이것을 내면적인 사랑으로 파악하며 , 그의 삶을 통하여 현실적으로 나타내도록 노력하게 한다.”
이러한 발언들은 플라톤이 [군주론] 에서 보여줬던 이상 국가를 뺨치는 게 아닐까… 또한 그가 생각하는 종교는 다분히 ‘수단적’ 이다… 종교는 자신의 국가를 바르게 수호하는 데 , 유용한 하나의 ‘도구’ 일 뿐이다..
계속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우리는 새 교육의 최초의 전제로서 인간의 마음 속에는 선에 대하여 쾌감을 느끼는 순수한 감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쾌감은 , 악을 행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새 교육에서 주장했습니다.”
이와 같은 희망적 견해…..
‘선에 대한 쾌감’ 을 지닌 인간을 기대하는 한 사람….
그렇다면 ‘악에 대한 쾌감’ 을 지닌 인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을지…
그리고 , 한 사람이 교육 만으로 ‘완전한 새 사람’ 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생각…..
지금 이 시대 상황과 기존의 역사가 이 말의 참과 거짓을 가려 줄 것이다.
그리고 , 그가 몇 챕터를 투자하면서 역설하는 것은 ‘독일 국민’ 의 유니크성이다.
어찌 보면 , 히틀러가 지녔던 민족사관과 겹치는 부분도 있어 보이고….
(간혹 루터 등이 쓴 성서의 글들을 인용하는데 , 당혹감을 감출 수 없는 끼워 맞추기 식 해설을 사용함)
그가 독일 민족의 특수성을 논할 때 , 중요한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언어’ 이다.
그토록 ‘언어’ 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문학’ 등에도 높은 가치를 부여하게 되고 , 그러다 보니 그는 ‘시’ 가 민족의 정신적인 교양에 무려 두 번째로 중요한 부문이라고 이야기 한다. (플라톤이 ‘시’ 를 저급하게 여긴 것과 대조된다.)
독일 민족이 그렇게 특별한 것인지…. 근거가 좀 빈약해 보이긴 하는데…
그는 늘 당당하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독일인은 자연스러운 반면에 , 외국인은 방자하고 허식에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이 이 양자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그는 독일인이 사용하는 언어가 바로 ‘살아 있는 언어’ 라고 정의 내리고 , 나머지들의 언어는 ‘죽은 언어’ 라고 이야기 한다.
“죽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은 참으로 창조적인 천재성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민족은 본래적인 표상 능력이 없기 때문에 , 이미 시작한 것을 발전시키고 이것을 현존하는 완성된 표상 전체에 옮겨 넣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언어는 죽은 언어에 비교해 보면 보다 높은 문화 수준에 설 수 있습니다.”
또한 , 언어 뿐만이 아니라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드러내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 그건 바로 ‘루터의 종교 개혁’ 과 ‘이런 사건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 이라고 한다.
그 과정 중에 이탈리아 국민들과 비교 , 대조를 하기도 하고…
(마태복음 등을 인용하며 , 또 한번 독특한 자신만의 해석법을 도입하고..)
아무튼 , 그가 하는 이야기 전반에는 거의 동의를 못하겠지만 , 그래도 이 양반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그의 단호하고 결연한 태도 ,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등이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요즘 같은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그의 일갈이 더욱 절실하다.
“물론 사람마다 다 똑 같은 말에 귀를 기울일 수는 없는 일이지만 , 우리는 지금 그런 일에 상관할 시간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 급박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 당면한 필요성이 우리에게 말하라고 명령하므로 , 우리는 그대로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당국자는 우리가 뛰어다니며 먼지를 일으켜서 그들의 화려한 예복을 더럽힐까 염려하여 우리 발걸음을 조절하려는 것입니까?
우리는 현재 물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 도움을 청하는 우리의 부르짖음이 섬세한 신경을 가진 이웃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 두려워 외치지 말란 말입니까?
우리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꺼리는 사람은 대체 누구입니까?
또 무엇 때문에 그들은 우리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싫어하겠습니까?”
“위대한 인물은 어느 시대나 또 어느 국민에게 있어서나 결코 허영심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다는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허영심을 드러내는 사람은 분명히 소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참으로 자신 있는 큰 인물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바치는 기념상이나 명성 또는 갈채와 칭찬의 소리를 떳떳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들을 경멸하는 마음으로 다 물리쳐 버리고 자기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심판관의 무언의 판결에 따르며 , 또 후세의 역사적인 비판의 선고를 기다리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곧 결심해야 합니다. 머지 않아 자연히 나아질 터이므로 그때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하든가, 잠깐 잠을 자면서 꿈이나 꾸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개선이란 저절로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깊은 생각에 잠기기 위해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하루를 허송하고 오늘도 여전히 결심을 하지 못한다면 , 내일도 아무 성과를 올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일에 착수하기를 주저하고 뒤로 미루는 것은 다만 우리를 게으르게 만들어 더욱 깊은 불행 속에서도 태평하게 할 뿐입니다. 우리의 각성을 촉구하여 머지않아 외부적인 정세가 오늘날 이처럼 벅차게 우리에게 엄습해 오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이 사태를 보고 , 격동하여 분발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감정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최후의 결의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결코 다른 사람에게 지시 하거나 위임하거나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요구하기 위해 초청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혼자서 실천할 수 있는 결의를 해야 합니다. 저 터무니없는 게으른 지향 , 가까운 장래로 실천을 미루는 의욕 , 수수방관하며 저절로 개선되기를 원하는 기대는 오늘날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것은 생명이며 , 동시에 내면적인 결의 – 그 목적을 이룰 때까지 흔들리거나 마음이 식지 않고 줄곧 밀고 나가는 – 입니다."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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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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