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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빈치 코드에 숨은 거짓과 진실

 

저자: 리처드 어베니스(Richard Abanes)

 

 

 

주제: 예수의 신성에 대한 이슈

 

59~60 page

 

 

 

예수의 신성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그 때까지 예수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그저 한 사람의 예언자일 뿐이었다.” (다빈치 코드 1 357~358page)

 

진실: 니케아 공의회는 예수의 신성을 결정하는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것 이전에 가장 긴급한 문제는 아리우스라 불리는 한 남자와 연루되었다.

 

 

도마가 예수께 했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요한복음 20 28)이라는 말에서 입증되듯,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감하시던 때 이미 그리스도의 신성은 동의 되었다. 요한복음 1 1, 디도서 2 13, 히브리서 1 8~10절 그리고 베드로후서 1 1절과 같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서도 예수의 신성은 잘 나타난다.

 

 

 

2세기가 끝날 때까지 이러한 믿음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견고하게 믿어졌다. 예수를 묘사한 다음의 표현들을 생각해 보라: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 150년경) : “하나님의 말씀으로 잉태한 독생자, 하나님” ; “하나님이시며 만군의 주

 

이레니우스( 185년 경) :우리의 주, 하나님, 구세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200년 경) : “참으로 가장 분명한 하나님,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온 우주의 주와 동등하시다.”

 

 

 

 

 

예수는 결혼했는가?

 

62page

 

이는 영지주의 복음서에서 현저하게 되풀이 되어 나오는 당혹스러운 주제이다. 막달라 마리아.. 구체적으로 말해,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했다는 사실이다.” (다빈치 코드 2 13페이지)

 

진실: 나그 함마디 문서들 중에 있는 영지주의 복음서-진실의 복음서, 도마 복음서, 빌립 복음서- 중에 그 어떤 것도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가 결혼했다라는 언급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마리아 복음서(Gospel of Mary)도 이 문제에 대해 마찬가지로 침묵하고 있다.

 

 

 

62~63page

 

빌립 복음서는 구세주의 반려자는 막달라 마리아라고 밝히고 있다. 모든 제자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한 그리스도는 그녀의 입에 종종 키스하곤 했다. 나머지 제자들은 이를 불쾌하게 생각하고 그에게 불평을 털어 놓았다. 그들은 예수께 당신은 왜 우리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합니까?”라고 말했다.. 모든 아람 학자들은 당신에게 동료라는 단어가 그 당시에는 정확히 배우자라는 뜻이었다는 사실을 알려 줄 것이다.” (다빈치 코드 2 15~16페이지)

 

 

 

진실: 빌립 복음서는 결코 아람어로 쓰여지지 않았다. 이 복음서는 이집트어의 후대 형태인 콥트어로 쓰여 졌다. 그리고 이것조차도 아람어가 아니라 그리싀어로 쓰여진 초기 문서의 번역이다.

또한, 덴버 신학교의 그레그 블롬버그 교수에 따르면, “표준적으로 동료가 배우자를 의미하는 아람어나 히브리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카고 신학교에서 초기 교회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교수도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첼에 따르면, 다빈치 코드가 일반적으로 친구 또는 동료로 번역되는그 단어를 잘못 번역하고 있다고 한다.

 

 

 

 

 

예수의 혈통에 대한 검증

 

66~67page

 

수 많은 역사가들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왕실 연대기는 상세하게 기술되고 있다.” (다빈치 코드 2 26page)

 

진실: 댄 브라운은 학구적인 무게를 추가하고 역사학자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예수 혈통에 대한 자신의 주장의 진실성이 독자들에게 유포되기를 바라고 있다. 뒤이어서 [성혈과 성배] (마이클 베이젠트,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 [앨라배스터석으로 만든 항아리를 이고 있는 여성] (마가렛 스타버드) , [복음서 안의 여신] (마가렛 스타버드) 그리고 [성당수도 기사단과 비밀결사] (리닌 피크넷과 클리브 프린스)과 같은 4개의 책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의 저자는 모두 역사학자가 아니었다. 스타버드는 비교 문학과 독일어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베이젠트는 심리학 전공의 대학생 이었으며 최근까지 신부주의와 종교 체험을 전공으로 석사공부를 했다. 그리고 레이는 원래 단편 소설가이자 저술가였다.” 링컨은 BBC 텔레비전 명사이자 대본작가이다. 그리고 피크넷과 프린스는 비학, 초자연주의, UFO에 심취해 있는 실제 음모 이론가들이다.

 

 

 

메로빙거 왕조에 대하여

 

67~68page

 

그리스도의 후손들은 5세기에, 메로빙거 왕조라고 알려진 혈통을 만든 프랑스 왕가와 결혼해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기 전까지 프랑스에 숨어 살면서 차츰 성장했다 .메로빙거 왕조는 파리를 세웠다.” (다빈치 코드 2 33페이지)

 

진실: 파리는 B.C. 250년부터 B.C.200년까지 그 곳에 정착한 켈트 사람, 골 사람(Gauls, 현재의 북부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를 포함하는 유럽 서부의 고대명), 특히 파리시족(Parisii)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도시는 B.C. 52년 줄리어스 시저가 정복한 이후, 로마 제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메로빙거 왕조는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수백년 후, 서부 게르만족과 연합해 그 지역을 탈취한 프랑크족 시대에 이르러 그 모습을 처음 드러낸다. 이 종족은 A.D. 200년부터 250년 사이에 벨기에족(Belgic, Gaul 북부에 살았던 고대 벨기에족)의 갈리아 지역으로 이주해 클로비스 1(481~511)의 통치를 받다가 약 486년에 이르러 현재 프랑스라고 불리는 지역의 통치권을 갖게 되었다.

 

메로빙거 왕조의 혈통이 시작된 시기는 프랑크족이 파리 지역에 들어오기 전인, 447년에서 457까지 통치했던 메로비치 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손자, 클로비스 1세 때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파리가 수도로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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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빈치 코드에 숨은 거짓과 진실

 

저자: 리처드 어베니스(Richard Abanes)

 

23~24page [타로 카드의 기원에 대하여]

 

소설 [다빈치 코드] 에서는 타로 카드(Tarot cards)를 말하기를 이 비학(occult)의 카드는 교회가 금지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안되었다.” 라고 한다.

(다빈치 코드 1 142page)

 

 

 

진실: 타로 카드는 원래 예언을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동양의 집시들이 타로 카드를 발명하여 1300년대 후반에 유럽에 전파했을 가능성이 있다.

타로의 기원이 유럽인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슬람교도들이 1200년대 초부터 타로 카드놀이를 한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 후 카드가 유럽으로 전파되어 집시들이 그것을 사용하고 대중화시켰다는 것이다. 140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타로 카드의 기원을 찾으려는 학자들도 있다.

 

 

 

앞서 언급한 이론들은 타로에 대해 남아있는 단지 몇 가지 가설일 뿐이고 타로의 유래에 대한 뚜렷한 지식은 사라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타로 카드 한 벌이 1300년대 후반 유럽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전부이다. 위칸 도리엔 발리엔테는 타로 카드의 기원을 실제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했으며, 대부분의 연구자들도 금지된이데올로기의 전파를 위해 고안되었다는 주장을 부정할 것이다.

 

 

 

 

이교도의 탄압

 

26page

 

소설 [다빈치 코드]에 나오기를 기독교와 이교도간의 투쟁이 극심해지자 그로 인해 로마는 둘로 분열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콘스탄틴은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A.D. 325년에 기독교라는 하나의 종교로 로마를 통합시키기로 결정했다.” 라고 한다.

(다빈치 코드 1 355page)

 

 

 

진실: [다빈치 코드] 325년에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만들었다고 암시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콘스탄틴은 단순히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부여했을 뿐이다.(313, 밀라노 칙령). 데오도시우스 통치 기간(379~395) 381년에 이르러서야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었다.

 

325년 이전에 이교도와 기독교 간의 분쟁이 있었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이교도와 기독교인들은 상호 공존하여 평화롭게 지내기도 했다. 로마 관료들을 포함한 몇몇 이교도들, 특히 데키우스(Decius : 249~251), 디오클레티안(Diocletian : 384~305) 그리고 갈레리우스(Galerius : 305~311) 등이 통치했던 시기에는 기독교인들을 종교적인 박해로부터 보호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교도와 기독교 간의 충돌이 로마 제국의 주된 위협적 요소가 될 수는 없었다. 로마 제국은 여러 적국(고트족, 반달족, 훈족)에 의해 침략을 받았다. 더욱이, 로마의 성도덕과 개인윤리가 서서히 파괴되고 있었다. 로마 제국을 멸망하게 만든 다른 요인들은 외국 군대의 독립, 영토의 과도한 확장, 그리고 정치적 부패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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